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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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창세기 29:14-30 야곱이 라반의 집안일을 하다. 2025년 3월 19일 수요일
인사
오늘도 이 자리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옆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저는 모두를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도 정의의 하나님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함께 하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찬양과 기도를 통해 주님께 나아갑니다. 말씀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Genesis 29:14–30 NKRV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설교
김유정 작가의 <봄봄>을 보면 주인공인 ‘나’는 데릴사위입니다. 점순이와 결혼하고 싶어서 돈도 안 받고 점순이의 아버지인 봉필 밑에서 농사일을 합니다. 강원도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춘천에 김유정역도 있죠. ‘나’는 점순이와 결혼하고 싶어서 봉필 밑에서 있지만
봉필은 쉽게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봉필은 점순이 키가 아직 작다면서 자꾸 미룹니다. 봉필은 주인공을 부려먹으면서 결혼은 안 시키고 일만 시킵니다. ‘농번기가 지나고 보자’ 라고 말한다든가, ‘농사 일을 망치면 감옥에 간다’며 미루고 위협하고 때리기도 합니다. 욕심 많은 장인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둔하고 바보같이 당하면서 우습게 나옵니다. 그리고 점순이는 바보 같은 주인공을 보며 답답해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그 부모님에게 어떤 일을 해보셨습니까?
오늘 말씀에서도 이렇게 결혼하기 위해 장인어른 밑에서 고생하는 야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명령을 따라 하란으로 가서 삼촌 라반을 만납니다. 라반은 자신의 조카 야곱을 만나니 너무 반가워합니다. 14절에 “너는 내 혈육이로다”
그렇게 반가워하며 한 달을 지냅니다. 야곱은 그냥 있을 수 없으니 삼촌 일을 거들고 양도 돌보고 요리도 잘하니 요리도 하며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라반은 야곱에게 일만 시키는 것이 그래서 일값을 주고자 합니다.
야곱에게 일 값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하라고 합니다. 갈 곳 없이 여기서 지내면서 일을 해야 하는데 값을 어떻게 주면 좋을지 정하라고 합니다. 야곱은 처음부터 목적이 결혼하는 것이었습니다. 라헬을 보고 반했기 때문에 라헬을 달라고 합니다.
‘칠년을 섬길테니 라헬을 허락해 주십시오.’
야곱은 레아가 아닌 라헬을 선택합니다. 그 이유는 17절에 나오는데요.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을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은 예쁜 사람을 선택한 것입니다. 레아는 시력이 약했다고 나오는데요. 실제로 눈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요.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시력이라는 단어보다는 눈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약하다’(라코드)는 ‘부드럽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눈이 부드럽다, 눈매가 부드럽다’인데요. 이것은 쌍꺼풀이 없이 눈이 강렬하지 않고 흐릿하다는 의미입니다. 중동 사람들은 보통 눈이 크고 쌍꺼풀도 진하고 눈이 강렬한데, 레아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쌍꺼풀이 없고 눈매가 흐릿한 것이죠. 야곱의 눈에는 예뻐 보이지 않았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찾는 연약한 모습입니다. 외모지상주의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말고 중심을 보라고 하셨지만 야곱은 보이는 것에 약합니다. 사랑에 푹 빠졌습니다. 성경은 야곱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20절에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사랑에 빠진 것을 잘 보여줍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야곱이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말합니다.
“내 기한이 다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야곱은 내가 장가들겠습니다. 하고 요쳥합니다. 라반은 허락하고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베풉니다.
밤이 되자 라반은 큰 딸 레아를 신랑 방에 들여보냅니다. 야곱은 그것도 모르고 레아와 동침합니다. 아침이 되어서 야곱이 눈을 떠 보니 레아가 있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가 가서 말합니다.
“외삼촌께서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제가 그동안 라헬에게 장가를 들려고 외삼촌 일을 해 드린 것이 아닙니까?
외삼촌께서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라반이 대답합니다.
“큰 딸을 두고서 작은 ᄄᆞᆯ부터 시집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닐세”
야곱은 속았습니다. 라반은 밤을 이용하여 라헬 대신 레아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곳의 모든 남자를 증인으로 세웠습니다. 이 사람들은 신부가 라헬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연장자가 먼저 결혼하는 관례를 따라 당연히 큰 딸 레아가 결혼한다고 생각하고 왔을 것입니다.
게다가 라반은 라헬을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7년 전 라반의 대답은 명확하지 않고 비스듬했습니다.
“그 아이를 다른 사람과 짝지어 주느 ㄴ것보다 너에게 짝지어 주는 것이 더 낫겠다. 그러면 여기서 나와 함께 살자”
이미 속이려는 의도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도 야곱은 라반을 신뢰하면서 큰 딸 레아와 결혼합니다. 이것은 나중에 자매간의 갈등과 자식들간에도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이 내용을 볼 때 ‘라반이 악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라반은 주인공이 아닌 드라마의 부차적 인물일 뿐입니다. 이 이야기는 야곱이 이삭에게 했던 사건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37:35에서 이삭이 에서의 축복을 가져간 야곱에 대해 말했을 때 사용한 말입니다.
