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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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
성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아는가? 너무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솝우화이다. 최근에 다시 핑크퐁을 통해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거의 20년 만에 보는 것 같다.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다. 여름에 베짱이와 개미가 있었는데 나무 위에서 베짱이가 무엇을 연주하며 띵가띵가 노는가? 베짱이가 기타를 치면서 베짱~ 베짱~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놀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서는 누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는가? 개미가 힘들게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덧 겨울이 찾아오고 여름에 겨울을 준비하지 않았던 베짱이는 눈 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춥고, 배고픈 상태로 돌아다녔다. 그때 멀리서 개미의 집이 따뜻하게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것을 보게 된다. 곧바로 베짱이는 개미의 집에 찾아서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개미야, 먹을 것 좀 나눠주겠니? 제발.” 나는 개미가 거절하여서 결국 베짱이는 굶어서 죽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씨 착한 개미는 “어서와~ 우리집에 먹을 것이 많아” 하면서 들어오게 해준다. 베짱이는 따뜻한 난로 앞에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그러면서 베짱이는 개미에게 “개미야, 너를 놀려서 미안해 내가 어리석었어” 개미의 대답은 “내년엔 함께 일하자”라고 말했다. 역시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 그렇게 베짱이는 그제야 놀기만 하고 개미를 놀렸던 것을 뉘우쳤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이야기는 끝난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몰랐다. 구글에 ‘개미와 베짱이 재해석’이라는 것을 잠깐 보았는데, 다음 해가 되어서 또 베짱이는 띵가띵가 놀았다고 한다. 그 해 겨울에 다시 올 줄 알았는데, 오질 않아 걱정된 개미는 베짱이를 찾아다녔는데 주변에 물어보니까 스키장에 갔다는 웃긴 이야기도 있었다. 이솝우화는 BC 6세기에 그리스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읽은 잠언은 BC 7-10세기에 지어졌다. 그러면 어느 이야기가 더 먼저 역사에서 등장하는가? 그렇다. 잠언이 훨씬 100년 전에 지어진 이야기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잠언을 쓴 솔로몬 할아버지가 마치 늦잠자고 있는 우리에게 등짝을 때리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전도사님이 가끔 곤충을 다루는 생물 유튜버를 본다. 거기서 개미의 생태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개미나 꿀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왕개미와 여왕벌이 있다. 군집생활하는 개미나 벌은 뭔가 여왕이라고 해서 지휘체계가 있는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어쩌면 여왕벌이나 여왕개미가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유를 보아하니, 여왕벌과 여왕개미가 하는 일은 딱 한가지이다. 알을 낳는 것이 그들의 평생의 일이다. 만약에 더이상 알을 낳지 못하게 되면 일개미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쫒겨나는 신세가 되어 쓸쓸하게 버려져 죽게 된다. 결국 개미들의 가장 서열이 높은 개미는 우리가 길바닥에서 돌아다니며 보는 일개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밌는 것은 개미들은 누군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서열이나 명령없이 그들 스스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여름에 일을 하여 가을에 양식을 모아 겨울을 버틸 수 있다고 오늘 잠언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그렇게 식량을 모으는 것은 개미들이 게으르지 않고 성실하게 했는지 보라는 것이다. 단순히 개미 혼자 잘 살기 위해서 이렇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살려면 개미가 열심히 일해야 공동체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그러니 솔로몬 할아버지는 언제까지 누워있을래? 언제까지 침대 밖은 위험하다면서 디비 잘 것인지 마치 “으이구, 으이구 인간아!”하시는 것 같다. 여기서 “좀더 자자”라고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공부해야할 수업시간에 공부는 안하고 엎드려서 자는 것과 같다. 미래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계획도 없이 안일하게 있다가 여러분의 삶에서 가난이 마치 강도 같이 군사와 같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강도나 전쟁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전포고를 들으면 이미 준비하기엔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이다. 강도는 집을 털러올 때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여러분이 공부를 하기 싫다면, 여러분이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자하는 무언가 구체적인 계획과 준비가 있으면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안해도 된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는 사람들은 학생의 본분으로써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 공부이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미래에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데 공부도 하기 싫다는 것은 “가난아, 나는 열려있으니 언제든 들어와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공부가 아닌 다른 예체능이나 어떤 무언가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그 길을 성실하게 준비하시고,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친구들은 반드시 공부를 최선을 다하기 소망한다. 이런 친구들이 있을 수 있다.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가? 자,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교회를 안 다니는데 열심히 공부한 친구와 교회는 열심히 다니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공부를 안하는 사람 중에 누가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은가? 그렇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다. 성실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굳이 기도를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누가 책임지고 살아야하는가? 본인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누가 인생을 책임져주시는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삶에 반드시 함께하심으로 가장 좋은 길로, 선하신 길로 인도해주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쁨과 평안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어떤 전도사님이 공부는 안하고 열심히 기도하시는 분이 계셨다고 한다. 그래서 기말고사 때 시험지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답은 주님이 아십니다”, 그러나 교수님의 답은 이러했다. “그래요, 주님은 다 아시지만 전도사님은 모르잖아요” 그렇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공부 열심히 안 했는데도 좋은 대학 갔다고 자랑한다면 그것만큼 창피한 것이 어디있겠는가? 공부를 열심히 안했는데, 좋은 대학을 간 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안타까운 일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에 갈 실력이 없는데, 말도 안되게 서울대를 간다면 과연 수업은 잘 따라올 수 있을 것이며 과에서 꼴등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공부든 다이어트든 기술이든 실력을 키우려면 다들 각자의 분야에서 탑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신 앞에 주어진 일에 ‘꾸준히,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라는 말을 한다. 