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배의 축복에서 르호봇의 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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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홍수 시대...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움
  예전에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김수미의 아들이 일용이라고 주장하는 엄마와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빵 터진 기억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전원일기라는 드라마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는 두 분이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하튼 대중매체의 영향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알수 있습니다. 
  한 때 정말로 유행했던 광고 문구가 있습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입니다. 어느 순간 이 광고 문구가 사라졌습니다. 초등학생들이  
 
 그런데 사역을 하다가 보면 이와 정반대의 상황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다. 성경을 텔레비전의 드라마와 같이 실제적인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라매 공원 옆에 은천 성결교회라고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바나바 훈련원에서 함께 훈련을 받았던 선배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입니다. 성지 순례와 권사님의 간증...  
 여하튼, 성경에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창22장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100세에 낳은 이삭,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번제가 뭡니까? 양이나 소 같은 동물을 칼로 갈라서 내장을 다 끄집어 내서 불살라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잔인한 분도 아닌데 왜 이런 명령을 하셨겠습니까? 사실 이유가 있습니다. 피를 원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해 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잘 기억하는 것이 중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의 신앙이 달라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해 버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이삭과 종들을 데리고, 장작과 횃불과, 칼을 준비해서 길을 떠납니다.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지 다 있는데 양이 없네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준비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산 밑에 도착하였습니다. 너희들은 여기에 있어라! 이삭만 데리고 갑니다. 종들을 데리고 가면 종들이 말릴테니까..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이삭을 결박하고 칼로 내리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멈춰라! 네가 나를 경외하는 것을 내가 알았다.’고 말씀합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내 사라에게 말했다면, 종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자녀를 향한 사랑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더 크고 지극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흘러가는대로 살다보면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의 순종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 출신의 역사가였던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삭의 그때 나이가 25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125세입니다. 이삭은 피가 끓는 청년입니다. 아브라함은 노인입니다. 이 상황에서 이삭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버지에게 얼마든지 저항하거나 도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온전히 순종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는 자기 아버지의 신앙을 절대로 신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생명을 아버지께 맡긴 것입니다. 
 성경 주석학자들은 바로 이삭의 이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 십자가 앞에서도 100%로 순종하신 모습을 이삭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같은 모습이라고 해석합니다. 아들을 제단에 내어 주었던 아브라함의 마음이 독생자를 골고다 언덕에 내주어야 하는 하나님 마음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엄청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을 높이십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 1:1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깊이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삭이 가나안 땅에서 100배의 축복을 받아 거부가 되는 모습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삭이라는 사람이 이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 모습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대하고 왕성한 인생을 사는 비결!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창대하고 왕성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창대하고 왕성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모습이 오늘 본문 말씀인 창26:12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복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내가 만드는 것이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삭이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니까 창대하여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상황을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삭이 농사를 지어서 백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가나안 땅의 상황은 흉년이 든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먹고 살기 힘들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기가 어려운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삭은 농사를 짓던 사람이 아니라 유목민이었습니다.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농사의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농사를 짓는 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양치기였던 이삭이 흉년이 든 상황 가운데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뿐만 아니라 거부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이삭이 거부가 된 이유입니다. 그가 열심히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거부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백배의 결실을 거두고, 거부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이러한 축복을 주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두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가운데 하나가 창 26:24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하여 이삭을 축복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을 위하여’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 아브라함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부모가 부자이면 그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부분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부모가 영적으로 부요하면 그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녀에게 영적인 축복의 통로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신앙의 유산입니다. 그보다 더 큰 유산은 없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언약의 축복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하나 이삭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삭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훌륭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상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위대한 믿음의 부모 밑에서도 완악한 불신앙의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에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압살롬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므낫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부모의 신앙이 훌륭해도 그 자식이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이삭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이삭의 믿음의 모습이 창 26:1-2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삭이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마음을 품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곳에 거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언약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위기의 상황 가운데 위기의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영적인 실력이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든 그 땅에 머무르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그 결과가 오늘 본문 말씀인 창 26:12-13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백 배의 결실을 거두었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삭이 거부가 된 이유는 수완이 좋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에 이삭이 야곱처럼 약삭빠른 사람이었다면 결코 그 땅에다가 농사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이삭은 그 땅에서 나그네로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뒤 이어 나오는 말씀을 보면 우물을 파면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우물을 빼앗아 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물을 빼앗아 갔다면 농사를 지은 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다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잘되는 것입니다. 왜 잘 되었습니까? 