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고 풀리는 축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라!
Notes
Transcript
새해를 맞이하여 복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두 주전에 시편 1편 말씀을 본문으로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복은 저와 여러분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가지의 길을 만드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묵상의 길을 만들라. 기도의 길을 만들라. 찬송의 길을 만들라.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은 길지만 내용은 평소와 동일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이야기는 자주 장사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행 16:11~15절 말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귀신들린 한 불쌍한 여종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유케 한 이야기가 16~18절 말씀에 나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오히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바울과 실라가 밤에 기도하고 찬송하는 가운데 옥문이 열리고 묶인 것에서 풀리는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만을 가지고도 설교를 할 수 있지만 설교를 준비하다가 보니까 세가지의 이야기가 하나의 공통된 주제로 묶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길지만 한 번에 설교를 하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길지만 설교는 평소와 같은 분량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은 세가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의 공통된 주제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주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제목에 나와 있습니다. 열리고 풀리는 축복입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리고 풀리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라. 바라기는 올 한해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닫혀 있는 삶의 영역이 열리고, 묶여 있는 삶의 영역이 풀려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을 떠나는데 무엇인가 닫혀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행 16:11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드로와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방금 함께 봉독한 말씀의 윗부분을 보면 사도 바울 일행이 원래는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사람이 여기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본 사도 바울이 자신의 계획을 뒤로 하고 선교지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교회에서 2월 10일에 필리핀으로 단기 선교를 떠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다가 보니까 베트남 사람이 나타나서는 여기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필리핀 선교를 가려고 하던 것을 접고 방향을 틀어서 베트남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 곳에서 그냥 수일을 유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선교 여행이 순조롭게 열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환상 속에서 보았던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사도 바울 일행을 반겨 맞이하였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선교를 시작해야 될지 막막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교의 문이 닫혀 있어서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선교의 문이 열리고 풀리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사건이 오늘 본문 말씀인 행 16:14~15절 말씀에 나와 있는데 다같이 읽겠습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그 사건은 다름이 아니라 루디아라는 한 여인의 마음을 여시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단순히 한 여인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 문까지 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루디아라는 여인은 자색 옷감 장사로 아주 성공한 사업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두아디아라는 도시가 염색 옷감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자주색은 그 당시에 평민들이 입는 옷이 아니라 왕족이나 귀족들만 입는 아주 비싼 원단입니다. 루디아라는 여인은 이 비싼 원단만 취급하는 아주 성공한 비즈니스 우먼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여인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마음 문이 열리고 자기 집의 사람들 하인들까지 다 세례를 받게 한 다음에 자기 집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이끄는 선교팀은 남자만 넷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 디모데, 그리고 누가였습니다. 그런데 네 명이나 되는 남자들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할 정도로 큰 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유한 아주 성공한 비즈니스 우먼이죠.
여하튼 그동안 이 선교팀이 어디서 잠을 자야 될지 어디서 숙식을 해결해야 될지도 문제였는데 이제 그 문제가 해결될 뿐만 아니라 어디서 예배할까도 걱정이었는데 이제 예배 장소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루디아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빌립보 교회가 되었습니다. 한 여인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집이 열리면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빌립보 교회를 거점으로 해서 유럽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이야기에서만 세 가지 열림이 나오죠. 한 사람의 마음이 열리고, 집이 열려 교회가 되고, 유럽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악한 영에 묶여서 점치는 여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점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크게 두가지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한 부류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점을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 고전 가운데 하나인 주역이라고 합니다. 주역이라는 책이 굉장히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을 치기 위해서 주역을 공부한다고 합니다. 머리가 비상해야 공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한 부류는 귀신에 들려서 점을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귀신에게도 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동네에도 점치는 집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등급에 따라 꼽는 깃발이 다르다고 합니다. 귀신에 들려 점치는 사람들은 공부를 해서 점을 치는 사람들과 확연히 다릅니다. 기이한 역사들을 행합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해서 뛰는데도 상처가 나지 않습니다. 귀신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귀신에 묶여서 점치는 여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행 16:18절 말씀을 보니까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모습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악한 영에게 묶여 있던 한 여인이 풀려나는 역사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악한 영에 묶여 있던 한 여인을 예수의 이름으로 풀어 주었는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감옥에 갇히고, 착고에 묶이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착고가 뭐냐하면 긴나무 토막에 구멍 두 개 뚫어 놓은 것이 착고입니다.(사진) 세 번째 이야기는 묶이고, 닫힌 상황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오늘 본문 말씀인 행16:26절 말씀을 보니까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갑자기 지진이 나면서 닫혀 있던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이 메인 것에서 풀려나는 역사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세가지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열리고 풀리는 역사가 임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보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닫혀 있는 삶의 영역들이 있습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풀리지 않는 묶여 있는 영역들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올 한 해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닫혀 있고, 묶여 있는 삶의 영역이 열리고, 풀려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누리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어떻게 하면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닫혀 있는 삶의 영역과 묶여 있는 삶의 영역이 열리고 풀리는 역사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 첫 번째 방법이 오늘 본문 말씀인 행 16:13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언제 사람의 마음 문이 열렸습니까? 언제 집이 열려 교회가 되었습니까? 언제 닫힌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까? 막혀 있는 그 상황에서 기도할 곳을 찾을 때에 그들이 나가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닫힌 문을 열어주기 시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럽 선교의 시작은 기도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시작도 기도였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난생 처음으로 유럽에 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빌립보라는 도시는 사도 바울 당시에 굉장히 큰 도시였습니다. 