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집에 심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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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저녁 함께 은혜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92편 12절부터 15절까지절입니다. 화면을 참고하시어 함께 합독하겠습니다.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임마누엘 찬양대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마지막 시간, 여호와의 집에 심긴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교회를 다닌다”라는 표현을 자주 하죠. 교회를 어떤 물리적인 장소나 건물로 이해하는 겁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어떻게 존재했는가 보게 되면, 초대교회는 번듯한 교회 건물은 없었죠. 그들은 교회로 존재했습니다. 즉,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교회로 존재하는 것이고, 교회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우리 교회도 교회설립 67주년 기념주일이 되면 “내가 교회입니다”라는 표어를 정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뭐든지 그렇죠. 이게 지나친 나머지, 한쪽으로 치우쳐서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
‘우리가 교회인데, 교회가 있을 필요가 있냐. 내가 교회로 살아가면 되지 않냐?’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안나가’ 거꾸로 하면 가나안 성도가 생겨나기 시작했죠.
10년 전부터 ‘가나안 성도’라는 명칭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요.
물론 이 한가지 이유 때문에 가나안 성도가 생겨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코로나 19,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정말 교회에 나가지 않고, 검색하며 예배를 드리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유명한 교회,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며, 어떠한 교회에 속하지도 않은채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당시 ‘온라인 예배는 예배가 아니다. 왜 온라인 예배가 아니냐? 예배의 본질이 무엇이고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냐?’라는 등 교회론에 관한 수많은 논쟁이 있었죠.
그런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팬데믹 때 느낀 솔직한 심정은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우리의 신앙은 더욱 더 굳어져 갔고, 메말라지고, 피상적으로 변해갔죠. 예배를 쇼핑하듯 드리다보니 우리의 영성은 날로 얄팍해져갔습니다. 게다가 사람과 사람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피상적인 관계로 있다보니 무언가모를 허무함을 느꼈죠.
코로나가 거의 끝나갈 때쯤에 제가 1, 2청이 합쳐진 지금의 청년부를 맡게 되었는데요.
처음, 1, 2년 동안 새로운 청년들이 계속 오길래,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해서 우리 교회에 오게 되었는지
처음에 온라인예배를 드리니깐 너무 좋았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한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니깐, 아 내가 정말 예배 드리는게 맞는걸까, 신앙생활을 이렇게 해도 되는걸까?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정착할 교회를 찾기 위해 왔다는 청년들이 꽤나 됩니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장년들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되라”는 의미는 지역교회에 속하지 말고 홀로 신앙생활 하라는 의미가 아니죠. 오히려 반대입니다.
‘지역교회에 더욱 깊이 뿌리는 내려, 교회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라’ 이것이 팬데믹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 아닐까요?
본질을 담아낼 물리적인 교회의 중요성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간과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군인이 되고 싶은데, 군대는 가기 싫다는 것이죠. 여러분 군대에 속하지 않은 군인을 군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요?
축구선구가 되고 싶은데, 축구팀에는 들어가기 싫은 거죠. 축구팀에 속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자신이 축구 선수라도 주장해도, 그 누구도 그 사람을 축구선수로 보지 않을 겁니다.
‘내가 교회다’라고 아무리 외치지만, 물리적인 지역 교회에 속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라는 것이죠. 그 사람은 교회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공동체를 강조하려면, 공동체를 담아내는 물리적인 교회도 강조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나누고자 하는 메시지를 미리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교회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집에 심겨지는 것이다”라는 걸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심겨지지 않은채 홀로 교회로 살아간다고 한다면, 마치 뿌리 없이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죠.
단지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정착해서 심겨지는 것이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다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본문을 가지고 크게 두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씨앗에 관한 것을 먼저 살펴보고요. 두번째로 교회에 가는 것과 심기는 것의 차이. 세번째 심기는 것의 유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씨앗
1. 씨앗
첫번째, 씨앗에 관해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마치 씨앗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씨앗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죠. 씨앗은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자라나고, 번성하고, 열매를 맺죠.
