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갈 길을 간다(사순절 제2주) 눅 13:31~35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3 viewsNotes
Transcript
1. 들어가는 말
설교를 준비하면서 불현듯 한 편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여러분이 잘 아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입니다.
이 시에서 윤동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내가 갈 길을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야 한다고 믿었던 그 길은 또 어떤 길인가? 궁금해졌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을 배우고, 그 길에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그 길이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과 같은 길입니까? 그리고 그 길을 잘 가고 있습니까?
길을 바꾸는 것을, 우리 교회에서는 ‘회개한다’, 혹은 ‘회심한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길을 바꾼 적이 있습니까? 가던 길이 잘못된 길임을 깨닫고 얼른 돌아서서 바른 길로 가신 적이 있습니까? 혹시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그 길이 맞습니까?
2. 오해를 너머 사순절의 핵심으로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집중하고 그것을 배우고 고민하고 실행하는 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예수를 ‘따르는 것’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믿음’과 ‘따름’을 분리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머리의 동의’를 지나 ‘마음의 확신’을 너머 ‘몸의 실천’을 통해 살아내는 것까지 확장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말을 사후에 일어나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문제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말은 내가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말보다 훨씬 큽니다. 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뿐 아니라, 부분적이지만 그 나라를 살아내고 드러내는 것을 포함합니다. 구원은 사후세계만 말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는지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는 모습이 그 사람의 믿음을 반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예수 믿는 우리가 그분을 따라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음을 선포하고 드러내는 삶을 배우고 연습하는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3. 예수의 길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포함하고 있는 누가복음 13장 전체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9절에서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임박함을 전하셨습니다. 10~17절은 안식일에 등이 굽은 여인을 치유하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이미 임했음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이어서 18~21절에서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들려주셨는데, 이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는 비록 아주 작고 미약하게 시작하지만 계속 자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이미 시작되었음을, 그리고 언젠가는 풍성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2~30절에서는 좁은 문을 이야기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 그래서 장차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것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좁은 문을 통과하여 걷는 인생은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하게 열심히 종교 활동을 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걷는 길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 복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경고로 시작하여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눈으로 보여주셨고, 그 나라의 특징은 아주 작게 시작되지만, 계속 자란다는 것,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그럴듯한 종교 활동이 아니라, 그 좁은 문, 작은 겨자씨, 보이지 않는 약간의 누룩의 의미를 깨닫고 그 작은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좁은 문을 따라 좁은 길을 걷는 것이지 큰 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큰 길로 가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헤롯이 죽이려고 하니 이곳을 떠나라고 전했습니다(31). 헤롯으로 대표되는 힘과 권력으로 큰 길을 걷는 사람을 피하라는 말입니다. 헤롯을 피하여 이곳을 떠나라는 말은 동시에 헤롯과 그를 추종하거나 동조하는 사람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라는 것이며, 이는 예루살렘으로도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원래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은 유대 지역을 통치하던 헤롯의 궁전이 있던 곳이며 동시에 헤롯의 권력에 빌붙어 그 힘을 이용하여 종교적 권위를 독점했던 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주목하며 돈과 권력을 움켜쥐고 있던 세상 나라, 땅의 나라를 상징하는 곳으로 전락한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헤롯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마침내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죽을 것을 암시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32),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33) 그리고는 정치 권력의 중심지, 종교 권력의 심장부를 향하여, 거침없이 심판을 선포하십니다(35a). 마지막으로, 자기의 죽음, 부활, 그리고 영광스러운 재림을 암시하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35절).
예수님의 말씀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이며, 이것 때문에 죽임을 당하겠지만, 이 길을 계속 갈 것이며, 결국은 다시 오실 것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4. 바울의 길 : 빌립보서 3:17~4:1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삶(3) = 내게 유익하던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는 삶(7~8) = 가치의 전환, 목적의 전환 = 가던 길을 바꿈 = 진정한 회심 ; 신앙은 악세서리가 아니라, 삶의 전부를 거는 것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가는 삶(14) = 삶의 목적이 분명함.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14), 십자가의 원수의 길이 아니라(18), 십자가를 따르는 길, 땅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19),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삶(20) = 주님 안에 서라(4:1)
행 20:13~21:14에서 보여주는 바울의 모습: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전함
1) 두로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간정(21:1~6).
2) 가이사랴 빌립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또 다시 간청(21:7~14)
3)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예상하는 일, 그러나 바울은 가야 할 길을 감
4) 목적 : 하나님 나라를 전하기 위함 = 예수를 따르는 삶
5. 윤동주의 길 :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제 강점기, 독립을 위한 삶 =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삶 = 하나님이 주신 소명 = 예수를 따르는 삶
나의 상황에서 깨어진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곳, 소명의 자리를 찾는 삶,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가던 길을 돌이켜 예수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삶, 그곳이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이어도…
6. 오늘 내가 가야 할 길은?
우리는 모두 부름을 받고 이 땅에 왔습니다. 인생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과정입니다. 오늘 내가 가야 할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두려움 없이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공통의 언어로 말한다면, “하나님 나라 복음의 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개별적인 언어로 말한다면, 그것이 직업입니다. 그러므로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라고 부르신 ‘소명’입니다. 이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일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자신의 소명을 알고 그 소명을 따라 십자가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걸으셨던 그 주님을 따르는 일, 이것은 목회자나 선교사에게만 주어진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가 하는 직업/일을 통해서 주님이 걸으셨던 그 길,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학생들이 자기 적성을 발견하고 진로를 정하는 것에서 중요한 기준은, ‘그 일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드러낼까’입니다. 깨어진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일, 나의 직업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돕고, 깨어진 사람들을 삶을 회복시키고, 무너진 사람들의 삶을 일으켜 세워주느냐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분야에 소질이 있거나, 좋아하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었다면,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세상을 치유하는 일에 쓰임받는 것을 찾아 보십시오. 모든 직업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그 어떤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에 그 모든 직업을 통해서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자신의 꿈과 소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각자의 ‘소명’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따라 그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는 석교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공동체 기도
거짓과 죄악의 길을 걷던 우리에게 진리와 거룩한 길을 보여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사망의 길 멈추고 생명의 길로 돌아서게 하신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두려움 없이 걷겠습니다.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며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망가진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길을 따르겠습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돈과 권력, 증오와 배제,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길을 거부하겠습니다. 그럴듯한 이유를 앞세워 거짓과 속임수로 자기 이익을 확장시키려 분열을 일삼는 세상의 길에서 돌아서겠습니다. 평화의 길, 화해의 길, 용서의 길, 사랑의 길을 걷겠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나라 공의와 사랑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