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부르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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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중고등부 설교>
디모데전서 6:11-12
“우리를 부르신 이유”
2017. 11. 26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네가 목회자로서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가르쳐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제자였어요. 바울이 가장 사랑한 제자이면서, 바울이 가장 아꼈던 친구였어요. 디모데는 바울이 개척한 에베소 교회에 후임 목사로 가서 에베소 교회를 이끌고 있었는데, 디모데는 나이가 많이 어려서 교회를 이끌기가 상당히 힘들었어요. 전임자였던 바울과 비교도 되고, 나이가 어리다 보니까 성도들이 말도 잘 안 듣고. 그렇게 힘들게 목회를 하고 있는데, 그 소문을 들은 바울이 디모데를 격려하고, 또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편지를 보냈어요. 그 편지가 바로 디모데전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은 디모데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고 나서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6장 11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아멘. 지금 11절을 보면, “이것들”을 피하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것들을 피해라. 이것들이 뭐냐면, 앞에 3절부터 5절 내용이에요. 요약해서 말하자면, 교만과 변론과 언쟁과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과 마음의 부패와 진리를 잃어버린 것과 다툼. 바로 이것들을 피하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많죠? 그런데 이 많은 것들이 다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생겨나요. 교만, 언쟁, 비방, 악한 생각들이 다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생겨난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바로 3절에 나와 있어요. 11장 3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러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않으면 교만과 분쟁과 이런 여러 가지 나쁜 것들이 생겨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어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을 잘 따라야겠죠. 예수님의 말씀을 안 따르니까 이런 것들이 생기잖아. 그러면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따르면 이것들이 안 생기겠지. 그러면 이것들을 피할 필요도 없어요. 애초에 안 생기니까. 다시 말해서, 이것들을 피하라는 말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 예수님의 말씀을 안 따르는 것을 피하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또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따르라는 거죠. 예수님의 말씀과 교훈을 잘 따라라.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잘 따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많은 가르침들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잘 지켜 행한다면 우리는 많은 나쁜 생각과 행동들을 자동적으로 피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11절을 다시 보면,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고 했어요. 먼저 우리는 의를 따라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9절에,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아멘.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거예요. 내가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해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의를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거죠.
두 번째로 우리는 경건을 따라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아멘. 야고보는 경건이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나 자신을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여러분, 경건은 어려운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기꺼이 도울 줄 아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경건이에요. 그냥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웃, 형제,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도우며 사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 이웃을 돌볼 줄 아는 경건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내 삶의 주인이시고 내 영혼의 구원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풍성한 사랑을 이웃에 베풀며, 고난 속에 참고 견디는 인내로 나를 연단하고, 범사에 온유함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그 삶이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12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아멘.
이 12절은 디모데전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 바로 이 12절에 담겨 있는데, 먼저 앞부분을 보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많이 들어본 말이죠? 선한 싸움을 싸우라. 그런데 이 싸움이 누구와 벌이는 싸움일까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고 있어요. 젊은 목사인 디모데에게 과연 누구와 싸우라고 하고 있는 걸까요? 이교도? 이 더러운 이교도, 죽어라. 이런 싸움이 당연히 아니죠.
이 싸움의 상대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피해야 하는 것들에게 가까워지려는 나 자신과 싸우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에서 멀어지려는 나 자신과 또한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내가 어떤 이익을 얻거나 뭔가를 쟁취하기 위해서 싸우는 경쟁이 아니에요. 내가 주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숭고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를 바랍니다. 내가 복음에서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그런 나를 물리치고, 내 안에서 짜증이나 혈기가 올라올 때마다 꺾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싸움은 쉬운 상대와 싸울 때 쓰는 말이 아니에요. 나와 막상막하인 상대와 겨룰 때 싸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선한 싸움을 해야 하는 상대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이길 때도 있지만 때로는 힘에 겨워 쓰러지고 좌절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후에 반드시 우리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침내 승리한다는 그 진리를 믿는다면, 우리는 그 믿음대로 승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나를 끊임 없이 주님의 뜻 안에 가두는 거룩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12절을 또 보면, 영생을 취하라고 말합니다. 영생을 취하라. 이 구절을 직역하면 “그 영원한 생명을 잡아라.” 라는 말이 돼요. 그 영원한 생명을 잡아라. 영원한 생명을 잡으래요. 그런데 뭐가 있어야 잡지. 영원한 생명이 어디 있어야 잡지 않겠어요? 없는데 어떻게 잡아. 그런데도 바울은 잡으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 말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온다는 말이 되겠죠. 오니까 잡으라고 하는 거죠. 안 오면 잡으라고 하겠어?
분명히 언젠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잡을 기회가 와요. 그리고 그 기회가 왔을 때 그 영원한 생명을 잡는다면 우리는 영생을 살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잡지 못하고 놓쳐 버린다면, 우리는 그대로 영생을 놓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해서 영생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잡을 때 비로소 영생을 살게 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잡아야 돼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잡아야 될까? 디모데후서 4장 7절, 8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아멘.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우리가 달려갈 길을 마치고 우리의 믿음을 지킬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거예요. 이미 예비되어 있는 의의 면류관, 이것이 바로 영생이죠. 의의 면류관이라고 하는 영생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나면.
피해야 할 것을 다 피하고 내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잘 따르면,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그날에 마침내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거예요. 마지막까지 잘 지키고 따른 사람은 그 영생을 잡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잡지 못하고 놓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까지 잘 따르고 지켜서 반드시 영생을 잡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뒷부분만 봅니다.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아멘.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네가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 네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 네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 네가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까지 이르도록 너를 인도하신 그 모든 인도하심에 대해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네가 부르심을 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 이유가 뭐죠? 방금까지 우리가 나눈 그 모든 말씀들이에요. 네가 죄악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면 그 이후에 마침내 너에게 영생을 갖게 하기 위해서 너를 주님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디모데를 부르신 이유는 궁극적으로 디모데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어요.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예요. 우리를 부르신 이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 그 모든 이유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일어난 거예요. 따라서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그 은혜 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그 싸움이 끝나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난 후에 주님께서 주시는 그 영원한 생명을 붙잡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