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구(삿16: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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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3월 12일 수요일
제목 : 간구
본문 : 사사기 16:17-22
1. 하나님의 구원, 사사로부터!
1) 범죄와 심판, 삼손의 등장!
2주전 우리는 김기락 목사님의 ‘사사 드보라' 설교를 통해 ‘사사 시대의 특징’을 들었습니다. 이를 간단히 복기하면, ‘범죄-심판-회개-구원’의 패턴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 사사 시대의 특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럼 심판에 괴로워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고, 이에 하나님은 사사를 세워 다시금 회복시키십니다.
삼손의 등장을 알리는 13장 1절을 보면 동일한 패턴이 또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죄의 중독성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죄를 범합니다. ‘범죄’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이어질 것은 ‘심판’ 입니다. 어떤 심판을 받습니까? 이들이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40년간 약탈과 능욕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이제 등장해야 할 순서는 ‘회개’와 ‘구원’ 입니다. 그렇게 보냄 받은 자가 바로 삼손 입니다.
2) 특별한 사람 삼손 : 1. 나실인
삼손은 굉장히 특별한 사람입니다. 먼저는 ‘나실인’ 이라는 특별함을 지녔습니다. 나실인이란, ‘자신을 구별해 하나님께 드린 사람’을 말합니다. 삼손과 비롯해 구약에 대표적인 인물로는 어머니 한나의 서언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사무엘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려진 이들은 삶 속에서 구별해 지켜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존재했습니다. 먼저는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부정한 것들로부터 자신의 육신을 구별해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했습니다. 둘째론 포도주나 포도즙, 또 민수기에는 ‘포도 자체를 금하라’고 기록합니다. 포도는 언제는 발효될 수 있기에 혹여나 그것을 먹어 취하여 실수할까 염려되어 금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론 머리에 삭도를 댈 수 없었습니다. 당시 문화 속 머리카락은 힘을 상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를 기르는 것은 ‘자신의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있음’을,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힘을 사용하겠다는’ 외적 상징으로 삭도를 댈 수 없었습니다.
3) 특별한 사람 삼손 : 2. 근수저
뿐만 아니라 삼손은 단연컨데 성경에서 가장 확실한 은사를 부여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은사입니까? 그는 ‘압도적인 힘’을 은사로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이들도 삼손하면 ‘힘’을 떠올릴 만큼 삼손의 힘이 확연한 은사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스겟 소리로, 성경은 내심 삼손이 받은 은사가 얼마나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가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우선 맨 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입니다. 맨 손은 고사하고 사자가 눈 앞에 나타나면 죽기 살기로 도망쳐야 하는게 정상인의 심리 아닙니까? 삼손은 순간 희열을 느꼈는지,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사자와 대면했고 또 찢어 죽입니다.
또 여우 300마리의 꼬리를 묶어 횃불로 던지기도 합니다. 혹 학자들은 자칼이 무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여우가 아닌 자칼이었을 것이다 말하는데, 여우나 자칼이나 300마리 꼬리를 묶는 것 자체가 비정상 아닙니까? 또 그걸 던집니다. 아무리 화가 나서 던졌다 해도 그걸 다 던질 힘이 어디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죽입니다. 천 명을 죽이는 동안 나귀 턱뼈가 안부러진 것이 신기하다 싶지만, 팩트는 천 명을 죽였다는 것이고, 또 죽인 사람이 천 명이지 실제로 싸운 사람은 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금수저, 은수저가 있다 하지만 삼손은 그야말로 근수저 아닙니까? 그런 삼손을 보며 이스라엘 백성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또 다른 사사를 보내셨다!’
2.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의 사람, 삼손
1) 시체를 가까이, 술 취한 삼손
그런데 왠걸요? 오히려 삼손이 이스라엘을 대표해 죄를 범하는 것 같습니다. 사자 시체에 벌 떼들이 꿀을 만들자, 그걸 삼손이 퍼 먹습니다. 분명 시체를 멀리해야 하는데, 이건 너무 가까운 것 아닙니까?
또 블레셋 사람들과 파티를 너무 즐깁니다. 특히 블레셋 사람들 파티에 술은 결코 빠질 수 없는 문화 이기에 아마도 삼손은 술 취하는 일도 굉장히 빈번했을 것입니다. 혹여나 발효될까 염려되어 포도 자체를 금해야 하는 이가 대놓고 술을 들이 붓습니다.
2) 사랑하는 여인에 눈 먼 삼손, 끝내 머리에 삭도마저 대다.
삼손은 머리에 삭도마저 댑니다. 삼손하면 들릴라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들릴라가 정말 삼손을 사랑했는진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삼손보단 돈을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삼손의 약점’을 알아내어 돈을 받는 하청을 받게 됩니다.
그녀가 묻습니다. ‘삼손! 어떻게 하면 당신을 결박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삼손이 대답합니다. ‘새활줄 일곱으로 날 묶는다면 난 힘이 약해집니다.’ 힘이 약해 집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 왜 날 희롱합니까! 어떻게 하면 결박할 수 있습니까?’ 이를 세 번 반복합니다. ‘새 밧줄’로도, ‘머리털 일곱가닥’ 으로도 힘이 약해지지 않자, 이제 들릴라는 말합니다. “당신, 정말 날 사랑합니까?”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 아닙니까? 잘못하지 않아도 마음을 찔리게 하는 멘트는 삼손에게도 낙심을 주었나 봅니다. 끝내 삼손은 진심을 말합니다. 17절,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진심을 말한 삼손은 이제 어떻게 됩니까?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붙잡히게 됩니다. 결박 당해 두 눈이 뽑히고 감옥에 갇혀 맷돌이나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본 블레셋은 꽤나 신이 났습니다. 20년을 한 사람 때문에 침공할 수 없었는데, 그 한 사람을 포박했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23절,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이들의 고백이 어떻습니까?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잡은 게 아닙니다. 자기들이 섬기던 다손 신이 넘겨주었다 말합니다. 이 무너진 한 사람 때문에 이제 하나님은 우습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삼손의 몰락을 곧 하나님의 몰락으로 해석해 버린 겁니다.
