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강해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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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시는 하나님
요나서 1:4-6
지난주에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배에 올라탄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너무나 순조롭게도 욥바에 내려가자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게 된 요나는 그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일이 너무나도 순조롭게 잘 풀리는 듯하지만, 도망치는 요나를 향해서 침묵하시던 하나님은 이제 자신의 뜻대로 다시 요나를 돌이키기 위한 일들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니느웨에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은 요나가 불순종하고 도망치자, 하나님은 그 요나에게 큰 폭풍을 내리셨습니다.
사실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난 때에 하나님은 즉시 요나를 바로잡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니느웨가 아니라 욥바로 향하는 요나를 치셔서 즉각 방향을 바로 잡도록 만드실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요나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바다 위에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극한 상황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또한 이제 요나의 불순종은 분명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어떠한 핑계도 댈 수 없이 요나는 하나님께 대적했습니다. 그것을 확실히 확인하고 그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세 가지의 방법으로 요나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폭풍을 보내셨습니다. 요나의 계획대로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생각에 거대한 장해물이 등장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올라탔던 배가 이제는 도망칠 수 없는 폭풍의 공격 앞에 등불처럼 놓였습니다. 이 폭풍은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내리신 폭풍입니다. 4절에서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내리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내리셨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가 “집어 던지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5절에서 선원들이 배를 가볍게 만들려고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다고 기록하는 부분에서 “던지다”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큰 바람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그림처럼 그려서 설명한다면, 선원들이 지금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물건들을 바다에 마구 집어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큰 바람을 집어 던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의 불순종에 대한 반응으로 극심한 노를 발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무서운 상황 가운데에서 정말 은혜로운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폭풍은 요나가 탄 배를 산산조각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폭풍으로 배가 거의 깨지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깨지게 된지라”에 해당하는 원어의 의미는 “산산조각 나다”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거의”라고 번역한 단어는 “여기다, 간주하다, 판단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거의 깨지게 되었다는 말은 산산조각이 날 것으로 여겨졌다는 의미입니다. 배가 부서져서 배에 탔던 사람들의 목숨이 끊어지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의 깨지게 되어서 언제 자신들의 목숨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요나를 당장 죽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불순종한 사람들을 당장에 죽이신 적이 있습니다. 다른 불을 바쳤다가 죽었던 나답과 아비후가 있었고, 법궤를 만졌다가 죽은 웃사가 있습니다. 분명 지금 당장 하나님은 요나에게 죽음을 선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깨지게만 하시고 죽도록 만드시지는 않았습니다. 큰 바람을 마구 집어 던지셨지만, 배가 침몰하도록 만드시지는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요나를 책망하시지만, 그 요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엄히 꾸짖으시나 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우리가 때로 하나님께 징계받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징계 가운데 우리가 살아있음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태풍이 우리를 완전히 깨는 것이 아니라 거의 깨지게만 할 뿐이라면 지금의 고통은 완전한 심판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시는 책망입니다. 징계와 채찍은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폭풍으로 고난받는 것은 당연한 처사입니다. 그런데 선원들은 요나의 죄와는 무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요나 한 사람 때문에 폭풍을 일으키신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명확히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짧은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풍성함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요나의 죄로 인해서 선원들이 고난받는 것에 대해서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요나의 죄와 선원들은 무관하지만, 선원들은 태풍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신 가르침으로 하나님은 선원들이 두려움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바다 위의 생활이 능숙한 선원들은 웬만한 폭풍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폭풍을 견뎌내고 이겨내면서 더욱더 강해지는 것이 선원들입니다. 욥바에서 다시스로까지 여행할 정도의 선원이라면 보통의 선원들은 아닌 바다 생활에 베테랑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선원들이 두려워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폭풍이 보통의 폭풍이 아니였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선원들은 그 폭풍으로 자신들이 탄 배가 이제 곧 깨지기 직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두 가지 일을 했음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선원들이 각각 자신들의 신을 부르고 두 번째로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다는 것입니다. 선원들은 두려움에 자신들의 신을 불렀습니다. 곧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어떠한 신을 부르짖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이방인들이었고, 지금 죽음의 공포로 인해서 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부르는 신이 선원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할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가 우상이고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선원들은 살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배가 부서지고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배에 실었던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극한의 상황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많은 재물을 벌 수 있는 물건들을 바다에 버리기까지 했다는 것은 어떻게든 살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선원들의 간절함의 태도입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들은 죽음을 직면해서 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 폭풍과 사공들의 두려움 가운데 요나는 더 놀라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 가운데 배 밑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것도 깊이 잠들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배 밑으로 가서 잠이 들었다는 말이 5절에 있어서 마치 풍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도 배 밑으로 내려가서 잠을 잔 것으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뱃삯을 주고 배에 올랐던 처음부터 배 맨 밑층으로 내려갔다고 읽으시면 됩니다.
