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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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0–17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바울은 에베소서에는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자라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주의 자녀들 개개인에게 성령이 내주하시지만, 교회라는 다수가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지성소에 머무셨던 것처럼, 이제는 교회에 거하시도록 교회는 자라가야 한다 성장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되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영적으로 성장해가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아직 어린 상태에 머물고 있거나, 성장이 멈춰있거나, 성장이 더디다면 무엇이 나의 영적인 성장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10절 말씀은 성도들이 강해져야 한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 이유는 영적인 전투가 성도들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이 영적인 전투가 만만치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힘의 능력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여기서 힘의 능력은 하나님의 힘의 능력을 말하는데 영적인 전투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하나님의 힘의 능력이 필요할 만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힘의 능력으로 강해져서 이 전투에 임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해지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전투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게 됩니다. 영적인 전투현장에 내가 서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서있다면 백번 영적으로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영적인 성장이 멈춰있거나, 영적으로 어린상태에 머물고 있거나, 영적인 성장이 더딘 이유입니다. 에베소서는 구원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구원을 받았냐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루신 어떤 구원을 하셨는지를 말씀합니다. 2:6을 찾아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6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부활시키셨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해주셨는데, 구원의 내용을 깊이 살펴보니 하나님께서 그리스와 함께 이미 우리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고, 우리를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하늘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하늘에는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니까 하나님과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그 그리스와 함께 앉아있는 우리들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하늘에는 또다른 존재들이 있다고 에베소서는 말씀합니다. 3:10를 찾아서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하늘에 누가 있다고 합니까? 통치자들, 권세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영적인 존재들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멸하시고 나서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나라를 드리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아버지를 대신해서 왕노릇을 하실 거라고 말씀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4–25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그리스도께서 원수를 멸하시는데 그 원수가 누구라고 하고 있냐면,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모든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엡3:10절에서 지목하고 있는 하늘에 있는 존재들과 같은 자들이지요. 그들은 고린도전서에서는 그리스도가 멸하실 원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는 그리스도가 멸하시는 원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에 주목해야합니다. 하늘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우리가 있다면 또한 하늘에는 원수가 동시에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12절을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어떻게 우리가 영적인 전투현장에 서있는지가 보이십니까? 우리가 있는 곳은 원수가 함께 있는 곳입니다. 나는 영적인 전투 현장에 있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영적인 전투에 참여하고 있지 않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원수가 함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힘이 발휘되는 능력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도들이 교회가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마귀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전략적으로 속이고 무너뜨리는 자인데 이것에 대적하기 위해서, 맞서 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힘이 발휘되는 능력으로 강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힘이 필요할 만큼, 하나님의 힘이 실제로 발휘되어야 할 만큼 큰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힘이 있어야 대등하게 이기거나, 간신히 이길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나님의 힘의 능력으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나님의 힘의 능력으로 모든 영적인 전투에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기셨듯이 우리도 싸워서 앞도적으로 이겨야 할 영적인 전투에서 하나님의 힘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힘이 발휘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힘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서 11절은 하나님의 갑옷으로 전신을 두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갑옷을 입을 때 하나님의 힘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죠. 10-11절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강해져야 할 필요, 그리고 강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힘이라고 말씀하면서, 이어서 하나님의 힘이 능력을 나타내시는 방법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갑옷은 진리, 의, 평안의 복음,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13-17절까지는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두 6가지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 중요한 것은 이 갑옷을 실제로 입으라는데 있습니다. 모든걸 방어해내고 공격해내는 아주 대단한 것이라도 실제로 입고 있지 않으면, 들고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실제로 착용하지 않는데 그 옷의 기능을 체험할리는 없습니다. 바람을 막아주고, 체온을 유지해주고, 방수효과가 뛰어난 아무리 좋은 기능의 옷이 있다고 하더라도 옷장에 걸어두고 입고있지를 않으면 그 옷의 기능은 머리로 알더라도 직접 경험하지를 못하니 그 옷이 정말 좋더라고 그 옷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옷을 누군가에게 사서 입어보라고도 추천을 안 해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왠만하면 거의 다 알고는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전신갑주를 직접 입지를 않으면 이 갑옷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님의 옷을 입는 것이 자신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이죠.
제가 한 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좀더 열심히 공부하고 온전해져서 진리를 잘 지켜내는 사람이 되어서 그 진리를 다음세대에게 잘 전해주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런 생각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만약 빛이 있으면 그 빛을 아무리 가려도 빛은 없어지지 않는 것 아닌가? 빛은 무엇가에 한시적으로 가려질 수는 있지만 가려진다고 해도 빛이 사라지지 않지 않는가? 빛이라는 속성을 잠깐 안 볼 수 있고, 가릴 수는 있어도 빛자체는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말은 밝혀지지 않는 것이 없는 이라는 뜻입니다. 모든게 밝혀지는게 진리라는 단어에 담겨 있는 뜻입니다. 진리는 사람이 지켜내는 것이고, 사람이 꼭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지 않으면 전달이 안되는 것이 진리라면 진리가 너무 한계가 많은 것 아닌가 생각을 했었습니다. 살람이 빛을 없앨 수 없는 것처럼 진리라는 것도 사람이 제한을 걸거나 조정할 수 있다면 그런 것은 진리가 아니지 않을까 생각을 했던 것이죠.
