요한계시록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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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
사데 교회
저희가 계속해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를 읽어보고 있는데요, 지난 주에 함께 본 교회들의 편지를 보면 책망하고 이렇게 저렇게 좀 해라 라고 하는 말씀도 있었지만, 나름 칭찬하는 교회들이 등장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칭찬은 없었지만 좀 격려해주는 말씀으로 말씀하기도 했는데요, 특이하게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교회 중 두 교회,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예 칭찬도 격려도 없이 책망만 있고 무섭게 혼내는 교회들입니다.
먼저 사데교회를 왜 그렇게 혼내셨나 보면,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아주 맹렬하게 혼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것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는 말은 칭찬할 껀덕지를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앞에 교회에서는 칭찬하거나 격려하는 말이라도 있었는데, 격려도 없이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데 교회를 그냥 버리시겠다고 말씀은 안하십니다. 3절에 보시면
어떻게 받았고,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서 회개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받고 들었다라는 것은 복음이죠. 복음이 이 사데에 흘러들어가서 거기서 교회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됬는데, 막상 까고 보니까 정말 복음을 받은 사람들처럼 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사데 지방은 큰 그리스 신들의 신전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그리스 신들과 아시아 신들의 신화가 막 혼합되기도 하는 등 종교간의 혼합이 굉장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원래 여기에 부유한 유대인 공동체들이 있었는데, 보통 유대인 공동체라고 하면 당시 이방인들에게 굉장히 배척을 받았었어요. “아니 그냥 이 신도 믿고, 저 신도 믿으면 되지 왜 굳이 너네가 믿는 신만 신이라고 하냐?”라는 이유 때문에 많은 배척을 받았는데, 이상하게 이 지방에 있던 유대인 공동체는 배척받지 않고 돈과 권력을 유지했거든요. 그 이유가 이 유대인 공동체는 우상 숭배를 비난하거나 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관용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원래같았으면 “우리한테 우상숭배 강요하지 마라!” “너네가 믿는 신은 다 가짜다!”라고 해야할 유대인들이 여기서는 이방인들하고 똑같이 “그래~ 너네 믿고 싶으면 믿으면 되지”하고서 그들의 문화와 같이 혼합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복음이 들어가서 교회가 세워졌는데, 이 교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받고 들었기 때문에 그 복음을 생각하고 지켜서 회개해야하는데, 그러지 않고 이방인들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유지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3절 후반절에 보시면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사데 지방이 부유하고 커다란 신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가 높은 산 위에 지어진 요새 같은 곳이라서 당시 그리스 속담에 “사데 지방을 정복한다”라는 말이 속담처럼 쓰였다고 해요., 사데를 정복하는게 아주 불가능할 정도로 견고하기 때문에 사데를 정복한다 라는 말은 불가능한 일을 해내다 라는 뜻의 속담이 있었다는 거죠. 근데 이 사데에 대해서 “도둑같이 이를 것이다”라고 하는 말은 그렇게 견고한 성과 요새같은 도시라고 할 지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무너져버릴 것이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4-5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렇게 우상숭배에 관용적이고 혼합되어가는 사데 교회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옷을 더럽히지 않은 이들은 예수님과 같이 흰 옷을 입고,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 사람을 기억합니다”라고 예수님께서 시인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두번째로는 빌라델비아 교회인데요, 이 교회는 책망이 없이 칭찬과 격려만 있는 교회입니다. 8절을 보시면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 라고 말씀하는데요, 빌라델비아 지방도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들의 신전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그리스 신을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앞서 본 사데교회와는 다르게 믿음을 지키다가 유대인 회당에서 쫓겨나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의미는 단순하게 기존의 유대인 공동체에서만 배척되는게 아닙니다. 당시에 로마 제국은 워낙에 땅덩어리가 넓었기 때문에 지방 관리들이 각 지방을 담당해서 통치하도록 했는데요, 특히 이 지방관리들은 “델라토레”라고 불리는 정보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정보원들은 평소에는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누군가 잘못하는게 보이면 그걸 고발해서 처벌받게끔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유대인 회당에서 쫓겨나게 되면 몇몇 유대인들이 이 델라토레, 정보원 역할을 해서 기독교인들을 로마 법정에다가 고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 사람들은 황제 숭배도 거부하고 이방 신 믿기도 거부합니다! 분명 황제에 대한 반역을 꾸미고 있는거에요”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사실은 이 요한계시록이 쓰여졌을 때는 로마가 마구잡이로 기독교인들을 잡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기독교인이 아닌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찾아내서 고발하고, 그렇게 들켜서 고발된 사람들이 주로 처형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했는데요, 그래서 8절에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비록 겉으로 그리스도인임을 밝힐 수도 없고 복음을 널리 전할 수가 없는 작은 능력밖에 없지만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을 주님께서 칭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9절 말씀을 보시면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안그런 사람들도 있었겠죠. 