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조직신학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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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의 마지막, 종말론
조직신학의 마지막, 종말론
제가 이 수요예배에서 설교를 한지도 어느덧 5개월 정도가 되었는데요, 작년 10월 달에 처음으로 이 수요예배 설교를 준비하면서 무엇을 전해야할까, 어떤 말씀을 전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성경 한 권을 정해서 할까, 어떤 주제를 잡아서 할까 하는 고민들을 했었는데, 제가 그 고민가운데 정한 것이, 조직신학을 설교 말씀으로 전해야겠다 라는 결심을 했습니다. 조직신학이라고 하면 신학생들 사이에서는 가장 어려운 신학이고 아주 학생들을 조져놓는 신학이라고 해서 조진 신학, 조지는 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 조직신학은 다름이 아니라 신학을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신학입니다. 그리고 이 체계적인 신학을 교회에 반영하게 되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신앙을 배우게 된다면 그것을 저희는 교리라고 부릅니다.
요즘 특히나 이단들이 많이 등장하고, 혹은 정치적인 수단으로 성경을 잘못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는데요, 이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들 중 하나는 거짓 교리를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거짓 교리, 거짓된 가르침은 다른게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벗어나서 이상한 걸 가르치려고 들면 그게 거짓 교리입니다. 그리고 특히나 그런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가장 잘못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오늘 다루게될 종말론인데요. 이 종말론은 조직신학이나 교리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부분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다루기 어려워하고, 뭔가 조심해야할 것 같고, 함부로 말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많이 가지시는데요. 사실 성경에서는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아주 일관되게 종말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저희가 하나님의 나라는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고,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나가는 것이라고 함께 알아보았는데요, 그럼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어? 그럼 대체 우리가 죽음 이후에 가는 천국은 뭐지?” 하실 수도 있는데, 그래서 오늘은 저희가 알고 있는 천국과 지옥, 그리스도인들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죽음 이후에 가는 곳은 낙원(첫번째 사망)
죽음 이후에 가는 곳은 낙원(첫번째 사망)
먼저는 저희가 죽음 이후에 어디로 가느냐에 대한 오해를 먼저 풀어야할 것 같습니다. 지하철 1호선이나 아니면 사람들이 많은 시가지에 가보면 꼭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써져있는 피켓을 들고 전도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 데요, 얘기를 들어보면 사람이 육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바로 최종적인 천국과 지옥으로 바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말씀을 전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주 맞는 말도 아닙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시면 거지 나사로와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요,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여기서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 라고 되어 있구요,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 받고 있었다, 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그리고 아브라함의 품과 음부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서로 왔다갔다 할 수 없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또 이 사건은 아직 최종적인 종말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아직 이 부자의 형제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언뜻보면 이곳이 저희가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저희가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가장 최종적인 천국과 지옥은 심판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첫번째 사망, 육신의 죽음은 누구나가 다 겪는 일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인 죽음, 둘째 사망은 심판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구요,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그러니까 부자가 들어간 음부는 첫번째 사망이 이루어지고, 그 이후에 심판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미리 받고 있는 형벌이지, 이곳이 둘째 사망이나, 마지막 지옥은 아닙니다.
반대로 나사로가 들어간 아브라함의 품은 어디인가 보면, 예수님께서 같이 십자가에 달린 죄인 한 명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께 “저를 기억해주소서”하고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낙원, 아브라함의 품, 예수님과 함께 있을 이곳이 의인의 죽음 이후에 가게되는 곳입니다.
바울은 이 곳을 예수님과 함께 있을 곳이라고 말하는데요,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차라리 몸을 떠나서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다라고 하는 말은 몸은 죽고 저희가 영으로 예수님과 함께 있을 그곳에 머물고 싶다 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바로 그 낙원에서도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로서 저희가 거기에 머물게 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육신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예수님이 계시면 거기가 천국이지 다른 곳이 천국이겠어요? 다만, 저희가 천국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할 때, 육신이 죽어서 들어가는 곳은 최종적인 심판 이후에 이루어질 천국이 아니라 그 중간 단계가 있다 라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
재림
재림
그렇게 낙원과 음부로 나뉘어진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게 됩니다. 성경에는 심지어 구약에서부터 예수님께서 어떻게 오실지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 서에서는 먼저 인자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올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구요,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실 때 구름이 예수님을 가려서 보이지 않게 했는데, 이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라고 표현을 합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시록에서도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모습은 구름을 타고 내려오시는 모습이고, 이 모습은 모든 사람이 다 지켜볼 수 있는 아주 공개적인 사건입니다. 어디서 비밀스럽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모습을 만민이 지켜보게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꼭 여기다가 이상한 이야기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이 때 재림하실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마 여러분들 중에는 1992년에 휴거한다고 난리를 쳤던 다미선교회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실지 모르겠어요. 그때도 그랬지만 “언제 어디서”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휴거할거다 라고 하는 말은 다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예수님께서 “아들도 모른다” 다른 말로는 “나도 몰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도 모르신다는데 저희가 어떻게 압니까?
