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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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은혜의 보고
광야는 은혜의 보고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누구나 인생에서 "광야” 같은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 중 누군가는 직장에서의 어려움, 가정의 갈등, 건강의 문제,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광야를 걷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광야는 길이 보이지 않고, 돕는 이도 없는 것 같은 외로운 곳입니다. 걸음마다 불안이 따라오는 메마른 곳입니다. 제발 좀 벗어나고 싶다 생각하게 만드는 곳, 그곳은 광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광야의 다른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단순히 고난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특별히 빛나는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광야는 고난의 골짜기가 아니라 은혜의 금광입니다. 메마름으로 가득해 보이지만, 실상은 기름진 축복이 흐르는 곳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여러분 인생의 광야를 그냥 지나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곳에 놀라운 은혜의 길을 여십니다. 그 길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광야의 은혜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은혜가 기다리는 그곳으로 함께 가십시다.
광야, 그곳은
1.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는 곳
1.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는 곳
예수님을 인도하신 분은 성령이십니다(1).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순종하여 가면 반드시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가셨습니다. 어디로 가느냐 묻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생각해 두시고는 그 쪽으로 인도해 달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이끄시는 데로 가셨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실수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다 정해놓고 구합니다. 어느 호텔로 가주세요. 어디 별장으로, 에어비엔비 예약해 놓았으니 그리 가주세요. 인도하심을 구한다면서 주님 그 길은 아니고 이 길입니다.
아니 성령님이 택시 기사, 우버 기사입니까? 신앙 생활은 예수님처럼 성령께서 이끄시는 데로 가는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든지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신 자리는 광야! 그곳은 우연히 선택된 곳이 아닙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살던 애굽을 떠나 나왔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자유다! 하는 마음은 잠시… 몸이 힘들고 불편하니 짜증이 납니다. 옛날이 좋았는데, 괜히 따라 왔다 후회가 됩니다. 광야는 분명히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말씀을 받았고, 거기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입니다.
다윗이 통일 왕국 이스라엘 왕으로 일어나기 전에 사울 왕을 피해 도망하여 들로 동굴로 숨어 들어가 살았습니다. 그곳이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은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불편했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그를 광야로 이끄셔서 생명을 위협하는 적들로부터 다윗을 지켜 주신 것입니다. 광야 없이 다윗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지없이 광야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는 그곳이 어쩌다 재수없어 발을 들여놓은 곳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바로 그 광야에 있습니다.
광야, 그곳은
2. 말씀의 연단하심이 있는 곳
2. 말씀의 연단하심이 있는 곳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우리를 시험과 유혹의 자리로도 이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하실까요?
바로 우리를 연단하고자 하심입니다. 연단이라고 하는 것은 광석을 녹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금속을 얻는 제련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연단이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불순물이 없는 정금과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거룩한 말씀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거듭된 시험을 받으시면서도 전혀 요동하지 않으시며 말씀을 선포하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광야는 무엇보다 말씀으로 연단 되는 자리입니다. 더욱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본문에서 사탄은 예수님께 3 번의 시험을 하죠. 여기 세번의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첫 번째 돌을 떡으로 바꾸라는 것은 육체의 욕망에 대한 시험이요, 두 번째 자신에게 절을 하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권세 영광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세 번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이라는 것이었으니, 교만과 자기 과시에 대한 시험입니다.
