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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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설교>
창세기 22:1-13
“어린 양”
2018. 3. 25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고,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해 떠난 사건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왜 아브라함에게 그런 일을 시키셨죠? 1절을 보면, 그 이유가 뭐였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거예요. 무엇을?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무슨 명령을 내렸어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네가 사랑하는 너의 아들, 너의 독자를 번제로 드리라는 거예요. 
  레위기에 보면 번제를 어떻게 드리는 지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어요. 번제. 레위기 1장 6절을 보면 제물을 죽이고 그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라고 나와 있어요. 여기서 각을 뜬다는 말은 조각으로 자른다는 말이에요. 한마디로 토막을 낸다는 거죠. 그리고 9절에는 물에 씻어서 그것을 다 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된다고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번제는 제물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토막을 내서 물에 씻어서 제단 위에 올려서 불태우는 것. 이게 번제예요.
  너무 잔인하죠. 동물을 이렇게 끔찍하게 죽여서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동물로 번제를 드리는 것도 이렇게 끔찍한데, 사람으로 해야 한다면 얼마나 더 끔찍하겠어요. 그런데 그 끔찍한 일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시킨 거예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100살이 돼서야 마침내 아들을 얻었는데,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아들인데, 그 아들을 내 손으로 죽여야 된다는 거예요. 죽이고 피부 가죽을 벗기고 토막토막을 내서 시체를 물에 씻고 제단 위에 올려서 불태우라는 거예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슬픔과 충격과 고통을 이겨내고 정말로 아들을 그렇게 번제로 드리기 위해 아침 일찍 떠났어요. 3절을 보면 아침 일찍 나귀와 두 종과 이삭과 함께 떠났어요.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 거예요. 아브라함, 이삭, 두 종, 나귀. 이렇게 네 사람과 나귀 한 마리가 길을 떠났어요.
  그런데 가야할 곳이 상당히 멀었어요. 4절에 보면 제삼일, 그러니까 길을 떠난지 삼일째 되는 날에 목적지인 모리아 산이 보였어요. 삼일 동안 길을 걷고 노숙을 해서 겨우 산 가까이에 도착을 한 거죠. 그런데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해요.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겠다고 말을 해요. 이상하죠. 이미 이삭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고 있으면서 이삭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을 하고 있어요. 왜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내가 이삭과 함께 돌아올 것이다, 라고 말을 했을까? 혹시 이삭을 진짜로 죽일 생각이 없어서? 아니면 하나님이 진짜 이삭을 죽게 하시겠냐? 라고 생각해서? 
  여러분, 왜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그렇게 말했을까요? 왜?
  우리 생각만으로는 그 답을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히브리서를 보면 그 답을 말해주고 있어요. 히브리서 11장 18절,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브리서 18절, 19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뭐라고 생각했다고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실 거야. 이런 믿음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셨거든요. 내가 아브라함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할 것인데, 그 자손이 누구로 말미암을 것이라 하셨냐면, 18절에,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고 하셨어요. 아브라함 너의 자손이 이삭을 통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이 약속이 지켜지려면 이삭이 어떻게 해야 돼요? 안 죽고 무럭무럭 자라서 결혼하고 자식을 많이 낳아야겠지. 그래야 약속이 이뤄지지.
  근데 지금 이삭이 죽어버리면 어떻게 해. 하나님의 약속이 안 지켜지게 되잖아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되고, 지켜지게 돼 있어요.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이 반드시 지켜진다는 사실을 믿었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데도 망설이지 않고 아침 일찍 짐을 챙겨서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오늘 보는 이 사건은 언뜻 보면 아브라함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브라함이 주인공이 아니에요. 누가 주인공이냐면, 바로 이삭이 진짜 주인공이에요. 
  우리는 흔히 아들을 번제로 드려야만 하는 아브라함의 가슴 아픈 스토리에 집중하는데, 그보다도 우리는 이삭에게 집중을 해야 돼요.
  아무것도 모르도 천진난만하게 아침 일찍 아빠랑 함께 예배를 드리러 길을 떠나는 것이 이삭에게는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길을 가다가 배고프면 길가에 앉아서 도시락도 먹고, 밤이 되면 야영도 하고. 하늘의 별을 세다가 잠들고,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고.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이삭은 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삼일째 되는 날에 아빠가 종들에게 여기 남아 있으라고 하더니 둘이서만 산에 올라가자고 그래요. 번제를 드릴 때 불을 피울 나무를 이삭이 지게 하고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둘이서 모리아 산을 향해 가는 거예요. 이런 모습일 거예요.
  근데 둘이서 가다 보니까 이삭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7절을 보면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물어봐요.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상하잖아요.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왜 정작 번제를 드릴 제물은 없는 걸까?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대답하죠.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다 준비하실 거니까 우리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삭은 아무런 의심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모리아 산을 올라갔어요. 이렇게 아브라함은 손에 불을 들고 아마 칼도 차고 있었을 거예요. 이삭은 등에 나무를 지고 있죠. 
