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마름, 어디에서 채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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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13–14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23–24 NKRV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결핍을 채우는데,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친구들 “밑빠진 독에 물 붇기”라는 속담을 알고 계신가요? 보통 이런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주로
내가 또는 누군가가 의미없는 것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용하게 되는데요.
우리 친구들 중에는 혹시 밑빠진 독에 물붇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나요?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가 밑빠진 독에 물 붇는 경우가 참 많은 거 알고 있나요? 정말 한 끗차이일 수 있는데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볼 때, 아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 아 그 때 그러지 말 걸 하는 시간들이 있는데
저같은 경우에는 어릴 때 게임에 빠져서 진짜 이게임 저게임 다 했거든요? 어느정도냐면 아직 출시도 안된 게임을 테스트하는걸 클로즈베타 테스트라고 해요. 그런거 찾아서 하고 그랬단 말이에요.
근데 뭔가 목적이 있어서 한 게 아니라, 사는게 너무 무료하고, 의미도 없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자니 허전하고 해서 시작했다가, 한 게임만 하니 질려서 다른 것 찾고 찾고 찾다가 어느 순간 저지경까지 왔던 경험이 있어요.
우리가 밑빠진 독에 물 붇는다고 느끼는 경우의 대부분은 정말 필요한 건 줄 알고 나한테 없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는데 뒤돌아보니 정말 의미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요.
성경에도 인생 전체를 밑빠진 독에 물 붇듯이 살다가 예수님을 만난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은 정말 나의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일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며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채우지 못하는 공허함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다.

오늘 말씀은 4장 전체를 다루는 말씀이에요.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요한복음 4:5–7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렀을 때에 야곱의 우물이라는 곳에 앉아계셨는데, 때가 여섯시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시간으로 여섯시는 우리 시간으로 정오를 말해요. 중동지방에서 정오는 가장 뜨거운 시간으로 아무도 다니지 않고 쉬는 시간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 시간에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옵니다. 당시에는 여자들이 함께 다니며 일을 했는데, 이 여인은 아무도 나오지 않는 가장 뜨거운 대낮에 홀로 나와 물을 긷는거에요.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이 놀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도 하지 않는데, 당신은 사마리아인이고, 여자인 저에게 물을 달라 하시나요?”
사마리아 인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인데,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라는 나라에게 멸망당한 후에 민족 혼합정책으로 인종이 섞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사람들은 참 유대인이 아니라고 차별했었죠.
그리고 또 고대사회에서 노인, 여인, 아이는 숫자에 넣지 않을 정도로 낮은 위치에 있었어요.
그만큼 차별받고, 소외되고, 심지어 여자들의 무리에서도 배척받아 홀로 물을 뜨러다니는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을 거시고 심지어 물을 달라고 하는거에요.
이 여인의 입장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거에요.
요한복음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이 누구인줄 이 여인이 알았다면 오히려 여자가 예수님께 구했을 거라고 하고 생수를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여자는 이렇게 말해요.
요한복음 4:11–12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여자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예수님은 물길을 그릇도 가지고 있지 않고 우물이 없는데 뜬금없이 물을 주시겠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었죠. 그리고 이 우물은 자신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평생을 의지한 우물인데 예수님이 이 우물을 선물해준 야곱보다 큰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이렇게 답해주시죠.
요한복음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물을 마시는 자들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이 말을 듣자 이렇게 이야기해요.
요한복음 4: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뭔가 이야기의 흐름이 ‘동문서답’ 같지 않아요?

