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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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3-7
“위로의 하나님”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 데서’
2025. 3. 21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위로의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자기가 당한 환난을 하나님께서 위로하셨다고 고백하는 단락인데요. 지난 시간에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쓰기 전에 에베소에서 소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마게도냐로 떠났다고 그랬죠. 이때 얼마나 심한 소동이었는지, 밑에 8절에 보면, 살 소망까지 끊어질 지경이었다고 그래요.
이 극심한 환난 때문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도망쳐서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냐에 갑니다. 거기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전해듣고나서 고린도후서를 쓴 겁니다.
이때 디도가 전해준 소식이 바울을 위로한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7장 6절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7장 6절에 보니까,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아멘.
디도가 가져온 소식이 바울을 위로했어요. 특별히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위로라고 고백합니다. 사람이 주는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그래서 하나님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해요.
이 고백을 오늘 본문에서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보면, 바울이 인삿말을 하고나서 곧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셨다고 말을 합니다. 오늘 본문 3절 같이 읽어볼까요? 3절 시작,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아멘.
하나님을 세 가지의 말로 소개하고 있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이렇게 세 번 하나님을 각각 다르게 표현하면서 송축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세 번째,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그 뒤에 4절 말씀으로 이어져요.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죠. 이제는 우리가 받은 위로로써 다른 사람을 능히 위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절 다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아멘.
위로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십니다. 지금 바울은 이 말씀대로 디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어요. 그리고 이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위로하고자 합니다.
위로는 돌고 도는 거예요. 디도가 바울을 위로하고,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위로하고, 고린도교회는 누구를 위로할까요? 고린도교회는 디도를 위로했어요. 고린도후서 7장 7절에 보면, 디도가 고린도교회로부터 받은 위로로 나를 위로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가 디도를 위로하고, 디도가 바울을 위로하고,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위로하는 위로의 싸이클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 싸이클이 제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어떠한 환난을 당하더라도 서로 위로를 통하여 이 환난을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바울은 이 싸이클의 범위를 넓히려고 합니다. 디도와 바울과 고린도교회만 서로 위로하지 않고, 아시아의 교회들에게까지 넓히려고 그래요.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들과 교제하고, 그들과 서로 위로함으로써 다같이 환난을 이겨낼 수 있기를 꿈꾸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전서 마지막에 아시아의 교회들과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소개한 것이죠.
여러분, 이 꿈은 헛된 꿈이 아니에요. 충분히 실현 가능한 꿈입니다. 그런데 이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고린도교회가 위로의 싸이클 안에 제대로 정착이 돼야겠죠. 이 고린도후서를 통하여 바울이 전하는 위로의 메세지를 교회가 잘 받아들여야만 토대가 완성이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바울은 먼저 이 위로가 고난 당한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라 말합니다. 바울이 환난을 당하였을 때 디도를 통하여 위로를 받은 것처럼, 지금 고린도교회도 환난 중에 있지만 위로를 받으리라는 거예요. 지금 교회가 분열되고, 서로 은사를 자랑하고,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목회자를 불신하면서 교회가 흔들리고 있어요. 엄청난 환난입니다.
이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고난 뒤에는 반드시 위로가 있다!’ 이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에 바울이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아멘.
고난이 넘친 것 같이 위로도 넘쳐요. 고난만 주구장창 넘치지 않습니다. 반드시 위로도 넘칩니다. 특별히 이 위로라는 말이 헬라어로 “파라클레시스” 라고 그래요. 파라클레시스. “위로, 격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명사형으로 하면 파라클레시스이고, 동사형으로 하면 “파라칼레오”라는 말이에요. 동사형으로 하면 “위로하다” 라는 말이 되겠죠. 이 파라클레시스와 파라칼레오가 오늘 본문에 다 합쳐서 총 10번 나옵니다. 4절부터 7절까지 10번 나와요. 파라클레시스 6번, 파라칼레오 4번. 다시 말해서 “위로” 6번, “위로하다” 4번.
바울이 이렇게 같은 단어를 이처럼 여러번 반복해서 말하는 경우가 흔치 않거든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9번 말한 경우가 대표적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10번이나 돼요. 그만큼 바울이 위로를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고난이 넘치면 반드시 위로도 넘친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서 보면, 고난이 넘치지 않으면 위로도 넘치지 않는다는 말이 돼요. 고난이 왔을 때 즉각적으로 위로가 오는 게 아니라, 고난이 쌓이고 쌓여서 넘치게 되면, 그때에야 위로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로가 버스를 놓쳐서 늦게 오는 게 아니에요. 도착할 때가 정해져 있는 겁니다. ‘왜 빨리 위로가 안 와? 왜 빨리 날 안 도와줘?’ 하고 조급하고 안달이 나도, 정해진 때가 아니면 오지 않아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위로가 언젠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능히 모든 고난을 견디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 다같이 읽어볼까요? 6절 시작,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아멘.
바울과 그의 일행이 먼저 환난을 당했고, 그 뒤에 위로를 받았어요. 그 위로는 능히 그들의 환난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낼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위로의 싸이클을 따라,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위로를 전하려고 합니다. 그 위로가 바울을 구원해낸 것처럼, 능히 고린도교회가 고난을 견뎌낼 수 있게 할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서, 그 위로의 싸이클이 우리 국동제일교회에까지 넓어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을 이겨낼 수 있는 위로가, 고린도교회로부터 이제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고난 가운데 놓여 있거든,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디도를 위로하시고 바울을 위로하시고 고린도교회를 위로하신 위로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위로할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쳐서 괴로울 때에, 나를 위로하신 하나님이 그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함으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