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09 주일오후예배: 신명기 6:4-9;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8문
Notes
Transcript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신명기 6:4-9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을 함께 보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8문입니다. 제가 질문하면 같이 답해보겠습니다.
8문: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들이 있습니까?
답: 오직 한 분뿐이시며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후예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예배하러 오는 자들을 언제나 환영하십니다. 세상에서는 회사에 들어가거나, 어떤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격 요건을 따지지만, 우리 하나님은 재산의 많고 적음, 신분의 높낮이 상관 없이 자신을 예배하러 오는 자들을 결코 막지 않으십니다. 너무나도 거룩하셔서 죄를 심히 혐오하시지만, 죄인인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해 깨끗하게 만드시게 하실 정도로 우리의 예배를 받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결코 예뻐서, 사랑받을만한 모습을 갖춰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분의 호의이며 은혜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자신을 알려주시는 말씀의 자리에 함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불변성으로 우리와 다르게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셔서 언제나 변함없이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불변성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유익은 자신의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믿고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셔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려고 하시는데요. 오늘은 하나님의 유일하심, 유일무이하신 하나님, 바로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해서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독특함이나 특이함을 보고 “너 같은 사람은 또 없을거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유별난 모습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성적인 생각을 하거나 감정을 느낀다던지 등등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특징이 있으며, 심지어 물론 존재하지 않는 신이기는 하지만 신들 중에서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이 구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유일성’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유일성이 성경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지금부터 말씀을 자세히 선포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신명기 6장으로 신명기 5장의 말씀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5장에 무슨 말씀이 담겨 있습니까? 바로 십계명을 다시 한번 모세가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고나서 모세는 오늘 본문 4절에서 이스라엘에게 “쉐마”, 즉 “들으라”라고 하면서 말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 “들으라”, “쉐마”라는 단어를 한번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는데요. “쉐마”는 단순히 귀로 듣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쉐마 이스라엘”이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을 요청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고 그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라는 요청입니다. 특별히 신명기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앞인 3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될 것이고, 그 가나안 땅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 개개인에게 재산으로 나누어주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부르신 백성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저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쇼”의 구경꾼이 아니라 말씀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홍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일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쇼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기 전에 모세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출애굽기 14:13 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바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라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가 홍해입니다. 이 홍해뿐만 아니라 이집트에게 10가지 재앙을 주시고, 유월절을 제정하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주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반응하여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순종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듣는”다는 것은 곧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듣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듣는 것이 아닙니다. 3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쉐마”라고 하면서 말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들을 것을 요청하냐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다”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의 주제인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해서 들을 것을 요청합니다. 모세는 왜 갑자기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여호와시다”라는 것을 들으라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방신들과는 전혀 다르게 구분되는 참 ‘신’이시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평화로운 땅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호수아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땅을 분배받는다는 것을 듣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차지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전쟁은 끝날지는 몰라도 이들에게 남아 있는 영적 전쟁은 계속됩니다. 바로 가나안 땅에 자리 잡고 있던 이방신들, 이방 민족들이 믿고 있는 이방신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길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살고 있던 민족들을 진멸하라고 하신 이유 중 하나도 이들이 믿고 있던 이방신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 섬기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해야 할 영적 전쟁은 하나님과 이방신 중 누구를 예배할 것인가에 대한 전쟁입니다. 이 사이에 중립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느 하나만을 반드시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자신과 이방신이 전혀 다르게 구분된다는 것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다”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참되며 진리입니다. 신명기 이후, 그리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나서 백성들이 마주하게 된 이방신들 예배하는 방식과 모습들만 보더라도 여호와가 유일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북이스라엘을 아합이 다스리던 때에 선지자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게 됩니다. 장작 위에 송아지를 올려 놓고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해서 송아지를 태우는 신이 진짜 신임을 증명하자고 말입니다. 이 때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의 모습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이방신이 얼마나 구분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기도하면서 마치 우리나라 무당이 굿하는 것처럼 뛰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너희 신 묵상하고 있거나 잠깐 어디 딴 곳에 갔거나 잠들어서 큰 소리로 깨워야 되는거 아니야?”라며 조롱합니다. 이에 이 선지자들은 그들의 규례, 즉 바알과 아세라에 대한 예배 방식에 따라 칼과 창으로 피가 흐르기까지 그들의 몸을 상하게 만듭니다. 바로 바알과 아세라는 예배하는 자의 몸을 상하게 해야 예배를 받는 신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엘리야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제단 주위에 도랑을 만들어 제단을 물로 흠뻑 적셔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기도하니 그 즉시 물로 흠뻑 적셔진 제단이라도 다 태우게 되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십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처럼 뛰놀지도, 몸을 상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방신인 바알과 아세라와는 전혀 다른 유일한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뿐만 아닙니다. 다른 이방신들 모두 인간을 잔인하게 죽이거나 인간을 희생시키는 방식의 예배를 추구합니다. 특별히 몰렉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몰렉이 어떤 신입니까? 