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6 사순절 둘째 주일 (막 10: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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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속여서 빼앗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하지 않았느냐?”
그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제자들은 그의 말씀에 놀랐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제자들은 더욱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눈여겨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씀드렸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말씀 해설
길 위에서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길’인 것이죠. 길과는 반대되는 공간은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은 머무는 곳인 반면에, 길은 지나가는 곳이죠. 길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곳이 아닙니다.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죠. 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하나의 여정으로 그립니다. 오늘 이야기는 그 여정 중에서 만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완벽한 사람
오늘 말씀에서 등장하는 이 한 사람의 등장은 이렇습니다. 이 사람은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 것 같습니까?
이 사람의 행동과 본문의 묘사를 통해 봐서는 긍정적인 인물인 것 같습니다. 달려와서 무릎을 꿇는 행위를 통해 이 사람의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을 향한 존경심도 느껴집니다. 거기에 더해 재산이 많은 부자였다고 말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마태복음에서는 ‘젊은 청년’이라고 말하고, 누가복음에서는 ‘지도자’라고 말합니다.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엘리트라는 말입니다.
또 예수님께 간절하게 ‘영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종교적 열심도 뛰어난 사람이며,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잘지켰던 도덕적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젊고, 돈도 많고, 지위도 있고,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열심까지 지닌, 한 마디로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세상의 시선에서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질문
예수님께서는 이 ‘영생’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속여서 빼앗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하지 않았느냐?”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이 내용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십계명의 내용들입니다. 십계명의 5계명부터 10계명까지의 내용이죠. ‘영생’을 얻기 위해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당시 유대교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식이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한 이야기를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 사람도 이런 내용을 몰랐을리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의 앞부분은 제외하고 뒷 부분만 말씀하셨다는 것은 조금 특이합니다. 왜 모든 계명을 다 지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뒤에 다섯 계명만 언급하셨을까요?
우리가 잘 알듯이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고, 5~10계명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율법 전체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요약한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계명의 뒷부분만 언급하셨다는 것은, 이웃 사랑에 대한 강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의 질문을 다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사람의 행위의 동기는 자신의 영생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모든 종교적 실천과 윤리적 행위도 모두 이러한 동기로 인해 행해지는 것이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지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너의 그 모든 행위들의 동기가 ‘너 자신의 영생인지’, ‘이웃에 대한 사랑’인지를 다시금 살펴보라는 암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못 알아들은 것이죠. 그러자 예수님은 더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자 이 사람은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고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말씀한신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림이었습니다. 물질이나 지위나 인성이나 윤리적으로도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사람이 부족했던 한 가지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요구하신 것은 문자적으로는 모든 소유였지만, 그 의미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였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라는 요청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너의 인생을 모두 바칠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래도 가진 것이 많으면, 그것을 포기하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 가진 것이 많으십니까? 없으십니까? 없으시다면 다행입니다.
길
오늘 이야기는 ‘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길을 떠나는 일입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서 안주하지 않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분이 가신 길로 걸어가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제자’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모두 그러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을 향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비록 노예였지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이집트를 떠나 앞길 한치 앞도 모르는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듯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길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부활도 있지만, 우리는 그 전에 십자가를 만나게 될 겁니다. 한 번은 죽어야 다시 부활합니다. 죽는다는 것은 이전의 나의 정체성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가 부자였든, 똑똑한 사람이었든 상관없이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그림
그럼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갈 때, 최종 종착지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가는데 그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우리가 그 나라에 대한 그림을 명확히 가지지 않으면 자칫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저는 예수님께서 어떤 하나님 나라를 그리고 계셨는지에 대해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배나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가 버린 것들을 백배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잘 보시면, 오는 세상에서 받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혹시 받으셨나요?
집하고 땅은 몰라도 여러분들 가족은 몇 배로 받으셨을 겁니다. 어떻게 받으셨나요? 옆에 보시면 새롭게 받은 가족들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우리가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그냥 호칭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짜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신 가족들입니다.
이 말씀도 자세히 보면 재밌는 점이 있습니다. 버리는 가족의 목록에는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백배로 받을 가족의 목록에는 잘 보시면 아버지가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아버지는 권력의 상징입니다. 교회는 하나님만이 아버지 되시는 공동체로입니다. 그 말은 이 공동체 안에서는 가부장적인 질서가 없는 평등한 가족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그리신 하나님 나라의 그림 중에 하나입니다.
또 이런 원리를 적용해본다면, 집과 땅을 백배로 받는다는 말도 이해가 됩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족은 모든 재산을 공유합니다. 모든 재산은 아버지의 것이고 구성원들은 필요에 따라 그것을 부여받습니다. 나의 집과 땅을 나만의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필요에 따라 공유한다면 우리는 가족을 백배로 받을 수 있듯이, 집과 땅도 백배로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이런 공동체를 만듭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제자들과 사람들이 모인 예루살렘 교회에 대해서 사도행전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성경전서 새번역 2장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예수님께서 그리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림이 조금 그려지지 않습니까?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그리셨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실천했습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가 그대로 할 수 있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그 정신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어떻게 실현 가능한 방향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지는 고민해봐야 할겁니다.
그런 우리의 진지한 고민들 속에서 예수님께서 그리신 하나님 나라의 그림이 우리의 마음 속에도 그려지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