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3:1-14, 예루살렘 성벽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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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 기도를 배웠습니다. 금식하고, 애통하고 눈물로 기도를 할 때 비전이 잉태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에게서 나타난 구체적인 비전은 무너진 성벽과 불타버린 성문과 훼파한 성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외형적인 집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크고 좋은 교회를 지으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십니까? 느헤미야가 성벽 건축을 비전으로 삼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동안 하나님이 받으신 수치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이런 외형적 성벽을 건축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개혁과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아무리 그것이 명분이 그럴듯 하게 좋아도,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내재도니 선한 동기나 목적 없다면, 그래서 하나님이 수치를 당하고 영광을 받지 못하신다면, 그것은 허무한 것입니다. 비록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이 당하신 수치를 다 물러가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진다면 이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느헤미야 3장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75명 이상 되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사람들의 이름 속에 중요한 메세지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자발적). 느헤미야는 성벽 건축을 소수의 그룹이나 어떤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았어요. 성전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 즉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공직자나 시민이나 여자나 남자나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이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손님처럼 살수 없습니다. 어떤 집에 손님으로 가면 어떻습니까? 가면 할 일도 없고 책임도 없고 마음이 편합니다. 하지만 책임이 없는 대신 권리도 없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 일꾼으로 살아가시길 원하십니다. 흐르는 역사 속에서 방관자, 손님이 아니라 이 시대 가운데 민족과 나라의 주인공으로 살기를 다짐하십시오. 내가 비록 여러모로 부족해도 그 가운데서도 쓰임받기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단지 결혼, 취업, 건강, 이런 것들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을 통해, 취업을 통해, 아이 출산, 건강을 통해 결국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최목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목표가 없어지면, 의미도 없고, 삶이 허무하고 공허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성벽을 건축 할 때 느헤미야의 탁월한 선택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수의 몇 사람이 교회를 운영하면 큰 일 납니다.
‘슈퍼맘’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풀 타임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균형잡힌 영양의 식사를 손수 만들고, 모든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고, 자녀의 축구 경기를 응원하고, 손수 세탁을 하고 다리미질을 하고, 장을 보고, 이웃들과 친밀한 우정을 나누며,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모든 물건을 제자리 정도하고도 여전히 남편과 낭만적이고 풍성한 관계를 향유하는 여성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점점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역시 힘과 능력에 있어 제한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만화의 초영웅처럼 슈퍼 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가 교회에서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몇몇의 사람등리 감당하기 힘든 일을 책임져 주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교회 사역은 모든 교인들의 사랑어린 관심과 즐거운 동참을 필요로 합니다. 이럴 때 교회는 건강해집니다.
느헤미야가 한 가지 계획과 성벽을 재건할 자재를 일부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지만, 혼자서 그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모든 가정들과 일꾼들이 필요했습니다. 교회 일도 그렇게 함께 해야 합니다.
저는 대기업 8년 근무하고, 신학을 하고 부목사 경험을 8년째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교회 중요한 결정의 문제에 있어서 분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행정적인 부분이 참 주먹구구식이다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교회 건축 영역였습니다.
개인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주위에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교인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를 추진하려면 건축의 필요성부터 예산을 검토하고 교인들의 설득이 필요한 사안 아닙니까? 중요한 문제일수록 더더욱 혼자 결정하지 않고, 위원회나 대표를 세워 함께 기도하면서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영자라는 마음으로, 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로합시다라는 말이 가장 무서운 말입니다.
또 주먹구국식인 부분은 담임목사를 선출하는 부분입니다. 소수가 결정하면 꼭 나중에 문제가 나옵니다.
요즘 건강한 교회는 청년 리더부터 장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질문을 만들고 결정과 의견에 참여시킵니다. 이렇게 일을 협력하며 투명하게 진행하게 되면, 어떤 결정에 있어서 다들 주인의식이 생기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선출된 목사님에 대해서는 더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에 안들어도 함께 결정하니 기도해주고, 따라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많은 일을 혼자서 감당하면 어떻습니까?
본인도 시험에 들게 되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 본인이 책임을 수습하기도 힘듭니다. 만약 자기주장이 강한 어떤 한명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꼭 문제가 생깁니다. 수습이 힘듭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일에 슈퍼맘은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 즉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여자나 남자나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이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하게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을 할때 함께 주인의식을 가지고 관심을 갖고 참여해고 협력하여 완성될 줄 믿습니다.