  이렇게 모리아 산을 올라가서 정상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브라함이 정상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알려주신 곳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이삭이 지고 온 나무를 벌여 놓고, 이삭을 줄로 묶어서 제단 나무 위에 올려놨어요. 
  너무나 충격적이죠. 어떻게 이럴 수가. 이때 이삭이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살에 얻은 아들이었어요. 그래서 애지중지하며 귀하게 여김을 받으며 자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아무런 걱정근심 없이 해맑게 자랐어요. 아버지는 항상 이삭에게 “하나님이 너를 통하여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실 거야.” 라고 이삭에게 꿈을 심어줬을 거예요. 그랬던 아버진데, 갑자기 나를 묶고 제단 위에 올리는 거예요. 이게 뭐지? 이게 뭐지? 처음엔 상황파악이 안 되다가 깨닫게 되는 거죠. 아,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내가 바로 번제물이구나.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찾아온 충격과 슬픔과 좌절과 허망함이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을까. 그렇게나 나를 사랑하던 아빠가 칼을 들고 나를 죽이려고 하는 모습이 얼마나 두렵고 서운했을까.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삭이 거기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다는 기록이 없어요. 울었다거나, 소리 질렀다거나, 살려달라고 빌었다거나, 몸부림 쳤다거나. 
  만약에 나였다면 안 죽을라고 막 소리를 지르면서 난동을 피웠을 텐데, 이삭은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순순히 자기에게 주어진 죽음을 받아들였어요. 내가 죽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구나.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는 거구나. 그렇게, 그저 받아들였어요. 
  여러분, 우리가 아까 봤던 이 그림, 이걸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뭔가 비슷한 장면이 생각나지 않아요? 나무를 지고 있는 이삭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요?
  번제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을 올라가는 이삭의 모습, 마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죠. 예수님과 이삭은 많은 부분이 닮았어요.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르는 모습도 그렇고, 제물로 바쳐진 모습도 닮았죠. 원래 제사는 내가 지은 죄를 제물에게 옮겨서 그 제물을 죽여 태움으로써 죄를 사함 받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제물을 대신해서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어요. 마치 어린 양이 죄를 짊어지고 죽듯이,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거예요.
  이삭도 제물로 바쳐졌고, 예수님도 제물로 바쳐졌죠. 상당히 닮은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닮은 점은 따로 있어요. 그게 뭐냐면, 나에게 주어진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점이에요.
  예수님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게 될 것인지를 알고 계셨어요. 내가 언제 제자에게 배신당해서 잡혀가 고난을 받고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정확히 아셨어요. 하지만 그 죽음을 피하지 않았어요. 두렵고 슬펐지만 그 죽음을 받아들였어요.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죠.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이 두려웠어요. 그래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서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곧 이어서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고 기도했어요. 
  내가 죽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거룩한 결단이었어요.
  이삭의 모습도 예수님의 모습과 똑같아요. 뜬금없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아버지가 너무나 무섭고 두렵고 서운했겠지만 나를 칼로 찌르려는 아버지의 눈에서 이삭은 슬픔을 보았을 거예요. 분명히 이삭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지만, 아무리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자기 아들을 칼로 찔러서 죽이는 게 쉬운 일이겠어요? 넘어져서 무릎에 피만 나도 안타깝고 걱정되는 아들인데,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프고 마음이 찢어지는 일이겠어요. 그 고통과 슬픔이 눈에 가득 담겨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슬픔을 이삭은 보았을 거예요. 
  나를 죽여야만 하는, 죽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을 거예요. 그래서 아마도 이삭은 속으로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아버지,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세요. 나를 죽이시려거든, 나를 죽이세요.” 
  이삭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어요. 아브라함도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하였어요. 칼로 이삭을 죽이기 위한 준비를 마쳤어요. 이제 내려치기만 하면 되는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숫양을 데려다가 이삭 대신 번제로 드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이미 그 두 사람의 마음에 이삭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왜냐하면 아브라함도 이삭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이삭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죽이지만 않았다 뿐이지, 아브라함은 정말로 이삭을 죽이려고 했어요. 이삭도 정말로 죽음을 각오했어요.
  그래서 실제로는 죽지 않았지만 이미 죽은 거나 같아요.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9절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다시 말해서 이삭을 죽음에서 다시 살린 것과 같다고 말을 하고 있는 거죠.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대로 나를 죽이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이삭도 아버지 뜻대로 하도록 가만히 순종하였어요. 예수님은 죽은 뒤에 부활하셨고, 이삭도 실제로 죽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인 뒤에 다시 눈을 뜨고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제사를 드렸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이삭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나의 원하는 대로 살지 않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대로 사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내가 나쁜 일을 하고 싶을 때, 나는 그 일을 하고 싶지만, 하나님이 과연 그 일을 원하실까를 생각해보고,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것을 그만두고, 하나님께서 정말로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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