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07 금요기도회: 사사기 8: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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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8:18-28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사기 8:18–28 NKRV
이에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2025년 첫 금요기도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날씨도 많이 따뜻해졌는데요.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게 하시고, 또 이렇게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지난 겨울에도 우리를 보호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금요기도회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먼저 듣고,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사기 8장의 말씀으로 기드온이 이끄는 이스라엘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에 의해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십니다. 6장을 보면 미디안은 이스라엘이 파종할 시기에 그들의 짐승들을 끌고 이스라엘 땅으로 와서 먹이로 주어 이스라엘 땅에 먹을 것이 없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궁핍해졌고 굶주림이라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이 굶주림을 상상하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굶주리게 되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여러 매체와 주변에 여전히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하기로 하시고 기드온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기드온을 통해 300명의 용사를 뽑으신 뒤에 그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스라엘은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을 예배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사기의 루틴, 사사기의 사이클은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을 때 이스라엘이 또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서는 슬프고 안타까운 사실이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자인 기드온이 실패한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것을 깨닫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은 전쟁에서 패배한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를 기드온이 사로잡아 온 상황입니다. 전에는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좌지우지 했겠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시니 이제 상황은 완전히 바뀌어 미디안의 왕들이 오히려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로 끌고 온 세바와 살문나에게 기드온이 묻습니다.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이에 이들이 대답합니다.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미디안이 다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일을 행하였는지 앞에서 말해주진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은 미디안이 다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겁니다. 앞에서 미디안은 이스라엘의 땅을 황폐화시켰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땅을 황폐화했을 뿐만 아니라 무자비하게 주민들을 죽였던 것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았는지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을 무마하고자 했는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죽인 자들이 “왕자의 모습과 같더라”라면서 기드온을 아부합니다. 왜 아부입니까? 자신들이 죽인 자들을 “왕자”라고 칭하면서 은근히 기드온을 왕으로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접적으로 기드온을 높이면서 기드온이 기분 좋으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백성들을 학살한 것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직분자인 기드온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무자비하게 죽였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의 연약함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19절에서 기드온은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문제가 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신명기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의 대적을 징벌하는 거룩한 전쟁이고 모든 대적들을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자신의 가족에 관한 것으로 축소시켜버립니다. 물론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 살해 당하면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기드온이 이들에게 자신의 형제들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 묻는 것도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지금 이스라엘의 사사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자입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을 자신의 개인적인 사사로운 감정으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처벌하고, 가족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지하고 분노하면서 하나님의 대적인 이 미디안 왕들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너희가 그들을 살렸다면, 내가 너희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러면서 기드온은 하지 말아야 할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요. 바로 20절에서 자신의 장자인 여델에게 이들을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 이것은 어린 소년에게 이 왕들이 상해당함으로써 두 왕에게 굴욕을 주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을 하나님이 명령하신 거룩한 전쟁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에 대한 문제로 취급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델은 너무 어려서 아버지의 말대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300 용사를 뽑아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승리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온데간데 없고 그의 사적인 일로 미디안의 왕들을 처벌하고, 조치를 취합니다.
이렇게 여델이 이 두 왕을 죽이지 못하자, 세바와 살문나가 비웃기라도 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21절입니다.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이 말을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기드온 당신이 우리를 죽여라. 남자라면 힘이 있어야 한다.”입니다. 이 말은 이 왕들이 어린 소년에게 죽임 당하는 수치를 면하게 하려는 것과 동시에 여델은 남자도 아니라는 조롱도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이런 아들을 둔 기드온을 조롱합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힘있는 자가 최고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뛰어난 전투 실력을 가진 자가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뛰어난 전투 실력을 가진 자를 왕으로 섬기던 사회가 고대 사회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이랬다면 현대 사회에서도 힘의 논리는 동일하게 작용됩니다. 돈을 많이 가진 자, 높은 위치에 앉은 자를 우리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힘 지상주의가 잘못되었습니다. 재산의 크기나 직위의 높낮이로 사람을 평가하고, 힘이 없으면 깔보려는 경향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만연합니다. 이러한 힘의 논리가 죄인인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미디안의 두 왕이 기드온을 조롱하자, 기드온은 화가 났는지 즉시 세바와 살문나를 죽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전리품으로 취합니다.
이제 미디안 정복이 완전히 종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평화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고,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사기의 사이클대로 그렇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직분자인 기드온조차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22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현실과 그들이 이 전쟁을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22절에서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세우시고 승리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전략을 잘 짜고, 전쟁 기술이 좋아서, 그리고 미디안보다 수적으로 우세하거나 비등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리시기 위 300명이라는 아주 적은 숫자를 뽑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조차 하지 못합니다. 보십시오. 기드온이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요. 최소한 적어도 여호와께서 당신을 통해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다고는 할 순 있진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도 않은 채 기드온이 구원했다고 하면서 왕으로 옹립하려고 합니다.