우리의 삶도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자라나고, 번성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마치 씨앗 같습니다. 그래서, 자라나게 되면 나 뿐만 아니라, 열매를 맺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주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심겨진 씨앗만이 이러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심겨지지 않은 씨앗은 아무리 잠재력이 있다해도 어떠한 변화도 성장도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씨앗은 심어야 자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의인은 어떻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두 표현이 나오죠. 번성과 성장입니다. 그렇다면, 번성과 성장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요?
시편기자의 표현을 자세히 살펴보면, 번성과 성장은요. 심겨졌을 때 일어납니다. 그래서,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항목 같이 성장한다” 종려나무와 백향목을 비유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력 있는 나무의 모습이죠.
종려나무의 종려가지는 승리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올림픽에서 경기에서 승리를 하면 종려나무 가지를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당신은 승리했고, 챔피언이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도,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이곳에 왕이 오셨다. 승리의 환호를 한 것입니다.
이렇듯이, 종려나무와 같이 번성한다는 것은 승리하는 인생을 말합니다.
백향목은요.
레바논삼나무라고도 불리는데, 튼튼하고, 보기에도 좋고, 향도 좋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최상의 나무를 쓰기 위해 레바논에서 이 백향목을 수입해서 건축의 재료료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한다라는 것은 튼튼하고 강하고, 매력적으로 성장해 나간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시편기자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말할 때,
그 삶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그냥 설명하지 않고. 풍부한 이미지와 시적인 표현으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게다가, 이 두 나무 모두는요.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요. 계절에 상관없이 일년 내내 잎의 색이 푸른 상록수라고 합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할 것이다라는 것이죠.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종려나무와 같이 힘있게 번성하고, 백향목 같이 아름답게 성장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종려나무고, 레바논의 최고급 백향목이라고 심겨지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번성할 수 없고, 성장할 수 없겠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이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딱딱한 길가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새들이 와서 먹어버립니다.
또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죠. 하지만, 흙이 깊지 않기 때문에 싹이 나오긴 하지만, 태양의 열기로 인해 타서 말라버립니다.
또 어떤 씨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지만, 그 가시가 기운을 막아서, 자라지 못합니다.
여러분, 이 비유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백향목과 종려나무의 씨앗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이라는 길가와 돌밭에 떨어지면 번성하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씨가 심기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번성하는 사람은 좋은 땅에 심겨진 자들이라는 것이죠.
오늘 시편 기자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이렇게 영적으로 번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좋은 땅에 심겨진 자들입니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시편 92편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해석을 했는데요.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그 뿌리를 심은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심긴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가끔 나이가 든다는 생각이 들 때, 이 구절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늙어도 여전히 열매를 맺을 것이고, 신선하고 활력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가능한 이유도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집에 심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얼굴 빛이 청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15절에서 말하죠.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긴 자들은 “하나님은 정직하며 나의 반석이십니다”라고 고백하고 찬양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정리해서 종합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자들은 종려나무와 백향목 같이 번성과 성장, 축복과 찬양이 선포되어지는 삶을 살아간다고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이러한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에 다니는 것은 심기는 것이 아니다.
2. 교회에 다니는 것은 심기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집이라 불리우는 교회로 적용을 한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하고, 변화가 있고, 성장하려면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번성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심겨져야 합니다. 두번째 주제인데요.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하나님의 집에 심겨졌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어떤 성도가 있는데, 공예배는 잘 드립니다. 그런데, 그 이상은 절대로 깊게 들어가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중에 누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예를 들어 그런 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심겨진 것이 아니죠. 이러한 사람들은 교회가 하는 일에 참석은 하지만, 참여는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원해서 참석할 수는 있지만, 어떠한 책임도, 어떠한 의무도 지지 않으려고 하죠. 참석만 하지 참여하지 않는 겁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모임이 나에게 더 좋고, 더 유익이 되면 얼마든지 그곳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쇼핑하듯 신앙생활 하는 거죠. 영적인 소비자들입니다.
