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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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의료 서비스는 대도시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고 농어촌과 의료 취약 지역에선 여전히 의사의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 가운데 한 의사의 선택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도전을 줍니다. 전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였던 임경수씨입니다.
이분은 누구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4-5억원을 받을 수 있는 자리 대신 월급 300만원의 시골 의사로 헌신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단순히 의료행위를 넘어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섬기고 의료 사각지대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서울 토박이인 임경수 소장님이 근무하는 전북 정읍은 인프라가 부족하고 노령 인구 비율이 높고 의료 서비스 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는 은퇴 후에도 시골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면서 사학연급까지 끊기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분명한 비전 즉 사람을 살리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에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공중보건 체계를 새롭게 하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기독교 신앙인이라는 것은 모르지만, 기독교인들 가운데 이런 아름다고 선한 비전을 품고 무너진 의료현장, 일터과 사회 곳곳을 재건하는 헌신적인 사회인, 전문 직업인들이 많이 배출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묵상하는 느헤미야서의 느헤미야는 든든한 직장, 술맡은 권원으로서 직을 포기하고 중요하고 급한 일을 위해 헌신한 사람입니다. 직장에서 해고당한 것도 아니고, 더 큰 연봉을 위해서 직장을 옮긴 것도 아닙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을 품었습니다.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기 위해 나섰습니다.
1. 하나님의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 느헤미야의 한 사람의 기도. 느헤미야의 비전과 지혜는 절망하고 좌절하고 희망을 포기해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당면한 문제가 어렵고 쉽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쉬워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뜻이면 해야 합니다. 힘을 합하고 망므을 모으면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지난시간에 보았습니다.
불가능해 보여도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듯이 살아나지 않습니까? 생명이 돋고 부활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와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헌신과 협동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느헤미야 4:1–3 NKRV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여기보면 반대하고 조롱하는 세 무리가 나옵니다. 첫째는 사마리아 의 통치자였던 산발랏입니다. 아마 이 사람이 반대 세력의 주모자였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이었고 자기 통치 영역이 침범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는, 산발랏에 맞장구치는 사람, 암몬 사람 도비야입니다. 셋째는 아라비아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몹시 분노하고 분개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조롱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때 세상은 박수쳐 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뭐 하나 실수하면 벌떼같이 모여 들어 비난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렇지.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환영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사회 가운데 기독교 단체에서 얼마나 많은 좋은 일을 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사람 적대시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습니다. 혐오하고, 분노하는 사람은 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팔때 주위 사람들이 시기하고 빼앗어요, 예수님도 복음을 전할 때 율법주의자들의 분노와 훼방에 고생하셨지요. 좋은 일 한다고 박수치지 않습니다.
새로운 침묵기도 도입할 때 이동원 목사님이 보수신학자들의 비판이 많았지만 정착했습니다. 새로운 번역 성경을 내도 흠정역이 진짜고 새로운번역은 자유주의다 뉴제이지다 라고 비판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들은 잘 모릅니다. 새로운 걸 알려고 하지 않아요. 그냥 해온거 고수합니다.
분노하고 분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매우 감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선동에 잘 휘말립니다. 그들은 결코 차분하게 생각하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또 그들은 교만해서 자신이 누구보다도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항상 틀리고 내가 옳다는 논리를 고수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들이 화를 내고 분개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별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화를 내는 당사자는 그것이 굉장히 커다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화를 내거나 분개할 이유가 전혀 아닌데 말입니다.
2.다툼 대신 하나님께 아뢰라 자, 반대와 조롱과 비난 속에서 느헤미야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20세기 신학자 철학자 폴리히가 중요한 개념 하나가 있는데, “도전과 반응” (Challange and Response)입니다. 인간 존재와 신앙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이 개념을 주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도전과 반응”은 인간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와 위기를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반응을 통해 인간이 신앙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도전에 어떻게 응답할것인가? 느헤미야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놀랍게도 그는 자기를 조롱하고 반대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대응하거나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하나님께 고자질한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립하거나 논쟁하거나 싸우지 않았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잘 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보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고, 그 사람이 뒤로 넘어져서 머리가 깨지길 원하고 잘못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어요. 그 대신 하나님께 찾아가 무릎을 꿇고 모든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시작할 때도 기도했습니다. 지금 어려움을 겪을 때도 하나님에게 찾아가 이야기하고 있어요.
느헤미야 4:4–5 NKRV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 아주 단호했습니다. 조롱받고 비난받는 만큼 기도가 확실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지금 멸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욕이 그들에게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포로가 되어 남의 땅에 끌려가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죄를 덮지 말고 그들의 죄를 지우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얼굴에 욕을 퍼부었습니다.”
