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받으신 예수님: 광야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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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험받으신 예수님
제목: 시험받으신 예수님
본문: 누가복음 4장 1-13절
본문: 누가복음 4장 1-13절
찬송: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찬송: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임재의 기도>
<임재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오늘 예수님의 광야 시험에 관한 말씀을 나누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지혜와 분별력을 주시고, 우리의 삶에서 마주하는 시험과 유혹 속에서도 말씀으로 승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모두가 광야의 영성을 배우며 성령 충만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은 사순절 첫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을 앞둔 40일의 기간으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보내신 40일을 기억하며 우리도 영적으로 단련과 회개, 그리고 묵상의 시간을 갖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십자가를 향해 담담히 걸어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신앙을 새롭게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40일을 보내신 광야! 성경에서 '광야'는 단순한 지리적 장소를 넘어 깊은 영적 의미를 지닌 공간입니다. 광야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장소였고,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소명 장소였으며, 예수님의 시험과 준비 장소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시험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며, 광야의 영성이 우리에게 주는 세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본문 1-2a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누가는 예수님이 광야로 들어가신 것은 마귀에게 시험받기 위함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1절은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40일 동안 성령에 이끌리시며”라고 말씀합니다. 광야로 들어가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왜 하필 광야 였을까요? 예수님은 왜 산이나 한적한 회당, 또는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다른 장소로 가시는 것이 아니라 광야로 가셨을까요?”
광야는 성경에서 특별한 장소입니다. 본문에서 광야로 사용된 단어의 본래 뜻은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을 의미합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햐얀 도화지를 생각해보면 광야는 완전히 비어있는 공간을 뜻합니다. 성전이나 회당은 이미 종교적 의미가 부여된 공간이었고, 산은 높이 올라 하나님과 가까운 곳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광야는 모든 것이 비워진 곳입니다. 이 비어있음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거이에 무언가를 그려넣을 수도 있고, 채워넣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이나 회당에는 종교적 전통과 의식에 의해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마음을 훼방 받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가 우리의 모습을 감추게 만듭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모든 가면과 위장을 벗어던지고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서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런 철저한 비움의 장소에서 메시아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확고히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시기에 이집트의 수도사들은 신앙 훈련을 위해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들은 도심지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고요한 광야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감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이는 과거 출애굽한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명기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준비시키셨고,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공생애를 위해 광야에서 준비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광야’라고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고통과 어려움, 외로움과 시험의 시간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광야의 시간을 통해 우리를 믿음이 더욱 견고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시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광야와 같은 고난과 시련의 순간을 통과할 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앙의 성숙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도자기는 뜨거운 가마를 통과해야 단단하고 아름다운 그릇으로 완성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손에 빚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 준비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혹시 지금 나의 삶이 광야보다 더 광야같은 순간에 놓여있지는 않습니까? 광야보다 더 광야와 같은 곳에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경험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십니다.
함께 화면을 보고 본문 3, 9의 주요 말씀을 읽겠습니다.
눅 4:3, 9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본문 3, 9절을 보면 마귀의 시험은 공통적으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이 질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의미를 왜곡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어떤 특권과 능력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면 저는 마귀가 예수님을 마치 조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내게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정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것을 증명해봐!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봐. 지금 배가 고프잖아. 아니면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봐. 천사가 와서 너를 받쳐줄거 아니야!” 아마 이런 어조로 예수님을 조롱하고 도발을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보여주면 내가 믿어줄게”였습니다.
마귀의 전략은 교묘합니다. 마귀는 마치 동네 건달이 점잖은 사람을 골려주듯 예수님을 자극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존재 의미, 예수님의 정체성을 외적인 능력과 기적에서 찾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정체성이 기적을 행하는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와 말씀에 대한 순종에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의 도발 앞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신 것이 아니라 매번 “기록되었으되”로 시작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이와같은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기준으로 나의 가치와 정체성을 판단하려 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나 성공했는지, 얼나 인정받았는지,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자기 자신을 평가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외적인 성공이나 업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0:9 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의 말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누구를 믿고 따르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나는 지금 어떤 인생의 시험 가운데 있습니까? 건강의 어려움입니까? 경제적 위기입니까? 아니면 관계의 문제나 또는 신앙의 의심입니까?
