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종의 모델이 되신 예수님
Notes
Transcript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자신의 사명이 그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마치 세례요한이 이사야의 기록을 통하여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던 것과 같다.
그러나 자신의 사명을 알고 걸어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종은 쉬운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겟세마네라는 곳을 향해 갔습니다.
아침부터 시작된 사역부터 저녁에 제자들과 만찬까지 마치고, 이제 씻고 누우면 바로 잠들 수 있을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를 하기 위해 동산에 오르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은 자신이 기도할 동안에 제자들에게 그저 옆에 앉아만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그런데 제자들 중에 수제자라고 부를만한 세명의 제자와 함께 걸어가던 중에도 앞으로의 사역을 생각하니 고민이 되고 슬픔이 몰려 온 것이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그래서 믿을만한 제자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신다. 내가 고민하고 죽게되었으니 나와 함께 깨어있어 달라. 물론 피곤하겠지만 그렇게 어려운 부탁도 아니다. 그저 옆에서 함께 기도해달라는 거이다.
예수님은 얼마나 힘들었던지 얼굴을 땅에 대시고 기도하셨다.
“이 잔을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아버지, 저 정말 십자가 지는 것이 두렵고 싫습니다. 할 수 있다면 다른 일을 맡겨주세요.)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은 매우 축약된 기도의 내용으로 예수님은 한문장으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한시간동안 기도하셨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을 것이다.
내가 한시간동안 매일 기도를 했을 때 처음에는 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거나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기도가 깊어지고 나면 점점 감정은 사라지고 말씀과 감동이 기도를 이끌게 된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에게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이런 내용으로 채워졌던 기도가 그 사람이 잘못하게 된 배경, 나의 잘못, 그런 상황들을 보게 하시고, 내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 그리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현상 그리고 안전함, 평안함 등을 느끼게 하신다.
그리고 나면 기도가 바뀌게 된다.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말씀대로 믿음대로 될 줄 믿습니다.
저에게 힘을 주세요. 용기를 주세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인도해주세요.
이것이 어떠한 영적현상인지 누가복음에 똑같은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우리가 기도할 때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사들이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더해줍니다.
성경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께 한시간이 아니라 일주일 밤을 새서라도 같이 기도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마음과 몸이 다르게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은 약하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기도하고 오셨을 때,
“한시간도 같이 기도할 수 없냐며 충고하시고 다시 기도하러 갔습니다.”
특별히 40절에서 베드로에게 충고하셨다.
베드로는 방금 전 예수님께 모두가 주를 버려도 자신은 버리지 않을 것이며,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드로도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는 못했다.
두번째 기도하고 오셨을 때,
자는 것을 보고 그냥 다시 가셨습니다.
그들의 눈이 피곤한 것을 보았습니다.
세번째 기도하고 오셨을 때,
이제는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갈라디아서에 기둥 같이 여기는 제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오니 제자들이 자고 있습니다.
정말 한심하고 답답하지만 우리는 늘 이런 모습을 보고 살아갑니다.
교회도 갈 길은 십자가와 같이 큰 일인데 성도들은 예배 한번 참석하고 기도 한번 하기도 힘이 듭니다. 갈길이 구만리인데 진행은 너무 더디고 어느 때에는 뒤로 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회사나 가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부모나 리더들은 고민이 되고 힘들어 죽겠는데 자식이나 직원들은 자기들 마음처럼 안따라줍니다.
개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래의 나는 어떻게든 더 좋은 모습으로 잘 사는 나를 기대하는데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미래의 나에 대한 이상만큼 따라주지 않습니다.
이것을 뒤집는 역사는 노력이나 지식이나 의지나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완전히 변하여 딴 사람이 된 계기는 십자가 뒤에 부활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청종’의 모델이 되신 이유는
순종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 순종하고, 형편없는 제자들을 훈육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능력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일어나 함께 가자
기도한 사람들은 힘을 얻게됩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나 고난 앞에서도 걸어갈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나를 팔려는 사람을 피하거나 정죄하거나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그를 맞이합니다.
큰 바위 이야기
큰 바위 이야기
하나님의 일과 계획을 우리가 평가하려고 하면 시작부터 어긋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판 가룟유다처럼 될 것입니다.
일의 과정과 결과를 자기가 다 판단하려고 하면 결국 시험에 듭니다.
신앙생활이란 때로는 매우 어리석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의 작은 시골마을에 통나무 집에 살던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 집 문 앞에는 남성의 키보다 큰 바위가 있었는데 평소에도 넘어 다니기 힘들었던 길이 남성이 병약해지면서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남성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돌 때문에 집을 드나들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이 돌을 치워주세요.
그때 하나님께서 그 남성에게 응답하십니다.
“너는 매일 이 바위를 힘껏 밀어라.”
남성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매일 바위를 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이 바위가 쭉 밀려날까 기대하며 1년동안 바위를 죽어라 밀었지만 바위는 꼼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1년이나 순종했는데 1센치미터도 꿈쩍하지 않는 바위를 보며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제가 1년동안 이렇게 순종했는데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까? 작은 변화라도 있어야 제가 계속 순종을 할 것 아닙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남성에게 응답하십니다.
“거울을 보아라.”
거울을 보니 삐쩍말라서 병약했던 남성의 몸이 근육질의 건강한 몸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매일 바위를 밀었더니 자신의 건강이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성의 상황이나 환경을 변화시키신 것이 아니라 그 남성을 변화시키셨던 것이다.
결론
결론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순종합니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님께 결과도 맡깁니다.
우리가 수요일에 모여서 예배하는 것도, 사순절을 맞이하여 북스터디를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청종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좋은 변화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때로는 그 길이 손해보는 것 같고, 죽으러가 가는 길처럼 보이더라도 그 길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으니 신앙생활을 할 때에 죽음의 그림자나 십자가의 고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본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순종 너머의 축복을 바라보며 청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