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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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3:1-13

적용: 미움받을 용기

서론

예수님과 제자들이 성전에서 나올 때였습니다. 웅장한 성전 건물을 바라보며 한 제자가 감탄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이 얼마나 큰 돌이며 얼마나 웅장한 건물입니까!"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그 건물은 확실히 감탄을 자아낼 만했습니다. 헤롯 성전은 당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갈 만큼 웅장했습니다. 성전 영역은 축구장 35개를 합친 크기였고, 그 높이는 현대의 15층 건물에 맞먹었습니다. 그 돌들은 어떤 것은 길이가 12미터, 높이가 3미터, 너비가 4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로, 무게가 500톤이 넘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에 사용된 돌보다도 큰 규모였습니다.
눈부신 흰 대리석과 황금 장식으로 빛나는 이 성전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는 경외감과 자부심이 가득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그들의 정체성, 나아가 영원한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우리의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다'라는 메시지를 외치는 듯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함,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건물의 붕괴를 넘어 유대인들에게 있어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예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서기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완전히 파괴됨으로써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본론

1. 환난의 시작과 끝

주님의 충격적인 예언 이후,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더 알고 싶어했습니다. "언제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때에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우리 시대의 '성전'은 무엇입니까? 서울의 화려한 고층빌딩들, 강남의 번화가,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아파트들... 우리는 이것들을 바라보며 감탄합니다. "보십시오! 이 얼마나 위대한 발전입니까! 이 얼마나 찬란한 문명입니까!" 우리는 인간이 만든 것들에 경외심을 느끼고, 그것들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현대 한국인의 성전은 무엇입니까? 높은 학벌과 안정된 직장, 내 집 마련의 꿈, 자녀의 성공과 출세가 아닙니까? 우리는 이런 것들을 위해 밤낮으로 달리고, 이것들이 무너지면 우리의 인생도 무너질 것처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단호하게 울려 퍼집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전쟁과 분쟁, 자연재해, 팬데믹과 경제 위기...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근간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재난의 시작'일 뿐입니다. 시작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해가 떠오르면 반드시 지는 법이며, 겨울이 오면 반드시 봄이 찾아오는 법입니다. 모든 환난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어떤 고통도 영원하지 않으며, 이 땅의 모든 고통은 한시적입니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그 환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절망감 속에서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 반드시 끝이 온다는 것을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환난을 허용하실까요? 그것은 우리의 시선을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으로 돌리기 위함이 아닐까요? 언젠가는 무너질 성전에 기댄 신앙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기초한 신앙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외형적 화려함이 주는 일시적 안위가 아니라, 내면의 견고함이 가져오는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환난은 우리에게 일종의 경고음입니다. 마치 자동차의 엔진 경고등과 같습니다. 그 경고를 무시하면 더 큰 고장으로 이어지듯, 우리 인생과 신앙의 위기 신호를 무시하면 더 큰 영적 재앙을 맞게 됩니다. 환난은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이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계기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가치를 두는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의 기초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2. 미움받을 것을 예비하심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신 것이 자연재해나 전쟁이 아니라 그들이 받게 될 박해였다는 점입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위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달콤한 성공이나 번영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그분을 따름으로써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다면, 세상으로부터 미움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가치관은 이 세상의 가치관과 종종 충돌합니다. 정의와 진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면, 불편한 진실을 말하면, 세상은 우리를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완벽한 선과 사랑 그 자체였음에도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닮아간다면, 우리 또한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미움받는 이유입니다.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미움받는 것과, 우리의 잘못이나 부족함 때문에 미움받는 것은 다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이름, 그분의 가치, 그분의 진리 때문에 미움받을 때, 그것이 오히려 증거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3. 미움 가운데 주어지는 약속

주님은 제자들에게 미움받을 것을 예비하셨지만, 동시에 세 가지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첫째,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입니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이것은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는 약속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메시지보다도 넓게 전파되었습니다.
둘째, 성령께서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이는 우리가 진리를 위해 설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셋째,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는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궁극적인 약속입니다.

적용: 미움받을 용기

그렇다면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미움받을 용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란 무엇입니까? 미움받을 용기는 미워할 짓을 하면서 뻔뻔한 것이 아닙니다! 오만불손하게 행동하고, 무례하게 말하며, 사랑 없이 진리만을 내세우는 것은 미움받을 용기가 아니라 단지 미움받을 행동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미움받으신 이유는 그분이 오만했기 때문이 아니라 겸손한 가운데 진리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랑으로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세상은 그 진리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기 위해서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 하지만, 누가 보아도 미운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빛은 어둠을 드러내지만, 그 자체로는 따뜻함을 주고, 소금은 맛을 내지만 적당해야 합니다. 너무 짜면 음식을 망치듯, 사랑 없는 진리는 영혼을 상하게 합니다.
진정한 용기는 무엇입니까?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하여 비겁하게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분명 두려움이 있습니다. 거부당할 수 있고, 조롱받을 수 있고, 심지어 박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진리를 위해 서는 것, 그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입니까? 겉으로는 빛나지만 속은 공허한 사회가 아닙니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지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사회가 아닙니까?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사회가 아닙니까? 청년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중년들은 퇴직 후의 삶을 두려워하며, 노인들은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사회가 아닙니까? 성전의 화려함에 현혹된 제자들처럼, 우리도 보이는 성공과 번영에 현혹되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회는 상대적 진리가 판치는 사회입니다. "너에게는 그것이 진리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아니야"라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입니다.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가치관이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상에서, 성경적 진리를 절대적 기준으로 말하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 혐오와 차별로 낙인찍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예언자의 역할이 아닙니까? 모두가 편안함을 추구할 때, 불편한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예언자의 사명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때로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의 인기를 얻기 위해 진리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미움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미움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왜곡된 성 가치관이 우리 사회를 잠식할 때 침묵하겠습니까?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될 때 방관하겠습니까? 약자가 소외될 때 눈을 감겠습니까? 교회가 세속적 가치에 타협하라는 압력을 받을 때, 편안한 타협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어려울지라도 성경적 원칙을 지키겠습니까?
비겁한 침묵은 세상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앞에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지만, 결국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순종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진리를 위해 미움받으셨습니다. 사랑을 위해 미움받으셨습니다. 정의를 위해 미움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미움은 십자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습니다!
하지만 십자가 너머에는 부활이 있었습니다. 미움 너머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환난 너머에는 구원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가치관은 이전 어느 때보다 강하게 도전받고 있습니다. 낙태를 반대하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합니다. 성경적 가정관을 말하면 혐오 발언이라고 합니다. 절대 진리를 말하면 독선적이고 시대에 뒤처진다고 합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려 하면 사회통합을 방해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갖게 됩니다. 하나는 세상의 흐름에 편승하여 잠시 동안의 인기를 얻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미움받을 용기를 갖고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세상과 간음하면, 일시적으로 평안할지 모르나 결국 그 영혼을 잃게 됩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결론

마가복음 13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환난의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동시에 그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우리는 미움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미움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진실로 따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환난을 이기신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는 끝까지 견디는 자들의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미움받을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기가 아닌 진리를 추구하는 용기, 편안함이 아닌 의로움을 선택하는 용기, 세상의 칭찬이 아닌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는 용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미움받을 용기,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미움을 감수하고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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