진리가 모든 것이 다 밝혀진다는 뜻이기 때문에 사람이 무슨 수로 온 우주의 모든 것을 다 밝혀 낼 수 있을까?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다 읽어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을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진리를 고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질문이 들었을 때 저에게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진리는 사람이 보존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가 사람을 이끄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밝혀낼 수 있는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지으셨기 때문에 모든 것을 훤히 다 밝혀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진리는 인간이 수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불변하는 진리가 인간을 이끄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에 의해 변하는게 진리가 아니라 사람이 어찌 못하는 것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실 때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에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여러 뜻과 법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이 발현된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법칙들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진리가 많으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14절 말씀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으신 그 진리를 직접 입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옷장에 걸어두고 아 이건 고어텍스라는 기능이 들어있는 옷이지 하고 걸어두지만 말고 그 옷을 직접 입어서 그 옷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경험하고 비와 바람이 불때 이 옷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는 경험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성경은 의를 입고 살라고 말씀합니다. 14절 입니다.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의로 가슴 보호대를 차라는 것이죠.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는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의는 옳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옳음으로 움직이기를 바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바울은 롬1:16에서 하나님의 옳음이 좋은 소식에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옳음,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난다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의로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들과 관계를 맺으신다고 하는 뜻입니다.
죄값을 치렀기 때문에 더이상 죄인이 아니야라고 보시는 하나님의 의가 좋은 소식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동시에 하나님과 정반대의 길을 걷던 사람이 회개하여 하나님께 인생의 방향 전체를 돌려서 하나님께로 향할 때 하나님은 그들과 관계를 맺어주신다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과 맺기를 바라시는 관계에 있어서 옳음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관계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옳음입니다.
새벽에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5:16-18을 보면 항상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들여다 보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 있음을 누리라는 것이고, 하나님과 관계를 쉼없이 이어가라는 말씀이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되어주심을 감사해 할 줄 아는 그의 백성들이 되라는 것이죠.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관계 맺어가는 방식에 대해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는 유일한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스스로 인간에게 계시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왜 읽습니까?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관심이 없지만 성장해서 어른이 되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을 해드고 싶어합니다. 아버지와 자식간의 관계가 사랑으로 깊어지는 것이죠.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는 것에만 기뻐하다가 성장해 갈수록 무엇을 주시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것을 해주시는 아버지께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이 있으신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구나를 머리로 알게 되는 것과, 그 사랑의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다가오시는 것은 아주 다른이야기 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나에게 계시하셔서 성경을 읽다가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1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새롭게 다가오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가라는 말씀입니다.
15절은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신으로 신으라는 것도 어 저게 복음이네 이것에 어느 한 곳에 고이 모셔두지 말고 복음을 입고 살아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15절은 복음을 신으라고 하지 않고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이 준비한 것을 신으라는 뜻은 복음을 준비함으로 신을 신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좋은 소식을 전한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에베소서는 사람이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도 죽어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또는 거반 죽어있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스스로 호흡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산소입니다. 스스로 호흡이 안되서 거반 죽어있거나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또는 죽어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산소를 주셔서 살게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스스로 호흡을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산소호흡기를 들고 뛰어가서 그들에게 입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산소를 주셔서 살리지만 산소통을 들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통해서 죽어있는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이 다 하시겠지 하고, 사람을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이셔하고 그들을 외면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선한사마리아인에서 하나님을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레위인 제사장들은 예배드린다고 하는 등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거반 죽어있는 사람을 살리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죠. 아마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다 하시겠지 이렇게 하나님께 모든 책임을 돌렸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죽어있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가던 길 멈추고 그 자를 들쳐매고 여관에 대신 돌봐달라고 맡겼다가 일을 다 마치고 돌아와서 챙겼던 한 사람을 예수님은 주목하셨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둘째가 집을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살찐 소를 잡고 잔치를 벌렸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그 집의 종들도 함께 기뻐했습니다. 아버지도 기뻐했고 그 집의 종들도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눅 누가복음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하나님은 죽었다가 살아온 잃어버린 자 한명이 돌아올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주인과 함께 기뻐하는 종들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맏이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왜 이토록 기뻐하시는지 종들도 왜 덩덜아 기뻐서 잔치에 참여하는지 맏이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하나님의 집에는 죽었던 자가 살아서 돌아올 때 기뻐하는 사람과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왜 기뻐하시는지를 모르는 것이죠. 왜 둘째가 돌아왔을 때 기뻐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맏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산소호흡기를 채워주는 일마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산소호흡기를 들고 있다가 죽은 자가 보이면 가서 채워주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준비하라고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럴 때 산소를 통해서 죽어있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그 맏이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버지가 뭘 가장 기뻐하시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아버지와 부모 자신간의 관계 안에 있더라도 아버지와 관계가 좋은 아들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주의를 한번 둘러보십시오. 죽어있는 자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자가 호흡을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자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달려가십시오. 그들이 호흡할 수 있도록 산소호흡기를 채워주십시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죽어있는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까? 그들에게 달려가는 시간, 에너지를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맏이된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서 여시는 잔치에 참여하는 종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힘으로 강해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전투 현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 의로움, 복음을 전함,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은 직접 입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갑옷을 직접 입고 살면서 하나님의 힘으로 강해져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대단한 것임을 알고 있지만 옷장에 걸어두고 입지를 않고 있으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강해지지가 않습니다. 영적으로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고, 영적으로 어린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와 의로움와 복음을 전함과 믿음과 구원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의 힘을 경험해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힘이 나타내시는 능력을 맛보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살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시면서 부족한 것들을 입고 살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혈과 육에 대한 싸움보다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장애물이 있다면 보여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영적으로 잘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지난 6개월동안 자가호흡이 안되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습니까? 죄와 허물로 죽어있는 자들을 찾아 나섰습니까? 만약 죄와 허물로 죽어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음으로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현재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발견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주시고, 그들이 죄에서 돌아올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올 때 아버지의 기쁨을 경험하고, 그런 아버지의 기쁨에 참여하는 종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선교지를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교회 안에 고통과 슬픔에 힘들어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해방, 자유, 놓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자신의 기도제목 자유롭게 돌아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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