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밭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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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13:1–9 NKRV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우리는 현재 탈기독교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서구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미 교회를 떠났으며, 우리나라도 그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때, 지금 이 시대 속에 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일들이 무엇인지를 잘 분별하여, 함께 그 일에 온 삶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마치 서기 313년 이전의 시대, 즉 초대교회 시대 때의 시대적 정황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토대하여, 주님을 따르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교도들이 그들의 말과 행동과 삶을 보고 교회 공동체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은 우리가 현재 우리 상황에 대해 낙담하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교회로 세워지는 정말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 공동체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주의 이름과 주의 나라를 위하여 회복되고 세워져야 합니다.
저는 오늘 마태복음 13장의 예수님의 비유, 그 중에서도 특별히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를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에 대해 나누기 원합니다.
네 가지 땅에 대한 해석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자세를 땅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1) 길가
첫번째는 길가입니다.
보통 길가는 땅이 아주 단단하고 굳은 땅입니다.
굳은 땅, 길 위에 떨어진 씨앗은 땅 속으로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새들의 먹이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새가 이것을 먹으면 그 씨앗이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해석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Matthew 13:19 NKRV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길가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가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금새 악한 자, 사탄이 와서 그 말씀을 잊게 만듭니다.
이 길가와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성경의 조금 위로 이동해보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리를 모아놓으시고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을 두고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여쭈어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Matthew 13:11–14 NKRV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여기서 제자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고, 보는 자들이었으며, 깨닫는 자들이었지만,
다른 이들은 없는 자들이었고, 보지 못하는 자들이며, 깨닫지도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 두 부류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 중 하나는 자세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온 삶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Matthew 4:18–20 NKRV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자신들의 생계를 내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말이 예수님 따르려면 생계를 다 내려두고 따라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물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니
그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내가 너를 부른 그 사명대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들은 그 말씀에 모든 것을 걸고 순종했습니다.
물론 베드로를 포함한 열두 제자들은 훈련 받고, 다뤄져야 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자들이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더 깊이 깨닫기 위해서 예수님께 묻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해주시면, 그 비유를 설명해달라고 예수님께 더 다가가는 자들입니다. 말씀에 반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배우고 깨닫고, 더 깊이 알게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무리들은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깨달으려 하지 않고, 천국 말씀을 듣고도 집에 그냥 돌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저항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바리새인들이나 종교 지도자들도 이에 해당하겠지만,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쉽게 떠나버렸던 사람들도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2) 돌밭과 가시덤불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돌밭의 흙이 깊지 않아 쉽게 뿌리가 내리지 못해 금방 말라버리고,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은 가시 때문에 씨앗이 잘 자라지 못하고 말라버립니다.
돌밭과 가시떨기가 의미하는 것은 사실 한가지 입니다.
자신의 전 존재를 다 걸고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반드시 주님보다 더 우선하는 우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이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처음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은 아멘으로 화답했을 것이며, 주님 뜻대로 살리라 결단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때문에 대가지불이 요구되면,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버리는 것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상황들과 환경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합리적인 이유를 핑계로 하나님 말씀을 버립니다.
대표적인 것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상황 판단이 아주 빨랐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포함한 열두명의 정탐꾼들은 각 지파를 대표할 만한 리더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똑똑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며, 아주 빠르게 계산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지해서, 무모한 결정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니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함께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열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뜻보다 자신들의 안위가 더 소중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 중심적이었고, 열명의 정탐꾼들은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평소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자세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신의 전부를 드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기준은 아주 높습니다.
우리의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부자 청년 이야기입니다.
Mark 10:17–22 NKRV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님은 부자 청년을 미워하셔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부자 청년을 사랑하셔서 그에게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부를 걸고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그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버립니다.
가시덤불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청년이 하나님의 율법에 힘을 다해 순종했었다는 것 아셨나요? 그는 어릴 때부터 율법을 철저히 지킨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는 가지고 있는 재물을 나누라는 말에 근심하며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힘을 다해 순종했었지만, 아직 연약하고 부족할 수 있지. 어떻게 모든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어?
그런데 이 이야기의 가장 첫 시작에 부자 청년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 묻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주님으로 믿을 때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나 야고보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믿음은 반드시 행위를 동반합니다. 믿음의 열매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의 행위가 올바르지 않다면 그의 믿음이 온전치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가난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연약함을 핑계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돌밭과 가시덤불은 이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도 전부를 걸고 하나님을 따라가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동반되는 환난과 박해,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으로 하나님 말씀을 버리는 자들. 선택적 순종을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정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선교적 교회를 세우시며, 우리 모두를 선교적 삶을 사는 자리로 초청하신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이론에 머물거나, 그저 어렵다는 이유로 배우는 자리에 더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 삶이 실제로 삶 속에서 구현되기 위해 부단히 주님을 찾고 배우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기 위해 우리의 삶을 조정하고 주님 뜻대로 순종하는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길가, 돌밭, 가시덤불이 될 것입니다.
정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더 겸손히 우리를 낮추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난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하나님 중심적인 삶, 전적인 순종과 온전한 신뢰를 통해 하나님의 행하심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삶을 실제로 사는 자리로 자라나야 합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저도 정말로 그러한 은혜가 날마다 필요합니다.
3)좋은 땅
그렇다면 좋은 땅은 어떤 자들일까요?
Matthew 13:23 NKRV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땅은 무엇보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유일한 생명인 것을 깨닫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하나님 나라의 말씀에 모든 것을 거는 자들입니다.
전부를 걸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 자세의 좋은 본보기가 같은 마태복음 13장 44절에서 46절 말씀입니다.
Matthew 13:44–46 NKRV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좋은 땅의 자세는 모든 것을 거는 것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자,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의 공통점은 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만큼 귀중한 것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귀중한 것을 취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습니다.
기쁨의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좋은 것을 발견했기에 당연히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의 마음의 자세와 심판의 때를 묶어서 이야기 하십니다.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와 밀과 가라지의 비유,
보화를 발견한 사람,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과 그물에 걸린 물고기 비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날에, 밀과 가라지를 분리할 것이며,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를 분리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밀은 곳간에,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가라지와 못된 물고기는 불 속에 넣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좋은 땅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사역 말미에 쓴 빌립보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Philippians 2:12 NKRV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저는 이 말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 취소될 수 있으니 너희는 항상 깨어있으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매순간 내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모시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점검하며,
경각심을 가지고 더욱 주님의 뜻으로 우리의 삶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매순간이 고통스럽고 두렵고 슬플 것만 같나요?
기억하십시오. 가치를 아는 자는 그것을 취하기 위해 기꺼이 기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면 알수록 더욱 흔쾌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전부를 걸지 못한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지만,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기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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