여러분 이 모습은 마치 어떠한 곳에 깊게 심겨지지 못한 뿌리가 없는 나무의 모습과도 같죠.
성장도 없고, 번성도, 열매도 없는 겁니다.
여러분, 어떠한 곳에 심겨지려면요. 내가 원할 때 뿐만 아니라 책임을 가지고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러 다니거나, 어떠한 학원을 다니는 것도, 한번 나가서 마음에 안든다고 그만두면 어떻게 됩니까? 어떠한 열매도 없죠.
꾸준히 그 자리에 가서 인내 헌신, 책임이라는 뿌리를 심어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 당연한 원리는 영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어떠한 헌신도 어떠한 의무도, 어떠한 책임도 없다면, 구원은 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어떠한 번성도, 어떠한 성장도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깊이 교회에 뿌리는 내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 받는 자리 뿐만 아니라, 교회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또 가려고 하는 곳에 나의 헌신과 책임을 심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집에 심기운 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유튜브로 여러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실 겁니다.
저도 듣습니다. 하지만, 설교만 듣지, 우리가 그 교회를 가지는 않잖아요. 그 교회에서 봉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교회에 심긴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어떠한 모임도, 봉사도, 헌신도 없다면, 그 사람은 교회에 심기운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는 모임을 말하는데,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세상으로 보내시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교회는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심긴다는 것은 영적인 소비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참여하고, 헌신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집에 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과 하나님의 집에 심겨지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3. 심기는 것의 유익
3. 심기는 것의 유익
세번째, 이렇게 심겨지게 되면 일어나는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심기어 지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물가에 심어져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는 더위가 와도 잎이 청청하고, 가뭄이 와도 열매를 계속해서 맺는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열매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 열매인 성령의 열매를 말하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인데.
바울이 굳이 열매를 비유로 든 것은 하나님께 심겨진 자들에게서 맺어지는 것이다는 거죠.
이렇게 심겨진 자들은 열매를 맺게 되는데, 삶의 시련과 가뭄과 같은 메마른 시기가 오더라도 그 열매는 끊이지 않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듯이, 고난 가운데 사랑의 열매가 맺히고, 시련 가운데 희락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리고, 이 열매들을 자세히 보시면, 모두가 관계 가운데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홀로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심겨져, 함께 심겨진 하나님의 가족들과 함께 예배하고, 목장에서 교제하고, 훈련받고, 섬길 때 맺어지는 열매들이라는 것이죠. 성장은 깊은 관계와 공동체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열매는 혼자 좋으라고 맺어지는게 아니죠. 열매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양분을 줍니다.
그래서, 나에게 맺어진 사랑의 열매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축복하는데 쓰이게 되죠. 나의 기쁨의 열매가. 기쁨은 전염성이 있잖아요. 또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나에게 맺어진 화평의 열매로 인해 공동체가 더욱 더 건강한 관계 가운데 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심겨져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형상으로 변화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두번째, 심겨지게 되면 뿌리가 깊어집니다.
뿌리가 깊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외부의 어떠한 폭풍이 불어온다해도, 뿌리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습니다.
방금 살펴본 예레미야 17장 8절은 말하죠. 물가에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는 어떠한 더위와 가뭄에도 걱정이 없고, 계속해서 열매를 맺는다.
이 말씀이 또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심겨져서 뿌리를 깊게 내린다고 해서 삶이 완벽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삶의 폭풍이 올수도 있고요. 뜨거운 시련과 메마른 가뭄과 같은 시기를 지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가 깊게 내렸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삶의 어떠한 문제보다 더 큰 근원인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폭풍 가운데서도 견딜 수 있는 겁니다.
제 뒤에 있는 사진이 레드우드인데요. 미국 캘리포니아의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레드우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입니다. 30층 높이까지 100미터 이상으로 자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레가 30미터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나무가 어떻게 100미터 이상까지 자랄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비법은 이 나무의 뿌리에 있는데요.