하지만 몇몇의 유대인들에게 고발당해서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 고발하는 사람들을 너희 앞으로 끌고 와서 너에게 절하게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을 보시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인내의 말씀, 고난과 박해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인내를 지킨 사람들에게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지금은 이 세상에서 시험을 당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있는 심판에서 그 심판을 면하게 하신다고 권면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사데 교회에서도 복음을 지켰던 사람들과 같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믿음을 지킨 사람들도 하여금 12절에 새 예루살렘,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서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내용인데요, 이 라오디게아 교회도 칭찬이 없습니다. 특히 15-16절을 보시면 잘 아시는 말씀이실 텐데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사실 여기사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는 말은 라오디게아 지방의 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지방은 온천이 발달한 부자 도시였는데, 뜨거운 물은 바로 이 온천에서 나오는 목욕물을 의미하고, 찬물은 산에서 내려오는 식수를 의미합니다. 차거나 뜨겁거나 한 것은 목욕물로 쓰거나 식수로 쓰거나 라는 뜻인데 물이 미지근하다는 것은 이 두가지가 섞여버려서 온천수로 쓸 수도 없고, 식수로도 쓸수도 없어서 토해버리겠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사데 교회의 상황처럼 예수님이 좋을 때는 예쑤님 믿는다고 했다가, 이방신이 좋을 때는 이방신을 믿는다고 했다가 하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17절을 보시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특히 라오디게아는 의복, 의류에 관한 상업이 발달했었고, 또 18절에서는 안약이 등장하는데, 의약품도 라오디게아의 특산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열심히 치장하고 이뻐보이고 부자처럼 보이고 하는 그런 모습들이 있지만 정작 그들의 영적인 성숙함을 보자니 예수님 믿는 것도 안 믿는 것도 아닌, 아주 영적으로 가난한 상태라는 겁니다. 아무리 배부르게 먹고 비싼 옷으로 치장하고, 찬물을 마시고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안약을 바르지만, 정작 그 사람의 영적인 생활은 미지근한 물이고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19절에 “사랑하니까 이렇게 징계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열심을 내서 회개하라”라고 말씀하시고 20절에 보시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마음이 가난하고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예쑤님께서 문 밖에서 두드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양식, 영원한 생명을 살게하는 떡과 포도주는 저희가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나오는게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에 대한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께서 배부르게 하시고 영적으로 부유하게 해주십니다.
계시록은 가까운 말씀
계시록은 가까운 말씀
이처럼 저희가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 까지 세 교회를 살펴보았는데요, 이중에 사데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도 격려도 없이 책망만 받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오늘날에 저희가 저번부터 살펴본 일곱 교회중에 딱 사데와 라오디게아 이 두 지방만 폐허가 되서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지방들은 그래도 이전 그 지역 그대로 발전해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사데와 라오디게아 지방은 지금 폐허 관광지가 되어있습니다.
이 계시록 말씀을 저희가 많이 생각하기를 먼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신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문제가 많으니까 “빨리 회개해라”라고 말한 두 교회는 그 지역 전체와 함께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반면에 빌라델비아 교회의 경우에는 이 교회의 이름을 딴 유럽의 많은 지역들, 미국에도 도시이름으로 지금까지 저희들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희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교회가 바로 서야한다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교회가 먼저 바로 서서 “일본 놈들을 다 죽여버리자!”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평화를 바로 세우자”라는 정신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삼일 운동에 함께 하기도 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교회가 바로 서게 되었을 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오늘 본문말씀 6절 13절 22절이 말하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처럼 성령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스피커폰 들고 서로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차거나 뜨겁거나 하라는 말씀은 왼쪽 편에 서라, 오른쪽 편에 서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 편에서서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문을 열어서 생명의 양식을 함께 나누는 교회가 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결론
결론
그래서 오늘 함께 기도하실 때에는 나라가 혼란한 와중에, 바로 그러한 시기기 때문에 교회가 바로 설 수 있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햇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바로 서지 않으니까 사데와 라오디게아가 폐허가 되어버렸던 것처럼, 빠르게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혼잡한 우상숭배가 일어나던 빌라델비아에서 비록 작은 능력일 지라도 믿음을 잃지 않았던 교회가 있었던 것처럼, 나라가 혼란하다고 믿음의 역사를 잃어버리지 않고, 미지근한 교회가 아니라 온전히 예수님 편에 서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했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