이런 시험 속에서 우리는 종종 내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이면 왜 지금 내 손에는 이것밖에 없는 거지?”
그러나 시험의 시간은 오히려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곤고하게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하셨듯이, 우리도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광야에 홀로 서 있다고 느껴지실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세우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세우십니다.
함께 본문 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귀는 예수님께 “네가 만일 내게 고개만 한번 까딱 숙이기만 해도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라고 제안했습니다. 마귀의 이와같은 제안은 “쉬운 길을 택해라,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느냐? 십자가 그런 것 없이도 세상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이었습니다. 정말로 솔깃한 유혹입니다. 마귀는 지금 예수님께 “눈 한번 질끔 감고 모른척 하고 한번 숙여봐”라고 말한 것인데 이렇게 마귀에게 고개만 한번 까딱 숙이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얻는다면 보통의 사람들 같았으면 아마 대부분이 이 유혹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 영광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단순히 교회 안에서 드리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세상 부귀영화권세가 아닌 아버지 하나님께만 오전히 예배하실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율법을 엄격히 지키던 바리새인들은 외적인 행위와 규칙에 따라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참된 예배자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의 겸손과 진실함이 참된 예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참된 예배자를 만들기 위해 광야만큼 적합한 장소는 없습니다. 광야는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세워주는 장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들판 광야에 서 있으면 세상의 소음과 유혹이 멀어집니다. 뿐만아니라 우리 자신의 외적인 조건과 형식에 의지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과 나만 홀로 만나며,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곳은 광야만한 곳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 속에서도 깊은 화평을 유지하셨습니다. 그것은 환경에서 오는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내면의 화평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한 화평과 같은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에서 바울은 먼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권면하고, 그런 다음 7절에서 약속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b)고 약속합니다.
이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교회는 성령의 열매 중 ‘화평’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화평은 참된 예배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께만 예배드릴 때, 세상은 줄 수 없는 깊은 화평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광야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빠른 성공과 눈에 보이는 결과를 약속하며 타협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자는 쉬운 길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우리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진정한 화평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순절 첫번째 주일을 맞아 우리는 ‘시험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광야의 영성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것은 단순한 고난을 넘어, 공생애를 위한 영적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도 예수님처럼 광야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진정한 예배자로 일어서는 삶을 사는 것을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시험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의 능력에 의지할 때 우리의 광야를 통과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험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광야의 영성으로 승리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사순절 첫 주일에 예수님의 광야 시험을 통해 귀한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듯이, 우리도 삶의 광야에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광야는 때로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통해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시며, 참된 예배자로 세우시는 주님의 뜻을 믿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저희가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주님과 깊이 교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모든 유혹을 이기게 하옵소서.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께만 예배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특별히 성령의 열매 중 화평의 은혜를 허락하셔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헌금기도>
<헌금기도>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예배할 수 있게 하시고, 광야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먼저 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 헌금자 이름] 성도님을 축복해 주옵소서. 이들이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보였사오니, 하늘 창고의 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고, 생업의 모든 영역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삶의 광야와 같은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참된 예배자로 세워주옵소서.
또한 감사헌금을 드린 [감사헌금자 이름] 성도님의 마음을 받아주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들의 감사가 더욱 깊어지게 하시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셨듯이, 이들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선교헌금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동참한 [선교헌금자 이름] 성도님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들이 드린 헌금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데 귀하게 쓰임 받게 하시고, 선교사님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게 하옵소서. 광야와 같은 선교지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사 많은 영혼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주정헌금, 구역헌금, 성미, 그리고 여러 모습으로 섬기는 봉사자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들의 정성과 순종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각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섬김의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이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요양병원에 계신 김미자 권사님, 김곤엽 집사님과 모든 환우들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그들의 광야와 같은 시간을 통해 주님과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기회가 되게 하시고, 필요한 회복과 위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광야의 영성을 배우게 하옵소서.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모든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자신을 비우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우리도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예배와 헌신과 기도를 받아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