이게 반전인데요. 여러분 레드우드의 뿌리는 3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3미터 밖에 안되는 뿌리로 이 거대한 몸집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레드나무의 뿌리는 옆으로 뻗는 습성이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의 뿌리를 보면 한 몸처럼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붙잡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필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에요.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시련을 겪게 될 것이고, 문제와 어려움, 좌절을 겪게 될 것입니다. 재정적인 어려움, 관계 가운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혼자 겪게 된다면, 쉽게 흔들리고 넘어지겠죠.
하지만,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넘어지려고 할 때 서로를 붙잡아 주는 겁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번성하고 성장한다는 것이 아무런 어려움 없는 삶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온갖 폭풍과 가뭄과 같은 힘겨운 때가 올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넘어트리지 못한다라는 것이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붙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성하고 성장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고난 앞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함께 스크럼을 짜고 함께 싸우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함께 나누었죠. 몸의 비유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치과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무 아파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오. 치아는 제 몸에 있는 작은 하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면 어떱니까?
너무 아파서요. 몸 전체가 이빨이 된 양 온 몸의 모든 신경이 이빨에만 쏠리게 됩니다.
주님의 몸된 공동체인 교회는요. 누군가가 고통가운데 있다면, 한 몸으로써 함께 견디며, 함께 그 고통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하나님의 집에 뿌리를 내린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서로를 붙들어 주는 모습이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죠.
목적이 이끄는 삶을 쓴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님에겐 2남 1녀가 있는데요. 그 중에 막내가 27살 난 매튜 워렌이라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2013년 4월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매튜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매튜라는 청년은 10년 전부터 정신 질환을 앓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 최고의 의사들과 상담전문가들에게 치료를 받았고, 이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끝내 매튜는요.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릭 워렌 목사님이 부활절을 맞이하여 전 세계 방송으로 부활의 소망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던 때,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릭 워렌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소망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데, 정작 그의 아들은 절망의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진 릭 워렌 목사님은요.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릭 워렌 목사님이 이 일을 당했을 때, 릭 목사님과 가까이 지내던 두, 세사람이 목사님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일주일동안 계속 같이 집에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한 일을 한게 아니었요. 그저 함께 있어주고, 함꼐 슬퍼해 주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함께 한 것만으로도 릭 워렌 목사님은 당시에 큰 위로를 받았고, 다시금 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라고 합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견디고, 함께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싸워나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기치 못한 삶의 어려움이 누구에게나 닥쳐 올 수 있습니다.
그때 혼자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든든히 나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그 어둠의 터널을 지나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누군가 쓰러졌을 때, 일으켜 세워줌으로써,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주제로 설교할 때 제가 꼭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프데드릭 뷰크너의 “브렌단”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을 보면 절름발이인 길다스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날 이 사람이 어떠한 모임에 갔는데, 무릎 아래에 다리가 없으니깐, 자꾸 넘어지려 하는 겁니다.
그대로 길다스는 사람들에게 “나는 캄캄한 세상처럼 절름발이일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브렌단이라는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중 절름발이가 아닌 사람이 누구입니까?”
갑자기 장내가 쥐죽은듯 조용해 집니다. 왜냐하면, 길다스처럼 모두가 다 다리를 절뚝이지는 않지만, 모두가 다 절름받이같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브렌단이 이렇게 말합니다. “넘어질 때 서로 손 내밀어 주는 것,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우리 중 절름발이가 아닌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우선 내가 절름발이라는 것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고요.
사역을 하면 할수록, 나 뿐 아니라 모두가 다 절름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만 아프고 힘든게 아니라, 다들 아닌척 하는거지, 이야기 들어보면, 다 아프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요. 넘어질 때 서로 손 내밀어 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인 것이죠.
제가 고백할 수 없는 사실이 무엇이냐면,
제가 오랜 시간 혜성교회라는 사역지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강해서가 아니죠.