이런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면서, 우리는 약간의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기도하는 것은 좋은데, 이런 저주의 내용을 담은 기도를 해도 괜찮을까? 의문이 듭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지금 자신을 대적하는 이들에게 벌이 내려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시편 1편부터 150편까지 읽으면 이런 이야기가 계속나옵니다. 시편 기자들은 끝없는 설움과 비난 가운데서 힘겹게 살았어요. 원수를 갚아 달라는 기도를 탄원시라고 하는데, 그러한 탄원시가 시편에는 가득합니다. 예를 들어 시편 37편 7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시편 3:7 NKRV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뺨을 치고 이를 부러뜨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런 기도를 드렸겠습니까? 다음의 시편 구절들도 이러한 탄원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5:9–10 NKRV
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시편 31:18 NKRV
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고난에 처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인생에는 모함이 있고 욕설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고난도 병도 사라지고 인생의 모순들이 다 사라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숲 속에 심겨진 한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 바람과 태풍을 이겨 내야 하듯이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날씨 같아요. 봄이 올듯한데 매서운 바람이 붑니다. 심지어 차가운 비바람이 붑니다. 쌀쌀한 눈이 내립니다. 아슬아슬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연약할 때에는, 하나님이 이런저런 응답을 해 주십니다. 우리 믿음 이 성장할 때는 시련과 고난 속에 내버려 두십니다. 철을 담금질 하듯이 말입니다.
어려움과 억울함,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믿음이 성장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로 살아가는것입니다. 목회자로 부름받아도 직분을 받아도 만사 오케이가 아닙니다. 그냥 직분자, 목회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려는 사람은 직분에 상관없이 모두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련과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제자됨의 본질이 그런 훈련과 자기부인가운데 성장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자격증이 아니잖아요.
그걸깨닫고 훈련 잘 통과해야 합니다. 모든 주님의 일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를 뒤흔들어도, 누가 나를 상처줘도 기쁨으로 이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상처받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왜 상처를 받을까요?
어떤 목사님이 말합니다. 누가 상처를 주면 “노 땡큐”하면 되는데, 웰컴 하니까 상처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처를 줘도 무시하면 그 상처를 튕겨나갑니다. 그러나 상처를 묵상하면 더 깊은 고통이 느껴집니다.
총회 분쟁 조정 관련 세미나를 수강한적이 있어요. 대부분의 분쟁의 가장 현실적이고 대부분의 전략은 무시입니다. 맞대응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두는 것이예요.
시편에 나오는 탄원시를 봤는데, 특이한 점이 있어요. ‘왜 시편 기자들이 이토록 저주를 하고 복수해 달라고 했을까?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드리 뒤끝이 있어서? 그 이유는 자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를 배신하고 욕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를 향한 수모는 참을 만 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당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면 하나님의 사람들을 못 참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이 복수를 위해 기도했어요. 악인들을 무찔러 달라, 악인들의 이를 부셔 달라, 먼지처럼 사라지게 해 달라 기도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대적하고 무시하고 욕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자기 권위, 자존심, 명예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고 하나님의 주권이 무시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께 기도 후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악한 자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세등등해졌어요.
느헤미야 4:6–8 NKRV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자,그런데 보십시오. 우리가 악한 자들의 게시등등함을 주목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일을 주목해 봅시다.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하나되었을 때, 전략적으로 성 쌓는 것을 구분 짓고 은사에 따라 역할 분담을 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성벽이 순식간에 반이나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계획을 세워 보십시오. 불가능에 도전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려움 속에서도 순식간에 절반이 이루어집니다.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내 마음에 안 되는 것이지, 하나님께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모든 불가능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기적이 만들어집니다. 믿음의 사람의 일생입니다.
3.기도와 영적 전쟁 사이에서
성벽 재건 공사가 벌써 반 이상이나 진행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무서운 속도입니다. 결과적으로 성벽을 다시 세운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나요? 한쪽에선 공격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멈출 수없었습니다. 다같이 9절 말씀읽겠습니다.
느헤미야 4:9 NKRV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여기 이스라엘 백성드릐 행동이 아주 중요합니다. 두 가지를 선택했어요.
한편으로는 기도하고, 또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 성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막아 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가는 자세입니다.
은혜받았고 예수믿었다고 기도원에서 살면 될까요? 세상에서 가족을 돌보고 사회에서 일도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기도만 하면 될까요? 누가 이세상을 일끌어 갑니까?
