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51강 무기를 만들지 못하는 이스라엘

사무엘상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2 views
Notes
Transcript
사무엘상 51강_무기를 만들지 못하는 이스라엘
본문: 삼상 13:17-14:6
기도: 
권혜자 자매님을 위해서
황진호 형제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결혼
교회에 혼들을 더해 달라고
(삼상13:17) ¶ 노략하는 자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세 무리로 나와 한 무리는 오브라로 가는 길 쪽으로 돌아서서 수알 땅에 이르렀고
¶ And the spoilers came out of the camp of the Philistines in three companies: one company turned unto the way that leadeth to Ophrah, unto the land of Shual:
(삼상13:18) 다른 무리는 길을 돌아서 벧호론으로 향하였으며 다른 무리는 광야 쪽의 스보임 골짜기를 바라보는 경계의 길로 돌아섰더라.
And another company turned the way to Bethhoron: and another company turned to the way of the border that looketh to the valley of Zeboim toward the wilderness.
이상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7절에 노략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특공대를 세 무리로 나누어 보냈습니다. 
(삼상13:19) ¶ 이제 이스라엘 온 땅에는 대장장이가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기 때문이라.
¶ Now there was no smith found throughout all the land of Israel: for the Philistines said, Lest the Hebrews make them swords or spears: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반란을 막기 위해 
무기를 함부로 만들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무기를 만들때는 강대국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무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미국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만들어야 합니다. 
해아래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씀은 정말 진리입니다. 
(삼상13:20) 다만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각각 자기의 보습이나 날이나 도끼나 곡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더라.
But all the Israelites went down to the Philistines, to sharpen every man his share, and his coulter, and his axe, and his mattock.
농사에 필요한 도구조차도 수선하기 위해서는 블레셋에 가야했습니다. 
사람 왕을 원해서 사람왕을 가졌지만 그들의 삶이 
하나님을 왕으로 두었을때 보다 더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삼상13:21) 그들은 줄이 있어서 곡괭이와 날과 쇠스랑과 도끼와 가시 채를 벼렸더라.
Yet they had a file for the mattocks, and for the coulters, and for the forks, and for the axes, and to sharpen the goads.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라고는 농기구 뿐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철을 다룰 수 있는 기술자들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철기 도구를 수리 하려면 
블레셋에 가서 도움을 얻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블레셋의 경제 속국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울과 요나단 뿐이었습니다.
(삼상13:22) 그러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있던 백성 중 어느 누구의 손에도 칼이나 창이 없었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So it came to pass in the day of battle, that there was neither sword nor spear found in the hand of any of the people that were with Saul and Jonathan: but with Saul and with Jonathan his son was there found.
본문 내용대로라면 사울과 요나단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칼과 창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백성들은 농기구를 무기로 대신해서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전력차이에서 이길 수 없었던 싸움이었습니다. 
(삼상13:23)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가 나와서 믹마스 통로에 이르렀더라.
And the garrison of the Philistines went out to the passage of Michmash.
지금 전쟁은 무기가 없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전쟁은 우리의 영적 전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기록한 책은 여호수아서 입니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전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1:8)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모든 것에 따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하리라.
This book of the law shall not depart out of thy mouth; but thou shalt meditate therein day and night, that thou mayest observe to do according to all that is written therein: for then thou shalt make thy way prosperous, and then thou shalt have good success.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무기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의 무기가 되려면 그낭 성경책이 책꽂이에 놓여 있고
여러분 손에 들려 있다고 해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무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읽고 그 말씀을 묵상을 해야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겨야 
우리의 마음이 말씀에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말씀이 우리의 무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도 이 말씀을 진짜 무기로 믿고 
이 말씀을 자기 무기로 만들기 위해서 
읽고 묵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입니다. 
알고 있다고 해서 정말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그런 식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을 결정할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기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자기 마음에 내키는대로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고 안나오고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자신의 상황이 먼저고 
그 상황에 맞추어서 나머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님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사는 사람보다 
항상 부족하고 쫓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또 다른 무기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아침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가 우리의 무기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죽을 것 같으면 그때부터 기도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때부터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싸움에 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기도를 우리의 무기로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값없이 구원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도록 무기를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전력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통치 하던 때의 강성함(삼상 8: 12-17)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화된 것이었다. 
이는 아마 사무엘 통치 기간 중 있었던 신앙 개혁에 따른 
영적, 물적 풍성함이 (삼상 7: 1-4)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영적인 나태함과 더불어 약화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더욱이 점차 인본주의적 통치를 행하는 (1-14절) 사울 왕의 치세 속에서 
그 도가 더욱 심화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실 더욱 중대한 문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전력적 약세가 아니라 
모든 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이 온전히 의지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그렇듯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이스라엘이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하 보여지는 요나단의 신앙과 
그를 통한 이스라엘의 승리에서 깨닫게 되는데(삼상 14: 1-23), 
이러한 이스라엘의 열악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로 인해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사무엘상 14장
배경
13-14장 : 블레셋과의 전쟁
15장 : 아말렉과의 전쟁
16장 : 블레셋과의 전쟁(17장에서 골리앗과 다윗의 등장)
사울은 블레셋에 의해 죽게 됩니다. 
사시시대부터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적은 블레셋입니다. 
