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이 함께 하는 바이블칼리지-갈라디아서 2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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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예수님을 믿으면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이루라고, 무언가를 해내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다. 우리가 뭔가를 이루고 나서 찾아오신 게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 얻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
이 모든 일은 성령님이 가능하게 하신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도 분명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1-5)
갈라디아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갈라디아서 3:1 (NKRV)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여기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눈 앞에 밝히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복음을 생생하게 누렸다는 뜻이다.
그랬던 그들이 은혜를 헛되이 여기고 율법 아래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바울 마음이 속상했을까?
인간이 율법을 잘 지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다.
그게 분명한데도 갈라디아 성도들은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준수하는 육신의 행위를 해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한다.
너무나 어리석은 일.
갈라디아서 3:3 (NKRV)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 성도들은 조건 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도 어리석게도 육신의 길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자기를 신뢰하려고 하고, 끊임없이 자격을 세워서 하나님 앞에 뭔가를 얻어 내려고 한다.
성령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성도는 그 어떤 조건도 충족시킬 수 없다.
성령님을 의지해야만 육체를 다스릴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성령님을 의지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한다.
성령님을 의지하면,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구원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령님이 믿음을 주신다.
#아브라함을 통한 믿음의 논증(갈 3:6-14)
신,구약 전체를 관통해서 일관적으로 강조하는 진리는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갈라디아서 3:6 (NKRV)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창세기의 15장에 나온 내용이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이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같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그 말씀을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의롭다고 하셨다.
그리고 약 20년이 지난 창세기의 17장에서, 아브람은 할례를 받는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그리고 율법은 약 400년 뒤에 모세를 통해 주어졌다.
순서가 어떻게 되는가?
믿음이 먼저고, 그 다음이 할례고, 그 다음이 율법이다. 거짓 교사들은 완전 거꾸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사기 치고 있는 것이다.
3장 17절에서 뭐라고 하는지 보자.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구약 성경도 언약을 믿을 때,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율법이나 할례를 행하여 자격, 조건, 행위가 있어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거짓 선생들은 예수님을 믿고,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 질 수 있다고 거짓말한다.
아브람은 할례를 행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을 믿고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
잘 기억합시다. 무엇이 먼저인가?
할례인가? 믿음인가?
갈라디아서 3:7 (NKRV)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그래서 7절을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라고 했다.
혈통이 유대인인지, 할례를 받았는지가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지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지를 결정하는 핵심이다.
믿는 성도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상관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갈라디아서 3:8 (NKRV)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의롭다 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과 열방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신다.
창세기의 15장에서부터 이방인들도 똑같은 믿음의 방식으로 의롭다 함을 받도록 목적하고 창세기의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그래서 모든 이방인과 유대인 누구든지 아브라함처럼 바르게 믿기만 하면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을 함께 받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 ‘믿음’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오해한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거냐면서 말이다.
절대 그런 뜻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룩하게 자기를 지키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종이 되어 섬길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율법 행위를 더하려고 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선행은 결코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정 받기 위해 하는 것이다.
공로를 쌓아 하나님 앞에서 남다른 존재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율법 아래 머물러 있는 자들이다. 성경은 이들이 저주 아래 있다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3:10 (NKRV)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의 요구를 행함으로 자격을 갖추고, 행실을 바르게 하여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인간의 도모는 실제적으로 사람들을 저주와 심판과 형벌 아래 있게 한다.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켜야만 의롭게 되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저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서만 살게 될 것이다. 그게 저주지 뭐겠는가?
율법을 어쩌다가 한두 가지 지킬 수는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끝없이 정죄 아래 ,심판과 저주 아래 머물게 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11 (NKRV)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 아무도 뭔가를 잘 지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율법과 약속(갈 3:15-29)
약속의 우선성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를 안고 태어났다. 지난 강의 때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중심성과 종교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어떤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수고스럽게 고생을 하고, 금욕적 삶을 살면서 종교적 열심이나 인간적 기여를 하며 거짓된 안정감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를 높인다.
이런 자들은 은혜로 값없이 주어진 의로움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그걸 약속해 주셨다! 그래서 기억해야 한다. 값없이 주어진 은혜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율법보다 우선된다.
갈라디아서 3:17 (NKRV)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계속 나오는 주제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430년 뒤에 생긴 율법이 고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율법보다 약속이 더 우선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이었는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창세기의 15장에서 뭐라 그러는가?
“너의 믿음을 의롭게 여겨주겠다. 너에게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해 주겠다.”라고 하신다.
그런데 이 약속이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말씀하신 게 아니라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고 칭한다.
