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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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시작

인간의 타락은 ‘악의 기원’에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던 천사(Morning Star, 사탄 혹은 마
귀)가 교만하여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유 6절)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하나님)와
비기리라”(사 14:12-14)고 외치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려고 ‘뱀으로 위장하여’(창 3:1) 처음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창세기 3장에서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하므로(사단의 전략)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였다(1절). “하나님이 참으로(진정성에 대한 의심)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말씀의 변경) 먹지 말라 하시더냐(의심을 촉구하는 질문).”
이 본문의 배경은 앞의 2장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내리신 금지명령에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자유의지에 따른 행위를 허용함)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구체적인 대상)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조건적 금지명령) 하시니라”(창 2:16-17). 하나님이 내리신 이 ‘금지명령’은 죄를 짓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베뢰아 이단사상; 롬 6:1-2,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덕적 책임을 상기시켜 주어서 자유의지를 남용하지 않도록, 그래서 하나님과 피조물의 경계를 유
지하여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선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경계를 어긴사람은 큰 화를 입게 된다.
해도 되는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먹는 것도 선이 있다 한정이 없이 먹으면 탈이 난다.
노는 것도 선이 있다 계속 놀면 화를 입게 되어 있다.
친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남녀 간에 어른과 아이 사이에 왕과 신하 사이에 친구 간에 다 선이 있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에게 선이 없겠는가?
모든 것을 허용하고 최소한의 단 하나의 선 그것이 이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선은 절대 넘지 말았어야 했다.
반대로 이 선을 지킨다는 것은 선과 악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경계에 대한 생각이다.
그런데, 3장 5절에서 사단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도록 하와에게 거짓된 약속을 제시
하였다(5절).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새로운 지식을 얻음) 하나님과 같이 되어(인간이 신이 되려고 함) 선악을 알 줄을(세상 주관자의 지위를 추구함) 하나님이 아심이라.”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 때에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사단의 속삭임에 마음을 빼앗겨 불순종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이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였고(요일2:16,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런 감각적 욕망들을 극복하지 못한 하와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고, 함께 한 남편에게 주어 그도 먹게 하였다(6절).
비극적으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살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죄’(Sin)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죄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인간에게 본성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처음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수치감 때문
에 자신의 치부를 가려야 하고(거룩함의 상실, 창 3:7),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어야 하며(관계의 상실, 창3:8), 결국 죽음 앞에 굴복하게 되었다(육체적, 영적, 영원한 죽음, 롬 6:23). 따라서 죽음이란 육체의 죽음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서 그것은 하나님과의 본래적 관계의 상실을 말한다.

죄의 보편성

Romans 5:12 NKRV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Romans 3:23 NKRV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 주변에는 참 정직하고 착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교회에서는 자꾸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선악과를 먼저 먹은 것은 하와인데 우리가 죄인 된 것은 아담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는가?
아담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이다. 이것은 전체 인류의 대표자로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의미이다.
Genesis 2:15 NKRV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그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마치 나라나 사람을 지칭하듯 특정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아담’이다.
그 당시 에덴동산에 사람이 아담과 하와 뿐인지 아니면 훨씬 많은 사람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지 그들의 대표는 아담이었다. 누군가 잘못하고 실수해도 그것을 바로잡고 올바르게 해야 할 최후의 보루였다.
가정에도 교회에도 대표자가 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2.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아담이 그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잘못으로 인하여 하와가 실족하게 된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3:9에서 하와가 아닌 아담을 부르셨다.
3. 아담은 하와가 잘못하는 그 자리에 함께 있었지만 그것을 막지 않았다.
책임지지 않는 시대, 잘못을 하와에게로 돌리는 시대
각자가 옳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표가 있다. 그 대표가 전체의 대표성을 가진 만큼 나무랄 수도 있고, 도울 수도 있다. 그리고 책임도 대표가 지게 되는 것이다.
Genesis 3:6 NKRV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1 Corinthians 15:22 NKRV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지금도 사단은 참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 사람을 미혹한다. 그들은 구성원들을 타고 올라 결국 대표인 머리를 치려고 한다. 그래야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가족을 타고 죄를 짓게 해도 기도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있는 가정은 버티고, 싸우고, 회복한다.
Genesis 3:5 NKRV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참) 하나님과 같이 되어(거짓) 선악을 알 줄(참)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4절 결코 죽지아니하리라(거짓)