사도바울도 그날이 도둑같이 이를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부활
부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냥 “와! 사람이 구름을 타고 있네?”하고서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SNS에 올리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모든 사람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만 부활하는게 아닙니다. 악한 사람도 부활해서 영생합니다마는 악인의 영생과 의인의 영생이 다른거예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고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도 변화될 것이다, 라고 사도 바울은 전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몸의 형체로 부활하고 변화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것은 영원히 썩지 않는 몸이죠. 지금까지 첫째 사망을 경험했던 모든 이들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썩지 않는 몸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부활과 영생은 의인과 악인에게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데요,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영생은 영생인데 악인들은 심판의 부활로 영벌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의인들은 생명의 부활로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심판
심판
그 이후에 일어나는게 심판입니다. 심판은 모든 사람이 다 받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짐을 받은 이들은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자격을 주신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심판은 구원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러니까 의인들에 한해서 “구원을 받냐 못받냐”의 심판은 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거에요.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의인들’도’ 심판을 받기는 한다는 것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구원에 대한 심판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섬겨왔느냐에 대한 심판은 존재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저희가 서게될 심판대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입니다. 이 심판대에 서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들이 해왔던 일들을 다 말씀드리게 되는데, 구원받은 성도라고 해서 다 같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얼마나 잘 했나 보자~ 하고 그 사람의 행위를 보아하니 정말로 상을 크게 받을 사람이면, 예수님께서도 큰 상급을 내려주시고, 또한 그 사람의 공적이 불에 타버릴만한 공적이면 구원을 받긴 받는데 불 위에서 받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게 됩니다. 의인과 악인을 나누는 심판, 또한 의인들 사이에서 공적을 나누는 심판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권한을 위임받은 예수님께서 심판하시는데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심판 이후의 새 예루살렘
심판 이후의 새 예루살렘
심판 이후에는 의인들이 새롭게 들어가게될 장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가장 마지막 때에는 기존에 있었던 하늘과 땅이 다 사라집니다. 대신에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등장하고 거기에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은 새 예루살렘이 등장하게 됩니다.거기서 하나님께서 저희를 진정한 의미에서 함께 계시고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 예루살렘에서 영생을 함께 누리며 살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마지막 때의 말씀은 오늘을 살게 하시는 말씀
마지막 때의 말씀은 오늘을 살게 하시는 말씀
굉장히 길었는데요, 사실 더 긴 내용을 최대한 축약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천국과 지옥, 종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떠신가요? 누군가는 심판이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다가올 천국에 대해서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종말에 대해서 묵상할 때에는 심판과 마지막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느껴지기도 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사실 종말론, 천국과 지옥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오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수도 있고, 정말로 먼 미래에 오실 수도 있습니다마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 하나만큼은 성경 전체에서 보증하고 있다는 것이구요, 바로 그 사실은 먼 미래를 묵상하는게 아니라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먼저는 저희 또한 예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 벌주는 심판이 아니라 상주려는 심판이 있다는 것이 저희로 하여금 믿음의 역사를 위해서 달려나가게 하십니다. 얼마전에 제 결혼식 앨범이 완성이 돼서 다시 한번 결혼식 때 사진을 쭉 보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결혼식을 축하해주는 사진들을 담았는데, 제 눈에는 이주혜 전도사님 밖에 안보이더라구요. 평소에도 항상 이쁘지만, 특별히 결혼식에서 더욱 이뻐보이기 위해서 웨딩드레스도 입고 화장도 하고 같이 사진 찍은 모습을 보니까 다른 사람한테는 눈길도 안갈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막 웃음도 나고 그랬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오늘 본문말씀의 2절에 등장하는 신부가 남편을 위해서 단장한것 같다 라는 말씀처럼 저희는 그리스도의 신부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단장하는 것, 정말 이뻐보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의 역사를 이 땅에서 이루어나가야합니다. 다만 이것은 겉옷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일들로 채워나가는 것이고 나중에 천국가서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함께 이루어야하는 일들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또한 4절에 다시는 애통하는 일이 없다는 말씀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지금 여전히 눈물이 있고 사망이 있고 애통하는 것이 있고 곡하는 것이 있고 아픈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차라리 내 몸을 떠나서 예수님 곁에 있고 싶다 라고 말할 만큼 아픔과 슬픔이 여전히 이 땅 가운데 있습니다. 지난 주에 제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야한다고 말씀드렸던 것 처럼, 마지막 때의 천국에 아픔과 슬픔이 없다고 그냥 그 천국만 가고 싶어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슬픔이 없는 바로 그 천국을 아는 저희들이 이 세상에서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것입니다, 라고 보여주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기 위해서 힘서 달려나간 끝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칭찬해주시리라 믿으며, 천국의 소망을 품고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고 또한 심판날에 받을 상급을 쌓아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