여기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논리, 바로 힘의 논리로 왕을 세우려고 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진작부터 기드온을 왕으로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왕으로 세우려고 하니 말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울은 키도 크고 싸움에서 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른 나라들의 왕들과 대등하거나 능가하는 왕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사울을 왕으로 원했지 않습니까? 지금이나 그때나 이스라엘은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사기에 짙게 깔려있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사기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 정말 육체적인 왕이 없어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것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치리,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출애굽할 때부터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들을 구원하시고, 이들에게 율법을 수여하셨고, 그리고 마침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군사력을 강화하고, 전투에서 능한 왕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드온과 그의 자손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백성들에게 이 말을 들은 기드온은 솔깃했을 수도 있습니다. 왕이 되는 것이 이 때에는 아주 대단한 일이며 추앙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기드온은 자신에게 제시된 왕권을 거절하면서 23절에서 “나와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실 것”이라며 아주 신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기드온의 이러한 반응은 아주 적절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긍정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셔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만듭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쟁취한 승리는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끄신 이스라엘 군대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기드온의 이 신앙고백, 너무나 적절합니다. 일단 이 기드온의 말만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드온이 다시 24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가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기드온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그에게 물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디안의 전리품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신명기 20:14 에 따르면 전쟁의 전리품을 취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기드온에게 감사를 나타내길 원했다면 그에게 기꺼이 주었을 겁니다. 기드온은 사람마다 귀걸이 하나를 가져올 것을 요구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들은 코걸이를 하고 다녔습니다. 24절 끝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스마엘 남자들, 이스마엘 자손들은 귀걸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자신의 금 귀걸이를 빼어 금 송아지를 만든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회개할 때에 귀걸이와 같은 장신구를 금했고, 귀걸이와 같은 전리품은 별로 쓸모가 없어서 다른 것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어찌됐든 기드온은 백성들에게 전리품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25절에서 기꺼이 기드온에게 줍니다. 그리고 26절에서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를 달아보니 1700세겔이라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이 무게를 킬로그램으로 환산해보니 19.5kg입니다. 그리고 요즘 금 시세로 19.5kg을 환산하면 27억 261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양의 금 귀고리 뿐만 아니라 각종 장식품들과 왕들이 입었던 자색 옷, 그리고 낙타 목에 있던 사슬을 받게 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색깔이 있는 옷을 손쉽게 입지만, 이때에 색이 있는 옷은 아주 고가의 옷이었고, 특히 자색은 왕들만 입을 수 있는 아주 귀한 옷이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색동옷을 입혀주었다는 것이 야곱이 요셉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전리품들을 기드온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기드온이 전리품을 받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기드온이 전리품들을 받아서 취한 행동이 문제입니다. 바로 2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바로 기드온이 전리품으로 받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에봇은 제사장의 흉패입니다. 제사장의 흉패인 에봇을 만든 것이 잘못이 아니라 에봇을 왜곡시켜 우상숭배하게 만든 것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봇이 가리키는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에봇 자체를 숭배하였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였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금을 받아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바로 이것이 직분자인 기드온의 연약함이며 기드온의 잘못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을 미디안으로부터 구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미디안의 왕들을 처리하였고, 이스라엘을 우상숭배하게 만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가 말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것이라고는 하였지만, 그가 보여준 행동은 신앙과 불일치하였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말로만 하고, 지성적으로 동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삶과 신앙이 다르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면 이스라엘이 에봇을 우상숭배할 때 이것이 죄라고 지적하며 꾸짖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있는 40년동안에는 이스라엘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기드온은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의 훌륭한 사사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드온은 잘못을 저질렀고 이스라엘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과 기드온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에도 약속에 신실하셔서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지키심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도 잠시 기드온이 죽자 바로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오늘 본문 뒤에서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기드온도 아니고 다른 어떤 이방 국가의 왕도 아닙니다.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행복을 주실 수 있는 진정한 왕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때에만 이스라엘에게는 평화가 임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매번 부르짖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만, 시간이 지나 그 은혜는 망각하고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합니다.
이러한 사사기 사이클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딴 길로 세면 큰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이 사사기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고, 기도를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날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앞에 깨어져서 단 한시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는 길로 가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며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셔야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에봇을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은 것이 당시에는 사소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소한 생각이 이스라엘을 결국 우상숭배하게 만드는 범죄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깨어져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 시간 함께 오늘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사기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셔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말씀을 떠나지 않고,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끌어줄 직분자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유일한 우리의 왕이 되어주시길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단 한시라도 떠나지 않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바른 직분자가 있고, 우리가 말씀에 따라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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