죄의 종류

원죄(原罪)는 아담이라는 첫 사람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전가된, 인간 존재 자체에 내재된 죄이다. 아담은 인류 전체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고, 그의 타락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죄의 운명을 안겼다. 이로 인해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담 안에서 죄 아래 놓인 존재로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대표자로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희생하심으로, 그에게 속한 새로운 무리가 등장했고, 이들은 더 이상 아담이 가져온 원죄의 정죄 아래 있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원죄의 저주를 깨뜨리고 그에게 속한 자들을 구속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 역시 여전히 삶 속에서 구체적인 죄, 즉 자범죄(自犯罪)의 유혹과 싸우며 살아간다. 원죄로부터의 해방이 즉각적이고 완전하다고 해도, 구체적인 죄의 습관과 욕망에서의 자유는 성령의 도우심과 동행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날마다 자신 안에 남아있는 죄의 흔적과 싸우며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죄를 극복할 때, 비로소 원죄뿐 아니라 자범죄에서도 점차적으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 가르치는 죄와 구원, 은혜와 성화의 신비로운 여정이다.

구원의 약속

모든 사람이 본성적으로 부패하고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 앞에 죄책을 지니고 사망의 형벌 아
래에 있다. 그러므로 인류는 죄로부터 구속 받기 위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
도의 속죄의 은혜가 필요하다
Romans 3:24–25 NKRV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제물로 오셨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이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였으나 그들의 죄를 덮어 주셨고
Genesis 3:21 NKRV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구원의 약속을 주셨다. 그 약속은
Genesis 3:15 NKRV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것은 인류를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하실 구원의 은혜를 약속하신 것이다(proto-gospel, 원시복음).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다(요 3:16). 그것은 십자가 위에 매달린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사단을 멸망시켜 승리하시므로,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 주시는
것이었다. 이 여자의 후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구원의 약속을 받을
수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 2:21).

결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신앙의 출발점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도 가장 첫번째 시작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에서 시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모든 판이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나를 중심으로 보면 나는 죄인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보면 나는 죄 투성이인 사람이다.
나를 중심으로 보면 나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보면 나는 죽어마땅한 죄인이다.
나를 중심으로 보면 내 뜻대로 하지 않는 하나님이 나쁘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보면 가당치 않다.
내가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데 매우 사랑해서 자녀처럼 이름도 부르고 집 안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키운다.
그러나 강아지는 배변을 변기에 할 수 없어서 배변시트를 깔아주고 그곳에 볼 일을 보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주인의 식탁에는 오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강아지가 시간이 흐르자 자꾸 나와 똑같이 행동하려고 한다면? 내 식탁에 있는 음식을 먹고 온 집 안에 똥오줌 판을 만들어 놓는다면?
그 강아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강아지를 집 밖으로 쫓아서 키우는 주인이 나쁜 주인인가?
모르겠다 강아지들의 입장에서는 나쁜 주인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이 원하는 것은 자신과 닮은 강아지이다. 본능에 충실한 야생의 강아지가 아니다.
그래서 주인은 하나뿐인 아들에게 강아지가 되라고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들은 순종했고 강아지가 되어 가장 옳은 모습의 본을 보여주었다. 본능적으로 살고 싶었던 강아지들은 주인의 뜻대로 룰을 잘 지키는 강아지가 너무 싫어서 물어죽였다. 그러나 많은 강아지들에게 그 아들강아지는 본이 되었다.
그래서 새롭게 변화된 강아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주인의 목소리와 응원과 도움이 느껴진다. 그것을 힘입어 주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된 강아지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과 평생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것이 내가 느끼는 죄와 구원의 관계이다.
나를 개로 비유해서 기분이 나쁜가? 그러나 나는 더 하찮은 존재로 비유하고 싶다. 하나님과 나를 비교하면 나는 개보다도 훨씬 못한 존재다. 먼지와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나의 죄가 깨달아졌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한 죄책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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