함께 봉독한 말씀을 보니까 첫 번째 도시라고 하지 않습니까? 빌립보라는 도시는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빌립보라는 도시는 원래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 2세가 정복한 다음에 자기 이름을 따서 지은 큰 성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로마의 식민지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 로마의 시민들과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도시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21절 말씀을 보면 여종의 주인이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하면서 사도 바울을 고발합니다.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 시민과 똑같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빌립보라는 도시는 굉장히 광대하고 웅장한 성이란 말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유럽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는데 유럽에서 가장 웅장한 도시에게 가게 되었다면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관광할 곳을 찾을 것입니다. 구경할 곳이나 유명한 맛 집을 찾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가운데 나오는 사도 바울도 난생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았습니다. 그곳은 유럽에서 가장 웅장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장 먼저 찾은 장소가 어디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기도할 곳을 찾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평소 같았으면 선교지에 가서 아마도 가장 먼저 회당을 찾았을 것입니다. 회당이라는 곳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방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회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앙교육을 받기도 하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지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던 것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평소에 사용하던 선교 전략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평소에 내가 쓰던 전략이 막힐 때 이들은 기도하러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내가 사용하던 방법으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께서 길을 내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문을 열어주시고, 집을 열어 주시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선교의 문을 열어주시는 역사가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부터 제가 사용하는 기도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긴급한 기도거리가 생기면 식사 후에 걸으면서 10분씩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면 하루에 그 기도제목을 가지고 최소한 30분은 기도하게 됩니다. 왜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지난 수요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일들이 기도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닫힌 문이 열려지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삶 가운데 무엇인가 답답한 상황이 다가올 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닫힌 문이 열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닫힌 문이 열려지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닫힌 것이 열리고, 묶인 것이 풀리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모습이 오늘 본문 말씀인 행 16:18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였더니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더러운 영에 묶인 영역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묶인 것으로부터 풀어지는 역사가 나타날 줄을 믿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원어로 살펴보면 한글 성경에서 알수 없는 의미가 한가지 더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 성경으로 읽어보면 엔 오노마티 예수 크리스투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노마티는 이름입니다. 오노마티 예수 크리스투스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앞에 전치사 엔이 붙어 있습니다. 엔은 영어로 치면 in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명하노니 그 에게서 나오라’ 생각해 보면 여기에 굉장히 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 그 이름의 능력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 있는 자만 그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니지만 행19장 말씀을 보면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사도 바울의 흉내를 내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그 모습이 오늘 본문 말씀은 아니지만 행 19:15-16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흉내 내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흉내 낸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두주 전에도 통성기도와 묵상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30년 가까이 사역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통성 기도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그런데 묵상기도는 쉽게 따라합니다. 그런데 그 효과는 정반대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훈련하다가 보면 묵상기도가 제일 어려운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집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졸립니다. 딴 생각합니다. 결국에 묵상 기도는 기도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흉내 내기는 쉽지만 제대로 하기는 어려운 기도가 묵상 기도입니다. 반대로 통성 기도는 흉내 내는 것이 꺼려집니다. 왜냐하면 웬지 격이 떨어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쓰다보니 꺼려지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르짖어 기도하다가 보면 가장 쉽게 집중해서 기도할 수 있는 기도가 통성기도입니다. 왜냐하면 내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옆에 있는 사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내 기도 소리가 내 귀에 들려지고, 내 기도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별히 예배 시간에 통성으로 기도할 때 훈련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 유익이 있습니다. 기도가 강력해 집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마치 무거운 물건을 들 때 같이 힘을 다해 맞들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납니다. 한 사람이 들 수 있는 무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맞들면 그 이상을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명이 꾀를 부려서 힘을 쓰지 않으면 나머지 사람이 힘들어 지는 원리와 똑같습니다. (해병대 IBS 훈련 / 140KG) 바라기는 올 한해 참사랑 공동체를 통해서 기도의 능력이 드러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기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흉내 낸다고 그 능력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 거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거하는 삶이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마다 묶인 것으로부터 풀리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닫힌 것이 열리고, 묶인 것이 풀리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모습이 오늘 본문 말씀인 행 16:25~26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사도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을 치유하였다가 그 여종의 주인에게 고소를 당하여 실컷 두들겨 맞고 착고에 묶이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언제 갇히고, 묶인 것에서 풀리게 되었습니까? 방금 함께 봉독한 말씀을 보니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때 옥문이 열리고, 메인 것이 풀려지는 역사가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금 전에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찬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찬양은 노래와 다릅니다. 노래는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노래는 못하는 사람입니다. 노래는 목소리로 하는 거지만 찬양은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찬양은 음악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음에 부어주신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흘러나네’ 아멘 이 속에 은혜가 있는 자가 내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자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기도와 찬양, 이 두가지를 합하면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닫힌 문을 열게 만들고 묶인 것이 풀려지는 역사가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아주 유명한 대표적인 무신론자 가운데 계몽주의 사상가였던 볼테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볼테르라는 사람은 기독교에 대해서 엄청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안티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볼테르에게 기독교를 말살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볼테르가 주저 없이 답했던 것이 예배를 드리게 못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정부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제한했습니다. 1만여개의 교회가 사라졌습니다.