활활 타오르는 불에 어린 아기를 태워 바치는 방식으로 예배를 받는 아주 잔혹한 신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것을 아주 가증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율법에서 규정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린 아기뿐만 아니라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방신들은 인간을 희생시키고, 심지어 어린 아기마저 바치는 예배 방식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마주하게 될 영적 전쟁이며 이런 이방신들과는 다르게 여호와는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신들을 따르지 말고 이 이방신들과는 구별되어 너희에게 잔인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만을 따를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에 만연해있는 다신론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주민들이 믿는 신은 여호와 하나님처럼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각각다양한 신들을 섬기는 다신론이었습니다. 그래서 농사의 신, 강의 신, 분노의 신, 사랑의 신, 자비의 신, 전쟁의 신, 바다를 관장하는 신,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신 등등 각각 다른 속성을 가진 신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농사가 잘 되길 원하면 농사의 신을 예배해야 했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쟁을 관장하는 신을 예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오직 여호와 한분만이 계십니다. 하나님 한분께서 이 모든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고, 그분 안에 사랑과 자비와 은혜, 그리고 진노 등 모든 감정이 있습니다. 각각 다른 것을 관장하는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요. 이런 점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방신들과 구분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유일성은 하나님의 단순성 또는 통일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단순하다고 하면 오늘날에는 “이해하기 쉽다”거나 “우둔하거나 어리석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니라 “복잡하지 않음” 또는 “부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이라는 뜻에서의 단순성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단순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통일성’이라는 말로 바꾸어서 부르는 것이 이해하는 것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지 하나님의 단순성 또는 통일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 다시 말해 은혜, 사랑, 자비, 거룩 등등 이러한 모든 성품은 다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 안에 다 있는 것들이라는 겁니다. 부분적으로 사랑의 하나님, 거룩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으로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존재 안에 이 모든 것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제 몸의 각 부분인 팔과 다리가 저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저의 모든 몸과 생각과 가치관을 통틀어서 ‘이겸재’라는 사람으로 말할 있듯이 말입니다. 제 팔은 이겸재의 팔이고, 제 다리는 이겸재의 다리이지 이겸재라는 사람 자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오해하거나 자칫 다른 길로 빠질 수 있는 생각은 하나님의 존재를 다양한 속성을 모은 집합체로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존재에 더해진 첨가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 지혜, 자비, 거룩이라는 속성을 모으면 하나님이라고 말하거나 하나님이 계신데 그분에게는 진실과 자비, 은혜와 사랑이 더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존재 자체가 그분이 가지고 계신 모든 속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이미 은혜, 사랑, 자비, 거룩과 같은 속성이 있는 것이고 그분만의 소유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들은 하나님처럼 성품이나 속성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기본적인 선함, 착함, 자비, 은혜라는 성품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착한 사람이 있고 그보다 덜 착한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고 한 사람 안에 모든 성품이 있지 않은 것은 성품이 우리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떠십니까? 모든 속성과 성품들이 자신 안에 있으십니다.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모든 성품이 완전합니다.
더 나아가 무엇보다 우리가 가장 범할 수 있는 실수는 하나님의 어떤 한 속성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강조하는 속성들은 사랑과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라는 말을 교회에서 우리는 제일 많이 들어봅니다. 이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은혜, 또는 자비만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성품, 속성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속성도 가지고 계십니까? 진노하시고, 질투하시며, 악을 미워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진노, 질투, 악을 미워하신다는 하나님의 성품은 어쩌면 낯설기도 하며 어쩌면 불편하기도 성품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칩니다. 특별히 진노의 하나님은 구약에서 많이 드러납니다. 범죄한 자들을 향해 진노하시고, 악을 징벌하시는 내용이 구약에 많이 등장합니다. 이에 반해 신약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은혜를 베푸시고, 자비하신 면모가 더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초기 교회 역사 속에서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기 때문에 구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한 신학자가 등장해 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신학자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처럼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진노하시는 하나님,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안에 죄에 대한 진노와 미움도 있고, 사랑과 은혜라는 성품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나치게 하나님의 한 속성, 한 성품만을 강조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것만 강조되다 보니 마치 하나님을 하늘에서 우리를 향해 항상 “허허허”하는 웃음과 미소를 짓고 있는 인자한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인식되곤 합니다. 이와 같은 인식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큰 범죄를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크기를 그만큼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나타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마치 하나님의 호의를 받을만한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되고 우리의 믿음이 행위로 옮겨지지 않고, 삶으로 나타내지 않아도 괜찮은 것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는 진노가 있다는 겁니다. 구약에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마주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민감하고 예민하게 다루고 계시는지를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그분을 죄를 미워하시는 것을 넘어서 현대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인 혐오, 바로 죄를 혐오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너무나도 거룩하셔서 죄를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와 우리가 받은 용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용서받은 우리의 죄는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궁극적인 형벌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는 영원한 형벌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했다는 것은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물건에 상해를 입히고,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것 중 어느 것이 더 큰 벌을 받습니까? 바로 사람을 죽인 살인죄가 더 큰 벌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건보다 사람이 더 가치가 높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물건보다 사람이 더 존귀하며 소중하기 때문에 살인죄가 더 무거운 죄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보다 더 존귀하시고, 더 가치가 높으신 하나님께 범죄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영원하신 분께 죄를 지었으니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은 영원한 벌, 영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받은 죄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너무나도 큰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그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그분의 말씀을 기꺼이 따르고자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뿐만 아니라 진노도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른 존재들과는 엄연히 다른 분이라는 유일성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유일성 두 번째는 하나님은 다중인격자가 아니시라는 겁니다. 다중인격자는 어떤 때는 엄청 자비롭다가도, 어떤 때는 갑자기 분노하면서 덥석 화를 냅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와 같은 다중인격자는 아니십니다. 다른 이방신들은 다중인격자와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 변덕을 부립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며,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배웠듯이 약속에 있어서 변함없이 신실하십니다. 대표적으로 의인을 사랑하시고, 악인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항상 한결 같으시다는 것을 나타내며, 어느 시대나 공간을 초월하십니다.