오늘 역사상 가장 지혜롭기로 유명한 솔로몬 할아버지도 우리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지함과 더불어 꾸준히 성실함으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아름답게 쓰임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도바울도 우리에게 성실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2절에 보게 되면 종들에게 권면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때 시대나 지금 시대나 공통점이 있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 대다수인가? 일을 시킴받는 사람이 대다수인가? 그렇다. 어느 가게나 회사든지 사장님보다 직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대다수이다. 보게 되면 직원들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충 시간만 때우고 월급을 받으려고 하는 월급 루팡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사장님이 볼 때만 열심히하고, 눈에 안보이면 휴대폰하거나 구석진 곳에서 몰래 쉬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여러분이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주변에 있으면 열심히 했다가 안계실 때 바로 휴대폰을 들어 유튜브보고 대충 시간을 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22절에 누구를 두려워하라고 하는가? 사람이 아니라 “주”를 두려워하라고 한다. “주”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래서 23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누구에게 하듯 하라고 하는가? 하나님께 하듯 하라고 한다. 왜인가?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로 인해 오늘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한 사람, 한 사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눈에 보실 수 있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어느 공간에 있어도 하나님은 다 보시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나 혼자라고 생각한 그런 공간에 어디서든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함부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어쩌면 하나님이 나를 감시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게 된다. 그렇다.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내가 열심히 한 것을 알아봐주지 못하더라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큰 위로가 되는 이야기이다. 더 나아가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불의를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억하셔서 그에 합당한 보응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예쁜가 잘생겼는가 그것과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니 묵묵하게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대게 내가 한 일을 알아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예수님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내가 한 일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있을 때는 열심히하고 없으면 대충 일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지 않아도 꾸준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하게 열심히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할 때, 그 순간에 혼자 있다고 생각한 그곳에 누가 계시는가? 우리 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하여 억울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골로새서 말씀에서는 사람에게 하듯 말고, 하나님께 하듯 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 전도사님이 왜 계속 성실하라고 강조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신 분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함께 읽기 원한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언의 말씀을 통하여 성실을 요구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하나님이 가장 성실하기 때문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모든 자연 만물을 통하여 우리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공기와 물과 자연을 허락하셨고,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고 다스리시고 보호하시고 끊임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지옥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도 없는 곳을 말한다. 여러분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물과 공기도 하나도 없는 곳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주시기 위해 계속해서 지금도 주무시지도 않고 계속해서 창조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단순히 이 세계를 만드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누리는 것도 하나님이 오늘날까지도 보존하신 것 또한 만드신 것이라는 기억하기 소망한다. 그것을 우리는 ‘창조 섭리’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부 하나님과 함께 창조의 일을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으로 보내심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구원의 일을 이루셨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닌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가 구원의 길로 온전히 가도록 끊임없이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동일하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함께 창조의 일을 함께하시며 여러분이 구원의 길을 온전히 갈 수 있도록 이끌어가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구원역사가 여러분의 구원 역사가 되도록 적용시켜주시는 분이 우리 성령 하나님이시다. 여러분이 성경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가르쳐주시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은 졸지도 쉬지도 않으시고 지금까지도 여러분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성실하신 삼위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그 성실한 성품을 닮아가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도 성실하신 삼위의 하나님을 닮아갑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최고의 성적을 바라는 것은 부모님의 욕심이지만, 부모님이 공부하라는 것은 공부하지 않으면 불행할 확률이 너무나 높아지기 때문에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중요한 성품 중 하나가 성실이다. 그것을 위해서 여러분이 성실함의 첫걸음이 학교에서 지각하지 않도록 훈련하는 것이고, 공부라는 학업을 성실히 하여서 성인이 되어서도 맡겨진 일들을 시간을 지키며 성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배와 봉사하며 섬기는 일을 성실히 할 때, 우리 공동체가 더 풍성하게 많은 것들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찬양팀이 성실하지 않으면 이렇게 함께 즐겁게 찬양을 못했을 것이다. 방송팀이 성실하지 않았으면 찬양팀은 아예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전도사님이 성실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지도 가르치지도 못하게 된다. 나의 성실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러니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겨우겨우 하는 것이 아니라 개미들처럼 스스로 해야할 일을 성실히 하라. 그리하여 우리 꿈사땅 모두가 삼위 하나님처럼 성실한 사람으로 자라나 하나님께, 사람들에게 어딜가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