저는 언제라도 넘어지는 절름발이입니다. 하지만, 그때 그때 마다 저와 함께 사역했던 목사님들과 성도님들, 청년들, 저의 가족이 붙들어 주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는 동시에 서로에게 뿌리를 내려서, 함께 지탱하며, 번성하고, 성장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혹시나 아직도 교회 공동체 가운데 뿌리를 내리지 못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자들이 되어서 번성하며 영적으로 열매맺는 은혜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에 심겨 종려나무와 같이 번성하고, 백향복처럼 성장하기를 원하시고요.
믿음의 형제들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서로를 지탱하며, 믿음의 싸움을 함께 싸우며 ,함께 성장하고, 넘어질 때 서로 손잡아줄 수 있는 공동체에 여러분이 심겨지기를 원하십니다.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4주간에 걸쳐 말씀 전했는데요.
시리즈 전체를 마무리 하면서 에베소서 2장 19절부터 22절까지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함께 지어져 올라가기 위해서 여러가지 것들을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기초로 해서 지어져 올라가냐라는 것이겠죠.
만약 잘못된 기초 위에 지어져 올라가면 많은 것들을 아무리 완벽하게 잘 해낼지라도 소용이 없죠.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그 기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모퉁잇돌이 되셨다라고 말하죠.
모퉁잇돌은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석 역할을 하는데, 여러분, 우리는 그 토대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죄로 인해 하나되지 못하고,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단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우리의 구원자이시죠.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죄로 인해 망가진 우리는 아무리 땀과 수고를 심어봤다 엉겅퀴만 내는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심기어져 생명을 얻고 번성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밀알이 되어 죽음으로 심기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 같이 되어 버렸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이제 그 이름을 믿는 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심기어지죠. 많은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영원한 목적을 위해 번성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함께 고백하십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백 위에 그분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여러분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실제적으로 모이게 하시기 위해 혜성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 깊게 심기어져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의 다름을 통해 하나가 되고, 목장모임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서로를 붙들어 줌으로 종려나무와 백향목 같이 아름답게 번성하고 성장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말씀 기억하면서 찬양하겠습니다.
우리 함께라는 찬양인데, 가사의 의미를 묵상하며 찬양하겠습니다.
찬양
찬양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만남을 계획해놓으셨네 우린 하나되어
어디든 가리라 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리라 당신과 함께
우리는 하나되어 함께 걷네 하늘 아버지 사랑 안에서
우리는 기다리며 기도하네 우리의 삶에 사랑 넘치도록
또 우리 모임은 주님만 따르리 환란이 올지라도 주 함께 하시리
또 우리 마음에 시험이 닥칠 때 어둠은 지나가고 새 아침 주시리
우리는 하나되어 함께 걷네 하늘 아버지 사랑 안에서
우리는 기다리며 기도하네 우리의 삶에 사랑 넘치도록
이 시간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심겨진 인생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집, 주님의 몸된 교회에 심겨진 인생되게 하옵소서.
함께 예배하며, 섬김으로 뿌리를 깊게 내려 그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성장과 번영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열매 맺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올라가는 교회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특별히 혜성교회를 축복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번영과 축복을 지역사회 가운데 흘려보내는 주님의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
기도
하나님, 4주간의 시간 동안 공동체에 대해 교회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주님의 몸된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하여 주시고, 내가 속한 공동체, 목장을 더욱 귀히 여기게 하옵소서.
그저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깊이 심겨 서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서로 참고 견디며, 죄와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하옵소서.
그 가운데서 맺어지는 열매를 통해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지어져 올라감으로 주님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블레싱기도
블레싱기도
이 시간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동기도문을 읽으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명을 가지고 삶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돌보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
혜성교회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 만민이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따라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예배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게 하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사람을 세워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사도행전적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통해 믿음의 다음 세대가 자라나게 하시고,
교회와 가정, 주일학교와 한아름유치원, 이야기학교, 러빙스쿨,
경신을 비롯한 기독교 사학을 통해
요셉과 다니엘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배출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역과 이 나라에
공의와 질서 안에서 평안을 허락하여 주시며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허락해 주옵소서. 아멘.
축도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 성령의 교통하심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함께 지어져 가기를 원하는
이 자리 가운데 머리 숙인 주의 자녀들 머리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