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으로

고린도후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1-2
“하나님의 뜻으로”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2025. 3. 17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하나님의 뜻으로”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고린도후서가 시작되는데요. 제가 고린도전서를 준비하느라 힘이 들어서 고린도후서를 본래 안 하려고 그랬어요. 다른 성경을 하려고 했는데, 기왕에 시작한 거 고린도후서까지 끝마치자 라는 마음이 들어서 고린도후서를 새벽에 설교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고린도전서를 처음 설교할 때,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들에 대해서 설명을 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바울이 다른 교회에는 많아봐야 편지를 두 통 보냈다고 한다면, 고린도에는 최소 네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만큼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죠. 편지를 네 통이나 보내야 할 정도로.
    그런데 이 네 통의 편지 중에서 현재는 두 통만 남아있고, 두 통은 사라지고 없어요. 이 편지들을 편의상 고린도A서, 고린도B서, 고린도C서, 고린도D서 라고 분류를 합니다. 이 중에서 고린도A서하고 고린도C서는 지금은 남아있지 않아요. 썩어서 없어졌든지, 분실됐든지, 초대교회 때 다 사라졌어요.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편지가 고린도B서와 고린도D서인데, 이것들이 바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섭니다. 고린도B서가 고린도전서이고, 고린도D서가 고린도후섭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떠나서 본국으로 돌아갈 때,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바울이 듣게 됐어요. 그래서 급히 고린도A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잘 해결이 안 됐어요. 그래서 나중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두 번째로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전서죠. 
    이 고린도전서를 디모데에게 직접 전달하라고 시켰어요. 바울이 가면 좋은데, 지금 에베소에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려서 에베소 사역에 집중하느라고 도저히 고린도로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디모데를 대신 보낸 겁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고린도전서를 들고 가서 편지를 보여주고, 한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교회를 케어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디모데가 갔는데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침내 바울이 직접 고린도로 가게 되는 겁니다. 
    본래 바울은 여행 계획이 있었어요. 고린도전서 16장 5절부터 9절 말씀까지를 보면, 바울이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다가 오순절 뒤에 마게도냐에 갔다가 고린도로 가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계획이 나중에 변경됐어요. 어떻게 변경됐는가 하면, 고린도를 먼저 갔다가 마게도냐로 가고, 거기서 다시 고린도로 돌아온다는 계획으로 변경됐습니다. 왜 이렇게 변경했는지, 그 이유는 몰라요. 어쨌거나 계획을 변경했어요. 이 내용이 고린도후서 1장 15절 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15절, 16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5절에 뭐라고 그랬어요?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마게도냐가 아니라 먼저 너희에게 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뒤에 마게도냐 갔다가 다시 또 고린도로 가려고 한 겁니다. 이것이 변경된 계획이에요.
    그런데 이 계획이 실행이 안 됐어요. 왜 실행이 안 됐느냐? 디모데가 교회를 케어하는데 실패하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를 믿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디모데가 아무 것도 못하고 돌아온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울이 모든 계획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급히 고린도로 달려갑니다. 이제는 내가 가야만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바울이 모든 계획을 다 제쳐주고 직접 가요.
    자, 바울이 직접 갔어요. 그러면 어떻게 됐을까요? 문제가 해결됐을까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교인들이 마음이 완악해져서 바울을 대적하고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서로간에 너무나 큰 상처만 남겨놨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두번째 고린도 방문이었어요. 첫번째 방문 때 고린도교회를 개척했고, 그 뒤에 방문을 못하고 있다고 계획에 없던 방문을 하게 됐는데, 이 두번째 방문이 서로간에 깊은 상처만 남기고 끝났습니다.
    이 방문에 대한 기록이 고린도후서 2장 1절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절에 보니까,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바울이 근심 중에 방문해서 서로간에 상처만 남게 된 것을 후회하면서 다시는 내가 근심 중에 방문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상처만 받고 다시 에베소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고린도교회를 내버려둘 수 있습니까? 어떻게든 교회를 고쳐야죠.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편지를 씁니다. 세번째 편지, 고린도C서를 써요. 이 편지는 지금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 우리가 알 수가 없어요.
