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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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보다 더럽다

예전에 한동안 뉴스를 보면 칫솔, 핸드백, 스마트폰 등등 우리 주변에서 쓰는 물건들을 조사해보니까, 변기보다 더럽다는 내용으로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아니 정말 뭐만하면 변기보다 더럽다고 하고 뭐만하면 변기보다 세균이 많이 검출됐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희 눈에 보기에는 변기가 확실히 가장 더러울 것 같은데 무슨 기준으로 변기보다 더럽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사람의 눈은 보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아무리 작은 것을 보려고 해도 한계가 있는데, 그래서 인간은 현미경을 개발해서 저희 눈이 볼 수 있는 것 보다도 더 작은 것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손을 들여다보고 저희가 만지는 물건들을 들여다 보니까 이 세상이 보는 것 보다도 훨씬 더러운 곳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손만 해도 평균적으로 150여 종의 세균이 6만마리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저희 몸에 이로운 세균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외부에서 침입한 안 좋은 세균들이기 때문에 이 세균들을 닦아내기 위해서 저희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가면 손을 열심히 씻기도 하고, 최근에 저희를 괴롭혔던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것들도 손을 통해서,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감염시키기 때문에 저희가 보이지 않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저희 세상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저희가 이것을 현미경을 개발해서 직접 발견하기 전까지는 모르고 방치해두는 경우가 참 많았는데요. 다행히도 이제는 잘만 씻기만 하면 적어도 변기보다 더럽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마치 현미경처럼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더러움을 발견해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은 예언자들이 바로 인간이 스스로 발견해내지 못하고 있는 죄악과 잘못을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발견하고 이것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아니 우리는 깨끗하게 잘만 살고 있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더러운 모습입니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었는데요, 지난주에 저희가 조직신학, 다른 말로는 기독교 교리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예언자들 시리즈로 들어가면서 먼저 이 예언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예언자? 선지자?

먼저는 용어를 좀 정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보통 저희가 예언자들을 이야기할 때 선지자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이 예언자 혹은 선지자들을 히브리어로는 나비(נָבִיא)라고 이야기하구요, 헬라어로는 프로페테스(προφήτης)라고 합니다. 이 히브리어 명사 나비라고 하는 단어는 나바(נָבָא)라고 하는 동사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이 나바라고 하는 단어는 “신적인 혹은 영적인 영감을 받아서 말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왜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게 아니냐라고 물으신다면 거짓 선지자들에게도 똑같은 단어가 쓰이는데, 영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가짜 영, 악한 영으로부터도 영감을 받아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아무튼 히브리어 단어의 어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라고 하면 알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지만 예언이라고 말하면 말하는 것을 뜻하거든요. 다만 이 예언이 저희가 아는 미래의 것들을 예언한다 할 때의 그 예언이 아니라 영적인 영감을 받아서 말한다는 뜻의 예언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금 주로 읽는 개역개정에서는 선지자라고 하는데, 새번역을 보면 예언자들이라고 부르는데요, 저는 주로 예언자들이라고 표현하려고 합니다.