“너의 동생이 와서 나를 속이고”
야곱이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인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 야곱도 라반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라반이 야곱에게 첫째 딸 레아를 먼저 주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데요.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라반이 사는 지역의 법이 언니가 먼저 결혼하고, 동생이 결혼하는 것이 법입니다. 형이 먼저 결혼하고 아우가 결혼하는 것이 법이라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야곱은 형이 받아야 될 장자의 축복을 자신이 속여 빼앗았습니다. 그대로 속임을 당했습니다.
라반이 그걸 알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알고 있고요.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응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도덕 공리인 ‘되갚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한 일은 그대로 우리에게 행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창 9:6
갈라디아서 6:7-8입니다.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야곱이 눈속임으로 아버지를 속였던 것처럼 이제 야곱이 속았습니다. 눈먼 이삭을 속였고, 야곱은 캄캄한 밤에 속았습니다.
미드라쉬는 에스라 때부터 쓰여진 유대인들의 성경해설인데요. 그곳에 이렇게 나옵니다.
“아침에 보니 레아였다.”
그가 그녀에게 이르되
“속이는 자여, 속이는 자의 딸이여,
내가 어젯밤에 그대를 라헬이라 부르고, 그대는 내게 응답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녀가 대답하여 이르되
“제자 없는 선생이 있느뇨?
그대의 아버지가 그대를 에서라 부르지 아니하였느뇨.
그대는 그라고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뇨?“
거울 이미지입니다. 27장에서 야곱이 이삭 앞에서 에서인척 속이며 축복을 받는 장면의 거울 이미지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말합니다.
그리고 한 단어를 더 살펴봐야 하는데요.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창세기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별로 나오지 않는데요. 18번이 나옵니다. 거의 다 야곱 이야기에서만 나옵니다. 3번을 빼고는 15번이 전부 야곱 이야기에서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몰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쓰임이 전부 제대로된 사랑은 아닙니다. ‘라헬을 더 사랑했다.’, ‘요셉을 더 사랑했다’와 같은 편애적인 사랑에 대해서만 등장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좋은 감정이고 미덕이지만 잘못된 사랑, 차별적 사랑이 갈등을 낳고 평화를 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정의가 없으면 세상을 지탱할 수 없고 가족 내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아들들에게 사랑을 골고루 공정하게 나눠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한 명을 비행기를 태워줬다. 그러면 다른 두 아들도 ‘나도, 나도’ 하면서 좀비처럼 달려듭니다. 안 해주면 난리가 납니다.
한 번은 제가 첫째랑 빵을 사온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둘째 꺼를 안 샀습니다. 그러면 둘째는 뒤집어집니다. 이렇게 제가 아들들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편애적이라면, 차별이 있다면 평화가 깨집니다. 그러니 사랑에는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지만 편애적이고 고루 나눠지지 않는다면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모두 사랑하지 않으면 질투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깁니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형 에서를 사랑했고,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동생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37:3-4
- 야곱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했고요.
- 다른 형제들이 그것을 보았다고 기록합니다.
야곱의 편애적인 사랑입니다.
30절에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더 라반을 섬기는데요.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지만 이 사랑을 그렇게 좋게는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랑의 힘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다음절인 31절에 바로 레아는 사랑 받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야곱이 둘째 부인을 너무 사랑함으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야곱 이야기에서만 거의 다 나오는데요 그 의미는 별로 좋게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주로 ‘누구보다 누구를 더 사랑하였더라’와 같은 차별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사랑의 잘못됨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래서 랍비이자 템플턴 상을 수상한 조너선 색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의가 없으면 사랑은 눈이 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정의는 비인격적이고 냉정하다.”
이렇게 하나님은 정의가 없는 사랑을 원하시지 않으시고요, 사랑 없는 정의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라헬이 아주 늦게 마지막으로 낳은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을 다른 형제들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레아는 그것이 늘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야곱의 12명의 아들 중에서 누구의 후손이 되시나요? 12지파중에서 라헬의 아들들이 아닌 레아의 아들인 유다지파의 후손으로 오십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라헬과 그의 아들들을 더 사랑하여 레아와 그의 형제들은 서러움을 당했지만 메시아는 레아의 아들 유다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보응하시며 사랑받지 못하는 자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약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심은 대로 거둘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 받지 못하는 자를 돌아보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모든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찬양
예수 하나님의 공의
제가 말씀 준비를 하면서 마지막 찬양을 정하는 순간에 무엇으로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이 찬양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틀어놓은 찬양에 이 찬양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가사 없이 피아노만 나오는 찬양이었는데요. 곡을 정하고 나니까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하나님이 정해주신 찬양인 것 같습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합심기도
정의의 하나님, 우리에게 정의를 이루어 주옵소서. 주님의 정의를 구합니다. 레아와 같이 약한 자에게 정의를 이루어 주옵소서. 또한 야곱처럼 심은 대로 거둘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옵소서.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지 않게 하시고 약한 자를 더욱 사랑하는 우리의 사랑이 되게 하옵소서.
마무리 기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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