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손을 들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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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시간마다 출애굽기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구원의 모형이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광야 생활은 우리의 신앙 여정을 상징합니다. 출애굽한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광야 생활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말씀을 잘 읽다 보면 우리 신앙생활에 대한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말렉과의 전쟁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먼저 오늘 저와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주 전에 설교하면서 애굽 왕 바로가 사탄을 상징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옛 뱀, 사단, 마귀라는 단어를 설명했습니다. 옛뱀은 유혹합니다. 마귀는 둘로 나누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갈등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막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에는 애굽 왕 바로가 사단 마귀 역할을 하는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로막고 서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열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바로를 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단 마귀의 역할을 하던 존재가 사라진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출애굽을 경험하였다고 사단 마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말렉이라는 또 다른 대적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는 사탄이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완전히 우리를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출애굽을 경험하였던 이스라엘을 아말렉 족속이 공격했듯이 사탄이 여전히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깨어 있으라고 사탄을 대적하라고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말렉 족속과 같은 사탄이 어둠의 세력이 신앙 생활하는 우리를 삼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삶이 되셔서 대적 사단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능히 승리하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공격하였는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아말렉 족속이 어떤 사람들을 공격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 신 25:1~18절 말씀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신 25:17~18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인 출17장에 나오는 아말렉과의 전투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 족속이 어떤 사람들을 공격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광야 길을 걸어가는데 그 무리와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뒤에 처인 사람들, 뒤에 무리해서 따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공격했답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맹수가 초식 동물들을 공격할 때 어떤 동물들을 공격합니까?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동물들을 공격합니다. 아무리 연약한 초식동물이라고 할지라도 무리 안에 들어가 있으면 맹수들이 함부로 공격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무리에게서 떨어져 있는 동물들을 공격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아말렉 족속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쳤습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해 보면 언제 마귀의 공격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까? 믿음의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 우리가 마귀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가 언제 뱀의 유혹을 받았습니까? 아담과 함께 할 때가 아니라 동산을 홀로 거닐 때 뱀에게 유혹을 받았습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은 사사였습니다. 사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재판관입니다. 그러면 삼손이 거주해야 할 것이 어디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삼손이 허구한날 어디에 가 있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결국에 들릴라라는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비참하게 두 눈이 뽑히고, 짐승이나 돌리는 맷돌을 돌리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방의 신전에서 재롱이나 부리는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평가를 받았던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삼하 11장 말씀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살펴보면 다윗의 부하들은 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데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홀로 왕궁에 남아서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한가로이 왕궁을 거닐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넘어지는 모습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있다가 넘어지는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믿음의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별로 힘이 없는 것 같아도 믿음이 공동체에 함께 묶여 있을 때 사탄 마귀의 공격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니지만 엡 2:20~23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0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 다음에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갑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가는 비결도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있어서 서로 연결될 때 우리가 더욱 주님의 성전으로 되어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로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 감격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모습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출애굽을 하게 되었지만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 가운데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산적질을 하면서 살아오던 아말렉 족속이 표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 절대로 승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모습이 오늘 말씀 가운데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손이 오늘 본문 말씀인 출 17:13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아말렉과 직접 맞상대하여 싸우는 여호수아의 손이 필요합니다. 방금 함께 봉독한 말씀을 보니까 여호수아가 그 손에 무기를 들고 나가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찔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와 여러분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출애굽 이전에 이스라엘에게 사단, 마귀의 역할을 하던 존재는 누구였습니까? 바로라는 존재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애굽의 정예 부대와 싸울 때 이스라엘이 맞서서 싸웠습니까? 싸우지 않았습니까? 바로의 압제하에서 빠져 나올 때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바로를 맞서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홍해를 건널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앞에는 홍해 바다가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정예부대가 쫓아옵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합니다. 그냥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향하여 애굽의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광야로 죽게 하느냐고 원망하면서 차라리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났겠다고 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말씀이 출 14:13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스라엘 백성이 손에 무기를 들고 애굽의 군대와 싸웠습니까? 싸우지 않았습니까?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했습니까?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역사를 보았습니다.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출애굽 할 당시의 전쟁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만난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과의 싸움에서는 너희들이 무기를 들고 나가서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출애굽의 사건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때는 저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적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홍해를 건너는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출애굽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싸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실력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할 게 없어요.