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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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이끄심
제목: 하나님의 이끄심
본문: 요한복음 6장 41-48절
본문: 요한복음 6장 41-48절
찬송: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찬송: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지난 주 오후예배에서 우리는 요한복음 6장 29-40절 말씀을 통해 "생명의 떡을 나누는 남선교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는 진리와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떡이시며 우리는 그 생명을 나누어야 한다는 사명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의 연장선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 보려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게 하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받아들이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선언하셨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심오한 답을 주십니다.
<사람들의 한계와 수군거림>
<사람들의 한계와 수군거림>
본문 41절과 42절을 보겠습니다.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님이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출신 배경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아닌가? 우리가 그의 부모를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지?"
여기서 수군거림은 그저 작은 의견 차이가 아니라, 깊은 불신과 의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정보, 즉 예수님의 가족 배경이라는 인간적인 지식을 근거로 예수님의 말씀을 판단했습니다.
우리 농촌 공동체에서도 이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는 배경과 과거를 가지고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단정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집안 출신이니..." 또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라고 말하면서 사람의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도 수군거립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 교회를 통해 그런 일을 하실까?", "하나님이 정말 저런 사람을 사용하실까?" 하는 의심들이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의 제한된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하려는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수군거림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일하시며,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의 출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분의 신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듯이, 우리의 제한된 시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이끄심>
<아버지의 이끄심>
예수님은 이런 수군거림에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43-45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예수님은 "수군거리지 말라"고 하시면서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 그분을 믿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이끄심이 먼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의 지혜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이끄심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겸손한 자세를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54장 13절 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45절에서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는 특권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는 특권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은 자연스럽게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농사일과도 비슷합니다. 여러분들은 농사를 지으시면서 잘 아실 것입니다. 아무리 농부가 열심히 일해도,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은 농부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햇빛, 비, 땅의 영양분, 그리고 씨앗 안에 심어진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3장 6-7절 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에 믿음의 씨앗이 자라나는 것도 하나님께서 먼저 그 씨앗을 심으시고, 성령의 비와 말씀의 영양분으로 가꾸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그 과정에서 협력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끄심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때로는 성경말씀을 통해, 때로는 설교를 통해, 때로는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 때로는 삶의 환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끄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주도적인 이끄심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생명의 확신>
<생명의 확신>
계속해서 46-48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독특한 위치를 선언하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보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한 선지자나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독특한 관계에 있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 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입니다. 모든 종교가 각자의 방식으로 신을 찾아가지만,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 그리고 그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47절의 선언입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여기서 '가졌나니'는 현재 완료형으로,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영생은 단지 미래의 약속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누리는 실제적인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우리 교회의 연로하신 성도님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육체적 한계를 경험합니다. 몸은 점점 약해지고, 질병과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가졌습니다. 육체는 쇠하여도 집니다(고후 4:16).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끄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끄시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유지시키는 양식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는 의미입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육체적 배고픔을 일시적으로 해결했지만, 그들은 결국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라는 생명의 떡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요 11:25-26).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6장 41-48절 을 통해 하나님의 이끄심이라는 놀라운 진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 앞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셔서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신 그 은혜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제한된 시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판단하거나 수군거리지 말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이끄심에 민감하게 반응합시다.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감으로,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끄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의심하고 수군거릴 때에도, 인내하시며 우리를 계속해서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제한된 시각과 판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제한했던 모든 교만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중앙교회가 조금 침체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이끄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성령의 새 바람이 우리 교회에 불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연로하신 성도님들의 마음에 영생의 확신과 소망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육체는 쇠하여도 영혼은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이웃들을 예수님께로 이끄는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깊이 경험하고, 그 생명을 담대히 나누는 증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중앙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