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회복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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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난과 회복

본문: 사도행전 14장 19-20절

찬송: 384장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인생의 여정 중에 예상치 못한 시련의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건강했던 몸이 하루아침에 병상에 눕게 되는 순간, 열심히 가꾸던 농작물이 갑작스러운 폭우나 태풍에 망가지는 순간, 수고하고 노력한 것이 갑자가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 등 이런 순간들은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을 안겨줍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경험한 극적인 위기와 회복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적대자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은 것으로 여겨질정도로 심각한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제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을때, 바울은 다시 일어나 복음 전파의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위기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의 경험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위기와 회복의 의미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취약함>

바울이 직면했던 상황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19절은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라고 시작합니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심상치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디옥은 루스드라에서 약 225㎞나 떨어진 곳이고, 이고니온은 약 45㎞ 떨어진 곳입니다. 당시의 교통수단을 고려했을 때, 이들은 바울을 해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그 이상의 날을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루스드라까지 쫓아온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에 대한 그들의 적대감은 깊고 강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겨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선동에 의해 그들의 마음이 완전히 뒤바뀌어 바울을 돌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불안정한지를 보여줍니다.
본문은 이어서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바울에게 돌을 던진 것은 단순하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살해 의도를 가진 잔혹한 행동이었습니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19절의 ‘끌어 내치다’(쉬로(σύρω))라는 단어는 시신을 다루듯 질질 끌고 간다는 행동을 묘사합니다. 그들은 바울이 확실히 죽었다고 생각했고, 그의 시신을 성 밖으로 버리듯 끌고 갔습니다.
이 장면은 인간이란 존재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상기시켜줍니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열정적인 전도자였지만, 예상치 못한 돌 몇 개 앞에서 그의 생명은 위협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건강, 관계, 사업, 농사 심지어 신앙생활에서도 이와 같은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영적, 정서적, 신체적 쓰러짐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경제 상황의 변화나 예상치 못한 위기로 사업이 어려워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와같은 우리의 인생에 대하여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고난과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백처럼 우리의 삶은 온전히 우리의 통제 하에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현실입니다.

<제자들의 함께함과 기도의 능력>

위기의 순간에 바울 곁에는 제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본문 20절은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라고 말합니다. 매우 짧은 문장이지만, 바울과 함께 하고 있던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죽은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로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루스드라의 새로운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돌에 맞은 것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위험을 무릅쓰고 죽을줄로 생각한 바울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 교회 공동체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단순히 같은 건물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믿음의 가족입니다. 주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바울 주위에 모였을 때, 그곳에는 주님의 임재가 있었고, 그 임재 가운데는 회복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의 주변에 모여든 제자들이 무엇을 했을 지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루스드라의 날때부터 걷지 못한 그 앉은뱅이를 고치신 하나님께서 지금 역사하셔서 죽은 바울을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위기의 순간마다 기도로 대응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게 갇혔을 때도,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 12:5)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야고보서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상황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서로 돌봄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 주위에 둘러서서 함께 있어주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26 은 “만일…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만약 우리 주변에 누군가 영육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쓰러진 지체가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격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건네는 한 마디 위로의 말, 한 번의 방문, 한 번의 기도가 지금 힘들어 하는 그 지체에게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제 본문의 절정은 “바울이 일어나”라는 짧은 문장에 있습니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20절의 ‘일어나’(아나스타스(ἀναστὰς))라는 말은 사람이 앉아 있거나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것을 뛰어넘어 부활의 의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묘사할 때 항상 사용됩니다.
바울의 회복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기절했다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돌에 맞아 죽은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바울이 갑자기 일어난 것은 분명 하나님의 놀라운 개입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울이 일어난 후 취한 행동입니다. 20b절은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바로 그 성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이는 바울의 용기와 담대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튿날, 바울은 원래 계획했던 대로 다음 선교지인 더베로 떠났습니다.
바울의 이와같은 행동은 단순한 회복을 넘어선 완전한 회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육체적 상처를 치유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명감과 용기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바울은 그 위험한 경험을 한 후에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루어주신 일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에게도 큰 희망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보이더라도 다시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미가 선지자는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라고 선포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민족의 위기와 개인적 고난 속에서도 어두움이 마지막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돌에 맞아 쓰러졌을 때, 그 어둠은 일시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빛이 되셔서 죽음과 같은 어둠에서 그를 건져내셨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회복이 단순히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하고 성숙한 상태로 나아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후이 이 경험을 회상하며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위기가 오히려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온전히 드러나는 기회가 되는 것을 본문은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삶도 어떤 위기를 경험하든 하나님은 그 상황을 통해 우리를 더욱 깊은 신앙과 성숙함으로 인도하여 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의 문을 닫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경험을 통해 인생의 위기와 하나님의 회복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나 담대히 사명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위기도 마지막이 아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농부가 뿌리는 씨앗은 땅에 떨어져 죽는 것 같지만, 그것이 새 생명의 시작이 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넘어지더라도, “의인은 일곱 번 먼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잠 24:16)는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중앙교회가 ‘예수의 마음으로 품는 교회’로서 서로를 덥고 일으켜 세워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누군가 넘어질 때 함께 둘러서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믿음의 가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회복과 성장이 있는 복된 신앙생활을 하시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바울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어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회복시키시는 놀라운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바울을 일으키신 그 능력으로 우리 교회도 일으켜 주옵소서. 방금 우리가 함께 기도했던 것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성도들이 되게 하시고,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의 삶을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지금 고난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성도들에게 미가 선지자의 고백처럼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빛이 되실 것이라는 소망을 깊이 새겨주시고, 바울처럼 다시 일어나 더욱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걷게 하소서.
주님, 교회의 든든한 기둥 되는 남선교회를 축복하여 주시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로서 교회와 가정을 영적으로 지키는 믿음의 영웅들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섬김과 헌신을 통해 교회가 더욱 견고히 세워지게 하소서.
우리가 아무리 넘어지고 쓰러진다 해도, 바울을 일으키신 그 놀라운 은혜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날마다 진실한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우리의 구주이시며 회복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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