    다만 그 편지의 내용이 대략 어떤 내용이었을지는 짐작을 해볼 수가 있는데요. 아마도 바울이 방금 교회를 방문했을 때, 앞장서서 바울을 대적하고 바울의 권위에 도전한 주동자를 권징 조치 하라고 아주 혹독하게 책망하는 말로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편지를 보통 “혹독한 편지” 혹은 “눈물의 편지”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편지를 써서 보내자마자 후회합니다. 왜냐면 너무 심한 말로 써서, 교인들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될 것 같은 거예요. 또 권징조치 하라고 한 그 사람에게도 미안하고. 그래서 편지를 보내놓고 후회했어요. 이 내용이 고린도후서 7장 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괜히 편지를 보내가지고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한다는 겁니다. 이때 편지를 누가 전달했는가 하면, 디도가 했어요. 디도가 이 혹독한 편지, 고린도C서를 들고 고린도로 갔습니다. 
    그동안에 바울은 깊이 후회하면서 에베소에서 사역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서 에베소에서 난리가 나요. 바울 때문에 에베소 시민들이 우상을 사지 않으니까, 우상을 만드는 업자들이 바울을 잡아 죽이려고 한 겁니다. 이 난리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바울이 살 소망까지 끊어질 지경이었다고 그래요. 오늘 본문 밑에 8절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밑에 고린도후서 1장 8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아멘.
    일찌기 바울이 에베소에서 문제가 발생될 것을 예상하고 오순절까지만 에베소에 머물려고 했었는데, 예상보다 더 큰 폭동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그보다 훨씬 빨리 에베소를 떠나게 됐습니다. 이때 얼마나 바울이 낙심이 됐는지,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고백을 합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바울이 얼마나 낙심하고 좌절했는지, 우리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서 마게도냐로 갑니다. 그런데 마게도냐에 가기 전에 먼저 드로아에 들려요. 디도가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면 드로아 항구로 올 거라고 예상을 한 겁니다. 그래서 디도를 기다리기 위해서 드로아로 간 거예요. 그런데 디도가 오지 않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혼자 마게도냐로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게도냐에서 디도를 만납니다.
    이때 바울이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요? 과연 디도가 어떤 소식을 가져올까? 디모데처럼 실패한 소식을 가져올까? 교회가 여전히 나를 대적하고, 많은 문제 가운데 있을까? 떨리는 심정으로 디도의 소식을 기다렸을 겁니다.
    여러분, 디도가 어떤 소식을 가져왔을까요? 그 소식의 내용이 고린도후서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6절, 7절. 고린도후서 7장 6절, 7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일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아멘.
    디도가 굉장히 기쁜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바울이 보낸 세번째 편지, 혹독한 편지가 바울의 걱정과는 다르게, 교회에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겁니다. 바울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고, 또 심각한 몇 가지 문제들이 해결될 조짐이 보인다는 거예요. 이 소식이 바울을 기쁘게 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6절에서 바울이 뭐라고 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셨다.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문제가 풀릴까? 아하, 이것은 하나님이 해결하신 거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신 거구나. 바울이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곧바로 기쁨에 겨워서 다시 한번 편지를 씁니다. 네번째 편지. 이것이 바로 고린도후섭니다. 그런데 기쁨 속에서만 쓴 것은 아니에요. 이 편지에는 바울의 눈물도 들어있고, 바울의 고뇌의 흔적들도 들어있습니다. 기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교회에 대한 걱정과 고민들이 가득해요. 
    무엇보다도, 고린도교회에 여전히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의심이 남아 있었거든요. 바울은 이 고린도후서를 통해서 그 의심을 해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이라고 시작을 하죠.
    내가 사도가 된 것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을 가장 먼저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교회를 세운 것도 하나님의 뜻이에요. 또 그 뒤에 일어난 모든 일들도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느 것 하나 우연히 된 일이 없어요. 모두가 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겁니다.
    바울은 자기 뜻대로 계획을 세웠었지만,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 바울의 계획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고난으로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로, 낙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예상치 못한 위로와 기쁨을 바울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고린도후서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도 우리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낙심 될 때가 많아요. 그러나 바로 거기에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슬픔이 기쁨이 되고, 눈물이 웃음이 되고, 절망이 소망이 되는 역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소망의 끈을 놓지 마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