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지 마라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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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11–18 NKRV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장 23절을 통해 이렇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20: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신상, 즉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의 제2계명이기도 합니다.
모든 종교에는 신상이 있게 마련입니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나아 보고 자신이 믿는 신의 상을 지성을 다해 빚어 가는 인간의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우상을 만들지 말라 엄하게 말씀 하실까요? 결국 이는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신상 속에도 갇힐 수가 없는 분이고 만약 누구든지 하나님의 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 믿고 경배한다면, 그는 눈에 보이는 그 우상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만날 수도, 알 수도 없게 되며, 그로 인한 무지의 벽에 갇힌 어리석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실제 우상들을 만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나라들을 보세요. 그들의 삶이 얽매이고, 허무하고 참 어리석지 않습니까?
우상을 만든 이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저 신상이 서 있는 그곳에만 존재하게 될 뿐이며, 무소부재의 하나님일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가 만든 신상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 신상의 크기가 그가 믿는 신의 크기가 될 것이고, 제 아무리 크게 만들어 본들 결국 인간이 만든 생각 그 이상의 능력은 베풀 수 없습니다.
또 만일 짐승의 형상이라면 짐승보다 나은 권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며, 짐승이 지닌 기능 한 가지를 행 하는 수준으로 전락 하기에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이 되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2:18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2: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2:19 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따라서 당신의 어떤 신상이나 우상도 새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이야말로 이 세상 인간들에게 당신의 참 존재를 바로 알리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침, 우리는 참된 신앙이란 무엇이라고 정의 해볼 수 있을까요?
참된 신앙이란 우리 자신들이 잘못 만든 하나님의 우상과 신상을 끊임없이 깨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리스도인들이란 하나님의 신상을 만들지 않는 자들이 아닙니까? 우리 주위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가 하나님이라며 경배하는 하나님의 신상, 우상은 없지 않습니까? 질문 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우상은 깨 나가는 것이 쉽습니다. 하지만 깨나가기 어려운 것은 보이지 않는 우상입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우상은 보이는 우상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날마다 깨 나가야 할, 우리 자신이 잘못 빚은 하나님의 우상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하찮을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의 경험이나 인식의 능력으로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라고 단정해 버리는, 그리고 더 이상 하나님을 알려 하지 않고, 알고 있는 것만을 맹신하며 확신 속에 살아간다면, 그 굳어진 생각, 그로 인한 편향 된 믿음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특정한 공간이나 시간, 생각 속에 속에 묶어 두는 것 자체가 우상입니다.
이와 같이 형체가 없는 내적인 우상이 형체를 지닌 외적 우상보다 더 무서운 까닭은, 외적 우상은 만들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내적 우상은 우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서운 우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이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우상을 매일 구체적으로 깨 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보면 본래 무서운 우상숭배자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결코 하나님의 아들일 수 없다는 자신의 생각을 신봉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돌로 죽이는 일에 앞장 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지배하던 그 무서운 우상이 언제 깨져 나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을 때입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바울을 만난 주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깜짝 놀란 바울이 땅에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주여, 뉘시오니까?”