(삼상14:1) 이제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든 청년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저편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자, 하였으나 자기 아버지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Now it came to pass upon a day, that Jonathan the son of Saul said unto the young man that bare his armour, Come, and let us go over to the Philistines' garrison, that is on the other side. But he told not his father.
“사울의 아들” 
이 표현은 요나단이 사울의 왕위를 계승할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 표현은 아들 요나단과 사울과의 관계에 갈등의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안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고하지 않고 전쟁의 긴장을 깨고 쳐들어 간 것입니다. 
(삼상14:2) 사울은 기브아의 맨 끝 지역에서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밑에 머물렀고 그와 함께한 백성은 육백 명가량이더라. And Saul tarried in the uttermost part of Gibeah under a pomegranate tree which is in Migron: and the people that were with him were about six hundred men;
병력은 상당히 줄어든 상태입니다. 
(삼상14: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있었는데 그는 이가봇의 형제인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 있던 주의 제사장 엘리의 증손이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And Ahiah, the son of Ahitub, Ichabod's brother, the son of Phinehas, the son of Eli, the LORD'S priest in Shiloh, wearing an ephod. And the people knew not that Jonathan was gone.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증손이 등장합니다. 
엘리는 여러분이 잘 아는 제사장입니다. 
엘리의 집안사람을 제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엘리는 버림받은 제자상인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가 사울 곁에 있는 것입니다. 
아히야가 에봇을 입고 법궤를 가지고 사울 곁에 있는 겁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사울의 신앙은 법궤가 있으면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삼상14:4) ¶ 요나단이 통로들을 통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려 하였더라. 그 통로들 사이에는 이쪽에도 날카로운 바위가 있었고 저쪽에도 날카로운 바위가 있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다른 것의 이름은 세네더라. ¶ And between the passages, by which Jonathan sought to go over unto the Philistines' garrison, there was a sharp rock on the one side, and a sharp rock on the other side: and the name of the one was Bozez, and the name of the other Seneh.
(삼상14:5) 한 바위의 맨 앞은 믹마스를 마주보며 북쪽으로 놓이고 다른 하나는 기브아를 마주보며 남쪽으로 놓였으므로  The forefront of the one was situate northward over against Michmash, and the other southward over against Gibeah.
보세스 : 빛나는 또는 미끄러운 세네: 가시덤불, 날카로운 곳
1-5절까지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이고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고 블레셋을 공격합니다. 
백성들은 요나단이 공격을 시작하기 위해 떠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엘리의 증손자를 제사장으로 세워놓고 있고, 
그에게 에봇을 입히고 법궤와 함께 
싸울 의지가 없이 앉아 있는 장면이 기록된 것입니다. 
(삼상14:6)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든 청년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자. 혹시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리로다.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주께는 제약이 없느니라, 하니 And Jonathan said to the young man that bare his armour, Come, and let us go over unto the garrison of these uncircumcised: it may be that the LORD will work for us: for there is no restraint to the LORD to save by many or by few.
무기를 만들지 못했던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력
13장 후반부에 강대국 블레셋의 무기 제제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무기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전력의 측면에서 이미 결과가 예정된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블레셋과 공정한 싸움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고,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 단 한 사람과 그를 믿고 따랐던 그의 무기 든 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강한 무기와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한 번 보자."
그들은 결과를 알지 못했습니다.
승리를 보장받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투에서 이기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아는 것은 단 하나
블레셋이 그들을 공격해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언가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님을 위해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일어섰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공격하는 우리의 적들은 강력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많습니다.
물리적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론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육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정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을 돌아보면,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들의 숫자와
하나님을 위해 일어서는 자들의 숫자를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는 단순히 수적으로 열세인 것이 아닙니다.
압도적으로, 믿기 힘들 정도로 수적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마귀의 세력과 비교하면 티끌만도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큰 무리가 있는지, 적은 무리가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그분께서 동일한 일을 행하신다! 아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작은 것이 크다!
요나단은 지금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전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모든 전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그 믿음으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 암몬 나하스와 전쟁을 할때도 
사울에게는 별다른 군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함으로 해서 전쟁에서 이기게 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군사로 전쟁에 이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들에게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요나단은 구원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나단과 다윗은 신앙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단독으로 계산합니다.
1절부터 4절을 보면,
여기 사울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있습니다. 군대가 있습니다.
그들은 석류나무 아래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며 떨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요나단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의 아버지 사울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겁에 질린 이스라엘 군대와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과 상의했습니다.
“하나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누군가는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무도 믿음으로 서지 않습니다!”
“하나님,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하나님, 저를 이끄소서!”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저를 축복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까?
다른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행동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까?
“네가 하면 나도 할게.” 
“네가 이 교회 다니면 나도 이교회 다니고 
네가 다른 교회가면 나도 다른 교회갈께”
“모두가 하면, 그때 나도 하겠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고,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고정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과 단독으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누가 함께하든, 누가 우리를 돕든 상관없이,
우리는 혼자라도 하나님을 위해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만약 직장에서 신앙을 함께 지킬 크리스천들을 기다린다면,
만약 여러분의 이웃에서 함께 믿음으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을 기다린다면,
만약 지역 교회들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린다면,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위해 서 보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보십시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