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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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설교>
신명기 34:1-7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2018. 6. 3
조 정 수
    어렸을 때,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땐가 수련회를 갔습니다.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는데 거기서 애들끼리 텐트를 치고 밥도 애들끼리 해먹었어요. 텐트랑 밥솥이랑 냄비랑 쌀이랑 다 우리가 갖고 와서 애들끼리 다 알아서 했어요. 낮에는 계곡에서 수영도 하고 밤에는 캠프파이어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었냐면, 유서를 쓰는 것이었어요. 유서. 만약 내가 죽는다면 무슨 말을 남길까. 내 가족과 내 친척과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될까. 내가 조금 있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편지지에 유서를 썼는데, 그때 뭐라고 썼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이 한 마디는 기억나요. 무슨 말이었냐면, “억울하다.” 이 말이 기억나요. 억울하다. 내가 아직 10살 밖에 안 됐는데 왜 죽냐. 이런 생각으로 썼던 거 같애요. 만화도 봐야 되고 우체국에 저금한 돈도 써야 되고, 여행도 가야 되고, 할 게 많은데 왜 지금 억울하게 죽을까. 이런 억울함이 있었던 거 같아요. 
    여러분이라면 유서에 무슨 말을 남기겠어요? 부모님께 행복하시라고 말씀도 드리고 효도 못해서 미안하다고도 하고, 또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남기고. 보통 유서는 이런 식으로 쓰죠.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들, 감사하고 싶은 말, 사과하고 싶은 말, 꼭 하고 싶었던 그런 말들. 사람은 누구나 죽기 전에는 그런 말을 남기려고 합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오늘 본문은 모세가 죽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모세가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갑니다. 꼭대기에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넓은 땅을 보여주십니다. 길르앗과 단과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유다와 여리고와 소알까지, 여호와께서 내가 주겠다고 약속하신 그 모든 땅을 모세가 다 살펴보도록 하셨어요. 
  그리고 4절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냐면,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너무나 억울한 말이죠. 약속하신 땅을 보여주시고는 그 땅에 너는 건너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럴 거면 보여주지나 말지. 산꼭대기까지 힘들게 올라왔더니 눈으로 보기만 하라네. 저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저 아름다운 세상을 바로 코앞에 두고 단지 눈으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모세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까요.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저곳에, 이제 요단강만 건너가면 되는데, 무려 40년이나 되는 세월을 넘어 광야를 지나 여기까지 왔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벗어나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뚫고 여기 왔는데. 잔인하게도 하나님은 나를 여기에서 멈추라고 말씀하시네.
    여러분, 모세는 80살이 되었을 때 처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이 이루어지죠. 호렙산에 양 떼를 데리고 갔다가 떨기나무에 붙은 불꽃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았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신 명령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너고 40년간 정처 없이 떠돌았습니다. 80살에 출발하여 40년이 흐르고, 이제 모세의 나이는 120살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볼까요?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멘. 모세는 40년의 광야생활이 끝났을 때 죽었습니다. 120세라는 나이에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죽었습니다. 7절에서 본 것처럼, 비록 나이는 120이라는 많은 나이였지만,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노년이었지만 여전히 그는 젊은이와 같은 눈과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는 열정이 있었고 꿈이 있었고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멀리 볼 수 있어서 요단강 건너 길르앗 온 땅과 유다 온 땅과 여리고 골짜기와 소알까지 모두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푸른 초장과 잔잔하게 흐르는 시냇물, 평화롭게 풀을 뜯는 동물들, 그 모든 것이 모세의 눈에 보였습니다. 아직 더 갈 수 있는데, 아직 더 할 수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만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그곳에 건너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는 모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구하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저 땅을 차지할 백성들을 부러워했을까요?
    여러분, 민수기 27장을 보면 모세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27장 16절, 17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귀로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여기 민수기 2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산에 올라 약속의 땅을 본 후에는 네가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모세는 제가 방금 읽은 그 간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한 사람을 세워서, 그들을 인도하게 하셔서, 여호와의 백성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는 자신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 앞에서 모세는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거나 못다 이룬 꿈에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이제 곧 인도자를 잃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걱정했습니다. 지금까지 40년간 모세라고 하는 인도자를 따라온 저 백성들이 이제 모세가 사라지고 나면 그떼는 어떻게 할까. 혹시나 목자 없는 양떼처럼 갈 바를 몰라 헤매고 다니지 않을까? 이런 걱정하는 마음만이 모세의 마음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 간구를 들으시고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그를 데려다 안수하고 너의 존귀를 그에게 돌려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목자 잃은 양이 아니라 여전히 믿을 수 있는 목자의 인도를 따라 약속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제사와 절기를 지키도록 가르치고, 미디안과 전쟁하여 승리하고, 전리품을 분배하고,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복했을 때 그 땅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까지도 다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는 신명기 32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어떻게 여기까지 인도하셨고 어떤 광대한 능력을 가지셨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우리를 돌보실 것인지를 노래합니다. 그리고 노래를 마쳤을 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 땅을 볼 것이나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참으로 냉정하시죠. 방금 하나님을 노래한 모세에게 정말 냉정하게도 너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들어가지 못하리라. 네가 여기서 죽으리라. 