다시 바울의 귓전을 때리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강렬한 빛으로 다가오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과거의 특정한 공간이나 시간 속에서 자신의 경험이나 인식으로 빚어 두었던 하나님에 대한 내적 우상을 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돌로 쳐죽이던 바울이 기꺼이 돌을 맞으며 복음으로 하나 됨을 이루는 자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는 날 이른 새벽,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 드리기 위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당연히 그곳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기 떄문입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황급히 달려온 제자 베드로와 요한은 사실 확인만을 마친 뒤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만은 예수님의 무덤을 떠나지 못한 채 그 앞에서 통곡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몸을 구푸려 무덤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을 때, 예수님의 시체를 뉘었던 곳에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한 명은 머리 편에, 또 한 명은 발 편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리아를 본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그토록 슬피 울고 있는지를 묻자, 마리아는 사람들이 주님의 시신을 어디로 치워 버렸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사실대로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믿고 있었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등 뒤에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을 본문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20: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인기척을 느낀 마리아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놀랍게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토록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토록 예수님 때문에 통곡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고서도 예수님이시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지금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 즉 묘지 관리인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는 장면을 보았고, 장사 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죽은 시체로 계셔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 하셔서 지금 자신 앞에 나타나 대화를 하고 있는데도 그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예수님을 동산지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상식 속에만 계신 분이라면 우리에게 주님은 필요 없는 존재입니다. 결국 내 상식과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존재가 예수님이고, 그렇지 않을 때 예수님을 거부 할 것이기에 사실상 내 상식과 생각대로만 살면 그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순종을 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에서죠. 내 생각과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을 요구 하시니 나는 따를 수 없습니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믿음을 참된 믿음이라고 여기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우상을 숭배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16절에서 마리아를 부르십니다.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마리아야.”
이름을 부르시는 것이 주님의 특징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도 나를 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아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 백성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알아 봅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주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주님은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리아는 주님을 알아봅니다.
만일 동산지기라면 마리아의 이름을 알 리가 없겠죠.
주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신 그 순간에야,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반드시 시신으로 무덤 속에 누워 있어야만 한다는 우상이 마리아의 심중에서 깨져 나갔고 비로소 부활과 생명의 주님을 믿게 됩니다. 이는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의 이 음성이 바울의 우상을 깨뜨리게 됩니다.
이어서 하시는 주님 말씀은 17절에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지금은 육신을 가진 모습으로 함께 계시지만, 때가 되면 몸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승천하실 것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만약 이 말씀을 하시지 않았더라면, 막달라 마리아는 또 다른 우상숭배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육체를 가지신 예수님이 나타나시지 않는 한 그는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체를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자신을 포함한 이 우주를 품고 계신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막달라 마리아를 향하여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육신으로 부활 하신 주님을 붙잡고 있지 말아라, 아직은 아니지만 곧 아버지께로 올라갈 것이다. 즉 또 다른 ‘주님의 우상을 만들지 말아라’ 라고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이날 새벽이 막달라 마리아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날이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단순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 동안 막달라 마리아가 품고 있던 우상이 깨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전에 경험한 은혜의 순간에 멈추어 서서 그 경험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특정한 시간 속에 가두어 우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경험이 하나님의 또 다른 측면을 체험치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실패한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부정하고 절망하고만 있다면, 나는 하나님을 성공이라는 공간 속에 묶어 두고 있는 우상숭배자입니다.
그 우상으로 인해 실패의 현장 속에서 나와 함께하시며 오묘한 당신의 섭리를 이루어 가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느닷없이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절대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세상에 묶어 두려는 우상제조자입니다. 그 우상 까닭에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을 볼 수도, 얻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흘러가는 물이 멈추면 그 순간부터 물은 썩기 시작합니다. 시간 역시 멈춤 없이 흘러갑니다. 만약 누군가의 시간이 멈추었다면 그것은 그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만약 한순간 멈춘다면 그것은 신앙의 죽음이요 우상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영원한 빛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에 멈추어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한순간의 은혜에 집착하지 마세요. 과거의 은혜 안에 사로 잡혀있지 마세요.
예전에 체험한 은혜의 순간으로 되돌아가려고 하지도 마십시오. 그 모든 은혜의 순간을 새로운 은혜를 위한 발판으로, 징검다리로 삼으시고 날마다 더 크신 주님, 내 생각과 경험으로 담을 수 없는 주님을 오늘도 경험 하고 진리를 안에 거하며 주님을 만나세요.
우상을 깨뜨린 자에게 나타나는 증거는 참된 평안, 기쁨도, 소망, 자유함입니다. 날마다 어두움과 무지를 밝히는 빛으로, 영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참 된 신앙의 삶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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