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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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312,442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6:14-17절은 마귀의 간계에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군사는 영적전투에 임하기 위해서 온 몸을 보호하고 무기를 들고 전장에서 서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영적인 전투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온 몸을 보호하고 나서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18절의 주된 말씀이 기도하다인데, 18절의 기도하다가 14절의 서다라는 동사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14절은 11절에서 전신갑주를 입는다를 부연설명한 것이고, 11절의 말씀이 14절과 18절로 크게 이어져 있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서서, 그리고 동시에 기도함으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투에서 기도는 온 몸을 무장화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바울은 온 몸을 무장하는 것과 동일하게 기도하는 것에도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영적인 전투에 임하기 위해서는 보호대를 차고 무기를 드는 것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해야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를 통해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듯이 바울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를 해야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신 이유는 세상사람들이 하듯이 기도하지 말라는 뜻에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예수님의 뜻을 잘 이어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기도와 간구를 하라고 했는데, 바울은 기도와 간구라는 두 가지 형태의 기도를 가르쳐줍니다. 앞서 먼저 나온 기도라는 단어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기독교의 기도가 다른 종교의 기도와 다른 점은 기독교는 기도를 통해 신과 소통이 가능하다는데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셨다면,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성경의 하나님을 발견했다면, 기도는 그러한 성경의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고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용서의 하나님을 발견했다면, 기도를 통해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죠. 기도를 통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경험하는, 성경의 하나님과 소통하게 되는 것이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부분이 이렇게 평서문으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 성경을 보면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부르는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또는 어디에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르면 나는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누군가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구나, 나에게 용건이 있구나 등등 누군가 나를 부른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나는 나를 부른 사람에게 고개를 돌리며 왜 불렀냐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며,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은 하던 일을 멈추시고 부르는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하십니다. 뭔가를 구하는 것에 답을 하는 것도 응답이지만, 부를 때 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고 그 소리를 귀기울여 듣는 것도 부르는 이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온 우주를 다스리시느라 바쁘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시고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하시는 것이 기독교의 기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버지를 부르라고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무엇가를 얻기 위해서만 기도하는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기독교의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시고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가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한 기도라는 단어에 담겨져 있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할 말만 쏟아내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부를 때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아버지를 부를 때 듣고 계시는 아버지를경험을 하게 되면 기도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고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고, 기도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 옆에 계심을 알려주십니다. 기도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존이 경험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이 되고, 기도는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가 됩니다.
기도 시간에 온 우주에서 가장 크신 분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자신을 계시하여 주시니 온 몸을 구푸려 하나님께 절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니, 기도 중에 하나님의 영광에 감탄하게 됩니다. 지혜의 하나님이 다가오시니, 기도 중에 나의 교만과 무지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게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시니, 기도 중에 나의 죄로 인해 죽을 것같이 몸이 떨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만남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기도가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기도의 본질입니다.
기도를 통해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 육신의 몸과 정신도 이렇게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는데 어찌 떨리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의 하나님을 성경 그대로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먼저 언급한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로 하는 기도는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간청하는 기도를 간구라고 했습니다. 같은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것을 간구하기 전에 먼저 간구해야할 것에 대해서 주기도에서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보다 먼저 하나님을 위해서 간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실추된 하나님의 명예가 다시 원래대로 높아지시기를 위해서 간구하라고 하셨고, 하나님이 뜻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과 같이 온 땅에서 다 이루어지기를 위해 간구하라고 하셨고,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해달라고,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바라는 것을 간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간구할 때 하나님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이 얼마 중요한지를 가르치신 기도가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간구하고 나서야 그다음에 우리의 것을 위해서 간구하라고 하신 것이죠. 간구할 때도 나보다 하나님을 위한 간구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지만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의 간구에는 하나님을 위한 간구가 거의 없거나 약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간구를 할 때 무엇을 위해 간구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 기도하는 방법을 바꿔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청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요구가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간구하십시오.
우리의 간청을 통해서 하나님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필요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청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앞으로 이루고 싶어하시는 그 일들을, 우리도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그것이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점점 더 깊이 이해해 가는 것이죠.