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그냥 보고 믿는 거예요. 믿으십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구원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사탄의 머리를 발로 밟으셨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갈랐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 받을 때 우리가 할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경험한 이후에는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자녀가 되었다고 영적 전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이후에도 사탄 마귀의 공격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런데 구원 이후에 치루어야 할 전쟁은 구원을 받을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어집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영적전쟁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답게 성화되기 위한 끊임없는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게으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게으름은 신앙생활하는 데 큰 적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 내게서 게으름을 없애 주세요!라고 기도하면 게으름이 없어지던가요?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애줄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아니고 내가 애써서 싸워야 하는 문제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을 때 우리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 삶 가운데서는 게으름과도 싸워야 합니다. 음란한 정욕과도 싸워야 합니다. 잘못된 습관과도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싸움도 저와 여러분의 힘과 능력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엡 6장 말씀을 보면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좀 길지만 엡 6:13~17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아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전신 갑주를 취하고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싸움을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무장하여서 어둠의 영들의 대적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구원 이후에 벌어지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또 하나의 손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오늘 본문 말씀인 출 17:10-11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고 이후에 영적인 전쟁을 벌일 때 여호수아와 같이 사단 마귀를 대적하며 싸우는 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전쟁에서는 사단 마귀를 직접적으로 대적하는 손만 가지고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동대 김미영 교수님이 북한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남북간의 전쟁은 이념이나 사상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북간의 문제는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라는 우상 체제를 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탈북자들 가운데 남한으로 넘어와서 정말로 신앙생활에 쉽게 적응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정은의 자리에 하나님으로 바꾸어 놓으면 그것이 성경 말씀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배우는 것이 너무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북한 땅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말렉 족속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신앙에서 떠나게 만들고, 무너뜨리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공격하는 사탄 마귀의 예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습은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의 손을 올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을 보면 기도할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예수님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자주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세요. 세례 받기 전에 기도하세요. 제자 선택하기 전에 기도하세요. 제자들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묻기 전에 기도하셨다거나 괴로울 때 겟세마네 동산 가셔서 기도하세요. 땀이 땀방울이 핏방울 될 때까지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알고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세요.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도 기도하세요. 마지막에 아버지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부탁한다고 기도하세요. 신기하게도 그래서 그런지 제자들이 예수님께 부탁한 것이 무엇이냐면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거였습니다. 어. 오늘 본문 말씀은 아니지만 눅 11:1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시니까 제자 중 하나가 ‘기도를 좀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설교를 들었죠. 예수님의 행하신 위대한 기적도 봤죠.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께 설교하는 법 가르쳐 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적을 행할 수 있는지도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다른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기도 좀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의 비밀이 기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도행전을 보면 온통 제자들이 기도하는 이야기입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을 기다리면서 기도에 힘쓰고요. 가롯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제비 뽑기 하기 전에 기도했고요. 박해 받을 때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기도했고요. 교회가 너무 많아지자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하고요. 초대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에는 혹독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순교를 당하고,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떻게 됩니까? 지하로 숨어 들어갑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숨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초대교회와 같이 기도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복음 앞에 로마라는 나라가 무릎을 꿇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 박해받던 기독교가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공인되었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국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교회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황제가 교황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외형적으로 교회가 엄청나게 성정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교회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세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청의 부름을 받아 교황 인노센트 4세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세계 각국에서 금은보화를 실은 마차가 교황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황 이 그 모습을 보고 “보시오, 아퀴나스! 초대교황 베드로 사도는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 ’라고 했지만, 우리에겐 금과 은이 이렇게 풍성하다오. 금은보화를 보시오. 놀라운 건물과 장식들을 보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교황의 말을 들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초대교회에는 은과 금 대신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 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 금 기둥을 세우고, 대리석 바닥을 꾸몄습니다. 실로 엄청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많은 땅과 건물도 있고,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교회가 가진 것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 잘 살지 못했을 때 기도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산이면 산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어떤 현상이 나타났습니까? 무당과 점집이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한국 교회가 엄청나게 큰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있습니다. 점집이 늘어갑니다. 무당들이 득세합니다. 