예언자들의 과장된 말들

이 예언자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까 전에 저희가 현미경을 통해서 인간이 세균을 볼 수 있게 된 후로 손을 잘 씻고 위생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예언자들은 인간의 악의 문제에 대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까 아주 악한 모습으로 보이는 거에요. 오죽하면 아주아주 예민한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Amos 8:4–6 NKRV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초하루를 거룩한 날로 지켰습니다.
Numbers 28:11 NKRV
초하루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이날은 따로 구별되어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마치 안식일처럼 거룩하게 지키는 날이었구요, 또한 안식을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시게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상인들이 “야 이거 휴일이 이렇게 많아서 이거 언제 다 내다파냐? 곡식을 팔 때는 저울을 작게 하고 곡식을 살때는 저울을 크게 해서 비싸게 팔고 싸게 사야지! 또 힘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싸게 사서 종으로 부려먹은 다음에 좀 안좋은 곡식을 좀 팔아야겠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 같으면 “에휴 쯧쯧, 저거 저렇게 사람이 괴팍해서 되겠어?”라고 하면서 “저저 나쁜 놈”하고 말텐데 예언자들의 시선에는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이어서 아모스 말씀을 보시면
Amos 8:7–8 NKRV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이로 말미암아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주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하나님께서 절대 그것을 잊지 않을 것이고, 그 못된 상인들의 행동이 땅을 떨게 하고 모든 주민을 슬프게 만들고 땅이 막 하늘로 솟아오르고 강이 크게 출렁출렁 거릴 것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엥? 아니 그거 좀 비싸게 팔아먹고, 싸게 사들였다고 해서 땅이 요동치고 강이 출렁거릴 일인가요? 너무 과장되서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요?
다른 말로 하면, 요즘 뉴스에 보면 지역축제에서 상인들이 막 바가지를 씌워서 주전부리 좀 집어먹는데 몇 만원씩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럼 거기 바가지 씌우는 사람들한테 가서 “당신 때문에 나라 경제가 망하고 출산율이 떨어지고 백두산이 폭발하고 내 집 값이 떨어지는 거야! 당신이 책임질거야?”라고 말하는 정도로 아주 말도 안되게 과장해서 말하는 겁니다.
다른 말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Micah 1:3–4 NKRV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무슨 산들이 녹아내리고 골짜기들이 물처럼 막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구요.
Isaiah 34:4 NKRV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무슨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리고 나뭇잎 마르는 것처럼 말려지게 될 것이다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말씀 11-12절 말씀을 보시면
Isaiah 1:11–12 NKRV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하나님께서 무슨 인간처럼 정말 식사를 하시는 것도 아니고 배가 부르셨대요. 저랑 이주혜 전도사님이랑 사순절 금식으로 저녁 금식을 시작했거든요. 그랬더니 저녁에 너무 배가 고파서 자린고비 마냥 유튜브에 음식 먹는 먹방 같은 것을 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너무 배가 고프니까 다음날 아침이랑 점심을 좀 푸짐하게 먹는 것 같은데요, 어제만해도 요리를 했는데 너무 많이 해서 “이거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 먹어지더라구요. 여러분 제 배를 보세요. 조금 먹고 배부를 배가 아니죠?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배가 부르다고 말씀하시는게 얼마나 과장된 표현입니까?
그리고 심지어 “야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냐?”라고 말씀하는데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거거든요.
Leviticus 1:1–3 NKRV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하나님께서 예물로 번제할 때에 흠 없는 수컷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고 모세율법에도 등장하지 않나요? 아마 정말로 당시에 사람들이 번제를 드릴 때 정말로 흠없는 제물로 드렸을 겁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내가 배불러서 못먹겠다”라고 하시고 이렇게 하면 내가 기뻐할 거다 라고 하신 말씀대로 했는데요 내가 그거 기뻐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서 본문말씀 12절을 다시 보시면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다라고 말씀하는데요, 이 마당만 밟는다는 말은 원래 성전 마당은 거룩한 곳이어서 일반 백성들은 출입이 안되다가 번제를 드리거나 할 때만 드나들 수 있었는데, 마당만 밟을 뿐이라는 건 방금 번제드렸는데 “너네가 언제 번제를 드렸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악에 예민한 사람

그럼 대체 왜 이렇게 예언자들은 일종의 과장된 표현을 쓸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장엄하고 엄숙한 표현들을 써가면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언자들이 악에 예민한 사람들이어서 그렇습니다. 정말 사람들에게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일 지라도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정말로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들이 슬퍼할 만한 일인거예요. 특히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제사를 드리는 일에 대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본문말씀 13-15절 말씀을 보시면,
Isaiah 1:13–15 NKRV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와 절기와 기도를 하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행실과 삶을 가지고 그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니까 견디지 못할 정도라고 하는 겁니다. 심지어는 월삭, 초하루를 지키는 것과 안식일 등등 절기들은 무거운 짐과 같다고 표현하시구요, 악한 상태인 그대로 하나님께 손을 들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피가 가득한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눈을 돌리신다는 겁니다.
저희가 코로나 때 주변에 이 코로나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이 참 많았어요. 인간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바이러스를 조심하고 조심해도 걸리는데, 만약에 무시하고 마스크도 안쓰고 손도 안씻고 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나 하나 걸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라 하나를 송두리째 뒤흔들 정도로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예언자들의 눈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릴때, 제사를 드릴때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것, 모세 율법에 쓰여있으니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 복을 주시겠지 하면서 여전히 삶에서는 악을 행하는 그 모습이 마치 코로나 때 마스크도 안쓰고 대구에서 수천명이 모였다가 저희 나라 전역에 코로나 퍼뜨렸던 신천지같은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때도 정말 그전까지는 한국은 30명 정도로 그쳤었는데, 딱 한번의 모임으로 나라가 송두리째 뒤엎어졌었습니다. 저희가 여전히 악한 상태로 예배에 자리에 나오는 것은 예언자들의 시선에서는 그런 큰일이 벌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씻음은 믿음의 역사