어릴 때는 부모님께 자기 것만 들어달라고 합니다. 자기 것만 잘 들어주면 최고의 아빠 엄마이지요. 그러나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 성장하면, 온통 관심이 나에게서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부모님에게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바라시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아버지가 해주는 것에 만족하기만 했다가 성장하면 아버지가 드시고 싶은 것, 입고 싶으신 것을 사드리고 싶어하게 되는 것이죠.
성장하면 부모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채워지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부모님이 이런 걸 바라셨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부모님이 이루고 바라시는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같은 마음으로 바라게 됩니다. 성장하면, 철이 들면, 이제는 내 것보다는 부모님의 것을 더 해드리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간청할 때 먼저 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하고 내 것을 구해야 하는 것은 기도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면, 나만 보였다면, 이제는 아버지를 먼저 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뭘 원하고 계시는지, 아버지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라는 것이죠. 아버지의 것이 이뤄지기를 진정으로 구하고 있다면, 아버지가 바라는 것이 내 것보다 더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면,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는 철든 자식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해가면 갈수록, 아버지의 필요가 채워지기를 바라고, 아버지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난 다음, 그 다음에 내게 필요한 것들을 구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점점 내 것의 비중이 줄어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실추된 명예 회복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 그 나라가 온 세상에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난 다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올바른 관계 맺기를 위해서 구하고, 용서하는 것에 대해서 구하고, 시험에 들지 않게 구하고, 악한자에게서 구해주시기를 위해서 간구하는 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영적인 전장에 설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품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의 놀라운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 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하나님의 필요와 하나님의 것이 회복되고 채워지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을 이루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바울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간구를 하라고 했습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항상 성령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라는 표현은 헬라어의 표현을 그대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안에서라는 표현을 보면 성령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집니다. 헬라어에서는 in 성령 이렇게 씌여져있습니다. 헬라어에서 ‘in’은 몇가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령안에서라고 할 때, 세가지 정도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안에서는 성령의 도움으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께 간청할 때 성령의 도움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배우고 알게 된 하나님을 정말로 만나게 되는 것은 성령께서 도우실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지만, 우리의 무지와 오해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기도하는 중에 성경 그대로 경험하는 것은 성령께서 도우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왜 이것이 성령에 의해서 가능해지냐면,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갈4: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아버지로 우리에게 알리시는 바로 그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안에서는, 성령의 권능안에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권능이라함은 성령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그 자체이거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분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의 비밀은 예전에는 비밀이었지만 이제는 성령으로 인해서 신약시대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그 비밀이 무엇인지를 밝히셨다고 했습니다.
엡3:4-5”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엡3:5에서는 성령이 하나님의 비밀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깨닫게 하는 능력을 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권능이지요.
또한 고린도전서에서는 성령께서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는데, 왜 은사를 주시냐면 교회 공동체를 일으키게 하시려고 은사를 주시고,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들을 통해 서로 협력하여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나게 하시려고 은사를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가시는 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권능은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이거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권능안에서 기도할 때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려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인지,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계신지,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안에서 기도할 때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고자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게 하십니다. 성령의 권능안에서 기도할 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뜻을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위해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군사로써 무장이 되는 시간을 갖게 하십니다.
세번째로 성령안에서는 성령의 뜻을 쫓아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과 동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의 뜻을 쫓아 우리는 우리 인생의 방향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뜻을 좇아간다는 것은 성령과 보조를 맞춘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어디 계시냐면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시는 곳에, 바로 그 곳에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의 뜻을 좇는다는 것은 성령이 계신 곳으로 가서 성령의 보조가 되어 성령이 하시는 일을 돕는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에서 돌이켜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게 하시는 일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복음을 전함으로 성령과 보조를 맞추는 것입니다. 성령을 돕는 것입니다.
