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과 소금
Notes
Transcript
본문
본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러분, 세상에 소금이 없으면 어떨까요? 음식이 맛이 없겠죠. 그리고 바다에도 소금이 없으니까, 민물고기밖에 없겠네요. 그리고, 아마 음식들이 더 금방 썩을 거예요. 먹는 즐거움이 없어질 것 같아요.
또 빛이 없으면 어떨까요? 예 아무것도 안 보이겠죠? 아마 우리는 더듬거리면서 살아야 하고, 또, 지금처럼 기록하기 힘들고, 점자책을 만들어야 할 건데, 그것마저도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아마 발전이 많이 늦었을 것 같아요. “LOL”의 “리신”처럼 음파를 쏴서 위치를 파악해야 할 거예요.
아무튼,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없어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는 과연 세상에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까요? 옛날의 로마 시대의 교회 이야기를 하면서 알아봅시다.
당시에는 기독교는 비주류 종교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단이나 사이비 비슷한 정도였어요. 로마 입장에서도 기독교가 불편한 거예요. 왜냐하면, 국가적인 제의에 참석하지 않는 거예요. 국가적인 종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기근이 온다던가, 전쟁을 한다던가 할 때는 당시 사람들은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신에게 이기게 해달라고 온갖 아부를 했었어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꼭 빠지는 거예요. 평소에는 괜찮은데, 기근이 났다, 신께 제사드렸다, 그런데도 기근이 심해진다-> “저저저, 부정한 기독교 놈들이 신을 노하게 하셨다.” 만약 전쟁을 졌다면? :저저저, 기독교 놈들 때문이다.” 이러는 거예요. 국가 비상사태인데, 단합이 안 되는 것이죠.
또한, 정치적으로 선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온 나라 사람들이 신들에게 밉보여서 저주 받을까 봐 제사도 지내고 제물도 바치고 노력하는데,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 거예요. 오히려 신이 인간을 사랑한데요. 얼마나 사랑하면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내어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랑에 감사해서 신이 말하는 데로 이웃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기독교인들이 이웃을 사랑을 열심히 하니까 나라의 복지가 좋아졌어요.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기독교인들이 해버리니 “혹시 정치적 선동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결국에는 기독교인들을 향한 박해가 시작되었어요. 황제들은 자신들을 숭배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미웠어요. 그래서, 나라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독교인들에게 덮어씌우는 거예요. 큰 화제가 났을 때도,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기근이 생겼을 때도,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신이 노하셔서 그런다고 하는 거예요. 오늘날에도 그렇잖아요. 화가 나면 누군가에게 쏟아내야 하잖아요.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는 말도 나오잖아요. 옛날에도 그랬어요. 기독교인들을 싹 잡아다가 죽이는 일까지 벌어진 거예요. 이럴 때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a church in the world, 어떻게 읽죠? 맞아요. 세상 안의 교회, 교회가 세상 안으로 들어가버린 거예요. 세상인지 교회인지 알 수가 없어요. 살아남기 위해서 우상숭배도 하고, 예수님도 섬기고, 배신도 하고 다 해버리는 거예요.
두 번째, a church out of the world, 어떻게 읽죠? 맞아요. 세상 밖으로 나가버린 교회, 너무 힘드니까 다 도망가버린 거예요. 더 이상 복음을 전할 마음도 없고, 그냥 예수님 믿는 사람들끼리 숨어서 살아가는 거예요.
세 번째, a church into the world, 어떻게 읽죠? 맞아요.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교회, 세상과는 구별되어 있지만, 세상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를 해버리는 거예요. 또한 역병이 돌 때, 가족들 조차 버린 사람을 이 사람들이 가서 돌보아주는 거예요. 왜요?
오늘 본문 앞에 있는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마태복음 5장 11-12절 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아멘. 죽어도 천국이라는 거예요. 오히려 하늘의 상급이 크다는 거예요.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담대히 나아갔어요. 세상은 이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했어요. 눈을 보는데, 미쳐있어요. 눈빛이 이상해요.
“아니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시길래, 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소망을 잃지 않고,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에 걸릴까 봐 가족조차도 버리는 사람을 거두어서 보살펴주다니.. 도대체 뭐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버리는 거예요.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결국에는 로마에서 기독교 박해를 멈추게 되고 말았어요.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은, 세상과는 구별된 방법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 낸 거예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들이 한 착한 행실의 빛이 많은 사람들에게 비치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일이 일어난 거예요.
도전
도전
여러분, 오늘날에는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죽이지 않아요. 또,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우리를 힘들게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 요즘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싫어해요. 배우자 기피 1순위가 기독교인이라고 해요. 회사 취직할 때도 종교에 기독교인이라고 쓰면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와요. 왜 그럴까요?
아마 church into the world는 없고, church in the world와 church out of the world만 있어서 그러지 않을까요? 교회가 너무 세상 속으로 들어가 버려서, 세상과 별 다를 바가 없고, 너무 세상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로 하여금 들어올 수 없게 걸어 잠가버리고,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리지는 않았나요?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반에 있는 친구들과 똑같이, 욕하고, 거짓말하고, 음란한 영상 돌려보고, 약한 친구들 괴롭히고 그러지 않나요?
아니면,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꽁꽁 숨기고,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누가 왕따를 당하든, 아프든, 자살을 하든 외면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요?
여러분 그러한 모습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에요. 초대 교회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내가 조금 힘들어도, 옆에 있는 친구 도와주고, 왕따 당하는 친구 있으면 친구 해주고,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조금 손해 봐도 괜찮아요. 하나님이 다 갚아주실 거예요.
그러니, 우리 한 번뿐인 인생, 예수님 뜨겁게 믿고, 주님의 기쁨이 되고, 세상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