그게 누구겠는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귀한 은혜의 약속을 아브람에게 주시고, 그리스도에게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것이다.
이렇게 주신 약속을 430년 뒤에 생긴 율법이 수정할 수 없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을 주시면서 이미 그리스도를 바라보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까지 바라보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까지 바라보신 영원한 약속이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폐하거나 더해질 수 없다.
2. 율법의 역할과 목적
이런 가르침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질문한다.
“그렇다면 율법은 대체 왜 필요합니까?”
<율법과 양심의 용도>
율법과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악하거나 나쁜 건 절대 아니다. 선하고 귀하지만 용법이 다르다.
갈라디아서 3:21 (NKRV)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고 하니까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이 둘 다 주셨다. 둘 다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왜곡하는 게 문제다.
죄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걸 용도에 맞게 사용하지 않고 왜곡시킨다.
율법과 양심의 바른 용도는 무엇인가?
갈라디아서 3:21–22 (NKRV)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율법과 양심은 거듭나기 전의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고 죄 아래에 가두어 놓는 역할을 한다.
율법과 양심을 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얼마나 죄 아래 있는지를 보게 하는 데 있다.
율법과 양심을 가지고 우리가 의로운 자인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주신 것이 아니다.
23-25절에서 더 자세하게 풀어보자.
갈라디아서 3:23–25 (NKRV)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믿음이 오기 전에’?
구약 성경에는 믿음이 없는 것 같이 이야기되지만 구약에도 믿음이 있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
다윗이나 수많은 인물들도 다 믿음으로 살았다.
구약에도 믿음이 있지만 예수님이 오시자 그 믿음의 경륜이 더 밝히 드러났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믿음이 오기 전에’=’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로 바꿀 수 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갇혀 있었다.
왜 갇혀 있었을까? 24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율법이 우리를 초등교사처럼 그리스도께 인도할 때까지 딱 가두어놓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초등교사를 ‘몽학선생’이라고 번역했다.
로마 사회에서 초등교사는 7-15세 나이의 어린아이들을 돕는 노예 교사를 말한다.
신분은 노예인데 선생이다.
선생이지만 학과목이나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다.
예절을 가르치고, 등하교 시 안전을 보호해 주는 선생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 그 초등교사는 필요가 없다.
율법이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오기 전까지는 사람들을 율법 아래 가두어 보호하지만, 예수께서 오시면 예수님께 데리고 가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율법과 양심은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약속이 얼마나 필요한지 인식시키는 기능을 한다.
3. 약속의 성취,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로 옷 입기>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으로 옷 입는 일이 일어난다.
갈라디아서 3:27 (NKRV)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된다. 그 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세례’이다.
세례를 받아야 연합되는 게 아니라 연합된 이후 상징적으로 받는 증표가 ‘세례’인 것이다.
순서를 잘 알아야 한다.
로마 시대에는 초등교사를 벗어나서 성인이 되면 성인식을 한다. 그 때 하는 예식이 성인이 입는 옷으로 바꿔 입는 것이다. 유년이 아니라 장년에게 합당한 옷을 입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율법의 초등교사를 떠나, 성인식에서 옷을 입는 것처럼 예수님을 옷 입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속은 여전히 죄가 있는데, 예수님으로 옷 입으니까 하나님이 우릴 보실 때 어떻게 보시겠는가?
예수님을 보는 것과 같이 보신다. 사랑스럽게 보신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하신 십자가 사건을 근거해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대하신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는가?
율법이겠는가? 할례인가? 나의 공로인가? 자격인가?
아니다. 오직 예수님이다!
이걸 깨닫게 되면 삶이 변한다.
갈라디아서를 받았던 갈라디아 지역 이방인들은 대부분 노예신분이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노예였는데 예수님을 믿고 노예의 옷을 버리고 예수님으로 옷 입었다.
삶이 변화됐다. 자신감이 넘치고 매력이 넘쳤다.
그래서 초대교회사를 보면, 많은 집 주인들이 자기가 고용한 노예를 보고 회심했다고 한다.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던 노예들의 변화에 강한 도전을 받고 자신들의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
그래서 이 구절이 성립된다.
갈라디아서 3:28 (NKRV)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돈이 얼마나 있든, 신분이 어떻든, 인종이 어떻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으로 옷 입게 되고, 하나님 앞에 다 존귀한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몸 담고 사는 세상은 계속 자격을 요구한다.
백화점 가면 VIP가 있고, VVIP도 있다.
계속 더 극심한 차별을 두려고 하고, 더 높은 기준과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다.
유치한 것이다.
실수로 돈 좀 번 거 가지고, 사람들을 차별하고 자격을 요구해선 안 된다.