사람들의 이름 속에 숨겨진 두번째 메세지가 있습니다. 성벽을 건축할 때 가문을 동참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가문이 동참했다는 것은, 여자, 남자, 어린아이, 어른 모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드린 어린아처럼 하나님은 그것도 다 들어 쓰신다는 의미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각자 할 일을 하면서도 협동해서 일 잘 이루어졌습니다.
교회에서도 다툼과 불화가 일어납니다.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예배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면 좋겠는데, 인간이 한번 악해지면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툼을 일으키고 불화가 퍼져 나가지 않습니까? 보통 그런데 앞장서는 사람은 자기의가 강한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힘을 합하여 협력하는 데 있습니다. 힘센 사람, 약한 사람,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하는 사람, 휠체어를 타는 사람, 모두 다르지만 건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며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자발성에서 나옵니다. 누가 시켜서 하면 능력이 안 나타납니다. 오래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선 자발성이 중요합니다. 자발성과 협동은 느헤미야의 성벽 건축에서 발견되는 핵심입니다.
사람이 아주 많은 공동체라도, 그 안에 구성원들이 자발성과 협동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떠한 일도 잘 마무리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합지졸에 가까워집니다. 잡음이 많아집니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우리는 외톨이처럼, 흩어지는 모래알 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팀워크를 이루며 협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최근에 어떤 목사님이 SNS에 올린 글을 봤습니다. 목사님들은 호랑이처럼 혼자 지내지 말고, 사자처럼 협동하고 함께 지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사자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는 사진을 올리셨습니다.
저도 그 말을 듣고, 내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동기들이나 주위 목사님들 만나서 대화하거나 그런 기회가 적다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특히 부목사로서 목회를 하다보니, 아이를 키우고 그러다보니, 자발적으로 창조적으로 뭘 하기보다는 수동적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점점 다른 목사님들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는 일이 적습니다.
마침, 임영수목사님이 양평 모새골에서 목회자들을 위한 월요 세미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현재 목회하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래 목회를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좋은 만남과 연대의 자리일 것 같아, 사역자 세미나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월요일 오전 10—12시 까지 6월 오전에 세미나 듣고 식사하며 리프레쉬하고 오려고 합니다. 함께 현대 목회를 고민하고 함께 참여하는 여러 목사님들과 대화하고 연대하고 협력할 때, 목회 비전이 구체화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세번째로,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할 때 수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일을 시키지 않고 은사대로 시켰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습니다. 그 직업대로 은사대로 봉사하는 것이 현명하고 효과가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 건축을 단숨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은사를 잘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3장 1정를 보면 대제사장과 제사장이 나오고, 5절에서는 귀족들이 나옵니다. 8절을 보면 금장색 또는 은장색 전문가들과 쇠를 다루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물론 목수도 있고 성벽을 쌓는 전문가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은사를 사용해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은사를 주셨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썩게 됩니다. 그 은사를 교회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때 진가가 발휘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은사가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지 않습니까? 존재함 자체가 은사인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에서도 참 보기만 해도 따뜻하고 편안하고 잘 들어주고 그런 분이 있습니다. 그게 은사입니다.
존재가 은사인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보니 저는 닉부이치치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낫는데, 양팔이 없었습니다. 사타구니 쪽부터 양다리도 없었습니다. 사진을 보신적 있으실 것입니다.
그는 몇번이나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수영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주 재미있는 것은 그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설교하고 강연한 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닉이 청소년들 앞에 섰을 때 자살하려고 했던 아이들이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은데도 자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닉은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와중에도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는 은사가 얼마나 큽니까? 존재 자체가 은사입니다. 잘 버티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은사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은사가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 느헤미야는 성벽을 건축할 때 역할 분담을 했습니다. 느헤미야 3장을 보면 ‘그다음은’이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여기서 그 다음 이라는 말은 다음 단계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람 다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일정한 구역은 내가 맡고 그 다음 구역은 네가 맡고 그 다음 구역은 다른 사람이 맡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52일만에 성벽이 건축되었습니다.
구역을 나누지 않으면 일이 뒤죽박죽됩니다. 사람들이 겹쳐 서로 자신의 일을 비교하며 다투게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한 사람 한 사람 또는 가문의 숫자에 따라 지역을 분배해 준 것입니다.
3장 전체를 보면, 성벽의 구역을 나누어 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생각입니까?
