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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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설교문은 한국어 어절 기준 정확히 1200어절로 작성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중심으로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운 사랑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이 말씀은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하지만, 매일의 삶 속에서 그것이 정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요? 자주 듣는 구절이기에 아무 생각 없이 흘려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의 하나님”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가장 소중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주셨고, 그 희생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단순히 교리적 지식으로만 남아 있지 않고, 실제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자주 머리로만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구절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 이상의 무게를 느끼게 만듭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단지 이 지구, 자연 혹은 인류 전체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까지 포함하는 구체적 대상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가 속한 세상’, 곧 부족하고 죄 많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은혜입니다. 과연 내가 어떤 존재이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토록 큰 사랑을 베푸실까 하고 의아해질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죄의식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길 두려워하거나, 혹은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우리의 모습은 다릅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과 타인을 바라볼 수 있다면, 세상이 훨씬 따뜻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독생자를 주셔야 했을까요? 죄 많고 연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길은 반드시 ‘대속’이 필요했습니다. 구약시대부터 제사장들이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치던 전통은 바로 이 대속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죄가 그 희생제물에게 전가되고, 그 희생제물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불완전하고 일시적이었습니다. 인간의 죄는 무한히 깊기 때문입니다. 오직 흠 없고 완전하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실 때, 우리는 완전한 용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용서의 배후에는 “이처럼”이라는 말로 표현될 만큼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사랑이나 도덕적 가르침을 넘어서는, 신적 차원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달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도 변화하게 됩니다.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오해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어떤 분들은 인생에서 고난이나 아픔을 당할 때,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시련이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겪는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는 증거일까요?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건 없는 평안’과는 다른 차원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부모가 자녀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훈육하는 일은 자녀 입장에서는 아프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이 자녀에게 축복이 되고 성장의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이나 어려움은 결국 우리의 믿음을 정금같이 만들어주며, 그분의 섭리 안에서 더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가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단지 우리 개인의 구원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은 ‘누구든지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누구든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특정인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든, 예수님을 믿기만 한다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립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시사합니다. 즉,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주변 모든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그리고 상처받은 자까지.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교회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또 상처를 감싸는 치유자로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랑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면, 삶의 모든 영역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랑은 사람을 완전히 새롭게 빚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용서와 구원, 그리고 성령의 내주하심은 우리를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만들죠. 식어버린 마음에 불을 붙이고, 원망과 분노로 가득했던 관계에도 회복의 씨앗을 심어줍니다. 물론 그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를 때, 우리 안에 점점 더 큰 기쁨과 평안, 그리고 소망이 움트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 안에 거하라”고 여러 번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존재를 지배할 때, 우리는 근본부터 달라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 사랑 가운데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 사랑은 단순히 나 혼자 누리고 끝내는 사치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야 할 축복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교회 안에서 서로 비난하고 헐뜯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고 기도해주며 돕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여러 이유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끝까지 인내하시며 용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으로 서로를 품고, 그 사랑의 능력이 교회 공동체를 통해 세상에 흘러갈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달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감정에 치우쳐 오늘 사랑했다가 내일 식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가리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설령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계십니다. 이 사랑을 온전히 깨달으면, 우리에게는 참된 자유가 주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담대히 서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가 받은 사랑을 세상에 나누는 일에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동이나 사역이 사람의 인정이나 보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만히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사랑은 우리를 향한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함으로써 세상에 빛을 발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때때로 미움과 경쟁, 비교가 난무하는 현실 가운데서 사랑을 실천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의지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할 힘이 부족함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고, 그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실체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여 열매 맺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단지 입술의 말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행동으로 증명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배 생활, 기도, 말씀 묵상, 그리고 이웃을 향한 헌신과 봉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실제적인 힘인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교회 안에서만 머무르게 하지 말고, 가정과 직장, 그리고 세상 모든 곳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이처럼 행동으로 표현되는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한 순종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세상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랑의 하나님을 제대로 알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신 무관심한 신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귀 기울여 들으시고,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마다 깨달음을 주시며, 우리가 서로 교제할 때마다 친히 그 한가운데 계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바로 이분이, 요한복음 3장 16절이 선포하는 그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당신을 부르십니다. 실패했더라도, 낙심했더라도, 지난 시간에 죄를 범했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말씀을 깊이 마음에 품고, 매일의 삶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우리가 받은 그 신령한 사랑을 세상에 전하며,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합시다. 그것이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가슴 벅찬 뜻이며, 우리가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영원히 변함없이 안아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사랑을 붙들고 살아갈 때, 우리 교회와 우리의 가정, 그리고 모든 삶의 현장에 놀라운 치유와 회복, 그리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함께 이 말씀을 붙들며, 오늘도 사랑 안에 거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 이제 우리 서로에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사랑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심장에 울려 퍼지고, 또 우리 삶의 자리에 실제가 되어 나타나길 바랍니다. 모든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복된 하루,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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