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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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유명한 홍해를 건넌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었습니다. 2주면 갈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홍해 길로 가게 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홍해를 가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군사적인 지식이 많은 어떤 분이 오늘 본문 말씀인 출 14장 말씀을 읽다가 무릎을 탁 쳤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배수의 진을 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배수의 진이 무엇입니까? 우리 편이 불리할 때 일부러 물 앞에 진을 치는 겁니다. 그러면 뒤에 물리기 때문에 후퇴할 길이 없잖아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된다. 이게 배수의 진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분이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서도 배수의 진을 치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죽기 살기로 싸우라고 배수의 진을 치신 게 아니라 하나님은 그 앞에 있는 홍해를 가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간적인 차원의 수준으로 낮춰서 이해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슬프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믿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이 홍해가 가는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 분들이 있냐면 이게 갈대바다다. 사실은 그래서 발목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갈대바다를 건넌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설교를 했더니 주일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하나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발목까지 안 오는 발목까지밖에 안 오는 그 바다에서 애굽 사람들을 다 빠뜨려 죽이시다니요. 이랬다는 거죠. 아이들이 훨씬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고요. 여러분도 이 말씀을 믿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진짜로 홍해가 갈라졌을까 잘 안 믿어주시는 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동영상이 조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한번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뭐 여러분은 보기 전에도 다 믿으셨죠? 보고 믿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살아 있는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임을 믿고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서도 홍해를 가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홍해가 갈라지는 이 기적에 집중해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길로 인도하셨는데, 너무 안타깝게도 홍해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출 14:10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합니다. 두 번째로 출 14:11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의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죽게 했느냐고 불평합니다. 이어지는 12절 말씀을 보면 심지어 애굽 사람을 섬기던 시절이 더 좋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누리고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려워하고 불평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부정하고 감사하지 않는 것. 생각해 보면 이 세 가지 반응은 우리가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누구나 자연스럽게 하는 반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린 그렇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두려워하고요. 때로 불평하고 지금 현 상태가 얼마나 감사한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은 이것이 아님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들의 태도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문제 앞에서 자신들이 문제의 일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자기들도 문제의 일부가 되어 문제를 덧붙입니다. 문제는 변한 것이 없는데 불평을 더하고요. 원망을 더하고요. 거기다 감사가 없어집니다. 문제 앞에서 문제를 더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또 않습니다.그렇지만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니지만 시편 14:1절 말씀을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가 있습니다.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 자가 더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분노하셨으면, 소도, 양도, 짐승도 창조주를 알아보는데, 이스라엘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2~3)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문제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출 14:13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문제 앞에서 문제의 일부가 되었지만, 모세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해결하시는 해결의 통로가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 보면 인생에서 홍해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딱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문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문제 앞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의 해결하시는 통로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놀라지 말라, 원망하지 말라. 하나님이 일하신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홍해와 같은 상황을 만날 때 대부분 사람들이 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안절부절 못하고 두려워하고 원망할 때 특별히 이 집안의 가장들이 일어나서 모세처럼 외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만히 있어라. 왜 그렇게 안절부절하느냐 하나님 살아계시지 않느냐 우리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자. 할렐루야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문제를 만날 때 저와 여러분이 이런 역할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시지 않냐고 왜 문제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똑같이 말 하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한번 보자고 이렇게 말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인가 문제를 만나면 수군수군거립니다.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오늘 말씀을 기억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우리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자. 우리 문제 더 커지게 하지 말자. 문제의 일부가 되지 말자. 하나님이 해결하시는 그 해결의 통로가 된다면 모세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문제 생길 때 문제 일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 더 크게 만들지 마세요. 이스라엘 백성들 홍해라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절대 그러지 마세요. 해답의 일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하는 것이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해답의 일부가 되는 것이겠습니까? 성경에 있는 그대로 크게 세 가지를 기억하면 됩니다. 첫째로 모세가 말한 그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성경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명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누가 세어봤는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365번 나온답니다. 그 해석도 기가 막힙니다. 하루에 한 번씩 들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인지도 모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왜 문제가 생겼을 때 사탄이 가장 먼저 주는 마음이 이거 어떡하지? 두려워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순간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순간 두려운 마음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상수가 있는데 변수 하나 생겼다고 하나님이라는 상수를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복받은 사람입니까? 어떤 변수가 많아져도 하나님이라는 상수를 잊지 않는 자가 복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이 위로와 힘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 41:10절 말씀입니다. 