수완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흉년이 든 상황 가운데 자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삭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만한 믿음의 분량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만한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삭의 모습을 통해서 또 하나 기억해야 할 모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이삭이 하나님이 명하신 땅에 거주하면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네게 명한 그곳에 거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이삭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자리를 지키며 그 땅에서 거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제가 사역을 하다가 보면 두가지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모든 것을 나홀로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두가지면에서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자리에서 내가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테두리 안에서 내가 할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귀한 삶이 되셔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창대하고 왕성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창대하고 왕성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모습이 오늘 본문 말씀인 창26:13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마침내”라는 이 단어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는 이 ‘마침내’라는 단어가 어떤 느낌으로 와 닿습니까? 이삭에게 임한 축복이 너무나도 쉽게, 금방 임한 것 같습니까? 오랜 세월이 걸려서 임한 것 같습니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니지만 창 12:5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쉬웠다는 것입니까? 어려웠다는 것입니까? 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침내’라는 단어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시간이 경과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서 순종의 발걸음을 떼면 기본적으로 ‘마침내’라는 단어가 아니라 ‘순식간에’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빨리’라는 단어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빨리’라는 단어에 관심이 없습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의 인생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더욱이 가정총무로 있다가 강간 미수범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인생은 거기서 끝난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예전에는 하나님이 꿈을 통해서 요셉에게 요셉의 인생을 보여주셨음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꿈을 자랑하다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난 후에 어떻게 됩니까? 다른 사람이 꿈을 꾸면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밝히 알게 되었습니다. 성숙하게 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이 성숙은 항상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편 119:71절 말씀을 보면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에 요셉은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성숙해 진 다음에 고난이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셉이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의 때에 인내하며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의 문제가 올 때 ‘빨리’에 관심을 가지면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숙’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008년 미국에 미국 남부에 허리케인이 닥쳤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태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그 때 나무 둘레가 5미터 훌쩍 넘는 거대한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졌습니다. 시속 150킬로미터가 넘는 강풍에 견디는 나무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딱 한 종류의 나무는 많이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그 나무는 종려나무입니다. 왜 이 종려나무는 살아남았나요? 키를 자랑하고 굵기를 자랑한 나무들은 다 넘어 갔는데 종려나무는 살아남았습니다. 왜냐고요? 이 종려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 가지보다 땅에 내린 뿌리가 더 컸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말씀의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약속에 대한 깊은 뿌리를 내려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가 어느 정도 내려 가 있는지 종종 시험해 보십니다. 예상치 못한 시험도 주어 보십니다. 예상치 못한 횡재도 주어 보십니다. 그때 어찌하는가를 유심히 보고 계십니다. 그때 그 시험에 잘 통과하면 마침내 복이 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삭에게는 ‘흉년’이 시험이었습니다. 그 시험을 잘 견디고 참았더니 하나님이 마침내 창대하고 왕성한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깊게 내리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빠짐없이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창대하고 왕성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모습이 오늘 본문 말씀인 창26:14-15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주변의 시기 질투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복을 누리게 되면 반드시 역사하는 악한 세력이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입니다. 오늘 이삭에게는 블레셋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이삭이 복을 받는 것을 옆에 두고 보지를 못합니다. 
 방금 봉독한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에 ‘샘’은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특히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샘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삭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싸우든지? 아니면 그 땅을 떠나든지?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삭의 가정에도 가병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당시 그 땅에서 일어난 전쟁 때문에 포로가 되어 끌려갔을 때 아브라함이 자신의 가병 318명을 이끌고 출전해서 승리하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만약에 전쟁을 하기에 상대방이 너무 강하다고 판단이 되었다면 그 땅을 떠나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사람들이 작정하고 이삭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싸우는 것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그 땅을 떠나는 것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삭이 선택한 것이 무엇입니까? 빼앗으면 빼앗기고, 다시 샘을 파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여섯 번을 파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팔 때 마다 샘이 터져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당시의 상황으로 생각해 보면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샘을 얻는 다는 것이 쉽지 않은 지형일뿐만 아니라 흉년으로 말미암아 물이 귀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샘을 빼앗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자신들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이삭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에게서 샘을 빼앗으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복이 샘에서 온다고 믿은 것 같습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도 아닌데 기를 쓰고 빼앗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기를 쓰고 빼앗으려고 달려들면 그냥 줘버립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우물을 파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삭이 이렇게 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 이유가 창 26:24-25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삭은 자기에게 복을 주는 것은 샘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과 대항하여 싸우거나 그 땅을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땅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예배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당장 내 삶 가운데 고난이 사라지고, 아픔이 사라지고 평탄대로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도 안되는 시기와 모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이삭은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시기를 당하고, 샘을 빼앗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았더니 샘이 터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먼저입니까? 고난이 사라지고 샘이 터진 것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예배가 먼저 였습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더니 샘이 터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창 26:22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을 빼앗으면 빼앗기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망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오히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삶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이삭과 같이 창대하고 왕성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명하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도 ‘마침내’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의 상황 가운데 ‘빨리’ 그 고난이 지나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성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말씀 가운데 등장하는 이삭과 같이 창대하고 왕성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우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 내주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하나님이 복의 근원되심을 믿고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참사랑 공동체와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성도와 그 가정 머리 머리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제목 : 창대하고 왕성한 인생을 사는 비결! 
본문 : 창 26:12-25 
1.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창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3. 창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4. 창 26:1-2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5. 창 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6. 창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7. 창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8. 시편 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9. 창26:14-15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0. 창 26:24-25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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