반대로, 기도하지 않고 세상일만 하면 우리의 믿음은 바닥을 칠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직장, 우리가 쉬는 가정,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깨끗해지고 살기 좋아지도록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임하게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신 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관행과 관습대로 살아가서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느헤미야가 되어서 여러분이 있는 현장에서 좋은 것은 유지하되, 잘못된 관행은 고치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이 시대에 맞는 일과 선한 일을 창조해야 합니다. 구약학자 월터부르그만이 강조하는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해석의 중요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파트너입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시작하셨고 인간은 그 창조의 과정에서 하나님과 함께 협력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파트너로서 변화와 발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세상을 더 나은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책임을 지닌 존재입니다.
우리의 직장이 선교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선교사님들을 돕는 일하고 싶다고 하시는분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이 돈 많이 벌든지 안 벌든지 직장 선교사로 부름받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무너진 곳에 반듯한 벽돌 한 장 한장 쌓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살다간 이 시대에 내가 하는 일이 벽돌 한장을 빼는 일인가 아니면 벽돌 한장 반듯하게 놓은 일인가 세우는 일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 영광 을 드러내고 올리는 일 하시는 일터 선교사 다 되시길 바랍니다.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의 공격을 받았어요. 그 때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를 했어요. 손을 높이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 군대가 이겼어요. 벌 서듯 손을 들고 있는 것이 모세의 역할입니다.
지금 교회의 역할은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온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서 싸울 때 승리하다라고, 악에게 지지 말라고, 반대자들의 위협에 굴복하지 말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젊은 군사들과 모아서 아말렉 군대와 싸웠어요. 여기서 전쟁의 운명이 엇갈립니다. 기도하면 전쟁에 승리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전쟁에 패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전쟁 늘 이 두사이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4.원망과 불평이라는 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했고, 경기병을 세워 횃불을 들고 성벽을 지켰습니다. 반대하는 외부 세력은 그렇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치면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내부에서 일어난느 공격과 불열과 갈등이었습니다.
느헤미야 4:10 NKRV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원망과 불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공입니다.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3일도 채 지나지 않아 물이 없다고 불평했어요. 한 달도 안 됐는데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어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도 마음 속에는 원망과 불평이 늘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김없이 이스라엘 백성들 내부에 불평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할일은 아직도 많은데 일꾼들이 힘이 빠져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따고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느헤미야 4:11 NKRV
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원수들이 자신들 무리 가운데 몰래 들어와 자신들을 죽이고 일을 중단시킬 거라는 협박을 했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협박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협박을 해도 끄떡이지 않습니다. 태풍이 불고 폭풍이 치고 아무리 우리 집이 쓸려 내려간다 하더라도 믿음이 있는 사람은 ‘더 좋은 집을 주시겠지’ 좋은 것 주시겠지 믿음이 있습니다. 소망을 놓지 낳습니다.
느헤미야 4:12 NKRV
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원수들 가까이 사는 유다 사람들도 자기들에게 와서 열 번씩이나 사방에서 치려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역시 백성들의 귀에 협박 소리가 크게 들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겁에 질려 쪼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가졌던 믿음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기적을 만드는 재료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병을 낫는 것도, 구원을 받는 것도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역시 무서운 것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입니다. 먼저 내부에 있는 사람들끼리 결속을 잘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를 반대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은 소문을 크게 부풀려 말합니다. 그래서 소문이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위기의 때에 마귀가 유혹하는 대로 실망하고 절망하고 애통해하고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기도하며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와야 합니다.
이사야 43:18–19 NKRV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막이라는 곳은 아무리 길을 내도 모래 바람이 한번 불면 다 없어집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빛으로 오셨고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 안에 빛이 오고 생명이 옵니다. 사순절 동안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묵상하면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다시 믿음의 도약을 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도하고, 한편으로는 파수꾼이 되어 재건한 성벽을 지키는 느헤미야처럼 우리도 한편으로는 정의의 사도가 되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용서와 사랑의 사도가 되야 할 것입니다. 패배자가 되지 말고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 없는 자가 아니라 믿음 있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앞에 반대자들과 훼방꾼들이 나타나 인생을 흔들어 놓는다면 하나님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반대자들의 음모를 막아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내 안에 그런 낙망과 불평의 불신앙의 요소들이 있다면, 감사와 비전이 회복되기를 기도합시다. 나의 일을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새 일을 행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일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통해 영광받으시도록 해달라고 간구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느헤미야처럼 무너진 세상의 곳곳을 믿음으로 세우시는 기적의 주인공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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