요나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요나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요나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해서 도망 중입니다. 배에서도 최대한 여호와께 들키지 않으려면 가장 낮고 낮은 자리로 도망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짐을 놓는 배 밑층까지 내려가서 거처를 정한 것은 도망자 요나에게 어쩌면 가장 최고의 자리일 것입니다.
사람은 보통 불안하면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큰 폭풍 속에서도 잠을 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달아난 상황에서 자신의 도망이 성공적이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폭풍을 보내고 선원들을 통해서 신을 부르고 짐을 버리게까지 하셨습니다. 모두 요나를 일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 요나는 잠을 자고 있습니다. 요나는 지금 영적으로 잠들어 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떠나서 자신이 원하는 곳 다시스로 도망치고 있는 요나는 심령이 어두워지고 죄에 대해서 무뎌져 버렸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주시는 경고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잠들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이러한 때가 있습니다. 처음 죄를 범할 때는 그에 따른 두려움이 큽니다. 그러나 그 죄를 반복하게 되면 우리는 양심의 가책은 없어지고, 심령의 어두움은 더욱 커집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죄를 지어도 죄라고 생각이 들지 않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는 망각에 사로잡혀서 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망각의 뒤편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거역하고도 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만 보기에는 하나님이 모르고 계시는 듯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에 대한 처벌은 언제고 찾아올 것입니다. 망각의 뒤편에서 오는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십시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선택받은 백성이 아니라면 그 죄의 뒤에는 영원한 형벌이 기다릴 것입니다.
잠이 들어버린 요나에게 하나님은 세 번째의 방법을 통해서 가르침을 주십니다.
선원들은 배의 짐을 바다에 버리고 있었고, 짐을 실어 놓는 배 밑층에서 배의 선장이 잠을 자는 요나를 발견하고 그에게 책망의 말을 합니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서 잠을 자고 있다니 어찌 된 일이냐며 요나에게 기도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방인인 선장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에게 책망합니다.
요나가 처음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순종했다면 지금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방 땅에 가서 이방인들에게 대항해서 외치라는 명령을 수행해야 할 요나가 정작 불순종하자 하나님은 거꾸로 이방인인 선장을 통해서 잠자는 요나의 영혼을 대항해서 외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이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으면 세상이 오히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쳐서 외칩니다. 선장이 요나를 꾸짖듯이 우리가 온전한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세상의 입으로 교회와 우리를 꾸짖으실 것입니다.
선장이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라고 하는 말에서, “일어나 구하라”라는 문장은 1장 2절에서 하나님이 요나에게 하셨던 말씀 “일어나 외치라”라는 말과 같은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하라”는 단어가 “외치라”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는 선장이 요나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주셨던 명령과 같은 것입니다. 선장의 이 말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요나에게 지금 요나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교회와 목사와 신자들을 욕하는 것이 너무나도 정상처럼 여겨지는 때가 되어 버렸습니다. 믿음을 가졌다는 우리의 모습이 요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의 입을 통해 우리의 잘못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지금껏 한국교회는 잘못된 행실들로 복음의 걸림돌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께 욕보이는 이유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잠든 요나를 깨워서 가르치시고자 폭풍과 선원들의 두려움 그리고 이방인 선장의 입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이러한 방편들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폭풍이 찾아오기 전에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찾으십시오.
모진 시련과 어려움과 질병이 닥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 전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뜻을 깨달으려고 애를 쓰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요나보다 더 심각하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여러분이 원하는 다시스는 온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습니다. 선원들은 폭풍 앞에서 각자의 신을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화물들을 버렸지만, 그것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님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그분으로부터 떨어지지 마십시오.
허다한 신들 중의 하나인 예수님이 아니라 모든 왕 중의 왕이요, 전능하신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온전히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때때로 요나처럼 망각에 빠져서 죄에 둔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완전히 끊어져서 영원한 심판이 내릴 것처럼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자신에게 허락된 자들을 결단코 놓치지 않고 붙드셔서 하늘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우리의 참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십시오.
또한 그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보십시오. 4-6절은 짧지만, 이 4, 5, 6절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요나의 죄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폭풍을 보내셨습니다. 또한 그 폭풍으로 당장 죽이지 않으시고, 거의 깨지는 수준에서 머무르도록 하셨습니다.
요나가 잠들어 있을 때도 그를 깨우고, 선장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명령을 떠올리도록 하셨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요나가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으며, 우리 삶의 주님으로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를 우리가 입고 있는지 보십시오.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만족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가진 지금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삶에 당장의 심판을 내리시기보다는 우리를 향해 견디고 인내해 주십니다. 여전히 부족한 우리들을 기다려 주시면서 성령님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살아가도록 도우시면서 기다려 주십니다.
이런 은혜를 입고 있음을 온전히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고 계신 주님을 향해서 계속되는 불순종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순종의 삶을 살기를 소망하고 노력하십시오. 그것이 주님께 택함을 받아 은혜를 입은 백성들의 당연한 삶의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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