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4 새벽기도회: 사무엘상 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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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찬송가 445장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로 부르시고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게 하심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범죄를 저지른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니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하루 하루 살아갈 때마다 저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저희도 따라 미워하여 죄를 짓지 않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저희를 결코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날마다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나아왔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는 이 시간이 되게 인도해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상 2:12-21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무엘상 2:12–21 NKRV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한 주의 마지막 금요일인 오늘도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잘 나오셨습니다. 오늘도 이 시간에 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함께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먼저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사무엘상 2장의 말씀으로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엘가나의 아들인 사무엘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무엘서는 의도적으로 각 가정의 아들들을 서로 비교, 대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과연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자 했을지 말씀을 통해 깨닫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행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2절부터 보시면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행실이 나쁘다”라고 번역된 이 말은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12절은 제일 먼저 “엘리의 아들들”이라고 하고, 그 다음 “벨리알의 아들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문자적으로 보면 사탄의 아들들이라고 할 수 있고, 사악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지성적으로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야다”라는 히브리어가 말하듯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는, 하나님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행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는커녕 사탄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홉니와 비느하스가 걷는 죄의 길은 하나님께 바칠 예물을 이들의 탐심으로 빼앗는 죄입니다. 13절부터 보시면 예배를 드릴 때의 관습이 제사를 드리고 나서 그 고기를 삶을 때 제사장의 종이 손에 세 살로 된 갈고리로 솥 안에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고기를 제사장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 먼저 제물을 드리고 나서 제사장이 자신의 몫을 챙겨야 하는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것을 반대로 행하였습니다. 15-16절을 보시면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바로 하나님의 몫을 먼저 드리기도 전에 그것을 가로채 자신의 몫으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기름을 태우기 전에” 자신의 몫을 챙기려고 하는데요. 원래 율법에 따르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피와 기름을 먹어서는 안됩니다. 피와 기름은 하나님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입니다. 이것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끊어질 것을 하나님께서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떻습니까?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고기를 취하려고 합니다. 제사장으로서 이 율법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특히나 제사를 집례해야 하는 제사장으로서 이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더더욱 큰 문제입니다. 이 율법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문제겠지만, 알았다면 아는데도 율법을 거스르는 것이니 더 큰 문제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얼마나 탐욕적이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려고 했는지, 16절 끝에서 자신에게 고기를 주지 않는다면 억지로 빼앗겠다면서 폭행으로 협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불경을 일삼고 이기심과 율법을 멸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는 사탄의 길로 당당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17절은 이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으로 하나님 앞에 죄가 심히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무엘서의 저자는 조금 더 확장된 의미도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를 엘리의 아들들, 벨리알의 아들들이라고 하였었습니다. 의도적으로 홉니와 비느하스가 엘리와 벨리알의 아들들이라고 말하면서 엘리와 벨리알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엘리는 29절에 가서 하나님께서 엘리를 책망하시면서 엘리의 죄를 지적하시는데요. 바로 엘리의 죄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아들들을 우선시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정리해서 말하면 엘리는 자신의 자녀를 우상숭배하였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 있어서 하지 말아야 할 범죄를 저질렀을 때 엘리는 이들의 잘못을 바로 잡거나, 본인이 제사장으로서 이들을 권징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후에 엘리가 홉니와 비느하스가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를 지었을 때 책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안 것도 백성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 것이며 아들들에게 미칠 범죄에 대한 대가를 걱정했을 뿐 제대로 책망하거나 권징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다하지도 않고, 아들들을 우상숭배하고 있는 이 엘리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하십니다. 또한 사무엘상 저자는 1장에서 시작부터 한나의 기도를 듣고 한나가 술 취한 것으로 생각한 엘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둔감한 사람인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를 돌보는 제사장이 고통 중에 신음하는 한 백성의 기도를 듣고 술 주정으로 어떻게 오인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영적으로 둔감하고, 제사장으로서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당연히 자녀에게도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없으며, 오히려 더 심한 불신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대는 사사 시대입니다. 사사 시대가 어떤 때입니까? 바로 불신앙이 판을 치고 있는 격동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제사장마저 타락하여 불신앙의 길로 걷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과 우리의 관점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고, 어둡기만 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직분자마저 타락한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가정을 세우시고, 그 가정에서 제대로 된 직분자부터 먼저 만들어가십니다. 그 가정은 바로 엘가나의 가정이었습니다.
