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강해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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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너를 찾아내리라!
요나서 1:7-10
요나는 선장에게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는 꾸중을 듣지만, 요나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배가 곧 깨지게 된 상황이어도 요나는 회개할 줄 모르고 자신의 죄를 인정할 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또한 도망 중이라 하나님께 차마 기도하지도 못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요나의 죄를 감춰두지 않도록 결심을 하셨습니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겪는 폭풍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심각한 폭풍은 누군가 신의 노여움을 산 결과로 받게 된 징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원들은 제비를 뽑아서 누가 그 죄인인지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민수기 32장 2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 낼 줄 알라”
아무리 요나가 자신의 죄를 감추고 배 밑바닥까지 도망을 쳐서 숨는다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여호와께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그 죄가 찾아옵니다. 지금 민수기의 말씀이 요나에게 응하였습니다. 제비를 뽑자, 요나가 바로 그 죄의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갈 때에 자신의 신분을 숨겼습니다. 아무도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요나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나는 더 이상 신분을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난주에 이방인 선장이 하나님의 백성인 요나를 꾸짖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더 이상 선장 한 명만이 아니라 그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꾸짖음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가 책망받게 됩니다.
8절에 나온 선원들의 질문은 간단한 것입니다. 이 폭풍의 재앙이 내리게 된 이유를 낱낱이 실토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요나에게는 정말 큰 망신입니다.
요나가 이러한 상황까지 몰리게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유도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겼고, 하나님을 우습게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요나는 이스라엘을 떠나서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도망만 친다면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이라는 땅에 갇혀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온 우주에 충만한 말씀이며, 누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말씀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서 도망쳤지만, 하나님의 손에서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민수기의 말씀처럼 죄가 반드시 요나를 찾아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이 당장 심판과 징계가 내려지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 죄는 우리를 찾아내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짓는 죄는 현세에서든 내세에서든 반드시 우리에게 죗값을 요구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 부류가 나뉘게 됩니다. 자기 죗값인 사망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아 구원받을 것이냐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믿고 의지할 것이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 편에서 아주 간단히 해결이 됩니다. 그저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그저 입술로만 고백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살아 있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곧 입술의 고백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진정으로 사모하게 됩니다. 입술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의로운 자라고 고백을 하면서 세상에서는 그 고백과 상관없이 여전히 죄를 짓고, 죄의 자리에 머물고, 죄악된 말들을 입으로 쏟아내고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구원에 대해서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요나의 대답에서 우리는 바로 그러한 사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요나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요나는 감추었던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자신은 히브리 사람이며 천지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맞는 말만 한 것도 아닙니다.
요나는 분명 히브리 사람 곧 이스라엘 사람이 맞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다는 사실도 분명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바로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모순입니다.
요나는 과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요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며 하나님 경외하기를 거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요나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말함은 분명 모순입니다.
요나는 지금 입술로만 신앙인입니다.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함정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저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믿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로 믿는다는 것은 입술의 고백이 삶의 모습에서 참으로 드러날 때 그것이 진실로 믿는 것입니다.
요나는 입으로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결코 경외하는 백성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분명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입술로만 고백하고, 죄와 더불어 살면서 죄를 짓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거짓이라 증명될 것입니다.
우리가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로부터 떠나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복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드리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저 입술로만 믿음을 고백하고 우리의 삶은 옛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있다면, 이는 분명 극심한 심판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할지라도 입술의 고백이 삶에서 드러나고 있다면, 죄악된 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난다면, 나는 구원을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입술의 신자가 되지 마십시오. 삶의 신자가 되십시오. 거짓된 신자가 아니라 참된 신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잠언 28장 9절에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면 그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 됩니다. 입술로만 신자가 되지 마시고, 영혼과 육체와 삶의 모든 부분에서 신자가 되십시오. 만약 입술로만 신자인 채로 남는다면 분명 여러분의 죄가 여러분을 찾아서 정죄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정한 신자라면 혹 죄를 짓더라도 그 죄를 우리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니 정죄당할 걱정은 버리고, 죄를 지은 모습을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이 저지르는 모든 죄를 용서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얼마 전까지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요나는 지금 이방인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망신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심판하고 정죄해야 할 하나님의 선지자가 세상으로부터 심판받고 정죄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나는 징계를 단단히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주신 본문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또한 보게 됩니다.
요나가 폭풍의 원인으로 자신이 여호와의 얼굴을 피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무리는 “심히 두려워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절에 폭풍우로 인해서 선원들이 두려워했는데, 지금 요나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죄를 추궁하고자 이렇게 거대한 폭풍을 주셨다는 사실에 그들은 두려움을 더 크게 갖게 됩니다.
사실 요나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생겨난 일인데, 히브리인인 요나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이방인인 선원들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작 요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듯이 보이는 상황에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그토록 위대한 하나님께서 자기의 선지자를 바다에까지 쫓아와서 벌을 내릴 때 선원들은 죄에 대한 형벌이 이토록 가혹함을 듣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더 심히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선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면서, 여러 나라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기 위해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홍해를 가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너게 하고,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신 하나님.
또한 40년간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면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키시고, 다니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만드셨으며, 결국에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 들었을 것입니다.
선원들의 앞에 지금 그 하나님의 진노가 폭풍으로 내려지고 있고, 그 진노의 대상이 자신들의 앞에 있는 요나 선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들은 극심한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안에서 우리는 요나와 선원들의 대조를 볼 수 있습니다. 선원들이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더라도 요나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세히 알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요나는 선원들보다 하나님에 대해서 정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알고, 하나님의 언약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는 것만 있습니다. 요나가 진실로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불순종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분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하나님께 바로 자신이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바로 이와 같은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경과 교리를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없다면, 우리의 지식은 오히려 우리에게 분명한 심판의 근거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47절에서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서도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나는 육지와 바다를 지으신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나의 행동은 함께 배에 타고 있었던 선원들의 구원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지금껏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을지는 몰라도, 그분의 위엄을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 불순종한 요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두려움에 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지 않은 요나를 찾아서 죽이신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 요나일지라도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요나의 도주를 사용하셔서 선원들의 구원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또한 계속된 불순종의 모습을 보이는 요나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요나를 붙잡아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점을 우리에게 적용해 보십시오. 우리는 요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 속에 있다면,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붙들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또한 요나의 불순종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듯이, 우리의 보잘것없는 삶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요나의 불순종으로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면,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을 하실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쩌면 우리의 순종으로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고 계신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기억하셨다가 마지막 날 주님 품에 안긴 우리에게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주의 사랑으로 영원한 복의 나라로 인도해 주실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큰 사랑과 섭리 속에 사는 것은 놀라운 은총입니다.
