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6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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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자녀로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4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5 너희와 함께 설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 지파에서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요
6 시므온 지파에서는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요
7 유다 지파에서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8 잇사갈 지파에서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요
9 스불론 지파에서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요
10 요셉의 자손들 중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요 므낫세 지파에서는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요
11 베냐민 지파에서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요
12 단 지파에서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
13 아셀 지파에서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요
14 갓 지파에서는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요
15 납달리 지파에서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이니라 하시니
16 그들은 회중에서 부름을 받은 자요 그 조상 지파의 지휘관으로서 이스라엘 종족들의 우두머리라
17 모세와 아론이 지명된 이 사람들을 데리고
18 둘째 달 첫째 날에 온 회중을 모으니 그들이 각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인 남자의 이름을 자기 계통별로 신고하매
1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가 시내 광야에서 그들을 계수하였더라
야곱이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가나안 땅을 떠나 이집트로 이주하였고 430년이 지났을 때 200만명 이상의 큰 민족으로 번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보내시려 하신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그 언약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이스라엘 측의 맹세는 이렇다. “오직 여호와만을 유일한 하나님을 삼아, 여호와만을 전적으로 섬기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스라엘의 맹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면, 나는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아 항상 보호하고 지켜주며 복된 길로 인도해 주겠다”
이처럼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을 맺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세상의 모든 이방 백성들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게 그들에게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율례와 각종 법도와 다양한 규레들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 있게 “성막”을 만들게 하셨다. 여기까지가 출애굽기의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시내 광야에서 천막을 지어 1여년을 살게 되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오늘 함께 나눌 민수기이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시길 인구조사를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사람의 수를 세는 그런 인구조사가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바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자 인구조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것이 있는데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바로 가나안땅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1여년의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내 광야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하셨는가? 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1여년도안 이스라엘 백성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1여년 동안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잘 아는 것 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430여년동안 애굽에서 살았다. 200여년은 평안하게 살았고 그 이후부터는 노예의 삶을 살았다. 이 말은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으로써의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았음을 이야기 한다.
일본 선교 1주 2주만 다녀와도 나도 모르게 어떤 상황에서 ‘스미마셍’ 한다. 이게 그렇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나라의 문화가 들어오는 것이다. 1년을 해외에 살아가 와도 우리나라의 문화가 어색해진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430년동안 애굽에서 살았다. 그 말은 지금 출애굽한 사람들은 애굽에서 낳고 자라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애굽의 문화는 자신의 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지금의 모습 그대로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그들 스스로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동안 시내 광야에 머물며 그들이 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실 성막을 세웠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인 제사법과 예배 규례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다운 삶의 방식과 규칙을 배웠다. 그것이 무엇인가 레위기에 나오는 정결법, 절기, 도덕적 규례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삶속에서도 의미 없는 시간이란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찾으면 내가 왜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하나님을 통해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꼭!! 기억하길 바란다. 우리에게 있어서 견디기 힘든 시간일지라도 의미없는 시간은 없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이 믿어지면 우리에게 의미 없는 시간은 사라진다.
그리고 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세는 것이다.
그런데 인상적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각 지파에서 각 가문별로 지도자 한 사람씩을 부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 지파의 이름과 각 개인의 이름을 정확히 아시고 부르셨다. 이건 하나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놀라운 축복이자 은혜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단순히 무리로 대하지 않으시고 숫자로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름을 부르셨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인정하셨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이처럼 이름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이름을 부르신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을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에게 특별한 사명과 목적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맡기실 역할 사명이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도 주님이 부르셨다. 그리고 지금도 부르시고 계시다. 세상은 우리를 숫자로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정도의 가치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숫자로 평가받을 존재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평가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에 놀아나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다. 이 사실이 믿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와 목적은 무엇 이겠는가? 전도? 선교? 아니다. 그것은 그 다음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주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구약에서도 마찬가지다.
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2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처럼 우리를 부르신 이유와 목적은 우리를 어떻게 써먹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20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이 밖에서 문열어달라고 그렇게 두드리는 이유는 우리와 같이 밥먹기 위함이신 것이다. 다시말해 친밀함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직장인으로어느 대학 출신으로, 연봉을 얼마 받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바란다. 오늘도 이시간에도 우리를 주님은 자녀로 부르신다. 그 부르심에 기꺼이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꼭 살아가길 바란다. 그렇다면 주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가?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을 만들고 어떤 환경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그것이 어떤 상황일지라도 늘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의 일 하심을 바라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