복음을 이해하고 선명하게 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그 영혼이 자신의 죄를 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과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이렇게 성령이 일하시는 곳으로 가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보조를 맞추고 산다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계시지 않는 다른 곳에 가서 성령과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말이 되지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의 방향을 성령께로 향하지는 않은채, 성령의 뜻을 구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성령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의 뜻을 쫓아가기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시는 성령과 보조를 맞추어,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기 위해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령안에서 기도할 때 본문에서는 ‘항상’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이 단어는 ‘모든 때안에서’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모든 때를 개역성경은 항상이라고 번역을 했는데요, 모든 때라고 할 때, ‘때’라는 시간은 일반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시는 어느 특정한 하나님의 때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하나님의 때에 만드셨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때에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현재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의 때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들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도록 성령안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성령의 도움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권능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때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도록, 그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지도록, 모든 하나님의 때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성령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때가 이뤄지도록 성령안에서 기도를 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영적인 전장에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모든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성령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세상의 기도들과 전혀 다른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꿔내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전투에서 악한 영들과 기도없이 싸울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의 말씀은 깨어서 구하기를 항상 힘쓰되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도 헬라어 성경을 보면 ‘성령안에서’라는 말이 다시 나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성령안에서’가 생략이 되어 있는데, 18절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직역해서 읽으면 보면 ‘성령안에서 성도들을 위하여 모든 끈기와 인내와 간청으로 기도할 때 깨어있어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고 성령안에서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성도들을 위해서 모든 끈기와 모든 인내와 모든 간청을 하며 성령안에서 깨어서 기도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기도할 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말씀을 다 읽어보면 구원받은 자들은 각각 개별적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를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인 믿음 위에 예수님의 교회를 직접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자기 인생과 온 우주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한 몸인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으니 가족을 서로 알고,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셨는데, 서로를 가족으로까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필요이상 서로 다가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받아 진정으로 들이지 않는다면 교회는 친교모임이나 종교적 서비스를 이용하는 곳에 불과하게 됩니다. 상대를 깊이 알고 싶어하지 않고, 내것을 깊이 알려주고 싶지도 않아합니다. 서로 내면의 영적인 깊은 것들은 숨긴 채 먼저 다가가지 않습니다. 늘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얕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서로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면 어떻게 진실한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까? 서로 다가가지도 않고, 서로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데, 사랑을 어떻게 하고 서로를 위해 어떻게 기도는 해줄 수 있을까요?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기도 어렵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무미건조한 기도가 되고, 그런 기도는 오래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 얕게 기도할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 과연 모든 끈기를 가지고 모든 인내를 가지고 모든 간청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에서 여러 성도를 위해서라고 할 때 ‘위해서’라는 말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하며 위하여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렇게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하면서 모든 끈기를 가지고 기도하고 오래 인내하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청할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사랑의 근거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이으로 한 몸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구성원으로써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모든 인내와 끈기와 간청으로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절 마지막에 깨어있다는 말은 주의를 게을리지 않고 방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느슨해지지고 무언가에 공격당하지 않도록,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방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하나님의 가족을 위해서 엄청난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간청하는 것에 방해받지 않도록 깨어서 성령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18절 모든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소통하며 기도하고, 하나님과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간청할 때 성령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령안에서 이미 가족으로 받아들인 성도들을 깊이 사랑해서 하나님의 가족을 위해 모든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사랑안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권능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뜻을 좇아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걱정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성도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니 영적인 전투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영적인 전장에서 마귀의 간계에 능히 맞서기 위함이 아닙니까? 영적인 전투에서 이기기 위함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기도를 왜 하는 것입니까? 마찬가지 이유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으로 마귀의 간계에 능히 대적할 수 있을까요?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족을 사랑하며 마음을 다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걱정하고, 오랜 끈기와 인내로 그들을 위해 간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족들 중에는 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넘어져서 다치지 않도록, 그들에 힘이 있게 되기를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지 않겠습니까? 여러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마음을 다해 기도할 때 성령께서 도우시고, 성령께서 권능으로 역사하시고, 성령께서 자신의 뜻을 알려주시는 경험을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함께 하시고, 기도할 때 성령을 경험할 때 마귀의 간계를 능히 이기며 살게 될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 모두가 이 치열한 영적인 전투에서 이겨가기를 바라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성령안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를 누려가지 않으시겠습니까?
1.오늘 기도할 때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시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혹시 내가 하는 기도가 내 말만하는 일방통행인 분들이 있으시다면, 이제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성경의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부를 때 내 소리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필요를 간구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다시 높아지시기를, 하나님의 뜻이 온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안에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 소통하기를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루시겠다고 하신 일들을 위해서 간구할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성령께서 권능으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뜻을 이루시도록 위해서 기도하시고, 성령의 뜻을 따라 기도할 때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비전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성령의 도움과 권능과 뜻안에서 성도들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개인 기도제목으로 더 기도하시다가 자유롭게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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