우리의 광야을 보십시오. 역시 육체적인 쾌락과 욕망, 물질과 성공에 대한 집착, 끊임없이 인정받으려는 욕심, 자신을 보이려는 교만, 과시욕의 시험과 유혹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를 불순하게 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해야 합니다. 말씀이죠. 우리는 예수님과는 다르게 연단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불 같은 시험은 오히려 감사의 제목일 수 있는 겁니다. 시험을 통해 더욱 말씀을 붙들고, 말씀 안에서 연단되어 더욱 정결해지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여사는 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에서 유대인들을 숨겨주다 나치에 체포되었습니다. 매일 수용소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또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욕보이는 간수들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곳은 죽음이 눈 앞에 있는 듯한 광야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언니와 그 광야에서 매일 말씀을 암송하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편 46:1) 말씀을 붙잡고 다른 수감자들에게도 희망을 전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전쟁 후 석방된 코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전 세계로 강연을 다니면서, 광야에서 자신을 말씀으로 더욱 연단해 주셨던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자신의 모든 것을 착취했던 간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어떤 시험보다 어렵고 괴로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간수를 용서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이 일을 하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탄은 광야에서 우리에게 분노, 상처, 아픔 등의 시험을 마주하게 합니다. 그때 말씀을 붙들면 하나님은 분노 상처 아픔 등의 어떤 시험보다 더 큰 사랑과 은혜를 주십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연단하셔서 능히 승리하며 광야를 걷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단순히 도망 다녔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곳에서 말씀을 회복하고,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그는 광야에서 말씀으로 연단되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자로 견고하게 서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더욱 아름다운 예배자로 다듬어 지고 연단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광야도 연단의 장소입니다. 광야는 우리를 꺾는 곳이 아니라, 우리를 깎는 곳입니다. 모난 것들을 다듬어 아름답게 만들고, 쓸모 없는 것들을 깎아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더욱 쓸모 있게 만드는 곳입니다. 광야, 그 연단이 힘들고 어렵고, 때론 죽을 것 같지만, 오히려 광야가 다윗을 살린 것처럼 우리를 살리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2:15 -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세대 가운데서 여러분이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광야, 그곳은
3. 사명의 준비하심이 있는 곳
3. 사명의 준비하심이 있는 곳
우리는 예수님의 공적 생애의 시작이 바로 이 광야에서부터 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광야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구원 사역을 펼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가 고난의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여는 은혜의 통로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궁극적인 사명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에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 주신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반드시 필요했던 곳이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광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우리가 사명을 준비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 곧 광야를 지나며 우리는 인내를 배웁니다.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을 통해 소망을 이룬다. 곧 사명을 이루는 힘과 능력이 예비되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에, 또한 이것은 믿기에 바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선교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의 3가지 키워드는 기도, 금식, 나눔입니다.
사순절 시작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편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이전에 우리 교회가 동역하던 박매이 선교사님입니다. 건강과 일신의 문제로 사역을 내려놓고 귀국하여 치료 받으셨습니다. 이제 회복하여 일년에 몇달씩 단기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합니다. 지난 겨울 우크라이나에서 전방의 아동보호센터 사역을 했는데, 70여명 수용 공간에 190명의 전쟁 고아들이 왔답니다. 이런 보호소들이 굉장이 많다고 해요. 여기에 지원 요청과 기도를 부탁해 왔는데, 2층 침대 11개, 메트리스 22개 - 미화 3000여불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순절 40일 동안 우리 함께 기도하며, 일 주일에 한 번이라도 금식합시다. 그리고 하루 1불씩만 모아 40불을 헌금하여 이곳에 나눔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아이들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KCOAA 가족들 100분만 하시면 4000불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곳 사정이 급하다니 가능하시면... 오늘 40불 미리 하시고 남은 사순절 이곳을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하실 때 체크나, 온라인 헌금 메모란에 꼭 우크라이나, 혹은 May Park 이라고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가 되든지 구별해서 아름답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광야를 지나면서 사명을 준비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의 실제적 신앙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KCOAA 가족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을 지나는 첫번째 주일입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시작은 광야였습니다. 모두가 꺼리는 그곳에 어떤 은혜가 있는지 예수님은 보여주셨습니다.
광야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는 곳입니다.
말씀의 연단하심이 있는 곳입니다.
사명의 준비하심이 있는 곳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광야에서 부는 바람에 꺾이지 마시고, 매일 말씀의 연단으로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아름답고 쓸모 있게 깎여 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신 사명, 나아가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 예배의 사명, 사랑과 나눔의 사명, 선교의 사명을 잘 준비하며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