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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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중고등부>
사도행전 1:8
“증인이 되는 것”
2018. 4. 29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명령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너희가 이렇게 이렇게 해라. 라고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리셨는데, 이 명령을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어요.
(ppt)“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으로 인해서 제자들은 복음을 예루살렘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어요. 구원을 유대인들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 우리도 다 구원을 받게 된 거예요. 만약에 예수님이 이 말씀을 안 하고 그냥 하늘로 올라가셨다면 아직까지 복음이 이스라엘 안에서만 전해졌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아마도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이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 복음을 우리도 들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자,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을 거라고 하셨어요. 여기서 성령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선물이죠. (ppt)누가복음 24장 4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 이게 뭐죠? 성령. 성령을 너희에게 보낼 거니까 너희가 기다리라는 거예요. 어디에서? 이 성에서. 이 성은 당연히 예루살렘 성이죠.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에서 성령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예요. 너희가 기다리고 있으면 성령이 임하실 것인데, 이때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는 거죠. 권능은 무엇이냐면, (ppt)마태복음 10장 1절에 권능에 대해 나와 있어요.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 바로 이것이 권능이에요. 이 권능을 전에 제자들에게 주셨었는데, 다시 또 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두 번째 주시는 권능은 전에 주셨던 권능과 비슷한데 다른 게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면 바로 방언이에요. 전에 주신 권능에는 방언이 없었어요.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성령이 임하셨을 때 받은 권능에는 방언이 있었어요. (ppt)그래서 사도행전 2장 4절을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이 임하셔서 성령이 충만하게 되니까 갑자기 다른 언어로 말을 하기 시작해요.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말로 막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말을 들은 다른 지방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거예요. 저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인데 어떻게 우리말을 하지? 이렇게 놀라는 거죠.
여러분, 그런데 왜 갑자기 제자들이 이렇게 방언을 하게 됐을까요? 왜 방언을 하도록 성령이 인도하셨을까? 그 답이 바로 오늘 본문에 있어요. (ppt)그 답이 뭐냐면, 바로 이거예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제자들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명령을 받았죠. 가본 적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제일 먼저 뭐가 필요하겠어요? 당연히 말이 통해야겠죠. 말이 통해야 복음을 전하지.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서 다른 언어로 말을 할 수 있도록 방언의 능력을 주셨어요.
그래서 이제 제자들은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된 거예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런데 여기서 증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예수님은 하필이면 증인이 되라고 하셨어요. 왜 증인이 되라고 하셨을까? 그냥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거나 아니면 복음을 가르치라고 하셔도 되는데, 왜 증인이 되라고 하셨을까?
(ppt)자, 먼저 증인이 뭔지를 알아봅시다. 증인은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을 가지고 법원에서 진술을 하는 사람이에요. 이 진술을 통해서 판결이 어떻게 날지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돼요. 그렇게 때문에 증인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죠. 그러면 예수님 시대에 증인은 과연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한번 알아봅시다.
(ppt)자, 먼저 이 그림을 봐봐요. 지금 이 그림이 무슨 내용이냐면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는 장면이에요. 58절에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8절을 보면 증인들이 옷을 벗어서 사울 발 앞에 뒀다고 나와요. 그림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면 몸이 드러나 있죠. 겉옷을 벗어서 몸이 반쯤 드러나 있어요. 그리고 저 뒤에 보면 한 사람이 서있는데, (ppt)이 사람이 바로 사울이에요. 그리고(ppt) 사울 발밑에 옷이 떨어져 있죠. 증인들이 벗어놓은 옷들이에요.
증인들이 왜 옷을 벗었을까? 그리고 옷을 왜 사울 발밑에 놔뒀을까? 이것은 예수님 시대의 증인제도가 그랬어요. 누군가가 죄를 지으면 그 사람을 고발을 해요. 그런데 고발을 한 사람은 자기가 고발을 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돼요. 그래서 이 사람은 자기 스스로 증인이 돼야 돼요.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을 내가 보증한다. 이렇게 자기가 증인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증거가 있으면 괜찮지만 증거가 없다면 그걸 어떻게 보증하겠어? 그래서 증인은 자기 옷을 벗어서 이 사건을 맡은 권력자의 발 아래 맡겨두게 돼요.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게 되는데, 만약에 이 사람이 돌에 맞아서 죽으면 이 사람은 진짜 죄를 지은 게 증명이 되는 거예요. 반대로 이 사람이 안 죽으면 이 사람은 죄가 없는 거예요. 끔찍하죠? 이 사람이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어쨌든 돌에 맞아야 돼. 그래서 돌에 맞고 죽으면 진짜 죄가 있다는 거고, 안 죽으면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돌에 맞은 거야. 만약에 증인이 돌로 쳤는데 이 사람이 안 죽으면, 증인이 거짓말을 한 게 되죠? 죄가 없는 사람을 일부러 고발한 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때는 반대로 증인을 돌로 쳐서 죽여요. 죄 없는 사람을 고발했으니까 대신 증인을 죽이는 거예요. 이때 옷을 벗어서 맡긴 사람을 다 죽이는 거예요.
그래서 옷을 벗어서 맡기는 것은 내가 목숨을 걸겠다는 것을 의미해요. 내가 고발한 사람이 죄가 없다면 내가 죽겠다는 거예요. 정말 원시적이죠. 그런데 당시에는 과학수사대도 없고 CSI도 없어서 과학적으로 사건을 조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함부로 증인이 되려고 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잘못하면 내가 죽으니까. 그래서 진짜로 저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내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은 고발을 하지 않았어요. 진짜로 내가 보고 듣고 경험을 했을 때만 증인이 됐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볼 때 이제 여러분 느껴지는 게 좀 다르죠? 전에 이 말씀을 볼 때와 지금 볼 때 무게감이 좀 다르지 않아요? 증인은 목숨을 걸어야 돼요. 증인들이 목숨을 걸고 스데반을 고발하였지만, 반대로 스데반 역시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증인이 됐어요. 내가 정말로 예수님을 봤다. 예수님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신 구원자다. 내가 보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고, 그 분의 능력을 체험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서 복음을 전했어요.
(ppt)증인은 헬라어로 “마르투스”라고 해요. 그런데 마르투스는 나중에 어떤 의미로도 쓰였냐면, “순교자”라는 의미로도 쓰였어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다 죽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마르투스”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증인이 되라는 말은 순교자가 되라는 말로도 볼 수 있는 거예요. 진짜로 순교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이에요. 복음을 전하는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목숨처럼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을 바쳐 전해준 복음을 절대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돼요. 우리가 받은 이 복음을 우리도 우리의 목숨처럼 여기고 항상 그 무게를 생각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그 깊은 사랑과 한량없는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