이방신들을 보면 인간들을 결코 위하지 않습니다. 이방신들은 인간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복을 내립니다. 인간이 행복하길 바라지 않으며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방신입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서 사는 이기적인 존재가 이방신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오늘 본문의 배경은 십계명이 선포된 뒤입니다. 십계명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부터 말하시지 않고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라고 먼저 말씀하시면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심지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을 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종살이하여 고통받던 그 애굽에서 인도하여 구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이쁜 짓을 하고, 사랑받을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께서 그렇게 하고 싶어하셨고, 이스라엘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다중인격자이셨다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구원을 베푸시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이방신들처럼 인간이 하는 짓을 보고 복을 베푸시는 분이었다면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다른 이방 신들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에 있는 하나님이시며, 여호와께서 다른 어떤 신도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한 일을 이스라엘 가운데 행하셨으며, 여호와께서는 다른 이방신들처럼 다수가 아니라 한 분이십니다.
이렇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라는 것을 꼭 기억하게 하시면서 그들이 마주할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이길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뒤에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면서 이방신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할 것을 명령하시면서 6절부터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대손손 잊지 않고 언제든지 기억하고 묵상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삶의 모든 공간에서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결코 꽃길과 핑크빛만이 가득한 땅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 말씀을 통해 깨닫고 있는 것처럼 가나안 땅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유일성을 가나안 땅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신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세상과 사람들은 다신론을 믿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세상을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 아니라 여타 다른 것들이 다스리고 있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돈과 권력, 심지어 사랑과 쾌락을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전인격을 쏟아 붓습니다. 하나님 외의 것들을 신으로 섬기며 그것들에게 절하는 모습은 현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모든 사람은 적어도 하나씩은 무엇인가를 항상 숭배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들어가서 사람의 가치,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보면 그것을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같이 교제를 해보면 이것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불신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는 우상,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하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을 받을만한, 구원을 받을만한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이방신들은 가르치고, 세상은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추구하고, 우리가 쟁취하고 싶어하는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습니다. 바로 그분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고, 그분이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말고 다른 것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본문에서 명하셨듯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면서 주의 말씀을 우리의 삶 곳곳에서 기억하고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준 모습처럼 다른 이방신들을 좇아 가고 있진 않은지요. 오직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들을 우리는 섬기고 있지는 않은지요. 다른 신들과 구분되는 너무나 선하신 하나님이심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들을 따라가고 있진 않은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꽃길과 핑크빛만이 가득한 곳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했듯이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게 하는 것들이 우리 삶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유일성,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라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쉐마”라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다. 너희가 들어갈 가나안 땅은 너희를 넘어뜨리게 하려는 땅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베푸신 구원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만을 사랑하라.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그 말씀을 지켜 행하라. 이것이 너희가 가나안 땅에서 해야할 일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유일한 하나님을 우리 삶 곳곳에서 말씀으로 살아내어 다른 이방신들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유일한 분, 유일한 참 신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렇게하여 여러분이 있는 곳이 거룩한 가나안 땅이 되어 그곳이 천국과 하나님 나라가 되는 복을 누리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놓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십니다. 그분은 유일무이한 분이시며 다른 어떤 존재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방신들과 구별된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유일한 분이심을 기억하며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며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유일성을 드러내는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오직 유일한 분이십니다.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과 비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좇아 살아가진 않는지요. 이런 저희의 연약함을 용서해주시고, 오직 유일한 우리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저희에게 날마다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날마다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만을 예배하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삶으로 이 신앙을 나타내게 인도해주셔서 저희가 가는 모든 곳이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나타나는 곳이 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