언제 들어도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 붙들고 인생의 홍해를 건너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 두려워하는 것 같거든 이사야 41장 10절 말씀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그럴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해답의 통로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두려움이 올 때 함부로 움직이면 안됩니다. 가만히 있어야 됩니다. 우리 문제가 뭡니까? 문제만 생기면 안절부절 못합니다.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막 여기도 갔다가 저기도 갔다가, 이 사람도 만났다가 저 사람도 만났다가 그럽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기억하세요. 가만히 좀 있으래요. 단어에는 품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동사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 동사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이 웨이트라고 하는 동사는 참 특이한 동사입니다. 동사긴 동사인데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가 아니에요. 그렇죠 가만히 있는 것 기다리는 것. 그런데 이것도 엄연히 동사입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것은 믿음의 동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다리라고 할 때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겸손이고 하나님을 향한 경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다리라고 할 때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르면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그르칩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기다리라고 할 때 기다리지 못해서 엄청난 낭패를 보았던 대표적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입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은 다른 믿음의 동사들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할 때 모든 기득권을 내려 놓고 떠날 수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드리라고 할 때, 그 이삭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없었던 믿음의 동사가 기다림의 동사였습니다. 결국에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중동에서 얼마나 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전세계에서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이 이슬람 지역입니다. 오늘날 이슬람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문제의 시작이 공교롭게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어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다리라고 할 때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형을 속였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노년에 바로 앞에 섰을 때 내 인생이 험악한 인생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예정받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리지 못해서 험악한 세월을 살아갔던 사람이 야곱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약에 야곱이 하나님을 기다렸다면 그런 험악한 인생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모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지금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의 정예 부대가 뒤쫓아 옴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서서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믿음이 어디서 생겼겠습니까?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해서 얻은 기다림의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믿음을 통해서 홍해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기다리라고 명하실 때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두려움의 상황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몰려올 때 필요한 또 하나의 신앙의 모습은 오늘 본문 말씀인 출 14:10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무엇을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애굽 사람들을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애굽 사람들을 보았더니 원망하고 불평하고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의 시선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봐야 됩니다. 기다리는 동안 내 문제만 보고 내 능력만 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다리면서 우리가 우리 시선이 하나님을 향하는 자가 복된 자인 줄로 믿습니다. 작년 연말에 공동체의 부족한 재정만 보았다면 단기선교 갈 엄두를 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 43:19절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재정적으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단기선교를 가는 것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부족한 재정이 채워지고도 남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군대를 보았을 때 불평이 시작되었고, 원망이 시작이 되었고, 두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애굽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역사가 모세를 통해서 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차이는 딱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니까 특별히 그의 눈에만 보였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출 13:21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고 계셨습니다. 모든 사람 눈에 이것이 보였습니다. 됐습니까? 출 14:19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병거와 마병이 이들 앞에 오니까 이스라엘 앞에서 인도해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감에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실은 그걸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그 앞에서 행하고 계시지만 이들 눈에는 뭐가 크게 보이는 것입니까? 이집트 군대가 크게 보인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이것이 문제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눈에 전혀 안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문제는 하나님보다도 우리 문제가 너무 커 보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문제가 우리를 압도할 때 우리는 이렇게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문제를 크게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크게 볼 때에 문제는 작게 보이고 우리가 찬양한 그대로 우리 시선을 주님께 드릴 때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시작될 줄로 믿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그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주목한 것은 골리앗이었습니다. 그 문제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그 큰 거인을 대적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17세 소년인 다윗은 하나님을 봅니다. 저 할례 받지 못한 자가 누구이길래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니 다윗은 그 보는 것이 달랐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내 눈앞에 계신 분을 항상 되엎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문제 앞에서 제발 그 문제를 크게 보이지 않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크십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좀 집중합시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달라지니 사실 마음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달라지니 하는 말이 달라집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를 보니 문제가 내 마음에 가득해지고 원망이 쏟아지게 돼 있다. 하나님을 보면 내 마음이 하나님이 가득하고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단순한 것 같습니다. 문제 앞에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뵙고 우리가 그 문제를 이기는 놀라운 역사.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두려워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문제의 일부가 되지도 않고, 문제를 더 크게 만들지도 않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해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시작은 두려워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나는 하나님의 역사의 일부가 됩니다.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해답의 일부가 됩니다. 놀라운 복이고 그렇게 사는 인생이 복된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