사단 마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분주함을 통해서, 피곤한 통해서, 관계를 통해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무너지면 신앙의 파탄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시간을 지켜내야 합니다. 예배에 승리하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면 막힌 것이 뚫리고 닫힌 문이 열리고, 묶인 것이 풀리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배의 성공자가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준비하다가 보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각기 다른 존재에 의해서 붙잡힌 세부류의 사람들의 모습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성령에 붙잡혀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성령에 붙잡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계획이 있었지만 그 계획을 포기하고 방향을 돌려 유럽으로 향합니다. 이들은 성령에 붙잡혀 있었기에 유럽에 먼저 와서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곳을 찾습니다. 성령에 붙잡혀 있었기에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성령에 붙잡혀 있기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찬송하였더니 옥문이 열기고, 착고가 풀려지는 역사가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도 성령에 붙들린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성령이 아니라 악령에 붙잡혀 사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귀신에게 붙잡혀 있어요. 귀신이 나를 통제합니다. 귀신이 하라는 말을 내가 합니다. 어둠의 영에 이끌려 붙잡혀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삶인지 모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귀신들려 점을 치는 사람만 악령에게 붙들린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악령에 붙들리면 내가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귀신노릇을 하게 됩니다. 갈등하게 만들고, 분열하게 만들고, 하나님에게 헌신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악령에 붙잡혀 사는 사람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성령도 아니고 악령도 아니고 또 다른 것에 붙잡혀 사는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가 누구냐 하면 이 귀신 들린 여종의 주인입니다. 이들은 무엇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습니까? 돈에 붙잡혀 살아갑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데리고 있던 여종이 귀신 들렸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어느날 그 귀신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 이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분노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 이유가 오늘 본문 말씀인 행 16:19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16절 말씀을 보니까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그동안 큰 이익을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귀신 들려서 점을 잘 쳤기 때문에 사람들이 복채를 들고 왔습니다. 그 돈을 주인이 먹었단 말입니다. 그동안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이 떠나가고 나니까 더 이상 정을 못 치게 됩니다. 한 영혼이 귀신에게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내가 돈을 벌지 못하게 되어서 분노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무엇에 붙잡혀 있는 것입니까? 돈에 붙잡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돈에 붙들린 인생이 되지 않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세 가지에 붙잡혀 사는 사람이 결국 등장합니다. 성령에 붙잡혀 성령에 이끌려 살아가는 바울 일행이 있고, 악령에 붙잡혀 귀신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불쌍한 한 여종이 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돈에 붙잡혀서 돈을 최고로 알고 돈에 이끌려 살아가는 주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에 붙잡혀 살고 계십니까? 이 질문에 저와 여러분이 정말 자신 있게 주저함 없이 저는 성령님에 이끌려 살아갑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난 주의 인도하심 따라 나는 예수 안에서 살아갑니다라고 주저없이 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사도행전 16장은 닫힌 것이 열리고 묶인 것이 풀리는 축복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문이 열리고, 집이 열려서 교회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선교의 문이 열립니다. 영적인 묶임에서 해방이 됩니다. 닫힌 옥문이, 나를 속박하고 있던 착고가 풀렸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이름을 선포할 때, 기도하고 찬양할 때, 예배할 때 그런 역사가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참사랑 교회 안에 이러한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올 한해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닫힌 문을 열어주시옵소서, 닫혀 있는 마음의 문들을 열어주시옵소서. 죄에 묶인 영혼들, 하나님 풀어주시옵소서, 귀신에 묶여 있는 영혼들도 하나님 풀어주시옵소서. 모든 자유롭지 못한 것이 예수 이름으로 해방되는 은혜를 우리가 보기를 원합니다. 다같이 일어나서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 내주 보호 인도 교통하심이 성령에 붙들린 인생이 되어 닫힌 문을 열어주시고, 묶인 영혼을 풀어주시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기 소원하는 참사랑 교회와 모든 성도와 그 가정 머리 머리 위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제목 : 열리고, 풀리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라!
본문 : 행 16:1~26
1. 행 16:11 “우리가 드로와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2. 행 16:14~15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3. 착고(사진)
4. 행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6. 행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7. 행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8. 행 19:15-16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9. (해병대 IBS 훈련)
10. 행 16:25~26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11. 행 16: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