회개-칭의-신생의 믿음이 씻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손이 더러우면 손을 씻으면 되는데, 예언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악은 어떻게 씻어야할까요? 가뜩이나 남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일도 예언자들의 시선에는 아주 큰 일로 보이게 되는데, 어떤 큰 일을 해야지 씻을 수가 있을까요?
Jeremiah 7:21–23 NKRV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번제와 제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론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나쁜 일을 할 것을 다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무슨 뜻이죠?
Romans 10:17 NKRV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다른게 아니라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저희의 죄를 씻게 만드는 것이고 믿음으로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조직신학 시리즈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지만 믿음의 여정의 시작에 회개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하나님 앞에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지고 새롭게 태어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사람들은 깨끗해집니다.
Joel 2:13 NKRV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그래서 마치 겉으로만 회개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인한 선한 행실이 씻는다

그리고 예언자들의 시선에서 그냥 회개만 하고 그냥 믿기만 해서는 씻어지지 않습니다. 저희가 끊임없이 믿음의 역사, 믿음과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처럼 예언자들도 악한 행실을 그치고 선한 행실로 악을 씻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본문 말씀 16-17절에
Isaiah 1:16–17 NKRV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스스로 씻고 스스로 깨끗하게 하는 방법이 악한 행실을 버리고 선행을 배우고 정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이사야는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시면 안되는 것이 그냥 착한일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구요,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은 선행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사야도 그냥 어디 갑자기 뚝떨어진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학대 받는 자, 고아, 과부를 도와주는 것은 다 모세 율법에도 등장하는 내용들이엇습니다.
Exodus 22:21–22 NKRV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Deuteronomy 10:18 NKRV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이처럼 말씀으로 부터 오는 믿음의 선한 행실이 예언자들이 바라보는 악을 씻는 것이고, 예언자들이 무서운 단어로 이스라엘을 꾸짖는 것은 다름아닌 믿음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씻지 못할 것을 씻는 믿음의 역사

그렇게 믿음의 역사를 이루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본문말씀 18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Isaiah 1:18 NKRV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 말씀도 말도 안되는 일을 가지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홍과 진홍은 연지벌레를 의미하는데요, 이 연지벌레를 통해서 물들인 천이나 실은 아주 진하고 선명해서 당시에 그렇게 염색기술이 오늘날처럼 발달되지 않았는데도 거의 색이 바래지 않는 색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눈처럼 양털처럼 희게 된다는 것은 믿음의 역사로 씻어지는 것은 씻지 못할 것을 씻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

이렇게 예언자들의 말씀을 통해서 예언자들의 시선에서는 남들이 보기에 사소한 것일 지라도 정말 큰 일이 벌어진 것으로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과, 또한 그렇기 때문에 악한 상태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그 죄악을 씻기 위해서 믿음의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지난주 수요일에 성회수요일을 함께 드린 이후로 저희가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는데요, 이 매년 찾아오는 사순절 기간이나 아니면 저희가 매주 드리는 예배를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 함께 예언자들의 시선을 통해서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언자들의 시선에서 믿음의 역사가 함께 하지 않는 예배는 그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나 안 받으시는 수준의 일이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나라가 망하고 출산율이 떨어지고 백두산이 폭발할만한 너무나도 큰 일입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이 순간에도 이 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처럼 예언자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죄를 고백하는 이 사순절 기간 동안 죄를 씻는 것이 그냥 공허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믿음과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고, 그 믿음의 역사와 함께 예배를 드릴 때에 씻지 못할 죄악도 능력으로 씻으실 줄 믿으며, 예언자들의 말씀처럼 함께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뤄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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