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사랑
Notes
Transcript
<중고등부 설교>
데살로니가전서 2:17-20
“멈추지 않는 사랑”
2017. 6. 11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인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세 번의 안식일 동안 그곳 회당에서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자 많은 경건한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믿고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시초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대동해서 소란을 일으키고, 속된 말로 바울을 잡아 족치려고 난리를 치자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다른 형제들의 도움으로 베뢰아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베뢰아에서도 복음을 전하는데,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그 사실을 알고는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또 소동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울은 남쪽 아덴까지 또 도망쳐야 했는데, 이번에는 동료인 실라와 디모데는 두고 혼자서 다른 형제들과 떠납니다. 아덴에 도착한 바울은 자기를 안내했던 사람들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나에게 오라고 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들이 떠난 뒤에 바울은 아덴에서, 아덴은 아테네를 말합니다. 이 아테네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동안 바울은 그 도시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또 선교본능이 폭발해서 날마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과 토론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테네에도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아테네 옆 동네인 고린도로 넘어갑니다.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고 하는 믿음의 동역자들도 만나고 또 복음을 전하던 와중에 베뢰아에서 헤어졌던 실라와 디모데가 내려와서 함께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디모데를 통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른 신앙으로 말미암아 모범이 되고 있다는 매우 기쁜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바울은 일전에 데살로니가에서 소동이 벌어져 급히 도망쳐야 했기 때문에 자기가 전도했던 사람들이 매우 걱정스러웠습니다. 혹시나 그들이 다시 우상을 섬기고 있지는 않을까, 복음을 버리지는 않았을까. 이런 걱정 속에 있었는데, 그들이 복음을 잘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매우 큰 기쁨과 즐거움이 그를 감동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기쁨 속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하여 편지 한 통을 디모데를 통해 보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애초에 바울은 편지를 보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데살로니가로 가려고 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내가 너희들에게 가려고 노력을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사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추측하기로는 아마도 데살로니가에서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끌어내기 위해 소동을 일으켰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뿐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사람들과 같은 족속인 이방인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14절을 보면,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 사람들이 자신들이 받아들인 복음으로 인해서 동족인 이방인들에게 배척을 받고 고난을 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만일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돌아가 교인들을 만났다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때문에 아마 바울뿐 아니라 데살로니가의 모든 교인들에게 감당 못할 큰 환난이 닥쳐왔을 것입니다. 이런 사단의 세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울은 직접 가지 못하고 디모데를 통해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17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아멘. 바울은 비록 몸은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너희와 함께 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마음이 변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열정적으로 원하고 구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사랑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을 때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분이 보지 못하는 중에 더욱 믿음과 사랑이 충만하여서 많은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옆사람에게 인사합시다. “사랑합니다.” 이번에는 눈을 감고.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눈에 보이든지 보이지 않든지, 항상 여러분의 입술로 사랑한다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사랑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멘. 바울이 말한 이 사랑을 여러분이 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너무나 까다롭고 어렵게만 보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켜 행하며 내 안의 사랑을 연단하여서 풍성하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18절에서 바울은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직접 가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은데 가지 못하는 부득이한 사정을 해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데살로니가 교회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난을 당하는 중인데도 코빼기도 안 비치는 바울에게 서운함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딴 데로 도망치더니 쫄아서 오지도 않네. 이런 생각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가려고 노력했으나 가지 못한 이유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3절을 보면 이런 해명을 하는 모습을 또 볼 수가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너희 중에서도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길이 막혀 있어서 갈 수가 없다. 이렇게 사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굳이 이런 해명을 해야만 했을까요? 욕 먹기 싫어서? 아니면 변명하려고? 아니면 생색 내려고? 그런 것이 아니죠. 바울은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쓴 것입니다. 아, 우리가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구나.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 예수께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바울은 내가 너희를 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이 아니고, 너희에게 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랑한다면 속으로만 하지 말고 말로 하시기 바랍니다. 말을 해야 알지, 안 하면 몰라요. 뭔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잘 설명해 주고, 다퉜으면 먼저 가서 사과도 하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해주고. 그렇게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옆사람과 인사합시다. “사랑합니다.”
19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바로 우리의 소망이고 기쁨이고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너희가 바로 우리의 소망이고, 기쁨이고, 자랑의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고, 바로 너희가.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바로 우리의 소망인 줄로 믿습니다. 또한 우리의 기쁨이고 우리의 자랑의 면류관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망이며 기쁨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0절도 같은 말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아멘. 우리는 모두가 사랑 받는 존재입니다. 연인, 친구, 부모.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망이고 기쁨이 되는 존재들입니다. 어쩌면 내가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연인도 없고 친구도 없고, 내논 자식이라 부모의 사랑도 못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겐 아무 소망도 없고, 아무 기쁨도 없다고 실망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날 버려도 예수님 한 분만은 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고아 같이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목숨을 버리시면서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변치 않는 소망이고 기쁨이고 우리의 사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땅의 것에 소망 두지 않고, 하늘의 것에 소망 두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를 사랑하고 기쁨을 나눌 때,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먼저 마음에 품고 그 분을 우리의 소망이자 기쁨이자 우리의 사랑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마음이 식지 말고 오히려 더욱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더욱 뜨겁게 사랑합시다.
두 번째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삐져서 말도 안 하고 있지 말고, 우리 마음을 표현해서 오해가 있다면 오해를 풀고, 즐거움을 나눌 일이 있다면 즐거움을 나누면서 서로간에 화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소망이고 기쁨이 되는 존재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나 혼자뿐인 것 같을지라도 누군가는 나를 기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 한 분만은 우리를 기쁨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기억하며 그 분이 우리를 소망이요 기쁨이라 여기시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우리의 소망이시며 기쁨이시라고 고백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이고 소망입니다. 아멘? 우리 믿음 잃지 말고 믿음 굳건하게 지키면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