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순종, 하나님의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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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개판 오분전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발생하여서 집도, 먹을것도 없는 사람들이 많이 넘쳐났습니다. 그 때 무료급식소를 설치하여서 밥을 나누어 주기 전 외친 말이 사람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쟁과 자연재해, 이념의 갈등 등 여러가지 혼란스러운 상황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잘잘못을 따지면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따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소망이 없는 상황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등장하십니다. 엘리야와 사르밧의 과부에게 찾아오는 소망이 없는 어려운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보호하시는지 말씀을 통해 깨닫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순종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순종을 해야 할 상황에 대해 살펴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엘리야와 사르밧의 과부가 겪고 있는, 소망이 없는 어려운 상황은 과연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순종해야 함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전환] 먼저 본문에 나타난 첫 번째 어려움은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향한 것입니다.
[요점1]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 못할,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장소로 하나님이 보내심에 순종해야 한다.
[설명] 엘리야는 왜 사르밧에 가게 되었습니까? 본문 8절에 보면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명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사르밧에 가는 것이 왜 엘리야가 겪는 어려움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문 앞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7장 1절을 보면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아합에게 저주를 선언하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등장한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이며, 하나님이 아닌 바알을 섬기는 자였습니다. 열왕기상 16장 31절에 아합을 향해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방 신을 섬기는 죄를 범한 아합을 향해서 엘리야를 통해 가뭄의 저주를 내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저주는 누가복음 4장 25절에서 예수님께서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땅만이 아니라 온 땅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연히 시돈 땅에도 가뭄에 영향이 있었습니다.
[증명] 이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기시고 거기서 까마귀를 통해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비가 내리지 않아 그릿 시내마저 말라버리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저주하신 그 땅, 바알을 섬기는 나라 시돈에 있는 사르밧이라는 곳으로 가라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사르밧 땅은 앞서 말한 것처럼 가뭄의 저주를 받게 된 이유가 된 바알을 섬기는 나라에 속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가뭄의 저주를 전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이러한 엘리야가 시돈 땅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게 된다면 그가 당할 고난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땅으로 하나님은 엘리야를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르밧으로 향합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 못할,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장소로 하나님이 보내심에도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엘리야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용]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소는 장소에 대한 순종입니다. 학생들이 진학할 학교를 정할 때, 청년들이 취업할 회사를 정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합니다. 학생들은 진학할 학교/학과가 취업률이 좋은가? 직장을 구할 때는 연봉은 좋은가? 일하기 편한 환경인가? 등등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놓치기 일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장소를 향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하여 방향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등 여러 방향을 고민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긍정하지 못할 장소나 방향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가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순위로 둔다는 것입니다. 취업을 위해 학교를 진학하고, 많은 급여를 위해 직장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진학 계획,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직장을 고려해야 합니다.
[전환] 본문의 두 번째 어려움은 엘리야에게 사르밧의 과부를 찾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요점2]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 못할,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인물에게 하나님이 보내심에 순종해야 한다.
[설명]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시돈의 사르밧에 도착한 엘리야는 그곳의 과부를 찾아갑니다. 이 당시의 과부는 고아, 나그네와 함께 약한 자, 보호받아야 하는 자로 여겨졌습니다. 집을 지키고, 돈을 벌어 와서 가정을 부양할 남편이 없는 과부는 가난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과부에게 하나님께서는 가뭄 속에서 시내가 말라버린 상황에 처한 엘리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증명] 본문 12절에 보면 이 과부는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이 가진 것에 전부인 가난한 자였습니다. 엘리야가 찾아왔을 당시에는 이 과부는 이것으로 마지막 떡을 만들어 먹고 죽을 생각이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하고, 앞으로 살아갈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 있는 자였습니다. 이러한 과부에게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바로 엘리야의 반응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을 생각이 가득한 과부를 향해서 그것으로 작은 떡을 만들어 자신에게 달라고 합니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가난하고 약한 과부를 향해서, 자신이 선포한 하나님의 저주로 인해 가뭄을 겪으며 더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과부를 향해서 너의 먹을 것을 나에게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14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라고 엘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전혀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 과부를 향해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서 너의 마지막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이것은 너무 잔인해 보입니다. 다 죽어가는 가난한 과부의 마지막 먹을 것을 강탈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과부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 못할,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인물에게 하나님이 보내심에도 순종해야 합니다.
[전환] 본문에 등장한 세 번째 어려움은 조금 다릅니다. 엘리야가 아닌 과부의 어려움입니다. 과부의 어려움, 그것은 바로 과부의 음식을 엘리야에게 먹이게 하신 것입니다.
[요점3]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 못할,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해야 한다.
[설명] 앞서 말한 것처럼 과부는 연약한 자입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도저히 미래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입니다. 당장 가진 것은 한 움큼의 가루와 조금의 기름뿐인, 죽을 날을 그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명령하십니다. 너의 먹을 것을 다른 자에게 주라. 과부가 처한 상황은 단순히 자신의 먹을 것을 뺏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는 원수이자 가뭄의 저주의 근원이며 자신을 어려운 상황으로 이끈 장본인입니다. 그러한 자에게 음식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증명] 과부는 엘리야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12절에서 엘리야를 향해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임을 알고 있었고, 지금 겪고 있는 가뭄의 근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엘리야가 지금 과부에게 와서는 그가 가진 떡을 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과부의 입장에서 보면 남의 집에 불을 질러놓고 와서는 가진 것도 달라고 하는 순 강도나 다름없는 자였습니다.
과부는 엘리야에게 자신이 가진 조금의 양식을 이야기 하면서 이것을 먹고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먹고 죽는다는 것은 더 이상 먹을 양식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며, 절망적인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13절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을 들은 과부는 엘리야가 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줍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 못할,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한 것입니다.
[적용]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상황과 특정 인물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로 다가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신뢰하고 순종한다면 내가 가진 상황과 인물과의 관계, 이해는 모두 던져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와 관계가 좋은 사람, 나와 나쁜 사람 등 이러한 인간적인 요소를 고려하여서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을 쓰실 수 있습니다. 나의 개인적인,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순종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전환] 이처럼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장소, 인물,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과부를 통해서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
[요점4] 어떤 어려움과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설명] 엘리야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소에,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 인물인 과부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엘리야에게 떡을 주었습니다.
[증명] 그 결과 엘리야와 과부는 하나님이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즉 가뭄의 저주가 끝나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먹이시고 보호하시는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환난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도저히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 본문에 나타난 과부처럼 죽을 날을 생각하는 절망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인간의 지혜로 이겨낼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제목은 순종(純宗)이 아닌 순종(順宗)입니다. 앞의 순종은 순수한 혈통을 의미하며 뒤의 순종은 순순히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우실 자를 미리 세우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순종하는 자를 도우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장소, 인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인 엘리야와 과부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이 마땅해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뿐만 아니라 과부도 먹이고 보호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과부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지키십니다. 여러분 순종하십시오. 내가 좋은 집안에 태어났다, 내 선조가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것은 하나님 앞에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큰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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