초대교회 노예들은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마저 주인의 소유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교회에 와서 28절의 메세지를 듣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세상의 구조와 질서와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마주하게 되니까 자유함이 찾아온다.
나같이 자격 없는 사람을 예수님이 이유 없이 그저 사랑해주시다니, 감사가 터져나온다.
힘과 돈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의로움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자유함을 누리시길 축복한다.
#하갈과 사라,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약속으로 난 자(갈 4:21-5:1)
우리는 분명 예수님을 믿고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런데 다시 그 율법 아래로 기어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나 또한 그랬다.
갈라디아서 4:21 (NKRV)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바울은 이런 자들에게 ‘율법을 제대로 듣지 못하였느냐?’라고 호통친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 한번 더 설명해준다. 비유를 든다.
갈라디아서 4:22 (NKRV)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 누구일까?
여종인 하갈에게서 난 아들은 이스마엘, 자유 있는 여자인 사라에게서 난 아들은 이삭이다.
이 두 가지가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갈라디아서 4:24 (NKRV)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여종인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긴 했지만 신분이 종이었다. 그의 아들로 태어난 이스마엘도 자식이지만 종노릇하는 자로 살아갔다.
그런데 자유인인 사라로부터 난 이삭은 참 자유를 누리는 참 아들이었다.
왜 아브라함의 아들 두명으로 비유를 들었을까?
유대인들의 신앙에서 가장 큰 이슈는 아브라함의 혈통인지, 아닌지였다.
세례요한이 마태복음에서 이를 꼬집어 비판했던 적이 있다.
마태복음 3:9 (NKRV)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율법에 매여있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아들이어도 어머니가 누구냐에 따라 종과 자유자로 나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두 아들의 차이를 한 번 더 보자.
갈라디아서 4:23 (NKRV)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스마엘의 특징은 육체를 따라 났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아들을 얻기 위해 하갈에게로 들어간다. (여기서 횃불언약을 짚어주자.)
그래서 태어난 아들이 이스마엘이다.
어떤 기적도 어떤 은혜도 어떤 언약도 없다.
인간의 육체적인 열심만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말은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스스로 율법을 이행하려 하는 인간적인 열심만 내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은혜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늘 압박감에 시달리며 종노릇하고 눈치 보며 산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할례를 몸에 행하고, 이 표시를 하나님이 나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생각하실 것이다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아들이 아빠의 사랑을 증명해내기 위해 몸에 표시를 하는가?
아니다.
그냥 마음으로 안다. 믿어진다. 은혜를 안다. 그게 아들이다.
아빠가 날 사랑한다는 것을 표시나 증거로 남겨두려 하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는 어디에 있는가? 23절 하반절을 다시 보자.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약속을 믿고 낳아야 진짜 아들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29절에서 다시 설명한다.
갈라디아서 4:29 (NKRV)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23절에서 “육체를 따라 나는 것”과 “약속으로 나는 것”을 대조하고 있고, 29절에서는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대조하고 있다.
그러니까 “약속으로 말미암아 났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육체를 따라 나지 않고 성령을 따라 났다”는 말이 된다.
모든 성도는 어머니의 배로 한 번 태어나고, 다시 성령을 통해 한 번 더 태어난다. 모든 성도가 그렇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도 이 사실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영이신, 예수의 영이신, 아들의 영이신, 양자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계시지 않으면 그건 성도라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을 주실 것이라 약속하셨다.
하지만 100세인 아브라함과 90세인 사라를 통해 아이가 출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처음에는 인간적인 열심을 들여 여종인 하갈을 통해 아들이 태어나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아들 이삭을 그들 사이에 나게 하셨다.
이삭이 태어나는데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한 일이 있는가?
100세 할아버지와 90세 할머니가 아이를 낳는데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성령을 통해 사라가 이삭을 열달동안 배에 품고 출산했다.
성령이 아니시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일을 실제로 목격한 아브라함은 굳건한 믿음이 생겼다.
자신은 아무것도 못해도 성령께서 하실 거라는 걸.
그래서 이삭이 17세가 되던 해에 그럴 바치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다시 살려주실 것이고,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과 같이 자손을 주실 것이라 하신 약속을 믿을 수 있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뜯어 봐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질이나 조건이 없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찾아오셔서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시고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자유자의 아들, 사라의 아들, 약속을 믿는 자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어떠함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유의 아들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살아가며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성령님만! 예수님만 의지하시길 축복한다.
#생각해볼 질문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님이 나의 삶을 이끌어 주십니다. 나 스스로 무언가 공로를 쌓아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성령님을 의지하면, 내가 날마다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성령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