우리의 진짜 필요를 아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여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하신 것 같은데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죠? 뭔가 핀트가 안맞는 느낌이지 않나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여인의 모습이 꼭 우리같지 않을까?
우리 그렇잖아요. 예수님께서는 지금 누구를 찾아왔죠? 가장 차별받고, 가장 소외되고, 심지어 같은 무리에서 조차 외면 받은 부족함과 어려움으로 가득한 한 여인을 찾아왔어요.
예수님은 오늘 우리처럼 부족함을 가지고,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한마디로 어디에 말은 못하지만 무언가 결핍되어서 그 허전함을 채우지 못해 살고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셨다는거에요.
예수님께서 더이상 허전함에, 부족함에, 어려움에 갈증을 느끼지 않게 해주시러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하지만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이렇게 질문하는거에요.
예수님이 야곱의 우물보다 큰가요? “와~! 그런 물이 있으면 저 주세요. 힘들게 물 길으러 오지 않게”
우리로 얘기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들, 약속들을 우리는 예배때마다 듣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보이는 나의 삶이 너무 큰거에요. 내가 의지하는 것들이 너무 큰거에요. 누군가는 친구가 너무 크고, 누군가는 진로를 준비하는 것이 너무 크고 누군가는 게임이 너무 크고 그런거죠.
나의 갈증, 허전함과 부족함을 채워주는 눈에 보이는 어떤 것에 집중하며 그게 더 크게 보이는거에요.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 이렇게 질문하게 되는거에요. 예수님이 내가 의지하는 것보다 큰건가?
그리고 이런 약속을 들을 때 사마리아 여인처럼 “와.. 그런게 정말 되면 좋겠네요. 그럼 힘들진 않을텐데, 허전하진 않을텐데..” 생각만 하는거죠.
와닿지가 않는거에요.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찾아와서 손을 내밀어주시고, 사랑한다 말씀해주시고, 너를 향한 수많은 축복과 약속을 보여주지만 왜냐면 예수님은 정말 나에 대해 안다고 확신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여인이 물을 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요한복음 4: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뜬금없이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는거죠. 여자는 너무 놀라서 이렇게 말했어요
요한복음 4:17–1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하죠. “나도 안다. 너에게는 다섯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 라고 말이에요.
여인은 이제서야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처음 여인이 대낮에 홀로 나왔던 일을 기억하시죠? 여인은 정말 부족함과 허전함이 많았던 사람이에요.
남편이 다섯이었다는 것은, 당시 여자들은 한 남편과 끝까지 사는 것을 중요시하게 여겼어요. 이건 지금 중동지방의 이슬람문화와도 같죠? 그런데 중요한건 남편이 죽거나 버림받을때가 문제에요.
여자의 잘못도 아니지만 당시 여자는 우리처럼 마음껏 직업을 선택하고 일을 할 수도 없어서 먹고사는 어려움이 생기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를 보호해줄 또 다른 누군가의 아내로 들어가게 되는데, 무려 다섯번이나 남편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심지어 지금 같이 사는 사람은 결혼이라는 보호장치를 해주지도 않고 그냥 데리고 있으니 얼마나 힘든 상황있었을까요? 그래서 이 여인은 주변으로 하여금 음란한 여자라는 오해를 받고, 차별받고 그런 삶을 살았을거에요.
여자는 정말 부족함과 어려움이 많은 상황속에서 끊임없이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이었던 거에요. 근데 그걸 지금 예수님께서 드러내시면서 다 알고 있다 말하시는거죠.
예수님은 처음부터 여인의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 문제가운데 자유를 주시기 위해 찾아오신거에요.
친구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한다.”라고 말하잖아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오늘 여인처럼, 말씀이 나랑 관련도 없게 느껴지고 그냥 허무맹랑한 소설같이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 나에게 이 말씀이 살아있는 것처럼 다가올 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계시구나, 나를 다 알고 계시구나 라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쉽게 말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는 것, 이제는 진짜 살아계시고, 내가 말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함과 필요가 있는데 그것마저도 알고 계시고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라는 거에요.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가장 좋은 방법

사랑하는 친구들, 말씀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하자,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해요.
요한복음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당시에는 성전 문화가 있었어요. 그래서 성전에서만 신을 만나고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죠.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여인에게 축복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거에요.
예배는 하나님을 마주하며 교제하고 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건데, 그 장소가 너무 먼거죠.
우리로 말하면, 하나님이 여전히 나랑은 멀리 계신 분같이 느껴진다는거에요.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 축복받으려면 죄도 지으면 안되고, 헌금도 잘해야하고 예배도 꼬박꼬박 나와야하는거 아니에요? 와 비슷한 거에요.
나의 일상은 하나님과 멀어요. 어떡하죠? 축복주시고 나를 이끄신다는 것은 이제 알겠는데, 어떻게 누리는 건지를 모르겠는거에요.
예수님은 그런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무슨 말이죠? 하나님은 멀지 않아. 어디서든지 하나님과 함께하며 교제하며, 예배! 할 수 있어. 약속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어. 라고 말하시는거에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해주세요.
요한복음 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는다고 하세요. 여기서 영은 하나님이라고 하세요. 쉽게 말하면 우리 안에 계시면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게 하시는 성령님을 말하는거에요.
성령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매 순간 하나님을 떠올리고,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을 말해요.
우리의 목마름을 채우는 가장 핵심이 무엇이냐면, 바로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사는거에요.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관계를 맺으며 사는거죠.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말씀을 읽고 말씀을 생각하며 실천하면서 하루를 사는 것,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을 떠올리며 사는 것,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에요.
그럴 때 무엇을 누린다고하죠?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채움으로, 더이상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몸부림은 치지만 여전히 외롭고 힘들고, 허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가 넘치고, 두려움을 이겨내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거에요.
예수님은 여러분이 의지하는 어떤 것보다 크신 분이세요.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는데,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서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으며 예배할 수 있어요.
우리가 매일 이렇게 예배하며 살 때,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될 거에요.
한 주간도 하나님과 한 발 더 가까워지고, 두려움과 허전함 공허함보다 감사와 기쁨을 누리는 우리 친구들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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