3) 삼손의 몰락 : 삼손의 삶에 하나님은 없고 나만 남았다.
그런데 삼손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버린 겁니까? 나실인으로, 사사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을텐데 어쩌다 몰락하게 된겁니까?
이유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삼손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삼손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 이름에 감격이 없습니다.
삼손에겐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진심을 말했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었습니다. 삼손은 힘이 머리카락으로부터 온다 말했지만, 사실 삼손의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겁니다. 14장 6절에선, 삼손이 사자를 죽일 때 그 힘이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여 주어진 것이라 기록합니다. 다시 말해, 삼손은 자신의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지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나귀 턱뼈로 천 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천 명을 죽였다!” 하나님이 일하신 것은 쏙 빼두고 그저 내 힘, 내 능력으로 죽였다고 자랑합니다.
이 모습, 너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조금만 잘 되면 내 힘이고, 내 능력입니다. 조금만 잘 풀리면 내가 조금 더 신경썼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기도 해서 이루어지면, 내가 기도해서 이루어진 거라고 말하는게 우리 아닙니까? 우리는 너무 연약한 존재라 틈만 나면 ‘나 중심’ 사상으로 살아갑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습니다. 또 사사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경건해야 했고, 또 누구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던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뭡니까? 삼손을 보며 어느 누가 나실인이라 말하고, 사사라 말할 수 있습니까?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우리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나를 둘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제가 딱 1년 사역을 쉬며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새벽에 일어나던 삶이 8시에 일어나 9시 예배를 드리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10시에 일어나 11시 예배를 드렸고, 그러다 11시에 일어나 조금 지각 하기도 하고, 그러다 오후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라인이라도 마음을 드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제 모습을 보며 사태가 심각해졌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겠다고 고백했지만, 저도 언제든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이런 제가 삼손을 나무랄 자격이 됩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삼손처럼 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3. 나는 소망을 잃었지만 하나님은 붙들고 계셨다.
1) 하나님의 붙드심 : 머리털이 다시 자라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그런 삼손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히브리서 11장 32-33절,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히브리서 저자는 삼손을 믿음의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낙망과 절망 가운데 갇힌 삼손은,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또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지켜 살아낼 수 있을까요?
먼저 그는 하나님의 붙드심을 보았습니다. 22절,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한 주에 평균 머리카락이 0.3cm 자란다 합니다. 한 달이면 약 1.2-1.5cm가 자랍니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을 알기 위해선 꽤나 많은 시간을 그는 조롱 당하며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꽤나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 생각의 끝은 좌절이 아니었습니다. 그 생각의 끝은 끝내 하나님이었습니다. ‘내가 소망을 잃어버렸을 때도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2) 여호와께 부르짖다 :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에, 이제 삼손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16장 28절,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소
‘주님!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당신의 이름을 모욕하는 저들을 공격하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백성을 죽이려 드는 저들을 나를 통해 심판하소서! 저는 어떤 것도 하나님께 요구할 자격 없다는 것도 압니다. 저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진 것도 압니다. 저 때문에 하나님의 수치를 당하고 있음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발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시옵소서. 제발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마지막 전투를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내 생명을 드립니다. 주님 지금 이곳에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그의 마지막 기도는, 그의 마지막 간구는 하나님 들으시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여느 사사들과 견주어도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삼손 이야기는 그가 기둥을 무너뜨려 살아생전 죽인 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삼손의 때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지 않습니다. 대신 결함이 너무나 많던 삼손, 그 한 사람의 부르짖음만이 등장합니다. 그는 절망, 나락, 타락, 암흑 그 속에서 나실인으로 실패한 것같고, 사사로서도 실패한 것 같아 보이지만, 염치 없고 면목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로 간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습니다.
4.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삼손 이야기는 실패한 사사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타락한 나실인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실패한 인생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사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지금 내 삶이 어렵더라도, 또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한 삶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우리의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아름답다 칭찬 받는 그러한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이 땅에 오직 + 온 맘 다해(후렴)
- 비록 내 삶이 실패처럼 느껴질지라도 여전히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이제는 눈을 들어 바라보게 하소서. 지금 당장은 실패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계획엔 실수가 없음에 확신하여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 되게 하소서.
- 자격 없는 내 삶을 삼손과 같이 믿음의 사람이라 칭찬하실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가 되길 소망합니다. 모세가 한 걸음 내딛어 요단강을 건넜듯, 우리도 주어진 삶 속에 한 걸음 더 하나님을 향해 내딛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간구해야 할 것을 간구하게 하시고, 아뢸 것은 전부 아뢰게 하소서.
2. 원바기
- 이 시간 우리 교회 너무나 많은 환우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질병들로 신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 이들이 속히 치료되길 원합니다. 주님 이들이 회복되어 나아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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