그냥 집을 지으려고 했고 성벽을 지으려고 했으면 1-2년 걸릴 일을 다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하니까 52일 만에 성벽이 지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가장 놀란 사람들은 반대자들이었습니다. 성벽 을 짓는 일이 어리석다고 하며 하루아침에 지어질 것이 아니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성벽이 점차 완성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놀랐습니다.
여기서 3장 1절을 다시 보면, 제일 먼저 구역이 정해진 사람들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임을 알게 됩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를 용서케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벽 건축에서 이들이 제일 앞장섰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대제사장, 제사장이 솔선수범했다는 말입니다. 동시에, 이 일이 얼마나 고귀하고 거룩한 일인이 나타내었습니다.
12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
느헤미야 3장 12절을 보면 “딸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자들도 참여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이렇게 기쁘고 즐겁게 성벽 건축에 참여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발적이고 은사대로, 역할 분담을 해서 건축을 했기 때문에 성벽 건축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 사람과 가문에 따라서 성벽의 위치를 선정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5절입니다.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메시지 성경을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족들은 예외 였다. 그들은 자기들 공사 책임자와 함께 일하려 하지 않았고, 그런 일로 손을 드럽히는 것을 거절했다”
어떤 귀족들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부딪힌 몇 가지 반대는 노골적인 산발랏과 같은 사람의 반대도 있었지만, 귀족들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협조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수동적인 태도 아닙니까?
모두가 기쁘게 참여하는데, 어떤 사람은 뒷짐 지고 일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특권의식을 가지고 가호나 잡고 다녔습니다. 나는 이따위 일에 손에 흙묻히는 일을 하지 않아! 내가 누군데, 나는 너희들과 달라!
여러분, 어딜 가나, 소위말해 일 안하려는 ‘귀족’이 어디가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로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왜그렇습니까? 성경을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을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27절입니다.
느헤미야 3:27 (NKSV)
27그 다음에 이어지는 둘째 부분 곧 쑥 내민 큰 망대에서 오벨 성벽까지는, 드고아 사람들이 보수하였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낙심하거나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의 일, 선한 일을 하는데, 이런 ‘귀족의식’보다는 종의 의식이 필요합니다. 종의 태도와 마음 가짐이 하나님이 귀히 보시는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이 이땅에 그렇게 살고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 아주 소중한 이미지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입니다. 십자가 지시키 전에 제자들과 식사할 때, 예수님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아에 물을 받아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이셨고, 지저분한 제자들의 발을 정스러게 씻기셨습니다.
주님의 일에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느헤미야와 백성들과 같은 마음을 품고, 함께 협력하시는 우리가 되십시다.
3장을 읽다보면 느헤미야가 참 탁월한 전략가입니다.
느헤미야 3:14 (NKRV)
14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느헤미야 3:28 “28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멀리 가서 일하라고 하면 사람들이 불평했을 텐데, 자기 집 근처에서 일하도록 하니까, 자기 집도 돌보고 성벽도 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벽 복구에 온 백성이 힘을 합했습니다. 모든 은사가 동원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주 지혜로운 방법을 선택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에게도 축복이 되는 일을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모든 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체적으로 하나가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선한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방법으로 성벽을 건축했습니다. 저는 느헤미야가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악기가 참여하도록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반대하거나 수동적인 사람들이 있었지만, 선한 일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 각 사람이 모두 소중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역에서 감당해야할 고유하고 독특한 역할 이 있습니다. 나는 건강이 안 좋아, 물질이 없어, 직분이 없어. 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받은 은사대로 작은 일을 감당할 때 하나님이 영광받으십니다.
슈퍼 성도는 없습니다. 혼자 하면 쉽게 지칩니다. 시험에 듭니다. 함께 감당할 때 은혜가 더하고 더 효과적이고 아름답게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일을 할때 힘들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동적이기도 하고 선한 의도를 몰라줍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와 사회를 섬기겠다고 결단하며 또 그런 마음을 달라고 간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은사를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지켜 보시는 하나님. 한 분만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협력하며, 힘을 합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유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며 보여준 모습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교회가 동일한 마음으로 함께 협력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능력과 은사와 처지가 각자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하나 된 뜻으로 주님의 나라와 이름을 위해 힘을 합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선한 일에 지혜롭게 하시고, 느헤미야 처럼 하나님 안에서 전략적이고 지혜롭게 일하는 우리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