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길로 빠지는 이유(막9: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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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살아갑니다.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질 날이 있듯이 아무리 능숙하고 숙련된 일이라도 실수 할 수 있고, 오랫동안 봐 온 사람들 간에도 충분히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실수가 반복이 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실력이 되고 인격인 경우도 참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반복적인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요? 바로 “왜 실수를 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실수의 원인을 살펴보면서, 실수의 반복을 충분히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전환)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실수로 엉뚱한 질문을 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그에 대한 답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 본론

가.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 하신 다음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집에서 계실 때,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답을 선뜻하지 못했습니다. 이유인즉 그들은 “서로 누가 크냐고 논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하면 끝이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러시면서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누군든지 이 아이를 영접하면 자기를 영접하는 것이고, 자기를 영접하면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 제자들의 질문이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름 아닌, ‘제자들의 입에서 왜 누가 크냐는 논쟁이 나왔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논쟁 같아보이지만 실상은 결코 유치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논쟁의 시작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이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함께 30-32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9:30–32 NKRV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이유1)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제자들의 이런 논쟁이 나온 이유 첫번째는 그들이 예수님의 사역에 관심이 없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30-32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실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실 이 일을 위하여 하늘 보좌를 내려놓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이 죽고자 이 따엥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제자들은 별로 여기에 관심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일반 유대인들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세상 메시아를 통해 자유를 얻고 부귀 영화를 누리고자 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신기한 기적과 섬김은 그분이야 말로 이 세상의 왕이 되셔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자유롭게 하실 분이라고 믿었다는 겁니다.
그분을 옆에 두고도, 그분의 사역을 눈으로 보고도… 그분의 사역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듣고도 깨닫지 못했고, 오늘 본문에 와서는 “누가 크냐는 논쟁”을 했다는 겁니다. 왜요? 이제 예수님이 로마를 무너뜨리시면 한 자리 찾아볼 심상으로 그랬다는 겁니다.

★ 적용)

사실 오늘 우리도 충분히 이런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사역, 그리고 그분의 이야기인 복음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도 예수님을 오해하며 자기 유익만을 위해서만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에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우리와 그 복음은 어떤 관계 가운데 있습니까? 여러분의 직장과 가정에서 어떻게 이 복음을 연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면, 우리도 엉뚱한 질문을 하는 제자들과 같이 실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실수의 원인을 알아, 예수님의 사역에 관심을 두고 살아간다면, 주님 앞에 누가 크냐는 엉뚱한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유2) 섬김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겁니다.

둘째로 제자들의 이런 논쟁이 나온 이유는 “섬김에 대한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녔지만, 그분의 사역에 관심이 없었던 제자들은 이제 그분이 어떻게 사역하는가에 대한 것을 매번 보고도 그 원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옛날 어른들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사 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다.” 이 말은 궂이 풀이하지 않아도 모두 아실 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며 섬기는 것보다 그분이 하시는 기적과 모여드는 사람들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니 눈 앞에서 섬기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그들은 깨닫지를 못하는 겁니다.
섬김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니 그들은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9:35 NKRV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첫째가 되고 싶으면, 끝이 되어야 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섬김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본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천국에서 1등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 1등이요. 칭찬받는 종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까지 섬겨야 했느냐? 36-37절을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9:36–37 NKRV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당시에 어린 아이는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린 아이를 섬기면 예수님을 자신을 섬기는 것이고, 심지어 예수님 자신을 섬기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도 못지킬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실제로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을 사랑하셨고, 그보다 못한 사람들까지도 사랑하시고 섬겼습니다. 이처럼 그들도 그렇게 섬겨야 했었는데, 섬김에 대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니… 결국 스스로 누가 크냐는 논쟁만 했다는 것입니다.

★ 적용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섬김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교사로 성가대로 찬양단으로 섬기는 것이 이 원리에 입각한 것입니까? 만약 우리가 이 원리를 모른채 섬김의 자리에 있다면, 누군가는 우리를 칭찬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자신은 어느새 그 섬김의 자리라고 하는 그 자리에서 자기 자리의 탁월성과 우위를 말하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하여 섬김의 원리에 따른 섬김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기 위한 섬김으로 전락되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죠!
이제 우리는 제자들과 달리 주님의 사역과 섬김의 원리를 잘 알아. 깨닫지 못해 엉뚱한 길로 가서 실수했던 제자들 처럼 되지 말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서 후에 충성된 종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는 모습으로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3.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누구나 실수 합니다. 그런데 실수를 계속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잘못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제자들과 같이 엉뚱한 질문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하게 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과 그분의 섬김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자들 처럼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코 어리석은 제자들의 이야기로만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도 충분히 실수하면, 그분의 사역과 섬김을 오해하면 누가 크냐는 논쟁의 자리에 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 파동과 관련하여 생기는 개신교 내의 역겨운 모습은 왜 발생합니까?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같은 모습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오셨고, 어떻게 일하셨는지 모르니… 엉뚱한 논쟁을 하며 세상 속에서 우리의 세를 과시하며 무언가 이뤄보고자 하는 겁니다.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엉뚱한 질문, 엉뚱한 신앙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칭찬받는 그리스도의 자녀요 군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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