게다가 각종 언론매체들이 교회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한국 교회가 기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와 여러분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 한국교회의 문제가 오늘 저와 여러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기도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한가지 손이 더 있습니다. 그 모습이 오늘 본문 말씀인 출 17:12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어떤 손입니까? 아론과 훌의 부축해 주는 손입니다. 모세가 열심히 기도하는데 모세가 인간인지라 계속 기도할 수는 없다는 거죠. 피곤하다는 거죠. 아론과 홀이 가만히 보니까 모세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팔을 막 자꾸 내리는 거예요. 힘들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큰 돌을 가져다가 앉으라고 하시고 양쪽에서 그 손을 한 쪽씩 잡아서 부축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성경 말씀에 따르면 모세의 손이 끝까지 내려오지 않았고 모세의 기도가 그치지 않았고 승리했답니다. 여러분 모세가 혼자 기도해서 승리한 것 같지만 함께 도와준 아론과 훌이 없었다면 아말렉 족속과의 싸움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보면 내 힘과 능력으로 이길 수 없는 대적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버텨내고, 결국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데 더 이상 기도할 힘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인지라 지치고, 주저앉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아론과 훌처럼 더 이상 기도할 힘이 없는 사람의 팔을 붙들고 함께 버텨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요즘 제가 매일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심우성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강사접대를 하느라 오랜 시간 같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상을 기록하는데 제 말이 너무 거칠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요즘 많이 거칠어졌다고 사과를 했더니 엄청 당황을 했습니다. 여하간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보면 지칠때가 있습니다. 버텨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누군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머니가 제작년 12월 달에 아프시기 전에 저에게 누차 반복해서 말씀하셨던 것 가운데 하나가 너 기도 많이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안에 목회를 하지 못하도록 공격하는 사탄 마귀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너를 공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심장 혈관이 막혀서 스탠트 시술을 하고, 위막성 대장염에 걸려서 작년 가을까지 정말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 인생 가운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길을 걸을 때 어머니가 아론과 훌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버텨 낼 수 있었습니다. 심우성 목사님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살면서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고 했더니 심목사님이 자기도 그 심정을 안다는 것입니다. 작년 한 해 저는 개인적으로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돌아보면 제 힘과 능력으로 버텨낸 것이 아니었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 절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각자 인생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는데 우리가 아론과 훌처럼 때로는 기도할 힘이 없어서 지쳐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중보 기도자가 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아론과 훌이 되어주고 또 누군가가 나의 아론과 훌이 되어주는 인생만큼 복된 인생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부모를 둔 것이 복이 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왜냐하면 내가 기도하지 못할 때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숫자가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목숨 걸고 기도해 주는 성도가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성도가 되어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여러 가지로 진단할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모세를 좌우에서 부축해 줄 아론과 훌이 사라진 지 오래인 교회가 돼버린 것이 큰 비극인 것 같습니다. 주의 종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화살만 있지 주의 종들을 부축해 주고 도와주고 기도해 주는 그 손길이 제가 보기에는 너무 약해졌습니다. 옛날만 해도요. 목사님이 주일날 설교할 때 지하 기도실에서 권사님들이 중보기도 했던 거 아세요? 그런 거 아세요? 옛날에 권사님들이 예를 들어 1 2부 있으면 1부 때 예배드리고 2부 때 목사님 설교하는 동안 지하 기도실 가서 중보기도하고 그랬어요. 목사님 그랬죠 옛날에 한국 교회가 그랬습니다. 근데 이런 전통이 한국 교회에서 사라진 지가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목회자가 무슨 타락했다 목회자가 잘못했다는 비난의 목소리는 있는데 그러니까 모세가 왜 힘들어서 손 내리냐는 말은 있는데, 힘든 모세의 손을 부축해 주자는 말은 없다는 거지요.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모세의 양팔을 부추겨 주었던 아론과 후의 영성이 회복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승리하는 길이더라고요.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서로서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손이 승리하게 만듭니다. 나도 승리하고 저 사람도 승리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감사한 것은 우리 가운데 나는 중보 기도자가 없다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을 위해 한 가지 말씀드리고 설교를 마칩니다. 너무 감사한 것은 때로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분이 한 분도 없어도 성령이 분명히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은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기에 힘내시고 그 힘을 의지하여 여러분은 누군가의 기도를 돕는 자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우리가 사무엘상 제가 설교할 때 말씀드렸지만 인생에서 무너질 때가 있었습니다. 지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라는 친구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기를 다윗의 친구 요나단이 다윗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답니다. 할렐루야 아멘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아론과 훌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공동체 아닙니까? 우리 교회가 서로 서로를 위하여 아론과 훌이 될 때에 우리 교회가 전체적으로 든든하게 서가고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출애굽할 때 우리 힘으로 출애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냥 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구원은 우리가 할 일이 하나도 없고 예수님이 다 이루셨으니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아멘
그러나 출애굽한 다음에 구원받은 이후에는 영적 전투에서 우리가 반드시 싸워야만 합니다.여호수아가 무기를 들고 가서 싸웠듯이 우리가 직접 싸워야만 됩니다. 이건 하나님이 다 해 주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믿음의 전신 갑주를 가지고 오늘도 믿음의 싸움을, 선한 싸움을 싸우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게으름과 싸우고, 음란과 싸우고, 쾌락과 싸우고, 잘못된 습관과 싸워서 이기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기도의 손을 높이 드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남자분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남자분들이 분노와 다툼을 그치고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아론과 후의 기도하는 손, 기도를 돕는 손이 또한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 손을 가진 교회가 승리하고 이 세 가지 손을 가진 인생이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 찬양하겠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대신 기도하시는 성령님, 누군가 널 위하여 지금도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 성령님을 의지하여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아멘 누군가 널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누군간 널 위하여 하나님 감사합니다.
누군가 기도,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제목 ; 서로의 손을 들어 주라!
본문 : 출 17:8~16
1. 신 25:17~18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 엡 2:20~23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3.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4. 출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5.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6. 엡 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7. 출 17:10-11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8.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9.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