    다시 한 번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하는 그 말씀 앞에서 모세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 냉정하고 매정한 말씀 앞에서, 신명기 33장에 곧바로 이어지는 모세의 다음 행동은, 놀랍게도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40년간 함께 울고 웃었던 이스라엘. 때로는 말도 안 듣고 사고도 치고 속도 많이 썩였던 이스라엘. 그래도 끝까지 함께 따라와 준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을 각 지파마다 축복하고 축복했습니다. 
    마치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그리고 제자들에게서 복음을 전해 듣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이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던 것처럼. 모세도 비스가 산에 올라가기 전에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축복을 마치고 신명기 34장에서 모세는 비스가 산에 올라가 요단강 건너 온 땅을 눈으로 본 뒤에 죽었습니다. 비록 그 땅에 가지는 못했지만 모세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가장 먼저 그 땅을 보았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드넓은 땅을 바라보며 그 땅의 모든 모습을 눈에 담았습니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과 그 밑에 드리워진 구름 그림자와 평원과 언덕과 강줄기와 나무들과 수많은 생명들. 그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짧은 순간이나마 그 땅을 정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을 겁니다. 길르앗에서부터 유다와 네겝과 소알까지. 그 땅에서 곡식을 수확하고 양떼를 기르고 날마다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며 찬양하는 모세라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을 겁니다. 그리고 그곳엔 자기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도 함께 있었을 겁니다. 
    그 짧은 행복한 상상을 끝냈을 때 모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숨을 거두었을 겁니다. 아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었겠죠. 왜냐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산에 올라오기 전에 다 했으니까. 모든 것을 다 가르쳤고, 모든 지파를 축복했습니다. 죽음을 맞이할 모든 준비가 끝난 거죠.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 위에 올라 겸허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죽어서까지도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고 위대한 인도자였던 모세의 무덤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두가 다 무덤이 어딘지 알았어요. 그런데 백성들을 430년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낸 모세는 어째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쓸쓸하게 묻혀야 했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무덤을 우상화 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모세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모세의 무덤 앞에서 절을 할까봐 염려했던 것이죠. 에이 설마 그러겠어? 하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에이, 설마 모세의 무덤을 숭배하겠어? 설마 그럽니다. 틀림 없죠. 설마가 사람 잡아요. 과거에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그 잠깐을 못 참고 금송아지 만들어뿐 거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은 믿을 수 없어요. 사사기 봐보세요. 바보들의 행진입니다. 하나님 배신했다가 이방민족한테 정복당하고 회개했다가 다시 배신하고 정복당하고 회개하고 또 배신하고 정복당하고 회개하고.. 이걸 반복합니다. 학습능력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예 우상숭배 할 만한 가능성을 없애버려야 돼요. 과거에 모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숭배했던 것처럼, 여호수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절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래서 모세의 무덤을 아무도 모르게 했어요. 오늘까지도 모세의 무덤이 어딘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곳에 묻혀서 최후까지도 초라했던 선지자.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하지만 비록 그가 초라한 최후를 맞이했다 할지라도, 그의 이름은 결코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밑을 보면 10절부터 마지막 12절에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아멘.
    모세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했죠?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 모세 이후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일어났지만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클라스가 다르죠.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던 사람이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율법을 전달받은 사람이었고, 또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었어요. 이스라엘의 가장 큰 선지자. 그게 바로 모세, 입니다.
    자,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을 만나서 40년간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했습니다. 120세가 되어 이제 마지막 관문인 요단강만을 앞두고 있던 그때에 모세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40년간 그토록 가고자 했던 그곳, 가나안 땅을 눈으로만 보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모세는 과거 한 순간의 실수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어 원망하자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반석에서 물을 샘솟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모세는 이 물이 하나님이 낸 것이 아니라 내가 낸 것이라 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고, 전쟁에 승리하게 위해 노력했고, 흐트러짐 없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아무런 상도 받을 수 없는 경주를 했습니다. 그 경주의 끝에는 영광의 면류관이 아니라 이름 없는 무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해야 될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홀리 학생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함 없이 순종과 겸손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이 말씀을 여러분 마음에 새기고, 이 말씀이 결코 여러분에게 던져지지 않도록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잘 지키기를 바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가장 큰 이 계명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분명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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