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오직 은혜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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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 오직 은혜

본문: 사도행전 14장 8-18절

찬송: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임재의 기도>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기게 하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의 수요일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는 창세기 3장 19절 의 말씀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부터 부활절까지 이어지는 40일의 사순절 여정은 우리의 유한함을 겸손히 인정하고,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절기상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땅속에서 깨어나는 경칩입니다. 죽음 같은 겨울을 지나 생명이 깨어나는 것처럼,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돋아느듯,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 생명이 깨어나는 시기가 바로 사순절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볼 본문은 이고니온에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에 일어났던 일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당시 루스드라는 그리스-로마 문화의 영향으로 제우스와 헤르메스 같은 신들을 섬기는 이방인들의 도시였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한 평생 걷지 못하던 사람이 바울의 말 한 마디에 일어나 걷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의 무능력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마치 농부가 씨를 심고 물을 주어도 생명을 직접 줄 수 없듯이, 우리의 구원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은혜의 증거>

본문의 첫 장면인 8절을 보면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평생 한번도 두 발로 서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육체적 모습은 우리의 영적인 모습을 비춰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였습니다. 로마서 3:23 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래 상태였습니다. 마치 앉은뱅이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영적인 걸음을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재의 수요일은 바로 이런 우리의 본질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갈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무능력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주목하여 그 걷지 못한 사람이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다”고 9절은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바로 ‘주목하여’라는 말입니다. 헬라어 성경은 ‘뚫어지게 바라보다’, ‘깊이 들여다보다’라는 뜻의 단어가 사용됐습니다. 바울은 스쳐 지나가듯 그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 깊은곳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별견한 것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도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엡 2:8)이며, 믿음은 성령이 주시는 은사(고전 12:9)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을 보고 “네 발로 일어서라”(10절)고 명령했습니다. 평생 걸어본 적이 없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이 사람이 걷게 된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구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일어서서 걷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마치 경칩을 맞아 땅속에 깊이 잠자던 생명이 깨어나고 농부가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도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평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도 그것이 직접 우리에게 영적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옵니다. 마치 앉은뱅이가 바울의 말 한마디로 일어난 것처럼, 우리의 영적 생명도 하나님의 은혜로 깨어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치고 힘든 순간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을 만날 때 가장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고린도후서 12:9 에서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앉은뱅이처럼 우리의 무능력함을 인정할 때, 바울의 말 한마디로 일어난 그 사람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은혜의 방해물>

루스드라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11절)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기적을 목격했지만, 그 기적의 진정한 근원을 오해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긴 이유는 당시 루스드라 지역에는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인간의 모습으로 그 지역을 방문했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설에 따르면 이 신들이 찾아왔을 때 환대하지 않는 마을은 홍수로 멸망했고, 그들을 환대한 필레몬과 바우키스라는 노부부는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열광적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 소와 화환을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실제적인 우상숭배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성공적인 사역과 기적적인 변화들을 목격할 때, 우리는 그 영광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돌리려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능력과 공로를 높이는 것 또한 우상숭배입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의 실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도 그 영광을 사람에게 돌리려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가로막는 첫 번째 방해물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이사야 64:6b 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과 선행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가로막는 두 번째 방해물은 교만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 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흘러들어올 수 없습니다. 잠언 16:18 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경고합니다. 재의 수요일은 바로 이런 교만을 내려놓고 우리의 본질인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인정하는 날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우상들과 교만을 발견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보다 우선되는 것들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장벽이 되어 주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흘러들어오는 것을 방해합니다.
사순절은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광야에서 보내시며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듯이, 우리도 이 40일동안 우리 안의 우상과 교만을 물리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은혜의 회복>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자기들의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를 질렀다고 말합니다(14절). 성경에서 옷을 찢는다는 것은 깊은 슬픔과 회개, 그리고 경건한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에스라는 백성들의 죄를 듣고 옷을 찢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사람들이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들에게 도리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겸손한 고백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연약한 인간일 뿐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재의 수요일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우리는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갈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해서 사도행전 14:15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돌아오게 함’이라는 단어의 본래 뜻은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 즉 회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회복하는 첫 단계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16, 17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셨음을 선포합니다. 비를 내리시고 결실기를 주시며 음식과 기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신 것은 모두 우리의 일상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좋은 것들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순절 기간동안 우리도 바울과 바나바처럼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이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그릇입니다(보배를 질그릇에 받았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우리는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갈 존재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임을 깨닫는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 마음을 열때, 경칩의 계절처럼 우리 안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안에서 사순절 기간동안 영적으로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은혜와 자비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 재의 수요일을 통해 사순절의 거룩한 여정을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무능력함과 한계를 인정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갑니다.
주님, 우리는 마치 앉은뱅이처럼 영적으로 걷지 못하는 존재였지만, 주님의 말씀 한 마디로 일어나 걷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우상들을 발견하고 내려놓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마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나님, 때로는 루스드라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다른 곳에 돌리는 실수를 범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보다 우선시되는 것들을 내려놓고, 모든 영광을 오직 주님께 돌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이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말씀을 사모하고 읽고 묵상함으로 말씀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시고, 예배와 기도를 통해 믿음이 자라나는 믿음 충만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는 성령 충만한 삶으로 인도하옵소서.
마치 경칩을 맞아 땅속 생명이 깨어나듯, 우리의 영적 생명도 새롭게 깨어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질그릇 같은 연약한 몸에 주님의 보배를 담으시고,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약함 가운데 온전히 나타나게 하옵소서. 주님만이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모든 영광을 오직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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