엘가나는 1장 3절에 따르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였고, 1장 21절에 따르면 매년제와 서원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예배를 집례하는 제사장이 타락한 시대였지만, 레위인인 엘가나만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나 또한 임신하지 못하여 고통 중에 있을 때 나실인 서원을 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붙잡았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셔서 아들을 주시자 하나님을 즐거이 찬양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건한 가정에서 사무엘이 태어납니다.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엘리 아래에서 예배를 돕는 일을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 18절에서는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1절에서도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11절과 18절에서 말하면서 그 사이에 홉니와 비느하스의 불신앙에 대한 말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로 의도적으로 홉니와 비스하스, 그리고 사무엘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섬기지만,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버린 자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이 때의 사무엘은 아직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때였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3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실 때 사무엘은 엘리가 부르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무엘이 이렇게 신앙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믿음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19절에서 한나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엘가나와 함께 갈 때 작은 겉옷을 지어 사무엘에게 주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무엘이 입을 옷을 지어 주었다기보다는 제사장 직무에 관여한 레위 지파 사람이 입는 긴 겉옷을 매년 사무엘에게 준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장 직무를 위해 겉옷을 지어 한나가 사무엘에게 주는 이 말씀은 그냥 기록해놓은 것이 아니라 사무엘의 신앙이 믿음의 어머니인 한나로 인한 결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힘쓰는 엘가나 가정에게 하나님께서는 엘리를 통해 20절에서 사무엘 외에 다른 자녀를 주시는 복을 내리시고, 21절에서 무려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십니다. 구약에서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하나님의 복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아이를 한 명도 낳지 못하는 불임 상태였지만, 이제 상황은 뒤바뀌어 그녀에게 많은 자녀를 주시는 복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사무엘처럼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사무엘도 그녀에겐 엄청난 선물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였겠지만, 사무엘의 동생들은 더더욱 그녀에게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21절 끝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무엘은 예배를 섬기며 경건한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저자는 의도적으로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사무엘을 대조시키면서 이들이 속한 두 가정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한 가정은 불신앙의 길을 걸어 타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적으로 눈이 어두웠고, 자신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범죄를 저질러도 방관합니다. 그리고 아들들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훼손하며 오염시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건한 가정인 엘가나의 가정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고통 중에 하나님을 붙잡는 경건한 가정이며, 여기에서 태어난 아들인 사무엘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 앞에서 성장하는 참된 직분자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도 자신을 예배하러 오는 가정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복을 하나님께서는 베푸십니다. 경건한 가정은 복된 가정입니다. 그러나 불신앙의 길을 걷는 가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이렇게 대조시키면서 신앙인으로 성장하고, 직분자로 세워져가는 이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끄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3장에 가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버린 백성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신을 섬기는 사무엘에게만 직접 말씀하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버리고, 제사장마저 타락한 이 사사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가정을 세우시고, 그 가정에서 직분자를 만들어가시는 신실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무엘은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까지 이르는 온 이스라엘을 이끄는 선지자가 되며, 이것을 다윗이 이어받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세워지게 되는 아주 놀라운 역사가 펼쳐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에 복음이 있고, 우리 교회에 복음을 수호하는 직분자가 있는 것은 결코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서가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버리고, 심지어 제사장마저 타락한 이 이스라엘을 사무엘을 세우심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신 것처럼 지금도 우리 교회를 지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의 거룩성은 우리의 영역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영역입니다. 우리 교회도 얼마든지 우리의 죄로 인해 예배가 더렵혀지고, 직분자가 타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교회를 지키시는 것에 열심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교회가 이 당시의 이스라엘, 그리고 엘리의 가정처럼 우상숭배하고 직분자가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엘가나의 가정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자를 세우는 것을 위해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순간이라도 이것을 놓치게 된다면 우리는 조금씩 엇나가게 되어 이것이 당시에는 사소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큰 차이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우리 교회가 엇나가지 않도록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항상 복음 가운데 서있고, 다른 길로 엇나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면서 교회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교회가 우상숭배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직분자가 세워지는 참된 교회가 되는 복된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는 너무나 연약한 죄인이어서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한 직분자가 되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저희 교회가 항상 복음 가운데 있고, 바른 직분자를 세우는 교회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교회에서 경건한 가정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베푸신 것처럼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복된 교회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날마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가 이 교회에 가득하게 인도해주시옵소서.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입니다. 오늘 하루도 아무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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