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낮추는 삶
Notes
Transcript
<중고등부 설교>
요한복음 2:13-17
“나를 낮추는 삶”
2017. 1. 15
조 정 수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를 낮추는 삶”입니다. 나를 낮추는 삶. 여러분, 나를 낮추는 삶이 어떤 삶일까요? 나를 낮추는 것은 단순히 내가 겸손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예요. 나를 낮추는 것은 상대 앞에 무릎 꿇고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있나요?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나요?
예수님은 하나님께 100퍼센트 순종하셨어요. 자신이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어요. 기꺼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셨어요. 예수님은 가장 겸손하신 분이셨고, 가장 자신을 낮추신 분이셨어요. 오늘 본문에 그런 예수님의 자신을 낮추시는 모습이 잘 나와 있어요. 13절을 함께 읽읍시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아멘. 여러분, 예수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어요.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유월절이나 오순절 같은 명절이 되면 다들 예루살렘으로 모여서 그곳에서 예배를 들리고 찬양하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왜 하필 예루살렘으로 모였을까요? 왜 예루살렘에 모였을까?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어요. 항상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대인들은 명절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어요. 우리는 명절에 어디에 가요? 고향에 가잖아요.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러.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명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갔어요.
13절에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어디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시죠? 12절에 보면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십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은 여긴데 과연 가버나움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계시잖아. 가버나움이 어디에 있을까? 여기? 여기? 여러분, 가버나움은 여기에 있습니다. 저기 먼 북쪽. 그리고 예루살렘은 여기 밑에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여기 가버나움에 있다가 유월절이 되니까 예루살렘으로 이렇게 오신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여수에서 서울에 갈 때 뭐라고 해요? “서울에 올라간다” 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반대로 서울에서 여수로 갈 때는 “여수로 내려간다” 라고 하죠. 왜냐하면 서울이 더 위에, 북쪽에 있으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라 올라가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
유대인들은 성전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중심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성전을 갈 때, “성전으로 올라간다”라고 말했어요. 내가 동쪽에 있든 서쪽에 있든 북쪽에 있든 남쪽에 있든, 내가 있는 곳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보다 낮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재 내가 있는 곳이 실제로는 예루살렘보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고 해도 그들은 예루살렘을 갈 때 항상 “올라간다”라고 말했어요. 성전을 높이고 나를 낮춘 겁니다. 나는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생활이 유대인들의 삶에 배여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성전은 지극히 존귀한 곳이었고, 나는 그곳을 향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올라가야 하는 지극히 낮은 자였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서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그 창문을 바라보며 하루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했어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멀고 먼 곳에 있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한 거예요. 왜냐하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고,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다니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거룩하게 여겼어요. 여러분, 우리의 삶이 이러한 삶이 되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항상 성전을 내 삶의 중심으로 삼고 내 삶의 나침반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던 유대인들처럼 우리 또한 교회를 내 삶의 중심으로 삼고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중심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14절부터 16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아멘. 여러분, 지금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아 버립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다 내쫓아요. 예수님이 성전을 뒤엎어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은 이 사건을 우리는 “성전정화사건” 혹은 “성전청결사건”이라고 부릅니다. 뭐라고요? “성전정화사건” 혹은 “성전청결사건” 이 사건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어요.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장사 하는 것을 허락했는데 어디 나사렛 깡촌에서 올라온 인간이 감히 성전을 뒤엎고 장사를 못하게 다 내쫓아 버린 거죠. 당시 대제사장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직업이었어요. 원래는 당연히 안 되지만, 이스라엘이 로마에 지배당하면서부터 로마에 돈을 주면 로마가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해줬어요. 그런데 대제사장이 되려면 정말 큰돈을 줘야 돼요. 그래서 대제사장이 되면 본전을 뽑기 위해 성전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성전은 굉장히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어요. 명절마다 유대인들이 올라와 제사를 드리기 위해 소를 사고 양을 사고 비둘기를 샀어요. 당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이던 유대인들의 숫자는 대략 200만에서 250만 명 정도 됐다고 해요. 그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니 얼마나 큰돈이 모이겠어요? 그 이권을 어떻게 포기해? 많은 유대인들은 성전이 장사하는 시장처럼 변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감히 대제사장에게 반항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대제사장 뒤에는 로마가 있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번 돈을 자기만 먹었겠어요? 여기저기 뇌물 주고 로비하고 그랬거든. 그래서 아무도 함부로 대제사장을 건드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오더니 엎어버린 거죠. 아무도 할 수 없던 걸 예수님이 하신 거예요. 그것도 얌전히 말로 한 것이 아니라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찰싹찰싹 때리면서 소며 양이며 다 내쫓은 거죠. 왜 그랬을까? 예수님이 왜 그렇게 화를 내시면서 과격하게 행동하셨을까? 좋게 말로 해도 될 텐데 왜 채찍까지 만들면서 그렇게 하셨을까?
그것은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성전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성전을 도떼기시장으로 만들어 더럽히고 어지럽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요. 거룩하고 엄숙해야 하는 성전이 가축 울음소리, 사고파는 흥정하는 소리, 소똥 비둘기똥으로 어지럽혀져 있는 것을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어요. 유월절이 돼서 성전에 가서 조용히 예배드리려고 저 먼 가버나움에서 힘들게 힘들게 걸어왔는데 도저히 예배를 드릴 상황이 아니야. 화가 나 안 나? 여러분, 예배드리러 교회 왔는데 예배는 안 드리고 옆에서 게임하고 있고 떠들고 있으면 화가 나 안 나? 나잖아. **야 화나지? 그래. 화가 난다고. 예수님은 얼마나 화가 났겠어. 내 아버지의 집인데, 내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데. 16절에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이곳 성전은 내 아버지의 집, 아버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주인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남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그런데 이제 그 주인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아버지 집을 다시 예전처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온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대제사장보다 높은 큰 대제사장이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큰 대제사장이 왔으니 돈 주고 임명된 가짜 대제사장은 당연히 어떻게 되겠어요? 짜져야지. 진짜 주인이 왔으니 가짜 주인 노릇 하던 사람은 사라져야지.
예수님은 몸소 자신이 성전의 주인임을 보여주신 거예요. 자기 집에서 나대는 것은 누구만 할 수 있어? 자기만 할 수 있어. 집 주인만 할 수 있는 거예요. 예수님도 자신이 성전의 주인이기 때문에 맘대로 난리를 친 거예요. 그런데 본래 예수님은 이렇게 막 자기가 성전의 주인이라는 것을 내세울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조용히 예배만 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까 개판이거든. 안 되겠다. 엎자. 그래서 채찍 휘두르고 뒤짚어 엎고 한 겁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어요. 저 먼 북쪽 가버나움에서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어요. 철저히 나를 낮추고 낮아진 상태로 성전을 향하여, 실제로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거지만 마음으로는 올라간다고 생각하면서 걷고 또 걸었어요. 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교회에 갈 때 그냥 형식적으로 교회 간다고 할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그냥 가고 싶을 때 가고 가기 싫으면 마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곳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나를 위해 예비 된 구원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교회를 우리 삶의 중심으로 삼고 우리 인생의 기준점으로 삼아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