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야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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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11:28–44 NKRV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서론
차목사님께서 이목사님, 유안이와 함께 동남아로 여행을 가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차목사님 아버지께서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해주셔서 유안이가 첫 해외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유안이가 해외가 처음인데 잘 갔을까 걱정했는데 드보라 전도사에게 온 사진을 보니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유안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망고를 열심히 먹고 있는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진을 제가 보고 했던 말이 있습니다. “어우 우리 유안이 이제 한국와서 망고 먹고 싶어서 어떻게” 왜냐면 동남아에서 먹는 망고가 진짜 맛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한국에서 사먹어도 그 맛이 안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것을 먹어 보신 분들은 다 공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 공감 못하는 분들이 있죠.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먹어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도 이와 비슷합니다. 경험해보지 못하면 아쉬운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선 슬픔에 잠긴 한 가족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경험해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믿음의 확신을 얻은 마르다는 27절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곤 집에 있는 마리아에게 돌아가 예수님이 마리아를 부르신다 귓속말로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너무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 위로를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르다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바로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예수님에게로 달려 갔습니다. 너무 깊은 슬픔과 절망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마리아에 모습에 무덤에 울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 생각하여 마리아를 위해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가는 방향은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가 달려간 곳은 바로 예수님이 계신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자신에게 올 것을 알고 마르다와 만난 그곳에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자 마리아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곤 예수님께 마르다와 같지만 더 슬픈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여기 계셨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 마리아의 모습에 마리아를 따라왔던 사람들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주변은 금세 울음바다로 변했습니다. 모두들 깊은 슬픔에 슬피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몹시 슬프고 아프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사람들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마리아와 사람들이 부활의 믿음이 없어 죽음이 끝이라 생각해 슬피울며 절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만약에 우리 교회의 유안이가 이목사님이 잠깐 밖에 나갔다고 엉엉 울면 어떻겠습니까? 이목사님이 우리는 금방 다시 오실 것을 알지만 그것을 몰라 유안이가 엉엉 울고 있다면 우리는 마음이 너무 아플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도 이러했습니다. 나사로가 다시 부활할 것을 모르고 이제는 영원히 나사로를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우는 마리아와 사람들이 안타까우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속히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무덤으로 향하십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죽은 모습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비록 나사로가 부활할 것이지만 그가 겪은 고통과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의 고통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래에 부활할 것이라며 현재의 고통과 슬픔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래를 위해서라지만 현재 우리가 겪는 고통과 슬픔을 충분히 공감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우시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나사로가 안 죽게 하던가~”하고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오늘날 “애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던가”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동정심에 일을 그르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이가 아프다고 운다고 병원 치료를 받지 않게 하면 되겠습니까? 오늘 유안이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유안이가 저번주에 장염으로 아팠습니다. 장염을 치료하기 위해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쓴 약을 계속 먹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안이가 울고 고통스럽다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이고 약을 안 먹여서 되겠습니까? 이런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이목사님과 차목사님처럼 유안이가 치료 과정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슬픔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공감하며 슬퍼하시지만 우리가 그것을 겪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믿음이 일시적인 해결책이 아닌 영원하고 확실한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가셨습니다. 그러나 무덤의 입구는 이미 나사로가 묻혀서 돌로 막혀있는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려 무덤에서 꺼내시기 위해 무덤의 입구를 막는 돌을 치우라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온 마르다가 이런 소리를 합니다.
“예수님 벌써 죽은지 4일이나 지나서 시체가 썩는 냄새가 납니다.”
설교 시작할 때 우리가 들었지만 마르다는 27절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부활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39절 마르다는 다시 믿음이 없는 말을 합니다. 나사로가 이미 죽어서 썩고 있기 때문에 무덤 문을 열어봤자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마르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확신과 믿음이 생겨 감사로 아멘하며 믿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말씀대로 다 이루실 것이라 확신을 갖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려움이 앞에 왔을 때 우리의 믿음은 본문의 마르다와 같이 흔들립니다. 예수님이 하신다는 말씀보다는 불가능한 현실의 문제와 어려움이 보입니다.
그런 마르다에게,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은 말씁하십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놀라운 일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믿고 우리에게 순종하라 명하십니다.
당시 무덤의 돌을 치운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면서 여러분 조상님의 무덤을 파해치자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영화 파묘만 보더라도 무덤을 파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혼자서는 쉽지 않을 것이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갑자기 예수님이 명령하셨다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족의 무덤을 파헤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아무 일도 없으면 그냥 다시 무덤을 묻어야 할텐데 그게 간단한 일이겠습니까? 아마 무덤을 파헤친 여러분은 단단히 미친 사람으로 소문이 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돌을 옮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눈을 하늘로 드시고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무리를 위함이나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는 기도를 모두가 듣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도에서 하신 것과 같이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장에 나사로를 살려 순간적으로 안 슬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후에 보이실 부활의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여러분 나사로가 이 때 살아나서 영원히 죽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이후에 나사로는 나이가 들어 죽었습니다.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은 일시적인 문제의 해결일 뿐입니다. 결국 나사로는 또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부활의 믿음입니다. 일시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활의 믿음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믿음으로 영원한 기쁨과 평안을 누리기 원하셨습니다.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부활하여 영원한 저 천국이 있음을 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님의 부르심에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죽어서 팔과 다리를 베에 묶이고 얼굴이 수건에 쌓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모두 풀어주어 다시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부활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떠한 환경과 문제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고 부활과 저 천국의 소망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내가 “응, 내가 믿었어”하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활의 믿음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먼저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나아갔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부활의 믿음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 읽기, 큐티, 설교 듣기 등을 통해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리고 예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 겸손히 고백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함으로 믿음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막상 문제 앞에서 예수님이 명령하시면 우리는 머뭇거립니다. 다시금 현실적인 조건과 상황이 떠오르며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굳게 믿고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놀라운 부활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내 가족관계가 살아나고, 교회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나고, 내 직장 생활, 인간관계가 다시 살아납니다. 내 삶의 의미가 살아나고, 삶의 즐거움이 살아나며 하루하루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말씀이 진짜이며 우리가 완전하게 누릴 저 천국과 영생의 부활을 소망하며 믿을 수 있습니다.
결론
요즘 제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두 부부 이삭이와 지혜 청년도 그럴 것입니다. 아마 우리 교회에 계신 모든 분이 가장 살고 싶은 곳이 어딜까요? 바로 아파트입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신축아파트이죠. 이 신축아파트에는 선분양 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면 아직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았지만 먼저 돈을 내고 아파트를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지어질지 알고 이럴 수 있을까요? 바로 모델하우스라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아파트가 이렇게 지어질 것이다 미리 지은 전시 집을 보여주고 그것을 보고 살고 싶은 사람들이 계약을 하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으신 것은 부활의 믿음이지만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현재에 무관심하시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문제 속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시고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러나 문제 하나가 해결되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해결책인 부활의 믿음을 주고 싶으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모델 하우스처럼 우리에게 부활의 역사의 일부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부활의 역사를 기대하고 믿게 하십니다. 그로인해 우리가 감사와 기쁨과 평안으로 이 땅을 살다 마지막 날에 완전한 부활을 험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아까 말하지 않은 것은 실제 지어지는 아파트는 모델하우스보다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지막에 누릴 부활의 역사는 지금 맛보는 것보다 더 대단합니다. 우리 축복교회 성도님들은 순종으로 지금 삶에서 부활의 역사도 경험하고 마지막 날에는 더 좋은 영원한 부활의 역사를 누리는 부활의 믿음을 갖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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