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묵상] 누가복음 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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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8(금) | 눅 9:28-36 | 누가복음 묵상
1. 묵상 본문(눅 9:28-36)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2. 묵상 나눔
오늘 묵상 본문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으며,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시는 장면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목도한 이야기입니다. 이 대화 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깊이 졸다 깨어납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떠나고 예수님만 남아계신 것을 보고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하며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짓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반복적으로 보게 되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신앙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약 2천년 동안 변하지 않는 진리의 복음을 믿고 듣고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기쁜 소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다양하게 부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2천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손에 붙들려진 우리가 읽고 묵상하는 성경이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전되어 급속적으로 변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앙은 초기교회의 그릇된 신앙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크게 발전되지 않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초기교회에서 논쟁이었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인격과 하나님 되심이 현 시대에도 통일교,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전능신교와 같은 이단들에 의해 흔들립니다. 중세시대에 국가와 종교가 연합하여 비합리적, 비인격적, 비도덕적으로 타락함을 넘어 폭력적인 행위를 보였던 모습이 지금 이 시대에서도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연관을 짓는다면, 종교적 신비체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앞서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믿고, 영원토록 동행하시겠다는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욱더 신비로운 종교적 체험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을 체험할 때 보다 더 큰 신비체험이 존재할까 의문이 듭니다. 처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보다 더 큰 체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체험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큰 체험이 있을까요? 교회에서 처음 사랑의 회복을 강조하는 것은, 그 때에 내가 다짐하고 고백했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은혜 속에서 내가 다짐하고 고백했던 것들이 무엇인가요? 사순절기간 동안 이 질문에 고민해보면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함으로 처음 사랑 때에 신앙적으로 내가 다짐하고 고백했던 것들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